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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만: 만 형제의 갈등과 시각예술

3. 토마스 만의 생애와 시각예술 체험

3.1. 하인리히 만: 만 형제의 갈등과 시각예술

문학과 음악에 비해 회화적 능력에는 별 재능이 없었던 토마스 만에 비 해, 그의 형 하인리히 만은 회화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시각형 인간이었 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하인리히는 젊은 시절 화가와 작가 사이에서 진로

를 고민할 정도로 문학 못지않게 그림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으며, 실제로 상당수의 작품을 남긴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141) 그는 젊은 시절부터 1950년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그림을 그렸으며 특히 말년의 미국 망명시절 에는 매일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일부 그림들은 전문화가 못지않은 능숙한 필치와 기법으로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성취하고 있다. 두 형제의 타 고난 재능의 차이는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 주는 그들의 그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142)

하인리히 만의 뛰어난 회화적 재능은 그의 문학 창작과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안드레아 바르틀 Andrea Bartl은 하인리히 만 작품 속에 서 두 예술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시각적인 서사 visuelles Erzählen”로 규정하고 있으며,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시각 예술과 문학이 갖는 밀접한 관계, 곧 “텍스트의 시각성 Visualität von Texten”과 “그림의 서사성 Narrativität von Bildern”143)을 꼽고 있다.

곧, 하인리히 만의 문학 작품이 회화적이라면 그의 회화 작품들은 서사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두 예술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융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141) 빅토르 만은 하인리히의 회화적 재능은 어머니에게서 이미 발현되었던 소질이 맏 형에게 더욱 강화되어 유전된 것이라고 하면서 저명한 비평가들로부터도 형의 그 림 실력은 인정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Viktor Mann 1949. S. 50.

142) 본 논문 4.2. 참고.

143) Andrea Bartl: Visuelles Erzählen. Zum Verhältnis von Literatur und bildender Kunst im Werk Heinrich Manns, erläutert am Beispiel der Novelle Pippo Spano. In: Katrin Bedenig Stein/Thomas Sprecher/

Hans Wysling(hrsg.): Thomas Mann Jahrbuch. Bd. 26. Frankfurt a.

M. 2013. 135-154. S. 135.

<그림 1> 하인리히 만: 지도자의 시작144)

연애와 잔혹동화 Liebschaften und Greuelmärchen(2001)145)에 수록된 미국 망명 시절 하인리히 만의 그림들은 이와 같은 성격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그림 1). 위 그림은 지도자 곧, 히틀러를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 남의 침실을 몰래 기어들어가는 좀도둑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림의 특성에 대하여 바르틀은 “하인리히 만 글의 특징은 성(性), 예술, 정치를 같은 문제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인데 [...], 이 특징은 그림에도 나타난다 Insbesondere die für Heinrich Manns Texte so charakteristische Verbindung von Sexualität, Kunst und Politik

144) Volker Skierka(hrsg.): Liebschaften und Greuelmärchen. Die unbekannten Zeichnungen von Heinrich Mann. Frankfurt a. M./Wien/Zürich 1989.

S. 137.

145) Volker Skierka(hrsg.): Liebschaften und Greuelmärchen. Die unbekannten Zeichnungen von Heinrich Mann. Frankfurt a. M./Wien/Zürich 1989.

findet sich auch [...] in den Zeichnungen”고 하면서 그의 문학과 그림 이 갖는 주제상의 공통점을 지적한다.146) 하인리히 만의 그림과 문학에서 나 타나는 이와 같은 연결성을 바르틀은 “하인리히 만의 그림은 단순히 문학 텍 스트의 일러스트가 아니며 그의 텍스트 또한 그가 그린 그림의 단순한 해설 이 아님 daß die Zeichnungen dabei nicht bloße Illustration der Texte und die Texte nicht reine Erläuterungen der Bilder sind”147) 을 지적하며 한 작가에게서 두 예술이 하나로 서로 통합되어 있는 양상을 정 확히 드러낸다.148) 따라서 그의 그림과 문학 작품들은 상이한 매체이긴 하지 만 다양한 양상으로 서로 통합되는 한 작품의 각 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이 다. 하인리히 만 예술의 이러한 특징은 보이는 것을 배제하고 순수한 사고에 의해서만 창작을 하고자 한 토마스 만과 배치되었으며 바로 이러한 점이 작 가로서 만 형제가 갖는 근본적인 차이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 만이 형에게 가졌던 불편한 감정은 무엇보다도 예술을 직 접적인 정치적 도구로 보는 하인리히에 대한 반감에서 오는 것이 더 컸다고 보인다. 무엇보다 토마스 만은 하인리히가 정치와 예술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 문학을 정치적인 도구로 여기는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토마스 만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무렵 발표한 일련의 정치 에세이

「전시의 사상 Gedanken im Kriege」과「프리드리히와 대 연정 Friedrich und die große Koalition」(1915)에서 인간의 문제는 정치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으며 그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정신, 즉 비 정치적인 독일적 사고의 전통이라고 하면서 그의 보수적 입장을 분명히 피 146) Andrea Bartl 2013. S. 145.

147) Ebd. S. 145.

148) 바르틀은 하인리히 만에게서 나타나는 문학과 그림의 연결성에 대해 다른 학자들 도 이미 지적한 바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선행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Hans Wißkirchen: Der Autor als Zeichner. Heinrich Manns unbekannte Zeichnungen und sein literarisches Werk. In: Volker Skierka(hrsg.):

Liebschaften und Greuelmärchen. Die unbekannten Zeichnungen von Heinrich Mann. Göttingen 2001. 29-47.

Kurt Böttcher/Johannes Mittenzwei: Dichter als Maler. Stuttgart 1980. S. 214.

력한 바 있다. 보수적인 독일 시민계급의 교양에서 유래한 동생의 이런 국 수적인 입장에 대해 하인리히는 에세이「졸라 Zola」(1915)에서 드레퓌스 사건의 영웅이자 사회비평가로서 졸라의 진보적인 역할에 대해 언급하며 서 방 민주주의 진영의 선봉에서 동생을 공격했다. 이에 맞서 토마스 만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자신의 입장에서 정치와 예술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비정치인의 고찰 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 (1918)을 집필하며 비정치적인 독일의 ‘문화 Kultur’에 ‘민주주의’의 이름 으로 가해지고 있는 서방 라틴 세계의 ‘문명 Zivilisation’의 공격에 맞서 전투적으로 대항했다.149) 그는 하인리히 만을 비롯한 소위 서구의 ‘문명의 문사 Zivilisationsliterat’ 들이 지향하는 ‘진보 Fortschritt’라는 것은 라 틴적 · 정치적인 의미에서는 독일의 인간화이지만 독일적인 의미에서는 독 일의 비인간화라고 주장한다.

내가 말한 이 발전, 이 진보란 어떤 것인가? ... 그것은 바로 독일을 정치화, 문학화, 지성화, 급진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라틴-정치적 의 미에서 독일의 인간화는 독일적 의미에서는 비인간화를 의미한다...

Welches ist nun diese Entwicklung, dieser Fortschritt, von dem ich sprach? [...] Es handelt sich um die Politisierung, Literarisierung, Intellektualisierung, Radikalisierung Deutschlands. Es gilt seine ›Vermenschlichung‹ im lateinisch –politischen Sinne und seine Enthumanisierung im deutschen...150)

나아가 그는 이러한 문화와 문명의 대립을 ‘천박’과 ‘심원’의 대립으로 보 았으며 문명의 세계에서 예술을 통해 세계를 개혁하려는 정치적인 예술을

149) 토마스 만의 정치적 입장에 관한 국내 연구서로는 오한진: 근대 독일의 문명작가 와 문화작가. 홍성사 1981., 황현수: 토마스 만의 문학과 사상. 세종출판사 1996.

최근 연구논문은 윤순식: 토마스 만의 에세이에 관한 소고 - 정치관의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독어독문학 141. 2017. 65-83., 윤순식: 문학과 정치, 정치와 문학.

독어교육 75. 2019. 349-370., 김륜옥: 민족주의 및 보수주의 예술의 허와 실- 리하르트 바그너와 토마스 만을 예로. 독어독문학 150. 2019. 153-174 참고.

150)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1918) GW XII 68.

곧 천박한 것으로 비판했다.151) 비정치인의 고찰에서 토마스 만은 하인 리히가 옹호하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민주진영의 정치성과 비교해 독일 민족의 특수성과 정신적인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독일의 문화학자 골츠 Bogumil Goltz(1801-1870)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다.152)

독일인은 개개인이 독립된 세계이며, 대부분 하나의 인격체이다; 그는 언어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다른 민족의 개인들과 비교할 때 한 인 간, 천재, 독창적 존재, 감성인 인간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성격을 가진 인간이다. 프랑스인처럼 벙어리 단역배우,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 아니 기 때문이다...

Der deutsche Mensch bedeutet in jedem Individuum eine aparte Welt, er ist am meisten eine Person; er ist im tiefsten Sinne des Wortes ein Charaktermensch schon um deswillen, weil er, verglichen mit den Individuen anderer Nationen, eine Person, eine Genie, ein Original, ein Gemütsmensch, weil er kein Figurant, kein soziales oder politisches Tier im Sinne der Franzosen ist [...].153)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직설적인 정치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하인 리히 만의 그림은 토마스 만에게 외설적이고 천박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그림의 소재나 표현상의 문제를 넘어서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인리히 만은 서방 민 주주의, 라틴 문명의 진영에서 정치와 예술의 직접적인 관계를 옹호하며

“정신과 행동 Geist und Tat”의 종합 Synthese을 이루려 노력했다.154) 하인리히 만의 정치적인 그림과 문학은 이런 자신의 신념을 이루려는 정치 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마스 만은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

151) 문화 Kultur와 문명 Zivilisation 개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외르크 피쉬(오토 브루너/베르너 콘체/라인하르트 코젤렉(편):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문명과 문화.

(안삼환 역). 푸른 역사 2010.

152) 황현수: 토마스 만의 문학과 사상. 세종출판사 1996. 429 쪽 참고.

153)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1918) GW XII 242f.

154) Kurt Böttcher/Johannes Mittenzwei: Dichter als Maler. Stuttgart/Berlin/

Köln/Mainz 1980. S. 214.

한 정신에서 나오는 ‘비정치적인’ 음악을 가장 독일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 와 관련하여 김륜옥은 “토마스 만은 (괴테,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등 ‘독 일적인 위인들과 더불어) 바그너를 내세우며 자신의 ‘비정치적인’ 독일성을 확인한다.”고 말한다.155) 이와 같은 토마스 만의 “비정치적 입장”, 즉 “정신 은 정치가 아니다 Geist ist nicht Politik”156)라는 생각은 독일 시민계급 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보수적 교양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157)

만 형제가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둘러싸고 공공연하게 심각한 논쟁을 벌 인 것은 1914년부터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원초적으로 형제의 기질과 소 질 차이에서 찾을 수 있으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 이른 시기 부터 시작되었다. 빅토르 만은 두 형들이 작가로서 지향점을 모색하던 1895년에서 1897년 사이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둘 사이에 편치 않은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158) 이 시기는 두 형제가 뮌헨의 어린 동생들을 위해 그림책을 창작한 때와 일치한다.

그러나 더 근원적으로 거슬러 가면 형제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같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 사이의 기질과 소질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하인 리히와 토마스 만 형제는 각각 회화와 음악으로 상이한 재능을 갖고 있었으 며 타문화 수용성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하인리히 만은 타문화, 특 155) 김륜옥 2019. 165 쪽.

156)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1918) GW XII 31.

157) 김륜옥 2019. 164 쪽 참고.

158) Viktor Mann 1949. S. 47-50. 빅토르는 두 형들이 이탈리아에서 지내면서 공동으로 제작한그림책에 대해 설명하며 이들이 뮌헨의 집에 올 때면 유쾌하 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탈리아에서 심각하게 갈등했다는 사실을 뒤늦 게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갈등의 원인은 만 가족의 역사에 대한 소설의 구상 을 둘러싸고 일어난 것으로, 원래 둘이 공동으로 집필하려 계획했던 이 작업은 토마스 만이 1897년부덴브로크 일가를 쓰기 시작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코 프만은 하인리히 만이 이 가족사의 내용을 니체의 생철학에 기반하여 상승의 역 사로 서술하려 한 반면, 토마스 만은 쇼펜하우어를 따라 몰락의 역사로 기록한 데서 근본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가족의 역사 서술을 둘러싼 두 형제의 갈등에 대해서는 Helmut Koopmann: Thomas Mann - Heinrich Mann.

Die ungleichen Brüder. München 2005.의 Anfänge: Heinrich Mann schreibt einen Familienroman. Und Thomas Mann antwortet. S. 46-54 부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