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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고소사실 중 일부가 허위인 경우

II. 허위 판단의 기준

1. 하나의 고소사실 중 일부가 허위인 경우

무고죄에 있어서 허위 여부는 그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에 가 장 중요한 구성요건 중의 하나이다. 현행 형법의 해석에 있어 허위사실의 판단기 준에 대하여 학설과 판례는 신고사실의 핵심이나 본질적 내용이 진실과 합치하느 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 일치되어 있다.15) 여기서 이른바 ‘정황의 과장’

법리가 도출된다. 대법원은 고소 내용이 사실에 기초하여 그 정황을 다소 과장한 것일 때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16)

신고한 혐의사실의 핵심이나 중요한 내용이 사실에 기초하나 단지 그 정황을 과장하여 허위의 혐의사실로 부풀려 고소한 경우에는 허위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정황의 과장’에 대한 면죄 논리17)는 고소의 본질과 인간의 심성 에 비추어볼 때 과거나 현재나 모두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신고를 함 에 있어 다소간 정황을 과장할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신고 내용의 핵심이 진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사법기관의 심판기능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다.

조선초기에도 같은 취지에서 정황의 과장에 대하여 면죄한 사례(부록1-13)를 찾을 수 있다. 1410년(태종 10년) 전 郞將 金仲節이 軍資注簿 姜順과 집터를 다투다가 사헌부에 “강순은 네 사람의 아내와 한 사람의 첩을 거느리고 있고, 이 미 큰 집을 가지고 있는데 또 내 집터를 함부로 빼앗으려고 한다”라고 고하였 다.18) 김중절이 고소한 사실의 요지는 첫째로 처첩을 여러 명 거느리고 있다는 15) 이존걸, 앞의 논문, 289쪽; 대법원 1991. 10. 11. 선고 91도1950 판결; 대법원

2006. 2. 10. 선고 2003도7487 판결.

16) 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도8949 판결; 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 6027 판결;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6도6347 판결;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도5939 판결; 대법원 1998. 9. 8. 선고 98도1949 판결; 대법원 1990. 11. 9. 선 고 90도1706 판결; 대법원 1985.4.9. 선고 85도283 판결; 대법원 1984.1.24. 선고 83 도3023 판결; 대법원 1973.12.26. 선고 73도2771 판결.

17) 구타를 당하였는데 입지 않은 상해를 고소내용에 포함시킨 경우, 강간을 당하였는데 강간으로 입지 않은 상해를 고소내용에 포함시킨 경우, 구타당하여 상해를 입었는데 구 타와 상관없이 발생한 상해까지 고소내용에 포함시킨 경우 등이 판례에서 인정한 정황 의 과장에 해당한다. 정황의 과장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례에 관하여는 박동률, 「일부 허위와 정황의 과장과 무고」, 법학논고 제24집(경북대학교 법학연구소, 2006), 408-410쪽 참조.

18) ≪太宗實錄≫ 19卷, 태종 10년(1410) 1월 12일(己卯):… 仲節與順爭家基, 訴于憲府曰:

것과 둘째로 집(家舍)이 있음에도 자신의 집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관계는 강순에게는 네 아내가 아닌 두 아내가 있었을 뿐이고 家舍 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헌부에서는 두 번째 고소사실과 관련하여 강순 소 유의 家舍의 존부를 확인하기 위해 재산을 관리하는 한성부에 이첩하여 수사하 였으나 강순에게는 집이 없는 것을 알게 되어 김중절을 무고죄로 논하였다. 한 편 첫 번째 고소사실과 관련하여 강순은 이미 이들과 이혼하였다는 변소하였다.

결국 변소 자체에 의하여도 처첩을 여럿 거느렸던 것은 사실로 밝혀져 강순이 좌죄되기에 이르렀다.19)

이에 대하여 김중절의 처가 신문고를 쳐서 억울함을 고하자 형조에서 다시 수 사하게 되었다. 두 번째 고소사실이 무고에 해당하는 점에는 이론이 없었던 것 으로 보인다. 첫 번째 고소사실이 무고인지 여부가 문제되었는데 형조에서는 두 아내를 거느린 것을 네 아내를 거느린 것으로 고소한 것이 모함하려는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임금에게 보고하였다.20) 태종은 형조에 서 고한 취지를 받아들여 김중절을 무죄 취지로 석방하였다.21) 형조의 계문과 태종의 판결 이면에는 복수의 처첩을 두어 풍속을 해하였다는 신고사실의 핵심 이 진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고 거느린 처첩의 숫자는 정황을 과장한 것에 지나지 아니한다는 논리가 바닥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22) 즉 조선초기에도 신고한 하나의 범죄사실의 허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그 중 일부가 허위이더 라도 일부 진실인 사실을 근거로 정황을 과장한 것이라면 무고죄의 구성요건인

“順竝畜四妻一妾, 旣有大家, 今又欲濫執吾家基.”…

19) ≪太宗實錄≫ 19卷, 태종 10년(1410) 1월 12일(己卯).

20) ≪太宗實錄≫ 19卷, 태종 10년(1410) 2월 7일(甲辰).

21) 두 번째 고소사실에 대한 김중절의 무고죄가 있으나 두 개의 고소사실 중 하나가 허 위이더라도 다른 하나가 사실이면 무고죄를 면하게 되므로(II의 2항 참조), 첫 번째 고 소사실이 사실인 이상 김중절은 무고죄 전체를 면하여 무죄 취지로 석방된 것이고, 강 순에 대하여는 付處가 유지되었으며,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사헌부 장령 곽덕연은 오 결한 잘못으로 파직되었다.

22) 妻가 있는데 다시 娶妻한 자는 장 90에 처하고 이혼하게 하며, 나이 40 이상임에도 아들이 없는 경우에야 娶妾을 허용하고 위반하면 태 40에 처한다. ≪大明律≫ 제108조 戶律 【妻妾失序】若有妻, 更娶妻者, 亦杖九十, 離異. 其民年四十以上無子者, 方聽娶妾, 違者, 笞四十 ; 김중절의 고소 취지는 처가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다시 취처, 취첩했다는 것에 있고 수 개의 범죄행위가 경합할 경우 중한 범죄에 따라 처벌하는 ≪大明律≫의 입장에 따르면 실제 처첩이 두 명이었는지 네 명이었는지는 형벌의 경중에 영향을 미 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김중절의 고소 중 처첩의 수에 관련된 부분은 신고사실의 핵 심에 벗어난, 그야말로 정황의 과장에 불과하게 된다.

‘허위(誣)’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의 허위를 가미하면 정황의 과장에 불과하여 면죄되 는 것인지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해석론으로도 일부의 허위가 정황 의 과장에 불과하여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무척 어려워 허위의 대상과 범위 및 판단 기준을 명백히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 다.23) ≪大明律≫의 해석에 있어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정황의 과장 판단 기준에 있어서 ≪大明律≫은 체계적 강점을 가지고 있다.

≪大明律≫은 재판관의 양형재량을 구성요건 요소에 엄격하게 기속시켜 법정형 을 절대적으로 특정하고 있어 하나의 죄가 수량적으로 쉽게 쪼개질 수 있기 때 문이다. 절도죄나 뇌물죄의 경우 절취한 재물이나 수수한 뇌물 수량에 따라 양 형이 세분화되어 있고 구성요건 또한 그에 연동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죄라도 贓,24) 즉 범행으로 취득한 재물의 수량에 따라 쉽게 쪼갤 수 있다. 贓을 통하여 외관상 손쉽게 수량적으로 쪼개지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大 明律≫ 鬪毆條에서 규정하는 물건으로 사람을 때려 상처를 가한 죄를 놓고 보 면, 이 경우 법정형이 태 40에 해당한다. 이 죄는 단순히 물건으로 사람을 때려 상처를 입히지 않은 죄(법정형 태 30),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 손발로 사람을 때 려 상처를 가한 죄(법정형 태 30),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 손발로 사람을 때려 상처도 입히지 않은 죄(법정형 태 20)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25) 하나의 죄 안 23) 이러한 견해에서는 무고죄에 해당하는 허위인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허위의

대상은 범죄의 성부와 관련된 사실의 허위에 한정하며, 허위의 범위는 중요 부분 또는 핵심에 한정하고, 일부의 허위라도 고소사실의 성질을 변경시키는 때에는 무고죄가 성 립하는 것으로 보며, 허위는 객관적, 전체적, 개별 피고소인과의 관계에서 판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폭행사실을 과장 신고하였지만 기본적 범죄사실에 의하여 허 위로 고소한 상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 즉 서로 옷을 잡고 밀고 당겨 폭행하였을 뿐 인데 요추부염좌를 입었다고 허위로 상해 부분을 고소하였다면 그러한 폭행사실이 인 정되는 이상 그로 인하여 요추부염좌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정황의 과장에 해 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위와 같이 폭행하였을 뿐인데 흉기로 맞았다든가 폭행당하여 중상을 입었다고 고소한다면 고소사실 전체의 성질을 변경시킨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 고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박동률, 앞의 논문, 415쪽.

24) 贓의 개념에 관하여는 서정민, 「朝鮮初期 官吏의 汚職犯罪에 관한 硏究-贓汚罪에 대 한 논의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법학석사학위논문, 2004, 10-14쪽; 김대홍, 「唐律 에서의 범죄와 형벌의 비례성-‘贓’의 개념을 중심으로-」, 법사학연구 제39호(한국법 사학회, 2009), 90-94쪽; 조지만, 「조선시대 ‘贓’에 관한 연구」, 아주법학 제6권 제1 호(아주대학교 법학연구소, 2012) 참조.

25) ≪大明律≫ 제325조 刑律【鬪毆】[1] 凡鬪毆 以手足毆人 不成傷者 笞二十 成傷 及以

에서도 유형별로 법정형이 상세히 분화되는 것이다.26)

≪大明律≫은 이러한 체계 아래 하나의 고소사실 중 진실인 부분과 허위인 부 분을 엄격히 나누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고소사실 중 가벼운 부분이 사실이 고 무거운 부분이 허위이면 이를 무고죄로 의율하고, 가벼운 부분이 허위이고 무거운 부분이 진실이면 무고죄로 의율하지 않는 것이다.27) 고소사실의 일부가 허위이면 허위인 부분이 진실인 부분에 비하여 법정형을 기준으로 중죄에 해당 하는지 경죄에 해당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관리가 실제 20관의 뇌물을 받았는데 80관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고발한 경 우를 예로 들어보자. ≪大明律≫ 律文에는 각각의 뇌물수수행위에 대한 법정형 이 별도로 정해져 있으므로 뇌물 20관 수수의 실체사실은 장 60, 도 1년의 비 교적 가벼운 죄인데 고소사실인 뇌물 80관 수수는 교형에 해당하는 매우 무거운 죄임이 명백하여28) 실체관계와 허위고소된 사실관계 사이에 상당한 법정형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현행 형법 해석론에서의 정황의 과장 법리에 충 실하자면 뇌물을 받은 것이 사실인 이상 양형 요소인 뇌물의 수량을 과다하게 고발하였다고 하여도, 뇌물죄의 구성요건과 관련된 핵심 내용은 뇌물수수이며 수뢰한 수량은 뇌물수수의 정황을 과장하여 고발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 무고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29) 이에 대하여 ≪大明律≫이

他物毆人 不成傷者 笞三十 成傷者 笞四十.

26) 하나의 죄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大明律≫은 구성요건적 행위를 최대한 구체적으 로 명시하여 각각의 법정형을 설정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므로 범죄행위 간의 법정 형의 비교가 대체로 가능하다. 예컨대 ≪大明律≫ 鬪毆條는 상해죄 내에서도 상해의 부 위와 정도에 따라 법정형을 각각 부과하고 있다. ≪大明律≫ 제325조 刑律【鬪毆】[1]

… 拔髮方寸已上 笞五十 若血從耳目中出 及內損吐血者 杖八十 以穢物汚人頭面者 罪亦 如之 折人一齒及手足一指 眇人一目 毁缺人耳鼻 若破人骨 及用湯火銅鐵汁 傷人者 杖一 百 以穢物灌入人口鼻內者 罪亦如之 折二齒二指以上 及髡髮者 杖六十徒一年 折人肋眇人 兩目 墮人胎及刃傷人者 杖八十徒二年 折跌人肢體 及瞎人一目者 杖一百徒三年 瞎人兩目 折人兩肢 損人二事以上 及因舊患 令至篤疾 若斷人舌 及毁敗人陰陽者 並杖一百流三千里 仍將犯人財産一半 斷付被傷篤疾之人 養贍…

27) ≪大明律≫ 제359조 刑律【誣告】[5] …或告一事 誣輕爲重者 皆反坐所剩 若已論決 全抵剩罪 未論決 笞杖收贖 徒流止杖一百 餘罪亦聽收贖.

28) ≪大明律≫ 제367조 刑律 【官吏受財】[2] … 一貫以下杖七十 一貫之上至五貫杖八十 一十貫杖九十 一十五貫杖一百 二十貫杖六十徒一年 二十五貫杖七十徒一年半 三十貫杖八 十徒二年 三十五貫杖九十徒二年半 四十貫杖一百徒三年 四十五貫杖一百流二千里 五十貫 杖一百流二千五百里 五十五貫杖一百流三千里 八十貫絞 …

29) 예컨대 현행 형법의 해석론으로는 1천만원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1억원 뇌물을 받은 것으로 고발한 경우 9천만원을 부풀려 고발한 것이지만 그 공무원이 뇌물을 받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