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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을 통한 교육 인프라 확대와 복구 노력의 실제

앞 장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북한 노동인력 개발 체계의 중요한 특 징 중의 하나는 국가가 노동인력 개발의 계획과 운영의 전 과정을 총 괄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가 노동인력 개발에 필요 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하고 배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 는다. 교육법 제44조에서는 내각과 지방정권기관이 교육기관의 물질 적, 기술적 토대를 갖추기 위한 후원사업을 기관, 기업소, 단체에 분

162Watkins K. (1991), “Many Voice: defining human resource development from different disciplines.” Adult Education Quarterly, 41 (4), pp. 241-255.

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후원사업을 담당하는 기관, 기업소, 단체 는 해당 교육기관을 물질적, 기술적, 인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과 지역사회의 교육열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해 방 직후 교육의 물적, 인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단기간에 공교육체 계와 무상의무교육제도를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해방 후 학교를 건설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교 건설 을 위해 북한인민들은 성금과 성미를 모금하였다. 그 액수는 해마다 교육 예산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163 주민들은 성 금 뿐만 아니라 손수 벽돌을 찍고 쌓아 학교 건물을 지었으며 책걸상 등의 교구비품 제작을 직접 제작하였다. “돈이 있는 자는 돈으로, 힘 이 있는 자는 힘으로,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학교를 건립하는 데 일조하였다. 북한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김일성종합대학 역시 북 한 주민들의 ‘애국미헌납운동’과 같은 조직적인 동원과 인민들의 ‘자 발적’ 참여를 통해서 재원을 조달하여 설립된 것이다.164

이러한 공교육 조직 방식은 초기 사회주의 사회 건설 과정 뿐만 아 니라 이후 지속적인 공교육 팽창과 공장대학 설립 과정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1959년에 대학이 총 37개에 불과했던 상황에서 1960년 한 해 동안 39개의 공장대학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에 큰 부담 을 주지 않으면서도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 예비를 최대한으로 동원

1631949년 정부예산은 197억 6천만 원이고, 교육예산은 20억 8천만 원이었다. 이에

비해 북한인민들이 학교건설에 제공한 성금 및 성미총액은 1948년에 9억 5천만 원, 1949년에 10억 3천만 원에 달하였다(이향규, 「북한사회주의 보통교육의 형 성: 1945-1950」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p. 109.).

164김일성종합대학의 창립과정에 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할 것. 이향규, 위의 글; 김기석, “김일성종합대학의 창설에 관한 일연구,” 󰡔교육이론󰡕, 제10권 제1호

(1996); 신효숙, “해방후 북한고등교육체계의 형성과 특징: 김일성종합대학의 창

립과 운영을 중심으로,” 󰡔북한연구학회보󰡕, 제2권 제1호 (1998).

리용”한 설립 방식에 때문이었다.165

학교설립과 교육기회 확대에 필요한 물적 자원의 부족을 교육열과 동원의 결합에 의하여 확보하는 방식은 90년대 경제난 이후 교육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도 주요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는 “우리의 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나라가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한이 있더라도 후대교육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말 아야 한다”166고 하며 교육의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유 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정비사 업을 추진하는 등 교육조건 개선 및 교수방법 개선을 통한 교원자질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학교 교실과 실험실습실 개축 및 보수, 교구비 품 수리, 건물 도색, 운동장정리, 도로 포장, 화단 조성 등 다양한 개 보수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 역시 중앙정부의 예산지원보다는 공 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의 후원과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 하는 방식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167

2000년 8월에는 “강성대국건설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학교교육의

165 예를 들어 신의주 공업대학의 경우에는 19명의 시내 기관, 기업소의 책임일군들 로 구성된 개교 준비위원회가 대학을 세우기 위한 후원 사업을 조직적으로 진행 하였다. 경공업 위원회 신의주 건설 트레스트 제2직장 로동자들은 4개의 교실수 리를 담당하여 한 개 작업반 분량의 생산력을 학교 건설을 위해 지원하고 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루 2시간 이상 시간 일을 더” 하였다. 벽돌 축조반원들은 교실 건설 작업에서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세 사람으로 한 개의 조를 뭇고 조간 경쟁을 체결하여 벽돌 쌓기 속도를 120% 이상 높”였다. 신의주 방직 공장을 비롯 하여 신의주 제지 공장과 팔프 공장에서도 직장별로 1-2명의 인원을 선발하여 대학 교사 건설장에 매일 20여명의 건설 인원을 지원하였다. 신의주 목공 생산 협동 조합에서는 205개의 의자를 한주일 동안에 만들어 내고 뒤이어 책상 제작에 착수하였다. 이리하여 신의주 렉쓰 공장에서 쓰던 건물 세 채를 수리하여 7개의 교실과 당 력사 연구실, 도서실, 교무실 등을 갖춘 신의주 공업 대학이 60년 9월 1일 개교하였다(󰡔로동신문󰡕, 1960년 9월 2일).

166󰡔교원신문󰡕, 2001년 1월 1일.

167󰡔교원신문󰡕, 2004년 6월 1일.

질을 높이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키기 위하여 교육을 중시하고 지원 하는 사회적기풍을 세워야 한다”는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중앙과 지 방당 간부 강연을 통하여 학교 지원사업에 대한 선전을 진행하였다.

또한 시, 군소재지에 교육부문 소개판을 만들어 지역사회와 학부모들 의 학교 지원 모범사례를 소개하도록 하였으며, 3월과 10월을 ‘학교 지원월간’으로 정하여 새학년도 교육을 위한 지원을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의 교육설비를 현대화하고 교육조건을 갖추기 위

해 ‘조선교육후원기금’을 설치하였다.168

교사 출신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을 취합해보면 현재 학교의 교육 인프라를 복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에게 할당되고 있는 듯하다. 다음과 같은 증언은 현재는 북한 학교의 인프 라 실태와 학부모 동원을 통한 교육 인프라 복구의 현실을 보여준다.

90년도에는 의자가 파손되거나 책상이 파손되면 당연히 교육부 에서 그걸 대신 해줘야 하거든요, 근데 전혀 안됐어요. 교육청에서 는 학교 학생들이 이런 교양 수업에 맞게끔 학교 내에 수영장을 하나 건설하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수영장을 건설하려면 국가가 세멘트나 모든걸 보상해줘야 하잖아요. 근데 일체 보장이 안됐어 요. 근데 저희 학교같은 경우에도 블럭도 있어야지 쎄멘트도 있어 야지 인력도 있어야 되잖아요. 그것이 안 되는 거에요. 국가가 안 지어주고 학교인들을 동원해서 해라 이러는데, 물론 직위를 가지 고 있는 건설분야에 있는 학부형을 만나면 막 자기네 공장 걸 갖 다 자기 담임선생님한테 주는 거예요. 그렇지만 학급 실정에 그런 간부가 없고, 그런 학부형이 없는 이런 데는 열악했거든요.

교실 유리창이 깨지면 저 같은 경우엔 이 방막을 쳐줄 수 있는 학부모를 택해요. 그래서 개별적으로 알림문에다가 보내는 거에 . 교실에 이렇게 창문이 깨졌는데, 아무개 어머니 도와줄 수 없 겠냐고, 그러면 비닐 방막을 보내요. 책상이 고장났다하면 학부형

168󰡔조선중앙방송󰡕, 2005년 6월 8일.

회의를 해요. 학부형 회의를 해가지고 자기 책상은 자기가 수리하 게끔 그렇게 해가지고 했어요.

학교 교구비품 이런걸 어차피 후원단체가 학교에 있긴 있어요. 군적으로, 노동부, 공장, 탄광공장, 이 학교를 지원해라, 이런 후원 조항이 있지만 그게 잘 운용이 안 돼요.169

90년대부터 점점 어려워졌으니까 국가에서 예산투입을 하기가 까마득하였죠. 책상, 의자 등이 다 낡게 되고. 이전 같으면 국가에 서 다 교체를 해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국가에서 그렇게 못해줬 죠. 우리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니까 학교 책걸상을 다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개인들이 자기 것을 다 바꾸라고 한 것이죠. 그러니까 개인들이 목수질 하는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책상을 만들더라구요.

규격은 학교에서 정해준 대로 하고요.

1고중을 가니까 학교를 보수해야 한다고 했어요. 거기에 학급

별로 할당량을 맡겨 줬는데, 그게 학급의 수완에 따라 맡겨지는 거예요. 그 학급에 힘있는 학부형 하나가 있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액수만큼 계산을 해가지고 공동분배를 한 사람당 얼마씩 하는 식으로 내고 그랬죠.170

이렇게 학교의 시설 및 운영에 드는 경비를 학부모의 부담에 의존 하는 현실은 경제난 이후 지속되고 있다. 특히 7․1 경제관리개선조 치 이후에는 공장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에서도 ‘독립채산제’와 ‘자력 갱생’이 강조되면서 ‘학교꾸리기 사업’은 국가의 예산지원이 아닌 교 육기관의 자체적인 예산 확보 능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는 전통적 으로 국가가 국민의 교육을 책임지고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북한의 사회주의 교육 원칙과 어긋나는 것으로, 이러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 는다면 교육은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무상봉사 이고, 학부형들의 자원봉사”171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169C1, 함경북도 인민학교 교사(1984-1996), 조정아 면담(2005년11월).

170H2, 함경북도 대학 교원(1979-2001), 조정아 면담(2005년 11월).

171H2, 함경북도 대학 교원(1979-2001), 조정아 면담(2005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