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연구의 배경
2. 개인적 배경
가. 미술가와 교사
1997년 A대학, 봄, 3학년 회화과 실기수업시간
B교수: 작가는 대중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대중을 의식하면 진짜 예술을 못하게 돼. 대중성은 대중들의 몫이고 작가는 자신의 예술 을 하면 돼.
순수회화를 전공하던 미술학도였던 나는 그 교수의 의견이 왜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 내가 그 의견에 동감할 수 없었던 이유를 어린이에게 미술을 가르치면서 찾 게 되었다. 예술의 순수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대중을 도외시하고 얻어지는 미적 가치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미술 의 ‘대중성’은 많은 사람들이 미술의 순수성을 즐기고 향유할 수 있 을 때 나타나는 결과라고 여겼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미술의 가 치를 판단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즉 미술의 순수성과 대중성의 다리가 되는 것이 미술교육이라 생각했다.
나는 미술을 좋아하던 수줍음 많던 아이였다. 미술은 말하지 않 아도, 수줍게 나서지 않아도 많은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에 편하고 좋았다. 게다가 미술은 다른 과목과 다르게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도 매우 좋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꿈은 늘
‘화가’였다. 어린 시절의 바람대로 회화과에 진학했지만 늘 한결같았 던 꿈이 미대에 진학 후 한 해도 지나지 않아 흔들리게 되었다. 미 대 진학을 위해 몇 년간 연습했던 소묘와 수채화는 미대 진학 후 작업을 할 때 늘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너무 오래 연습해 왔던 가 장 자신 있는 수채화 기법이나 소묘의 기법을 버리고 다른 표현을
찾는 것이 막막했다. 게다가 대학 진학 후 보게 된 현대 미술의 현 장들은 그동안 내가 상상해왔던 ‘화가’의 길과 많이 달랐다. 내가 대 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배워 왔던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아름답 게 재현하는 것이었다. 미술이 좋았던 것도 언어 표현 이외의 방법 으로 보이는 것들을 표현하는 즐거움에 있었다. 그런데 모더니즘 이 후 미술은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양한 양식을 추구하던 모 더니즘 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양식의 추구를 비판하면서 쟝르를 파괴해버렸다. 기괴하리만큼 독특한 유형의 미술들까지 등장 했다. 나는 여전히 인상주의 미술이 좋았다. 현대 미술의 순수성은 점점 대중과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순수한 예술을 하기가 힘들었다.
우연히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하게 되었던 어린이에게 미술을 가 르치는 일이 작업하는 것보다 즐겁고 내가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 각한 것은 진로를 한참 고민하던 대학 3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중학생, 고등학생 어린이를 몇 명씩 가르치게 되었는데 미술을 설명 하는 것도 알려주는 것도 어린이가 미술을 알아가면서 표현하게 되 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미술가가 추구하는 독창성과 순수성이 미술 역사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발전을 가져 왔다면, 그러한 미술의 가치를 알려주고 그것을 향유하도록 돕는 것 이 미술교육이라 생각했다. 미술이 가져야하는 표현의 순수성을 혼 자서 탐구하고 추구하는 미술가의 일보다 미술을 통해 함께 하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 미술교육을 택한 이유였다.
미술가가 대중성을 의식한다면 순수한 작업을 기대하기 힘들 것 이라 생각했다. 대중은 그들 속에서 문화와 성향을 만들어낸다. 미 술은 대중성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지만 미술교육은 대중의 성향을 만들어내고 그 성향을 발전시켜 대중의 문화와 수준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미술교육은 예술이 가진 독창성, 순수
성의 가치를 독려하면서, 대중적인 시각에서 설명하고 알려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순수성과 대중성 사이에 위치한다. 때문에 ‘미술’이 추구하는 바와 ‘미술교육’이 추구하는 바는 그 방향이 다르다. 미술 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지만 미술교육은 타인, 즉 학습자를 생각하고 행해져야 한다. 학습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교육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미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던 생소한 현대 미술의 현 장들, 미술을 모르는 이에게 미술을 알려주는 즐거움 이 두 가지 사 이에 서 있었던 나는 미술의 순수성을 위해 ‘대중성’을 무시하라고 하셨던 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1997년 회 화과 실기실의 그 수업시간에 이미 ‘미술’의 편이 아닌 ‘미술교육’의 편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미술을 알리고, 미술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좋았고, 내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미술을 다른 이들도 똑 같이 경험해봤으면 하는 막연한 바램으로 오랜 꿈이었던 화가의 길 을 버리고 ‘미술교육’의 길에 뛰어들었다.
이후 미술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과 미술관의 어린이 교실 등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면서 미술 교육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나. 엄마와 교사
2005년 여름, 아파트 현관 앞 메모,
“지금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을 누르지 마시고 현관문을 똑똑 두 드려주세요”
2005년 무렵, 우리 집 현관문에 24시간 붙어있던 메모지 문구이 다. 그 시절의 나는 자던 아기가 깨는 것이 두려워 방문객들이 초인
종을 누르지 못하게 메모를 붙여두었다. 아기가 자는 시간을 얼마나 지키고 싶었는지 그 절실함이 메모 문구에 들어있다.
엄마가 되어서 가장 힘든 점은 자고 싶을 때, 먹고 싶을 때, 하 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기가 잠들기 전엔 단 1분도 내 시간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든 점이었다. 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없는지, 울어대는 아이를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안되는지, 그때는 그런 문제를 고민할 여유도 없이 그냥 우는 아이를 어떻게든 먹이고 재 우기에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모성이라는 근사한 말로 포장하기 엔 생활이 너무 단순했고 엄청난 체력 소모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엄마가 조금만 소홀하면 토하거나 열이 나거나 잠을 못자고 밤새 울어대는 여리고 약한 생명체를 돌봐야 했다. 나는 이 아기를 어찌 할 바를 몰라 아기가 울 때 같이 울어버리는 정말 초보 엄마였다.
아이를 계속 관찰하고 함께 있지 않으면 무얼 원하는지 왜 우는 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초보 엄마였던 나는 아이가 울어대면 무 엇부터 해야 될지 몰라 당황했고 울어대는 백일 갓 지난 아이를 옆 에 두고 육아 책을 뒤적이곤 했다. 육아 책엔 아기가 우는 이유는 셋 중 하나이니 이 세 가지를 먼저 해보라고 한다. 첫 번째, 배가 고픈가 아니면 둘째,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지 셋째, 잠이 오는 건지, 셋 중 하나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젖을 물려주고 재 우려고 안아서 얼러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다보면 한 시간이 훌 쩍 지나버린다. 아이는 내가 헤매는 한 시간 내내 울어대서 지치고 나도 지쳤다. 세 가지 중에 하나라는 우는 이유를 찾는 것이 왜 그 리 힘든지, 그렇게 헤매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은 유일한 나의 자유 시간이었다.
많은 초보 엄마가 경험하는 이러한 일들이 내 교육 경험에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
다.
‘엄마’라는 역할이 힘들었던 것은 내 의지대로가 아니라 상호작용 이 원활하지 않은 아이의 생활패턴을 찾아 그 패턴에 맞춰주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이’위주의 생각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 아가 맞춰주는 것이 ‘아이 키우는 일’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 는다고 해서 뭐든 다 받아주는 허용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 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표출하고 그것에 엄마가 반응하려면 상호 작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에게서 처음 만나는 사회적 존재는 엄 마이다. 엄마로부터 사람을 대하는 방법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법을 시작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받아주는 일은 상호작용을 해나가는 첫 번째 방법이다. 언어가 발달되기 이전의 어린이와 상호작용을 시 작하는 방법은 ‘관찰’로부터 시작되고 언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엄마와 아이만의 소통이 시작된다.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위해 관찰 하고 반응해주고 그것이 초보 엄마를 탈피하는 길이었다.
수업에서 만난 어린이를 이해하는 것도 똑같았다. 미술을 가르쳐 야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드로잉 도구를 쥐는 방법을 알 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성향을 먼저 파악해야 했다. 어린이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첫 번째 방법은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 의 행동에 반응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이 ‘엄 마’로서의 생활이 되면서 수업에서 만난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 쉬워졌다. 어린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시간도 짧아졌다. 무엇 보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이지만 그들만의 세계가 갖는 힘과 생각 이 어른보다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부터인 것 같다. 그들만의 존중받아야 할 세계가 있지만 어른들 의 힘에 의해 방해받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내 아이를 키우 면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