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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교사가 가진 ‘권위’에서 벗어나기

V. 미술교사 다시 되기

1. 미술교사가 가진 ‘권위’에서 벗어나기

미술수업에서 어린이와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면서 수업의 많은 부분에 교사의 ‘권위’가 작용함을 발견하였다. 수업일지나 대화기록 등의 자료를 통해 빈번하게 나타나는 진행방식, 지시 등으로 다음과 같은 ‘권위’를 구분 할 수 있다. 제 1절에서는 미술수업을 이루고 있 는 권위에 대한 성찰 이전과 성찰 이후, 변화가 시작된 미술교사의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이진경은 그의 저서 『노마디즘』에서 ‘되기’의 구도 위에서 사 유할 때, 개개의 사물이나 ‘존재자’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문 제가 제기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이진경, 2002: 35). 그는 ‘되기’

의 개념에서 ‘탈영토화’를 중요한 되기의 과정으로 보았다. ‘탈영토 화’에는 ‘되기’를 향한 이 전과 이 후의 두 항이 존재하며 두 항은 각각의 상대항 위에 재영토화 된다. 또한 탈영토화는 높거나 발전된 속도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고 하였다(이진경, 2002: 170-175). 나는 수업에서 미술교사가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면서, 미술교사의 일반 적인 모습 속에 ‘권위’로 이루어지는 부분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미 술교사’로 영토화 되어 있던 모습에서 ‘권위’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 은 ‘탈영토화’를 향하는 과정이었다. ‘권위’로 이루어지는 부분들을 반성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여겨졌던 미술교사의 모습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제 1절에서는 미술수업의 진행방식을 권위의 구조 속에서 파악 하고, 권위를 통한 성찰 이전과 성찰 이후 변화된 미술교사의 모습 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18) 제 V장의 1절 ‘미술수업 속의 권위’는「미술교사의 권위에 관한 문화기술적 연구」(서제희, 2010)의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임.

2007/ 3/ 첫째 주 수업일지

나: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매주 토요일에 여기서 함께 미 술 할 선생님 이예요. 선생님 이름은 뭘까? 누가 맞혀볼래?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는 어린이들, 어린이 중 한 명이 “거기 선 생님 옷에 이름표 붙어 있쟎아요.”한다. )

나: 하하... 그래, 여기 이름 있지. 선생님 이름은 서제희 예요.

(나는 수업 첫날, 어린이가 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화이트보드 가 위치한 맨 앞에 서 있다.)

최근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나와 어린이가 함께 하는 미술 작 업실에서 나의 위치는 어린이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맨 앞이었 다. 나는 늘 그 자리가 어린이와 함께 하는 미술작업실에서 자연스 러운 내 위치라고 생각했다. 누가 부여해준 자리인지, 혹은 그 자리 가 과연 어린이 미술수업에서 적합한 교사의 위치인지를 고민하게 된 것은 어린이와 상호작용의 어려움을 반복하면서부터이다.

교사는 사회에 필요한 모종의 일을 하기 위하여 또 그 일을 하 는 동안에 학교에서의 ‘사회통제’를 하기 위하여 ‘직위상의 권위’를 누리게 된 사람이다. 따라서 교사는 자신이 전수해야 하는 문화의 특정한 측면에 관한 전문지식의 권위자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자신의 권위 하에 있는 어린이의 행동과 발달, 그리고 어린 이를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전문가이어야 한다(Peters, 1966/2003:

347). 직위상의 권위에 의해 미술수업에서 교사는 수업을 진행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다. 교사의 지휘 아래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어 린이는 정해진 절차나 기법에 따라 미술작업을 해가고 교사는 이러 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결과물이 나오도록 한다.

나는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일지 쓰기를 계속하면서 수업의 많은 부분들이 교사에게 부여된 ‘권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권위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직위’에 의한 것이 기도 하지만, 실제 수업 현장에서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수업에 ‘숨겨진 권위’ 때문이었다.

미술수업에서 ‘숨겨진 권위’란 미술 학습의 내적인 것에서 발견 되는 권위이다. 이는 ‘지적 권위’로 설명이 가능하다. 지적 권위는 전문화된 지식을 주장하므로써 권위를 합리화시킨다. 이는 형식적 으로 부여된 권위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형식적인 권위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적인 권위는 학습자에게 아무 거부 의사 없이 수용되기도 하고 심지어 당연히 따라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지기 쉽다(표임두, 2000: 15). 나는 미술수업에 숨겨진 권위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가. “선생님이 도와줄게”

제 III장에서 재료나 기법을 중심으로 어린이 미술수업이 진행되 고 있음을 기술하였다. 재료나 기법을 선정하는 것은 일방적인 교 사의 권위에 의해서이다. 수업 시작 전에 오늘 어떤 재료로 어떤 기법을 가지고 수업을 할 것인지 아동들과 협의하는 것은 매우 어 렵기 때문이다. 어린이 미술수업을 진행하면서 겪은 경험에 의하면 다른 교사들이 어린이들의 미술을 다루면서 재료와 기법을 수업 내 용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재료나 기 법 중심의 미술수업 방식을 탈피하고 싶었지만 어떤 재료로 미술 제작을 할 것인지, 어떤 기법을 사용할 것인지에 관한 어린이의 관 심이 매우 크다는 것도 경험했다. 물론 미술 표현에서 재료와 기법 을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스너가 언급하였듯이 물질적 인 재료는 작품의 목적이나 의도를 형상화시키는 중간자의 역할을 한다. 그는 학생들이 재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몰두하는 것은 창작 행위의 근본적인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라 하였다(Eisner, 2002). 아래의 수업은 이와 같은 재료 선정의 문제를 고민하며 어린

이에게 재료 선택의 권한을 제한적이지만 어느 정도 수업에 도입하 고자 했던 그리기 시간이다. 그리기 시간에 채색의 재료들을 색연 필과 크레파스, 파스텔, 물감 등의 재료를 주고 필요에 따라 선택하 여 써보도록 했다.

2009/ 9/ 둘째 주 수업일지

나: 애들아 파스텔의 특징은 연한 색이 나온다는 것이고 물감의 특징은 연한 색과 진한색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그런 특징을 생각하면서 재료를 결정하고 색을 넣어야 해. 파스텔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사람? 파스텔은 이렇게 살살 문지르면 서 휴지로 좀 더 문지르면서... 정훈이는 바탕이 너무 많아서, 물감을 해줘야겠다. 아니면 이런 펜으로 더 해주면 어때? (흐 릿한 스케치 선에 파스텔로 채색된 곳을 지적하며) 애들아 파 스텔과 물감 어느 것을 먼저 써야 할지 잘 생각해야 돼. 선도 어느 선을 더 강조 할지 생각해야 하고... 정훈아 선생님이 도 와줄까? (나는 정훈이의 옆자리에 앉아서 수채화 붓을 들고 능숙하게 붓질을 하며 수채화의 겹치기 기법으로 바탕을 채워 주고 있다.) 정훈아, 같은 영수어도 물감에 물을 많이 뭍히는 가 적게 뭍히는 가에 따라 하늘색이 달라 보일 수 있단다.

(중략)

나는 정훈이에게 한 가지 물감 색으로 나타낸 하늘을 지적하며 같은 하늘색에서 톤의 변화를 물로 바꾸어 다르게 칠할 것을 유도 한다. 즉, 물감을 활용한 기법상의 변화를 가르치고 있었다. 다양한 물감의 기법이 평면화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은 내가 배워온 수채화 기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양한 물감 활용 기법이 평면화에 다양하 게 드러날수록 표현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밀도감을 높일 수 있다 고 생각하는 보편적 미술 표현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 은 보편성을 뛰어넘은 독창성을 지지해주는 분야임을 상기 해볼 때 다양한 기법 사용이 아닌 단순한 파랑의 대비만으로도 정훈이의 의

도를 잘 살린 표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물감의 겹치기 기법이 정훈이의 작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행하였던 ‘도와주기’가 지시보다 더 강력한 권위로 작 용함을 깨달았다. 겹치기 기법의 전수과정에서 ‘도와줄까?’라는 질문 과 함께 직접 어린이의 작품에 수정 혹은 변형을 가하는 것은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 다.

나. “이제 그만해도 돼”

“선생님이 도와줄게”에 숨겨진 권위는 어린이들의 표현 과정에 직접적인 개입을 함으로써 교사가 행하는 표현 기법이 더 나은 미 술임을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한다. 다음은 “선생님이 도 와줄게”보다 더 강한 지시로 미술 표현의 완성과 관련한 판단을 전 달하고 있는 미술교사의 모습이다.

2009/ 6/ 첫째 주 수업일지

나: 지은아 그림에서 이 건물은 재미있는데 다 죽 쭉 서 있으니 까, 세로로만 있으니까 재미없쟎아. 가로로 있는 거 뭔가 이쪽 으로 가는 거, 아니면 뭔가 다른 거 더 있으면 좋겠어. 음...

지은이는 그림에 등장한 것들이 좀 심심해보여. 여기가 어디 지?

지은: 공원이요.

나: 그래? 어떤 공원? 누구랑 갔지?

지은: 엄마랑 동생이랑.

나: 그래 그런데 그림에 엄마랑 동생 지은이만 서있고 주변에 풀, 나무만 서있으니까 좀 심심해 보인다. 배경에, 아니면 주변에 뭐 더 넣을 거 없을까? 동연이는 너무 큰 것들만 덩그러니 보 이니까 좀 완성을 덜 한 것 같아 보여. 좀 작은 등장인물도 넣을 수는 없을까? 다한 사람은 선생님에게 검사 맞고 색칠하

자.

동연: 선생님 색칠해도 되요? (그림을 보여준다).

나: 아니, 조금 더 해야 돼.(교사의 지시대로 작은 등장인물을 하 나 더 넣음) 어 아까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여기, 여기 더 넣어주고 가자.(배경 중 넓은 면적이 남아있는 곳을 지적 하며)

동연: (실망하며 자리로 돌아간다)

나: 동연이는 색깔이 너무 어두운데 밝은 색을 좀 더 넣어.

현정이는 마무리로 색을 좀 깔끔하게 보이도록 다듬어봐. 동연 이는 너무 붉은 색들을 많이 썼어. 다른 색들 더 넣어볼까?

지은이는 이제 그만해도 돼.

(중략)

미술 제작을 지도하면서 나는 색채나 구도, 밀도, 완성도에 대 한 조언을 한다. 아이스너는 학생들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에 관해

‘투입점(entry point)’이라는 말로 설명하였다. ‘투입점’은 교사로 하 여금 학생들과 대화를 여는 다양한 방법을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학생에게 재료를 다루는 방식을 두고 조언을 하고자 할 때, 또는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자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Eisner, 2002: 52). 그러나 나는 수업 의 과정 중 ‘조언’이기보다는 ‘지시’를 하게 된다. 많은 어린이들의 학습을 정해진 시간 내에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변명 해 보기 도 한다. 그런데 조형성에 관한 지시들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미술 작품을 기준으로 한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양한 색채를 써야한다는 것, 주제와 배경 간에 적절한 균형, 등장하는 대상 간에 적절한 크기 배치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나는 내가 배워 온 미술 에 근거하여 지도한다. 그러나 어떤 전문지식 분야이든 권위자의 의견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은 항상 가지고 있다(Peters, 1966/ 2003).

기존의 예술 관습과 제도들에 근본적으로 도전하고자 했던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