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4. 연구의 범위와 한계
대체로 학위논문은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 있어서 엄격한 체제를 갖추고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왔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쌓아온 과학적 실증주의 태도가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보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학위논문의 주제라는 것은 객관적 용어로 현상을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이며 객관적 지식 이나 진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관적 경험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공공의 의미,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질적 연구의 전통은 그간 역사와 학문이 쌓아온 과학적 실증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었다(서근원, 1999). 이 연구를 실증 주의 시각에서 판단하고 논의하려 한다면, 그것은 본 연구 이외의 현재 학문적 패러다임의 큰 틀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연구는 연구자의 주관성과 문화적 정체성이 반영된 산물을 연구물로 인정하는 ‘탈실증주의(postpositivism)’9)적 연구 자세를 기 반으로 한다. 즉, 연구자가 연구 대상과 연구 문제에서 엄밀하게 중 립적인 태도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반대하며, 객관화된 연구방법과 결과로 누구에게나 의미를 줄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존 재한다는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신 교육 현장의 복잡성과 의미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연구 대상에 깊이 있게 장기간 관여 하고, 연구자의 주관성이 연구 과정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밝히 고자 한다.
이 연구는 교사 개인의 체험을 성찰하면서 현장에서 얻을 수 있 는 교사의 실천적 지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개 인의 삶, 경험, 개인이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구체 적으로 풀이하면, 개인은 일련의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 된 다. 개인이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때, ‘속’이라는 말의 의미는 동전이 호주머니 속에 있다거나 페인트가 페인트 통 속에 있다고 말할 때의 ‘속’의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이때의 ‘속’은 개인과 사물들 사이에 그리고 개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상호작용 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Dewey, 1938). 그러므로 이 연 구는 나의 교육적 배경과 나의 수업, 나와 어린이,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속의 어린이 미술교육 현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교 육적, 개인적 배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 나의 수업, 나와 어 린이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보이는 우리들, 나의 수업에서 나타나는 사회·문화적인 인식들이 본 연구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체험은 언제나 한 개인과 그 시점에서 그의 환경을 형성하고 있 는 것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섭을 통하여 나타난다. 체험을 이야기
9) 서근원(1998)은 postpositivism을 ‘후기 실증주의’로 번역할 수 있으나 이는 ‘후기’ 후반부 를 가리키는 말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실증주의를 극복한다는 의미의 ‘탈실증주의’를 사 용하는 것이 의미를 이해하는 데 가까운 번역이라 하였다.
하는 데에 있어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 이기도 하다. 연구자의 주관적 체험을 사회적 의미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내가 겪은 어린이와의 미술수업 을 주관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였지만, 그 현상을 드러내고 밝히는 과 정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이 미술과 어린이 미술 표현에 대한 인식이 드러난다. 여기서부터 ‘나의 주관적 체험’은 우리의 경험 혹 은 사회적 인식들과 만나게 되고 ‘우리의 주관’으로 바뀐다. 우리의 주관은 더 이상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탈실증 주의적 관점에서 교사 개인의 체험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 교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된 사건들의 의미를 우리 가 속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하였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교사교육은 교과의 지식이나 가르치 는 기술에 집중하여 왔고, 교사로서 자기인식이나 지속적인 자기 개 발에 관한 교육에는 소홀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미술교육의 특성을 고려할 때 성찰을 통해 반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교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술교육은 미술이 갖는 공적인 담론과 개인적인 체 험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교사의 역할은 미술의 공식화 된 지식과 개인적인 표현이라는 긴장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 들을 가르치고, 조정하고 탐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 을 가르치는 일은 기계적인 활동이 될 수 없으며, 가르쳐야 할 지 식, 학습자 개인의 지식, 교사의 신념 등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과 성찰을 포함한다(김선아, 2010: 41). 교사의 성찰에 관한 연구는 미 술에서 ‘가르치는 일’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이 연구의 한계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 될 수 있다.
첫째, 연구 현장이 가진 사례성 때문에 어린이 미술교육의 또 다 른 맥락들, 학교 미술 혹은 교육과정과 관련한 문제들은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연구는 2007년에서 2009년까지는 A미술관의 어린이 미술교실에 서, 2011년 이후는 소규모의 미술 교수-학습 활동 공간을 연구의 현 장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교수-학습 활동의 가치가 공교육 기관에 서의 경험이어야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연구에서 밝히고 싶은 것은 여러 기관들의 교육 사례를 비교 분석하여 얻어 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연구의 적합성, 타당성을 고려할 때 연구 기관의 특수성이 연구 문제에 미치는 영향은 충분히 논의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처한 연구 현장은 사회교육기관과, 사교육기관이라 는 특수성을 가진 현장이었고 보편타당한 성질을 가진 현장은 아니 다. 그러나 어떤 연구현장이든 그 현장이 속한 기관의 특수성과 제 한점은 모두 가지고 있다. 연구 현장의 특수성이 연구 문제와 어떻 게 연관되고 의미를 줄 수 있는가는 연구자가 개인적 체험을 어떻 게 의미 있게 만들어 가는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두 번째, 이 연구는 교사 개인의 체험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행 해지는 학교 밖의 어린이 미술교육을 다시 보는 자전적 연구이다.
자전적 연구는 연구 대상인 ‘나의 체험’을 연구자인 ‘나’ 스스로 해석 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질적 연구 논문의 작성은 연 구자가 현장에 들어갈 시점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이해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였는지를 차근차근 밝혀주어야 한다(조용환, 2011a:
51-52). 그런데 나는 현장에서 이미 변화하고 성찰을 하고 있었고 그러한 현장에서의 느낌과 생각이 자료로 수집된다. 수집된 자료 속 에는 이미 현장에서 벌어진 변화와 반성들이 담겨 있었다. 이를 다 시 경험의 주체인 내가 온전히 타자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구자 ‘개인의 체험’을 사회적 의미로 연결시키 지 못한다면 자전적 연구는 개인적 체험담이나 수필이 되고 만다.
그래서 자료를 해석할 때마다 마치 다른 교사의 수업을 들여다보는 듯한 타자의 시선으로, 연구자의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제한점들이 있으나 교사 개인의 수업 경험을 통해 우리 의 어린이 미술교육 현장을 돌아보고, 학습자인 어린이들에 대해 다 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또한 어린이 미술교사가 수업 에서 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미술교사의 실천적 지 식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