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분류할 경우, 기본적으로는 형태, 의미, 기능을 기준으로 하여 비슷 한 것끼리 묶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리 분류 조건을 정교화하더라도 언제 나 남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전에서 한 단어가 하나의 품사를 달고 있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두 가지 품사를 달아야만 하는 경 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한국어의 품사 분류 시도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1900년부 터 1930년 사이에는 유길준의 『대한문전』으로부터 이병기의 『조선어문강화』
에 이르기까지 품사를 다양하게 분류하여 7개 품사 또는 13개 품사까지 설정 하였다. 도입·수용기 시대에는 대체로 의미를 중시하였다. 다음 시대인 반성·
모색기(1930-1946)에는 최현배의 『조선어품사론』으로부터 이상춘의 『국어문 법』에 이르기까지 의미와 기능을 주로 분류 기준으로 삼아 분류하였다. 이때 의 품사는 6개에서 12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정착 시대인 1948 년-1963년 사이에는 주로 가능 분류 기준을 중시하여 품사를 다양하게 나누 었는데, 5개 품사부터 최대 13개 품사까지 제시한 문법서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품사 분류는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본고에서는 ‘품사 통용’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입장에서 한국어 품사 통용을 검토 및 재정립하여 한국어 품사 통용 현상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표 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제시한 단어를 분석하여 품사 통용 유형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였다.
본고 2장에서는 대표적인 국내문법서와 대표적인 외국문법서를 선택하여 한국어에서 주로 사용되는 품사 통용, 품사 전성 개념, 그리고 외국어에서 자 주 쓰는 전환과 제로 파생 개념을 살펴보았다. 외국 문법서에서 전환은 파생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의미관계를 중요시한다. 전환에서는 영접사는 고려하 지 않지만 방향성은 고려한다. 영파생은 영접사를 설정하고 파생의 방향성을 설정한다. 마지막으로 북한 문법서에서 다루는 개념을 살펴보았다. 북한 문법 서에서는 전환 개념을 사용하지만 영어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단어는 전환 될 때 원래 있었던 기능을 잃어버리는데, 특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은 두 단계 로 나누어진다. 첫 단계는 원래의 단어 특성에 새로운 특성이 생기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새롭게 생긴 기능이 본래의 기능을 추월하는 것이다.
본고 3장에서는 한국어 품사 통용 정립을 위해서 현대 문법에서 주로 사 용되는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면서 이들의 장단점을 제시하고 품사 통용의 정 의를 정립해 보았다. 이 관점은 크게 파생적 관점과 통사 어휘부적 관점, 인 지언어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국어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사용 되는 영파생의 큰 문제는 영접사의 존재 여부이다. 또한 영파생 방향성을 기 술하기가 어려우며 만족스러운 조건을 제시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인다. 영접 사를 인정하지 않는 영변화는 조금 더 나은 관점이지만 여전히 방향성에 대 한 문제가 남아 있다. 결국 이 두 파생적 개념은 문제의 현상을 깔끔하게 설 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원적 기능은 말 그대로 한 단어가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인데, 통용과 비슷하게 문맥을 통해 단어의 기능과 분포를 우선 적으로 본다. 또한 영접사와 방향성을 부정한다. 어휘부적 관점인 재등재는 새로운 항목 추가를 허용하면서 기존에 등재된 항목이 재등재될 때 전환이 생긴다는 견해이다. 또한 이 견해에서는 방향성과 영파생을 부정한다. 그런데 항목이 재등재될 경우 어휘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데, 어휘부에 부담을 주 는 것은 경제적이지 못하다. 의미 전이에서는 기존에 영파생으로 보아온 예를 영접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통시적 굳음, 인용 표현, 생략 등에 의 한 어휘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경우에만 국한되 는 설명이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인지언어학적 관점에서는 원형 이론의 도움 을 받아 단어의 경계 모호성을 논의한다. 다만 인지언어학의 해석을 본다면 품사 통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본고에서 사용한 품사 통용 개념이 제 일 유효하다고 본다.
본고 4장에서는 두 사전을 바탕으로 품사 통용 유형을 제시하였다. 한국어 품사 통용 유형은 크게 체언-수식언, 체언-독립언, 수식언-독립언, 용언-용 언, 3개 품사 통용으로 나눌 수 있다. 체언-수식언에는 명사-관형사, 대명사- 관형사, 수사-관형사, 명사-부사가 있다. 명사-관형사 통용 단어 중에서는 한 자어계(한자어+적, 한자어)와 외래어계(외래어+적) 단어가 주로 나타난다. 대 명사-관형사 안에는 한자어계(한자어)와 고유어계(단일어, 파생어, 합성어)가 있다. 수사-관형사 부류에는 한자어계(한자어)와 고유어계(단일어, 파생어, 합 성어)가 존재한다. 명사-부사 부류에는 한자어계(한자어, 접두파생어, 접미파
생어)와 고유어계(단일어, 파생어, 합성어)와 혼종어계(접두파생어, 접미파생 어, 합성어)가 있다. 체언-독립언에는 명사-감탄사, 대명사-감탄사가 있 다. 명사-감탄사 부류에는 한자어계(한자어)와 고유어계(합성어), 혼종어계 (단일어)가 있다. 대명사-감탄사 안에는 고유어계인 단일어만 있다. 수식언 -독립언에는 부사-감탄사가 있으며 용언-용언에 형용사-동사가 있다. 부 사-감탄사 부류에는 고유어계(단일어)만 있다. 형용사-동사 부류도 마찬가 지다. 3개 품사 통용에는 명사-부사-감탄사와 부사-관형사-명사, 수사- 명사-부사, 수사-관형사-명사가 있다. 3개 품사 통용의 예는 많지 않지만 주로 한자어계(한자어+적, 한자어)와 고유어계(단일어, 파생어, 합성어), 혼 종어계(접미파생어)가 있다.
한국어의 통용 유형을 다른 언어와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영어에서는 동 사-명사, 명사-동사 사이의 전환이 적극적으로 일어나지만 한국어는 명사와 관형사, 명사와 부사 사이의 통용이 많다. 또한 한국어에서 체언인 명사, 대 명사, 수사는 완벽하게 나누기가 어려워서 관형사와의 통용이 일어나는 것이 많다. 한국어, 영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슬라브어에는 전환이 단어 기반 부류, 어간 기반 부류, 어근 기반 부류에 적용된다. 단어 기반 부류의 경우는 영어와 비슷하게 명사와 동사 사이, 형용사와 명사 사이에 빈번하게 일어난 다. 형용사-동사 유형이 있다는 점은 한국어와 비슷하다. 한국어에는 통용이 3개의 품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품사 통 용이든 전환이든 기술하는 이론과 용어가 다를 뿐 현상 자체는 언어마다 유 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강신항 외(1982), 『학교문법 체계통일을 위한 연구』, 역대한국문법대계 1부 65책, 박이정.
강윤호(1968), 『정수 문법』, 역대한국문법대계 1부 54책, 박이정.
강현화(2006), 「동사」, 『왜 다시 품사론인가』, 커뮤니케이션북스.
고신숙(1990), 『조선어리론문법: 품사론』, 탑.
고영근(1999), 『국어형태론연구』, 서울대학교 출판사.
고영근·구본관(2008), 『우리말 문법론』, 집문당.
고창식·이명권·이병호(1965), 『학교 문법 해설서』, 역대한국문법대계 1부 38책, 박이정.
과학.백과사전출판사(1979), 『조선어문법』, 탑.
구본관(1998), 『15세기 국어파생법에 대한 연구』, 태학사.
구본관(2001), 「수사와 수관형사의 형태론」, 『형태론』 3-2, 265-284.
구본관(2005), 「남북의 품사 분류와 한국어 교육」, 『Korean연구와 교육』
창간호, 149-169.
구본관(2010), 「국어 품사 분류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 『형태론』 12-2, 179 -199.
국립국어연구원(1995), 『국어학의 번역 술어 연구』, 국립국어연구원.
국립국어연구원(2014), 『표준 국어대사전 편찬지침 I·II』, 휴먼컬처아리랑.
권용을(2002), 「영파생동사의 유형과 형태구조」, 『독일언어문학』 18, 29-45.
김광해(1995), 『어휘 연구의 실제와 응용』, 집문당.
김근수(1947), 『중학 국문법책』, 역대한국문법대계 1부 28책, 박이정.
김길동(1992), 15세기 국어의 파생법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문기(2011), 「품사 통용의 감탄사 처리 방안 연구」, 『우리말연구』 28, 129- 152.
김문기(2012), 「감탄사와 부사의 문법 범주적 관련성 연구」, 『한글』 296, 123 -150.
김미선(2010), 「감탄사와 부사의 경계에 대하여」, 『인문과학연구』 27, 5-30.
김민수(1986), 『신국어학』, 일조각.
김상철(2001), 영파생어의 이해에 관한 연구 -품사 인식과 의미해석을 중심으 로-,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선영(2011), 형용사·동사 양용 용언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선효(2011), 『한국어 관형어 연구』, 역락.
김숙이(1998), 국어 관형사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슬옹(1991), 『이른바“품사통용어”의 사전 기술 연구: 품사론의 재검토를 위하여』,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영석(1998), 『영어형태론』, 한국문화사.
김옥회(2005), 『조선어품사론』, 사회과학출판사.
김완진·이병근(1979), 『문법(교사용 지도서)』, 역대한국문법대계 1부 60책, 박이정.
김완진·이병근(1979), 『문법』, 역대한국문법대계 1부 60책, 박이정.
김재윤(1976), 「[N+적]류 명사에 대한 형태 통사론적 고찰」, 『청주교육대학교 논문집』 12, 155-172.
김정남(1998), 국어의 형용사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정웅(2008), 「한국어 부사의 술어성: 품사론의 새로운 시각을 위하여」,
『언어학』 52, 167-186.
김정은(1995), 『국어 단어형성법 연구』, 박이정.
김창섭(1990), 「영파생과 의미전이」, 『주시경학보』 5, 94-110.
김창섭(1996), 『국어의 단어형성과 단어구조 연구』, 태학사.
김창섭(2013), 「‘-적’의 두음 경음화와 2자어 3자어론」, 『국어학』 68, 167-188.
김한샘(2014), 「품사 통용어 교육 현황 분석」, 『제40회 한말연구학회 전국학 술대회 논문집』, 평택대학교.
김호중(2014), 국어 명사와 대명사, 명사와 수사의 품사 통용,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홍매(2013), 한국어 파생 부사 연구, 강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효진(2010), 중세국어 파생법 연구,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나찬연(2009), 『현대 국어 문법의 이해』, 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