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I. 부사 I
3.3.2. 경계 모호성
최근에는 품사 통용이나 영파생을 인지언어학적인 설명 방법을 통해 해결 하고자 하는 논의를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이 방법을 적용한 연구가 매우 적다. 정병철(2012)에서는 학교 문법에서 설정한 품사들을 관찰하면서 문제가 되는 내용을 인지언어학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지언어학에서는 어휘부와 통사부가 근본적으 로 구분되지 않으므로 단어에 품사를 할당하는 작업이 완전히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병철(2012:114)에서는 Croft(2001)의 근본적 구문 문법(Radical Constr uction Grammar)의 이론을 바탕으로, 품사나 문장 성분이 통사 구조가 만 들어지는 데에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고 설명하며 품사나 문장성분은 그 자체 가 구문일 때에만 통사 구조의 구성 요소 자격을 얻게 된다28)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근본적 구문 문법이 품사의 존재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품 사가 통사구조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가 아니라는 것과 구문의 한 유형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품사 범주의 성격 을 고려한다면 품사에 나타나는 원형 효과(prototype effects)가 있을 수 있 다. 원형이론에 따르면 실제의 범주들은 좋은 구성원과 나쁜 구성원이 있으 며, 범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연속적인 변차선이 존재한다. 즉, 인지언어 학자들은 이러한 원형범주의 특성을 통해 원형 효과의 예들에 대한 연구를 한다(정병철(2012:117). 그는 다음의 예문을 통해 원형이론을 설명하였다.
자립명사가 범주에 좋은 구성원이라면 의존명사 등은 가장자리 가까이에 있는 구성원이라 할 수 있다. (22)의 예문에 나타난, 부사성 의존명사로 분류
28) Farrell(2001)도 비슷한 입장을 취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bag, hammer, kiss, sneez e’ 같은 단어는 명사도 아니고 동사도 아니면서, 각 사용 문맥에 따라 과정이나 사물의 의 미를 나타낸다.
(18) a. 여기가 어딘가요?
b.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c.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19) a. 하루가 즐거우면 평생이 즐겁다.
b. 국회의원 하루 일해서 평생 먹고 살다니!
(20) a.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b. 거저도 이런 거저가 없네요.
(21) a. 금방 잠 오게 하는 이불 대박입니다.
b. 상한가 두 번이면 30만원 금방이다.
되고 있는 ‘듯, 대로’는 조사와 결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의미론적으로 ‘듯’과 ‘대로’는 뒤에 오는 용언의 의미를 제약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부사라 할 수 있다. 정병철(2012:121)에서는 품사 통용을 음운극의 형태 변화 없이 개념의 활성 영역(active zone)이 변동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보았다. 즉, 기본적인 문법 범주들은 바탕(base)에 어떤 방식의 윤곽(profile)을 부여하는지에 의해 결정되는 의미론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명사는 ‘사물 도식(thing schema)’에 윤곽을 부여하고, 동사 는 ‘관계 도식(relation schema)’에 윤곽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정병 철(2012)에서는 제시한 예문이다.
(18)의 ‘여기, 거기, 저기, 어디’ 등은 명사이긴 하지만 위치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위치 부사와 개념적인 바탕을 공유한다. 장소를 나타내는 명사 ‘여기’
가 부사로도 통용되는 것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19)의 ‘하루’와 ‘평생’은 시간의 범위를 나타내는 명사로 쉽게 부사로 통용될 수 있는데, 시간의 개념 을 가진 명사는 시간 부사와 유사한 개념적 바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 용이 가능하다. 반대로 ‘거저’는 (20a)에서는 부사로 쓰이지만 (20b)에서 명사
(22) a. (명사)선물은 진짜가 좋겠다/ 선물이 진짜가 아니다/ 선물은 진짜를 사 라/ 진짜로 선물을 했다.
(부사)진짜 재미있다/ 진짜 다행이다.
b. (명사) ?정말이 좋겠다/ ?정말을 사라/ ?정말이 아니다/ 이것은 정말이 다/ 정말은 그렇지 않다.
c. *새 진짜 (반지)/ *세 진짜 (친구) d. *새 정말/ *세 정말
로 쓰이고 있다. (21)에서는 서술어 자리에만 올 수 있지만, 부사인 ‘금방, 고 작, 그만’ 등은 명사로 통용될 수 있다. 따라서 원형 효과, 혹은 개념의 ‘바 탕’ 안에서 활성영역이 변동됨으로 인해 품사 통용이 발생한다는 설명을 통해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병철(2012:128)에서는 품사의 원형 효과나 변동, 불분명한 경계 등과 같은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품사의 정확한 구분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 조한다. 즉, 품사의 통용 현상 등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현희(2011)에서는 품사를 원형적 구조를 가진 범주로 설정하고 ‘품사 전 형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품사 통용을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단어에 따 라 품사가 명확한 것도 있지만 기능이나 분포가 다양하여 품사를 결정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이 논의에서는 단어의 품사가 가변적이기에 이에 따라 품 사 전형성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주장하며, 대상 단어가 어떤 품사의 전형성을 더 많이 가지는지 따져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현희(2011:370)에서는 명사를 중심으로 품사의 범주 중복을 관찰하며 설 정한 기준에 따라 점수를 주어 정도의 차이를 측정해 보고 있다. 이 중에서 명사/부사 통용 부류의 품사 전형성을 측정한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이현 희(2011:380)에서 제시한 예이다.
(23) a. (명사)이제는 혼자가 편하다/ 이제는 나 혼자가 편하다.
b. (부사)이제는 혼자 편하다/ 이제는 나 혼자 편하다/ 이제는 나 혼자서 편하구나.
c. 혼자 남겨 두다/ 혼자 남겨지다.
d. *새로운 혼자/ *두 혼자
(24) a. (명사)우리 서로가 힘을 합치면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b. (명사)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자/ 서로 행복을 위해 노력하자.
c. (부사)그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한다.
c’. 서로가 친하게 지내다/ 그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
(22)의 ‘진짜’와 ‘정말’은 유사한 의미의 부사이지만 사용상 차이를 보인다.
(22a)의 ‘진짜’는 ‘개체성’을 가지는 데 비해 (22b)의 ‘정말’은 개체나 사물로 서의 의미가 비교적 약하다. ‘진짜’의 경우 격조사인 ‘가, 을’ 등의 결합이 자 연스러운 반면 ‘정말’은 격조사의 결합이 매우 제한적이다. 부사로서 후행하는 용언을 수식하는 기능은 공통적인데 부사격조사인 ‘로’가 결합된 ‘진짜로’와
‘정말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둘 다 관형사의 수식은 자연스럽지 않다. 다 음으로 명사/부사 통용으로 언급된 ‘혼자, 서로, 함께’를 살펴보기로 한다.
(23a)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는 뜻인 데에 비해 (23b)는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과 상관없이 오직 자신 하나만 편하다는 뜻이다. 이 경우 주격조사
‘가’의 결합을 통해 의미가 달라졌으므로 (23a)를 명사로 (23b)를 부사로 처리 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가’나 ‘혼자’ 모두 ‘편하다’의 주어임을 고려한다면 격조사의 결합이 명사와 부사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혼자’의 용법을 따로 구별해야 한다(이현희 2011: 378). (23c)의 ‘혼자’는 동사를 자연스럽게 수식하는 반면, (23d)에서처럼 관형사의 수식을 받지 못한다.
d. *새 서로, *두 서로
(25) a. 함께가 아니어도 좋다/ 나보다 함께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가 되자.
b.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했다.
c. 우리를 함께 가게 해 다오/ 우리가 함께 가게 해 다오.
d.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다/ 형과 동생이 함께 놀고 함께 공부한다/
어머니는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e. *새 함께, *세 함께
(24)의 예들을 보면 (24c)의 ‘서로’는 부사로 행동하고 (24c’)에서는 명사의 자격으로 조사와 결합하고 있다. 또한 서술어인 ‘지내다’나 ‘사랑한다’를 수식 하는 것이기보다는 ‘그들’이나 ‘그 둘’에 대한 부연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 인다. 만일 ‘서로’가 서술어와 관련을 맺는 것이라면 ‘그들’인 ‘그 둘’을 생략 했을 때 문장이 부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서술의 주체가 빠지기 때문이다. 그 런데 ‘서로 친하게 지내다, 서로 사랑한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생략해도 문장은 자연스럽다. 이로 보아 ‘서로’는 서술어가 아닌 ‘그들’이나 ‘그 둘’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서로’가 부사의 전형성보다는 명 사의 전형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24d)에서는 ‘서로’가 관형사의 수식을 받지 못함을 보여준다(이현희 2011:379). 마지막으로 ‘함께’의 예를 보기로 한 다.
‘함께’는 사전에서 부사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25a)처럼 격조사의 결합 이 가능하다. 반면 (25b)의 ‘함께’는 격조사의 결합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앞 의 예들과 마찬가지로 ‘함께’는 용언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관련된 다. 즉, ‘가다’를 수식하는 구성이 아니라 ‘우리 함께’의 결합인 것으로 보인 다. 선행하는 ‘우리’의 전체성을 나타내주는 것이 ‘함께’의 기능이라면 이를 전형적인 부사로 보기는 어렵다. 이현희(2011:380)는 명사/부사의 전형성을
품사 명사 명사/부사 통용 부류 부사
용례
기준 책상 진짜 정말 혼자 서로 함께 너무
명사 전형성 부사 전형성
사물의 이름 시간, 장소, 방법 등 1 0 1 1 1 1 1 1 1 1 1 1 0 1
격조사 결합 격조사 결합 불가 1 0 1 0 0 1 1 0 1 0 0 0 0 1
주어, 목적어 부사어 1 0 1 1 0 1 1 1 1 1 0 1 0 1
피수식어 수식어 1 0 0 1 0 1 0 1 0 1 0 1 0 1
관형어 관련 용언 관련 1 0 0 1 0 1 0 0 0 0 0 0 0 1
종합 5 0 3 4 1 5 3 3 3 3 1 3 0 5 아래의 표로 제시한다.
[표:14] 명사/부사 부류의 품사 전형성 측정
[표:14]에서 명사인 ‘책상’과 부사인 ‘너무’는 각각 명사 전형성과 부사 전 형성이 매우 높다. 그 반대의 경우는 0에 해당한다. ‘진짜’와 ‘정말’은 명사 전형성보다는 부사 전형성이 높게 나타난다. 이에 비해 ‘혼자, 서로, 함께’는 부사 전형성과 명사 전형성이 비슷한 수치를 나타낸다. 이 표를 통해서 각 단 어가 품사를 결정하는, 가장 전형적인 기능과 의미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으며, 그 사용에 어떤 제약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명사/부사 통용에 대한 인지언어학적 논의 외에, 용언에 대한 인지적 해 석도 찾아볼 수 있다. 이숙의(2012:135)에서는 ‘늙다’와 ‘모자라다’와 같은 품 사 경계가 모호한 어휘에 대해 연속적 접근(continuum approach) 관점에서 의 품사 분류를 논의한다. 즉, 연속적 체계의 품사 분류 관점은 어휘 부류 사 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범주간의 비경계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비경 계성의 입장은 원형 모형에 바탕을 둔다. 이를 통하여 동사/형용사의 통용으 로 언급한 예를 의미를 중심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다. 그 결과는 아래 의 표(이숙의 2012:154)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