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성교체(音聲敎體)
불보살의 명호에는 그들의 고유한 덕상(德相)과 공능(功能), 구제의 영역 이나 방편이 함축되어 있다. 혜원(慧遠)읜 『대승의장』에서 “체(體)를 드러내는
86) 요시오카 료온(芳岡良音), 「觀世音菩薩の起源」, 184.
87) 고또 다이요(後藤大用), 『觀世音菩薩の硏究』, 320-22.
것으로 명(名)이 되고, 덕(德)을 표하는 것을 칭(稱)”이라 하였다.88) 『화엄경탐 현기』 에서도 “체를 부름을 명이라 하고 덕을 나타내는 것이 호가 된다.”89)고 하여 불보살의 명호에 수행의 과와 이타의 덕이 함유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 다. 이는 이름 자체가 본성을 표한다는 ‘명전자성(名詮自性)’의 입장을 보여주 는 것이다.90)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거나 사 유 억념함으로써 재난이나 죄업을 소멸하고, 정토에 왕생하거나 해탈에 이르 게 된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91)
불보살의 명호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를 고려할 때 ‘관세음’이나 ‘관자재’
역시 그 자체로 중생을 구호하는 관음보살의 방편을 표상하는 명호라고 할 것 이다.92) 전자를 ‘세간의 음성을 관하는 자’로 이해한다면, 후자는 세간의 실상 과 그 속을 살아가는 중생들의 신구의(身口意)를 관하여 구제하는 데 능하다 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93) 관세음의 ‘관’에 해당하는 범어인
‘avalokita’는 단순히 ‘보다(見)’라는 의미의 접두어 ‘ava’가 붙음으로써 관찰, 또는 ‘체관(諦觀)’의 뜻을 담지하고 있다. 규기(窺基)의 『반야심경유찬(般若心 經幽贊)』 에서도 “관은 비춘다는 뜻으로, 공을 체달하여 지혜가 있음이다. 자 재는 무엇이든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로써 증득하는 바가 뛰어나 다. 과거에 육바라밀을 행하여 이제 그 결과를 완벽하게 이루니, 지혜로써 관 함을 앞세워 열 가지 자재로움을 이룬다.”고 하였다.94) 원측은 “보살의 명호 를 부르는 음성어업(音聲語業)을 관하여 고난에서 구제하므로 관세음이라 하
88) 『大乘義章』(T26.1851, 863b12~14): 所謂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 夫天人師佛世尊 此十經中說之爲號 或云名稱 通釋義齊 隨相分別] 顯體爲名 標德云稱.
89) 『華嚴經探玄記』(T35.1733, 166c27~28): [號謂十號諸佛通名] 又召體爲名 標德爲號.
90) 이지관, 「경설상의 관음신앙」, 14.
91) 배금란, 「염불 공효의 실천적 의미 연구」, 76.
92) 중생구호 방편의 특징을 내포한 관음보살의 다양한 별호들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 로 ‘大悲尊’을 들 수 있다. 화엄경에서 관음보살이 ‘大悲行門’을 증득했다고 한데서 생 생겨난 것으로 이타의 원력이 가장 수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화엄경』에 나타난 관음성지인 보타락가산(potalaka)이 남해에 있다고 하여 ’南海大師‘라고 불리기도 한다.
‘施無畏者’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수능엄경』에서 대비심으로 중생에게 무외를 베푼 다고 설한 데서 비롯되었다. 또 관음보살의 대표적 지물이 연꽃이라는 점에서 ‘연화수 (padamapani) 보살’로 불리기도 한다(이지관, 「경설상의 관음신앙」, 11-12, 20).
93) 지의(智顗)는 『관음현의(觀音玄義)』에서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에 대해 해석하면서, 관음은 能所가 원융한 명호로서 ‘관(觀)’은 진여를 끝까지 비추어 본말을 살피는 의미가 있으며 ‘世音’은 관에 의해 비춰지는 경계라고 하였다(T34.1726, 877a7~20)
94) 『般若心經幽贊』(T17.1710, 524b23~25): 又觀者照義 了空有慧. 自在者縱任義 所得勝 果. 昔行六度今得果圓 慧觀爲先成十自在.
나 신업과 의업을 드러내지 못하므로 관자재로 이름한 것이며, 이는 이공(二 空)을 증득하여 중생의 삼업(三業)을 관찰함이 애쓰지 않아도 임운자재(任運自 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95)
이러한 설명들은 관세음으로 불리든 관자재로 불리든 간에 중생의 신구의 (身口意)를 추찰하여 섭화하는 관음보살의 공능이 수승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한다는 것은 단순히 ‘봄’의 의미가 아니라 보고, 듣고, 공감하는 총 체적 행위를 나타냄을 알 수 있다. 법운(法雲)은 이처럼 신업과 구업과 의업에 의해 표출되는 전반적인 중생의 실상을 관하는 신성으로서 관음보살의 명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세음보살은 네 가지의 이름이 있다. 첫째, 관세음(觀世音)이다. 바르게 말 하면, 세간 음성을 관하여 해탈로 이끈다는 것이다. 둘째, 관세음신(觀世音身) 이다. 이것은 중생의 신업(身業)을 관하여 해탈로 이끈다는 것이다. 셋째, 관세 의(觀世意)이다. 이것은 중생의 의업(意業)을 관하여 해탈로 이끈다는 것이다.
넷째, 관세업(觀世業)이다. 이것은 앞의 셋에 다 통하는 것이다. 묻는다. (이름 이 그렇게 여럿인데도) 오직 관세음이라고 일컫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해석자 가 답한다. 단지 구업(口業)이 행하기 쉽고, 신·의(身·意) 양업(兩業)으로써는 잘 행하기 어려우며, 또한 사바세계는 음성으로써 불사(佛事)를 짓기 때문에 세간의 소리를 본다는데 따라서 그 명칭을 받게 된 것이다.96)
인용문에서 보듯 법운은 관세음이란 명호에 중생의 구업, 신업, 의업과 그 에 따른 일체업을 관찰하여 해탈시킨다고 하는 네 가지 구제행의 의미가 함유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삼업 중 구업이 행하기 제일 쉬우며 또한 사바세 계는 음성으로써 불사(佛事)를 짓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의 삼업을 모두 관하 고 있지만 중생의 편에 서서 관세음이라는 명의(名義)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다. 따라서 관음보살과 소통하여 관음보살의 가피를 촉발하는 대표적인 매개
95) 『般若心經贊』(T17.1711, 543b21~25): 若依舊本名觀世音 觀諸世間稱菩薩名音聲語業 以救諸難因而立號名觀世音 猶未能顯觀身意業. 而今本云觀自在者 內證二空外觀三業 不 依功用 任運自在故 曰觀自在.
96) 『法華經義記』(T33.1715, 678a5~12): 觀世音者有四名 一名觀世音, 正言觀世間音聲而度 脫之也. 二名, 觀世音身, 卽是觀衆生身業而度脫之. 三言觀世意, 卽是觀衆生意業而度脫之 也. 四者名觀世業, 此則通前三種. 問曰, 若爾何故. 只說爲觀世音耶. 解釋者言, 但行口業 則易. 身意兩業行善卽難也. 且娑婆世界, 多以音聲爲佛事. 是故從觀世音受名也.
는 소리 곧 음성이며, 음성을 교체로 제도하는 것이 관음신앙의 대표적인 특 징으로 인식되어왔음을 볼 수 있다.
지의(智顗)도 『법화문구』에서 ‘음(音)’은 근기이며 그 종류가 인천, 이승, 보살, 부처의 근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97) 이는 ‘음성’을 각각의 유정들 이 지탱하고 있는 업력과 근기를 표상하는 대표적 기제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 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만일 백 천 만억의 중생이 온갖 고통을 받을 때에 관 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은 즉시 그 음성을 듣고서 그들을 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98)라고 하여 관음보살이 중생과 감응하는 방편이 ‘음성’임을 제시하고 있는 『법화경』 「보문품」에 기인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는 이 땅의 모든 유정들이 각각의 존재 영역에 서 상호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편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관음은 이처 럼 모든 중생들의 실존 속에서 발현된 일체 소리를 관하는 신성임을 명호 자 체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인용문에서 법운이 ‘사바세계는 음성으로써 불사(佛事)를 짓는다.’고 언급한 것처럼 불교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소리를 통해 교화 제도가 이루어지는 음성교체(音聲敎體)의 세계로 인식해왔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소 리를 제도 교화의 기반으로 파악하는 인식은 『대승법원의림장』에서 소승육파 의 교설이 각각 ‘교체로 삼음에 있어서 유루무루가실(有漏無漏假實)의 차별은 있으나, 오직 소리와 명자(名字) 등이 교체의 본성이 된다.’라고 한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99) 『능엄경』에서도 ‘세존이 사바세계 출현함으로 이 세상의 중생들을 교화하는 진실한 교체인 붓다의 청정하신 음성을 듣게 되었으니, 삼 매를 성취하려면 듣는 성품을 돌이켜야 들어가기 쉽다.’고 하였고, ‘관세음보 살은 묘음으로 설법하고 세상 소리를 관찰하여 해조음과 범음으로 세상을 구 제한다.’고 하였다.100) 이는 중생을 제도 교화하는 불보살의 참된 교체가 소리 와 음성임을 강조하는 것이며, 특히 관음보살은 일체 중생의 소리를 듣고 또 한 청정함 범음과 해조음으로 교화하는 신성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소리(音聲)
97) 『法華文句』(T34.1718, 145b3~4): 音者機也. 機亦多種, 人天機二乘機菩薩機佛機.
98) 『法華經』(T9.262, 56c6~8):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受諸苦惱 聞是觀世音菩薩 一心稱名 觀世音菩薩卽時觀其音聲皆得解脫.
99) 『大乘法苑義林章』(T45.1861): 故通有漏無漏假實以爲敎體(251c12); 若取能詮 唯聲名等 而爲體性(253a17~18).
100) 『首楞嚴經』 (T19(945), 130c17~131b20). 佛出娑婆界 此方眞敎體 淸淨在音聞 欲取 三摩提,實以聞中入. … 妙音觀世音 梵音海潮音 救世悉安寧 出世獲常住.
가 모든 중생의 가장 원초적인 소통의 매개체라는 점에서 음성을 교체로 중생 을 교화 제도하는 대표적인 방편으로 관음신앙이 건립되었던 것은 매우 자연 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천태 지의는 이처럼 소리를 방편으로 중생이 관음보살을 초치하고 이에 대 해 관음보살이 응현하는 현상을 ‘감응(感應)’이라 하였다. 이는 『관음현의』에 서 『법화경』의 「보문품」에 대해서 “감응으로 종지(宗旨)를 삼으니, 십법계의 중생이 ‘고요하고 밝게 비추는 앎’을 두드려 앞뒤로 감응의 이익에 도달한다.”
고 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101) 지의는 이처럼 중생이 음성으로 관음을 감(感) 하고 관세음보살이 응(應)하는 ‘감응도교(感應道交)’를 관음신앙의 대표적인 특 징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감응이 이루어지는 것은 관세음보살이 과보와 업과 번뇌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관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일체중생들 을 해탈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하였다.102) 감응의 의미에 대해 당(唐) 대 법상종의 혜소(慧沼)도 "‘감(感)’이란 (중생이) 부른다는 뜻이요, ‘응 (應)’이란 (불·보살이) 응현(應現)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103) 이러한 관점 에서 볼 때 감응은 중생의 부름에 응답하는 불보살 성현의 본질을 이루며, 또 한 여기에는 대비신력으로 간단없이 중생을 섭화(攝化)하는 불보살의 무한한 공용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능엄경』에도 관음보살의 구제 방편이 다른 보살들보다 수승함을 부각하고 있는데, 이는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을 통해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 해 ‘세간과 출세간을 뛰어넘어 시방세계가 두루 밝아지고 두 가지 수승함을 얻었는데, 첫째, 위로 시방의 모든 붓다의 본각 묘심과 하나가 되어 자비력이 붓다와 동일하게 되었고, 둘째 아래로 시방의 일체 육도중생과 합하여, 모든 중생과 더불어 자비를 구함이 같아졌다.’는 것이다.104) 관음보살이 이처럼 이 근원통의 체달자로 제시되고 있는 것 역시 음성을 교체로 중생들을 섭화하는 것이 관음보살의 대표적 구제 방편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능엄경』의 교설 은 관음보살이 삼매를 통해 붓다와 동일한 자력으로 일체 세간 중생의 음성을
101) 『觀音玄義』(T34.1726, 890c23~24): 以感應爲宗 十界之機 扣寂照之知 致有前後感應 之益.
102) 이기운, 「천태 지의의 일불승 사상」, 434.
103) 『十一面神呪心經義疏』(T39.1802, 1007b9~10): 感者召義 應者應現義也.
104) 『首楞嚴經』(T19.945, 128b21~25): 忽然超越世出世間 十方圓明獲二殊勝 一者上合十方 諸佛本妙覺心 與佛如來同一慈力 二者下合十方一切六道衆生 與諸衆生同一悲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