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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신변(身變)의 신라적 전화(轉化)

살펴본 바와 같이 관음보살은 신라 중대 이후 왕실은 물론 일반 기층민 에 이르기까지 독립적 구호 신성으로 확고하게 대중적인 귀의를 받았으며, 법 화, 화엄, 정토, 밀교 사상의 다층적인 토대 위에서 신라 본연의 상주 신성으 로 자리매김하였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의상, 범일, 보천 등 당대 엘리트 성사 들을 매개로 한 진신 성현의 관념이 중요한 기반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진 신 성현 감득의 경험이 이처럼 삼매를 기반으로 한 수행자의 자증에 대한 신 화적 서사를 통해 신라 국토를 불보살 상주의 정토로 부각시키는 기제로 작동 하였다면, 진신에 대응되는 불보살신으로서 화신은 범부 중생의 근기에 수순 한다는 점에서 신행의 또 다른 양상을 추동하였다고 할 것이다.

신라인들이 주체가 되는 관음 영험 서사에서 화신 성현을 바탕으로 가피를 감득하는 서사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 시기는 역시 중대 이후이다. 기능과 역 할의 측면에서 화신의 관념은 일반 민들의 삶과 연동하여 관음보살의 구체적 인 구제 활동을 보여준다. 각종 재난의 구제자로, 성도와 왕생의 조력자로, 신 라인들의 신앙 속에서 관음보살 화신이 수행했던 기능과 역할은 다양하다. 더 욱이 신라인들에게 증험되는 관음화신이 이 땅 기층민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관음신앙의 토착화 양상을 볼 수 있다. 일연은 이처럼 관음보 살 화신의 양태가 범속한 신라인의 모습으로 노정되는 흐름을 『삼국유사』의

「낙산이대성」조에서 원효를 매개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 토착 화신의 매개자로서 원효366)

「낙산이대성」조는 의상 외에도 원효, 범일, 조신 등 신라 시대의 인물은 물론이고 고려 시대 걸승의 사례까지 포섭하여, 관음성지로서 낙산의 상징성 과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서사의 주인공과 연결하여 살펴보면 첫째, 의상 의 설화는 정진 기도에 따른 자내증을 기반으로 신라 동북방 해안 지역이 『화 엄경』에 나타나는 관음보살 진신의 주처인 ‘보타락가산’임을 확증하고, 낙산사 를 창건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지 연기설화이다. 둘째, 원효의 기사는 그가 관음진신을 예참하기 위해 낙산으로 나아갔으나 이루지 못하고, 대신에

366) 본 절의 내용은 졸고 「『삼국유사』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조의 원효 설화 분 석」의 논지를 요약해 재구성하였다.

도중에 만난 두 여인이 낙산 관음의 화현임을 증험했다는 내용이다. 셋째, 범 일과 관련된 설화로, 신라 하대에 낙산에 정취보살을 봉안하면서 낙산 신앙이 새롭게 중창되었던 정황을 보여준다. 이어 고려시대 원의 침략에 따른 전란기 를 배경으로 낙산사에 안치되었던 보주의 행방과 관련한 설화가 기재되어 있 다. 넷째, 승려 조신이 관음보살의 가피로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깨닫고 수 행자로서 본연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의상은 낙산신앙의 개 창자로, 범일은 낙산신앙의 중창자로, 조신은 낙산관음의 가피를 통해 깨달음 을 얻는 주인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관음보살의 영응력을 증험함으로 써 낙산 관음신앙을 현창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낙산이대성」조의 원효 기사를 관통하는 서사 안에서 의상의 진신 체험과 대비되는 화신의 관념이 중심 모티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를 통해 신라 민들의 삶 속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관음보살 화신의 실질적 양 태를 원효 성사를 매개로 제시하고 있다. 즉 원효의 기사는 『삼국유사』 내 설 정된 관음신앙의 구도 안에서 관음화신의 신라적 전환을 보여주는 전이 기제 로서 상징성을 갖는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후에 원효법사(元曉法師)가 뒤이어 와서 (관음의 진신을) 보고 예참하고자 하였다. 당초에 남쪽 교외에 이르니 논 가운데서 흰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다. 법사가 희롱삼아 벼를 달라고 하였더니, 여인이 장난말로 벼가 흉작이라고 대답하였다. 또 길을 가서 다리 밑에 이르니, 한 여인이 월수건(月 水帛)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마실 물을 청하니 여인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주었다. 법사는 이를 엎질러 버리고 냇물을 떠서 마셨다. 때마침 들 가운데 소 나무 위에서 청조(靑鳥) 한 마리가 불러 이르기를 “제호를 마다한 화상이여!”

라고 (탄식) 하였다. 그리고 홀연히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 소나무 아 래에 벗은 신발 한 짝이 있었다. 법사가 절에 이르니 관음 (상)의 자리 아래에 또 이전에 본 벗은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제서야 앞에서 만난 성스러운 여인 이 (관음의) 진신임을 알았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觀 音松)이라고 하였다. 법사가 성굴(聖崛)에 들어가서 다시 (관음의) 진용(眞容)을 보고자 하였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갔다.367)

367) 『삼국유사』권3, 탑상편, 「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後有元曉法師継踵而來欲求瞻 禮, 初至於南郊水田中有一白衣女人刈稲. 師戱請其禾, 女以稲荒戱荅之. 又行至橋下一女 洗月水帛. 師乞水女酌其穢水献之. 師覆弃之更酌川水而飮之. 時野中松上有一青鳥呼曰,

다른 세 설화와 달리 원효의 기사는 관음 진신의 친견이라는 목적을 두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낙산으로 나아가는 원효법사 개인의 통과 의례적 구조 를 보인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성굴(聖崛)에 들어가서 다시 진용(眞容)을 보고자 하였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갔다.” 라고 마무리 함으로써 이 설화가 원효의 진신 친견 실패담으로 인식될 수 있는 단초를 제 공하고 있다. 기왕의 연구들에서 진신 친견의 성패 여부와 관련하여 대체로 두 가지 해석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우선 원효가 진신을 친견하지 못한 것으 로 규정하고 있다. 파계하여 승려의 지위를 버린 원효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내포된 것으로 이 설화를 파악하는 관점이다.368) 다음으로 의상과 다른 층위 에서 속화된 관음을 만난 것일 뿐 원효 역시 깨달음을 얻은 것이며369), 의상 이 견인한 관음 상주 도량을 원효가 증명해준 것으로 해석하는 입장이 있 다.370)

그런데 이 설화에서 주목할 것은 진신 친견의 성패 여부보다는 원효가 낙산 관음 대성을 친견하러 가는 도중에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묘사 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관음 진신 을 친견하기 위해 낙산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던 차에 원효는 남쪽 교외에서 흰 옷을 입고 벼를 베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사 가 이 여인을 보고 희롱 삼아 벼를 달라고 하였더니, 여인 역시 장난말로 벼 가 흉작이라고 대답하였다.”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어서 길 을 가던 중, 다리 밑에서 월수건을 빠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마실 물을 청하 자 여인이 빨래하던 물을 건네니 원효는 이를 부정(不淨)하게 여겨 마시지 않 고 쏟아버린다. 그러자 들 가운데 소나무 위에서 청조가 나타나 ‘제호를 마다

“休醍□和尚.” 忽隠不現. 其松下有一隻脫鞋. 師旣到寺觀音座下又有前所見脫鞋一隻. 方 知前所遇聖女乃真身也. 故時人謂之觀音松. 師欲入聖崛更覩真容, 風浪大作不得入而去.

368) 박미선, 「義湘과 元曉의 관음신앙 비교」, 215~16; 윤중배, 「『三國遺事』 高僧說話에 나타난 民衆意識」, 8-11; 이한길, 「양양불교설화 속에 보이는 원효와 의상의 역학관 계」, 13.

369) 고운기,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조와 일연의 세계 인식, 질의」, 36-38; 김헌선,

「불교 관음설화의 여성성과 중세적 성격 연구」, 31; 신연우, 「『三國遺事』 「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條의 분석적 이해」, 183; 조현우, 「「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의 은 유적 이해」, 192-93.

370) 김영태, 『신라불교 연구』, 227; 배금란, 「『삼국유사』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조의 원효 설화 분석」, 246.

했다’고 원효를 질책하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이처럼 노상의 두 여인과의 조 우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원효의 희롱에 역시 희롱으로 대응하고, 마실 물을 청하는 법사에게 더러운 물을 건넸다는 서술은 두 여인이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들은 서사의 결말에서 낙산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중에 만난 비속한 여인들과의 에피소드가 설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서사의 주된 목적은 원효의 진신 친견 여부가 아니라 신라 기층민의 모습으로 화현한 낙산 관음 대성의 화신에 초점이 있음을 알 수 있 다. 무엇보다 이 설화에서 두 여인을 낙산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정당화하는 상징적 모티브는 ‘신발’이다. 여인이 건네준 물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 엎질러 버리자 청조가 이를 질책하며 사라진 후, 그 아래에 벗은 신발 한 짝이 떨어 져 있었고, 그 한 짝이 다시 낙산사 관음상 아래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를 통 해 원효는 도중에 만난 여인이 관음 진신의 화현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신발’은 원효가 조우했던 두 여인이 낙산사 관음보살의 화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청조가 홀연히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진신 친견의 문제와 관련하여 원효가 낙산에서 진신을 보지 못하리라는 복선임을 알 수 있다.

기사의 결말에서 ‘진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언급으로 인해 이 설화 가 얼핏 원효의 진신 친견 실패담으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정작 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 주제는 도중에 만났던 비속한 여인들이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다는 원효의 각성이다. 진신과 관련된 언급은 서두와 결말에 잠깐 나 타날 뿐이다. 즉 서사의 전체적인 맥락이 백의 여인, 월수백(月水帛), 물, 청 조, 후에 관음송이라 칭하게 된 소나무 등 관음보살과 관련된 다양한 상징들 을 동원하여 두 여인이 관음보살의 화현임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두 여인에 대한 묘사에서 논 가운데서 벼를 베고 있는 여인이 ‘흰옷을 입었다.’고 한 것 은 ‘백의관음’을 상징적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다리 밑에서 여인이 ‘월수건’을 빨고 있다고 하는 데서, ‘월수건(月水帛)’은 얼핏 여인과 관 련된 물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수월관음(水月觀音)’을 지시하 는 일종의 언어유희로 해석될 수도 있다. 흰옷을 입고 벼를 베는 여인과 월수 건을 빠는 여인이란 표현에는 그 자체로 범속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관음 진성 의 성현을 암시하는 중층적 함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