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대중 매체의 여성 재현: 이중 부담과 진화한 성차별

한국의 중층적 현실이 구조적 여성 문제를 가시화하지 못하고 여성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면, 이러한 현실과 미디어 문화는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국내 연구자들은 일찍부터 대중 문화 속 재현된 여성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대중 문화 속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재현 연구 대상으로 TV드라마, 특히 멜로드라마가 주목받아 왔다. 연구자들은

TV멜로 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에 의거해 여성성과 여성 캐릭터가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고찰하였다(이종임, 2014; 김명혜, 김훈순, 1996). 연구자들은 대체로 90년대와 2000년대를 주요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꼽으면서, 그러한 변화가 여성 해방과 관련하여 진정한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초기 미디어 젠더 연구는 ‘남성과 여성이 대중매체에 어떠한 인물

유형으로 등장하고 있는지에 주목한 성역할 연구(sex-role study)’에 집중되었으며, 이 연구들에 따르면 70-80년대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가부장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김환희, 이소윤, 김훈순, 2015). 이 시기 드라마는 가정에 충실한

‘현모양처’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재현하였으며,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는 여성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강조하고, 그녀를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서사 구조를 통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조하였다(이종임,

2014). 이러한 현상은 국가 주도의 압축적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70년대의 근대화의 주체가 ‘아버지’로 호명된 것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에 들어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확대 재생산했던

분위기에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90년대 드라마는 한편으로는

“여성 해방의 메시지를 표방하는 동시에 가부장적 여성관과 담론을 강화”하는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김환희, 이소윤, 김훈순, 2015).

70년대 드라마가 압축적 근대화 아래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여성을 그렸던 것에서 나아가 90년대 드라마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있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젊고 유능한 여성이 중심 인물로 등장한 것을 일정 부분의 진보로 평가하기는 하나, 여전히 이 여성들이 ‘아름다움’이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있으며 (김응숙, 1995), 여성 등장인물은 여러 기제를 통해 배제, 통제 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김훈순, 겸명혜, 1996) 드라마 속 여성 재현의 해방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동의하였다.

2000년대에는 90년대 드라마 지형이 보여준 모순과 파열을 보다

적극적으로 탐색하려고 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2000년대 이후 일어난 변화를 기존 젠더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징후로 긍정적으로 파악하거나(김기봉, 2009; 이충민, 2011)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읽어냈다(박혜진, 2000;

김명혜, 2004; 양문희, 강형철, 2005). 이를 종합하면, 90년대 드라마의

여성 재현은 ‘진보적 여성 캐릭터와 전통적 드라마 서사 간의 긴장과

모순’이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여성 등장인물과 그 서사 간의 파열이 관찰된다. 구체적으로 전문직 여성이 등장하지만, 남성에 비해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남성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이며(윤정주, 2000), 전문직 여성은 남성에 비해 주인공이 될 확률이 낮으며, 남성에 비해 악역으로 그려지는 비율이 높았다(양문희, 강형철, 2005).

반대로, 전통적인 서사 구조 속에서는 여성들의 진취성이 강조되었다. 로맨스와 결혼이라는 전통적인 로맨스 서사 구조 속에서 여성은 매우 진취적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김명혜(2004)는 현대판 신데렐라는 능력 있는 남성의 마음을 시험해 그를 영리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신분 상승을 꿰차는 영리함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즉, 여성은 능력 있는 남성과 결혼을 쟁취하기를 원할 때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또한 여자주인공들은 적극적으로 공적 활동에 참여 하고, 보다 유연한 성 의식을 보여주지만, 결혼과 연애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뛰어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김훈순, 김미선, 2008). 이렇게 볼 때 2000년대는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을 뛰어 넘는 여성을 등장시켰으나, 전통적 로맨스 서사에 기댄 방식으로 재현함으로써 진정한 여성 해방으로 나아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같은 형식과 내용의 모순은 로맨스 서사와 진취적인 여성상 이외에 재현 방식에 있어서도 발견된다. 여성의 유능함과 자아 실현의 정도와 관계 없이 전통적인 로맨스 서사가 여성을 결혼관계에 포섭했다면, 재현 방식에 있어서 여성은 예외 없이 젊고 아름다운 존재로 등장한다. 홍지아(2010)의 연구는 여성의 외형적 이미지와 여성이 수행하는 역할 사이의 간극을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드라마 주인공은 대부분 젊고 아름다운 20대 여성이었으며 30-40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불륜 드라마 등으로 극히 제한적이었다.

여성의 직업, 학력 등이 다양한 데 비해 외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나이대는 20대로 획일적이었다는 사실은, 여성에게 있어서는 아름다운 외모가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가부장적 사고의 징후로 볼 수 있다. 또한 여성은 유능하기만 해서는 안되며, ‘젊고 유능’ 해야 하며,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되고 ‘아름답고 유능’ 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생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광고 속 여성 재현도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박종민, 곽은경(2007)의 연구는 1920 ~ 2005년 사이의 신문 광고 분석을 통해 70년대 이후 역동적 이미지의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8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여성이 등장하는 빈도는 늘었을 지 모르나 내용적으로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따르는 등 실질적인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구체적으로 여성은 최근 들어 남성보다 더 광고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지만, ‘젊고 비전문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모델로 등장하였던 금융과 같은 분야에서도 모델로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남성과 함께 등장할 때는 보조적인 위치로 재현되었다(최은섭, 이상경,

2009). 최근 연구 결과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여준다(김수아, 김세은,

2017 참고).

최근 대중 문화는 겉으로는 여권신장에 걸맞은 형식을 취하면서 그 내용적으로는 더 교묘한 성차별 메시지를 담고 있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여성에게 시대에 걸맞은 여러 변화를 습득하라고 종용하는 한편, 과거

‘여성의 역할’이었던 것들도 빠짐 없이 숙지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멜로 드라마의 변하지 않는 로맨스 구조는 성공적인 여성의 인생은 결혼과 연애에 성공하는 인생이라고 강조한다. 겉으로는 전문직 여성이지만,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연애 관계에 목숨을 거는 모습은 여성에게 ‘일과 결혼’이라는 이중 부담을 강제한다. 한편, 여성은 일과 가정에서 동시에 유능한 존재로 재현된다.

최근 여성은 가정 밖에서 재현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정에서 유능한 전문가로서, ‘프로 엄마 혹은 육아와 어머니 역할에서의 전문가’(정기현,

2007;김수아, 김세은, 2017에서 재인용)로 재현된다. 이는 일터와

가정에서 동시에 유능한 슈퍼우먼 신드롬을 생산하며, 일과 가정 모두를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 현대 엄마에게 걸맞는 이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

성 역할이 이중 부담을 여성에게 지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면,

‘아름답고 젊은’ 여성 이미지는 이 모든 역할 기저에 기본으로

강제되어야 하는 규범이다. 여성은 언제나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현된다. 가정 주부도, 유능한 전문직 여성도 젊고 아름답게 재현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외모는 남성 응시의 대상으로 언제나 아름답게 관리되어야 함이 은연중에 강조된다. 특히나 여성의 외모에 대한 강조는 2000년 이후 한국이 자기 관리 시대로 전환됨에 따라, 몸이 관리와 개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과 결부시켜 볼 수 있다.

각종 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성형수술과 시술 건수는 세계 1위이며, 전체 성형 수술과 시술건수는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수안, 2016).

대중 문화에서도 주체적인 몸 관리 담론이 흥행하고 있다.

이수안(2016)은 메이크오버쇼 프로그램의 내러티브가 여성이 자발적으로 시술에 참여한다는 주체로써 재현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입장일 뿐 왜 여성들이 이 시술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재해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성형과 외모 가꾸기를 통해 자아를 발전시키고 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도, 외모 관리를 강제하는 담론이 남성중심적 담론이라면 이는 전혀 주체적이지 않은 것이다. 즉, 여성의 외모 가꾸기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주창하는 ‘관리하는 자아’ 와 결합하여 전 과정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여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하는 것이 남성의 응시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더불어 대중 문화에서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는 것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는 추세다. 여전히 광고에서는 여성의 신체 노출이 맥락과 관계 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적 대상화가 일어나고 있다(김수아, 이세은, 2017). 김수아, 이세은(2017)은 최근 연구에서 여성 셀러브리티가 ‘성적 대상화의 주요 장치’로 이용되고 있는 맥락을 밝혀낸다. 설현의 “젊고 아름다운 몸과 얼굴은 제품과 상관 없이

‘전시’”될 뿐이며, “남성의 성적 대화의 대상이 되는 것을 불편해

하기는커녕 환영하고 즐기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심지어 설현이 등장한

공익 광고도 “그녀에게 ‘오빠로 불기리를 염원하는 한국의 남성들”에게

‘좋은 선택’을 기대한다며 속삭이는 구조다.

더불어 최근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힙합 프로그램은 노골적으로 성차별을 재현하고 있다. 최근 성황리에 방영된 <쇼 미더 머니>에 출연한 한 아이돌 가수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여성 비하적인 가사를 직접 불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한 출연자는 프로그램 출연과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여성 혐오적 가사를 발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