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의 대조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도드라진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가 줄곧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등장해 몸 개그를 불사하는 털털한 동네 언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타 프로그램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섹시한 여성’으로서의 스타 이미지를 화려하게 전시한다. 3집 발매 2주 후 방영된 토크쇼 MBC <놀러와>에서는 구릿빛 피부에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무장한 ‘유고걸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이듬해
<패밀리가 떴다>가 종영되기 전에 한 번 더 출연했던 <놀러와>에서도 이효리는 또래 여자 친구들과 등장해 ‘칙릿’의 현실버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는 79년생 또래 친구들과 함께 등장해 놀러와 멤버들과 ‘사랑의 작대기’ 게임을 하며, ‘최악의 남자친구’ 등 연애에 관해 프로그램 내내 수다를 떤다.
이런 식의 대조는 비단 리얼리티 프로그램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매체를 넘나들기도 한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털털한 매력을 뽐내고 있던 시기에 나일론(NYLON)과 진행한 화보에서 이효리는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섹시미를 발산한다. 이 화보는 이효리가 절친과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한다는 컨셉으로 화려한 휴가를 보내는 이효리의 모습을 담았다. 그녀는 빨간 자동차 앞에서 몸매를 과시하거나, 클럽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 한다. 이 화려한 휴가 내내 이효리는 몸매를 과시하는 의상 차림으로 화려하고도 도시적인 휴가를 만끽한다.
뿐만 아니라 엘르와 진행한 ‘슈퍼우먼 22인’ 화보에서도 이효리는
상반신을 탈의한 채 그윽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이 화보들 속
‘섹시 디바’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그녀가 보여준 털털하고도 평범한 동네 언니의 모습과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효리가 <패밀리가 떴다>에서 보여준 평범함 전략은 오늘날 스타덤의 속성을 반영한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 스타덤은 비범한 재능이 아니라 미디어 선전을 통한다. 과거 스타는 비범한 재능을 소유한 사람들로, 스타덤의 속성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타 자신에 기인했다. 하지만 오늘날 셀러브리티는 특별한 재능과 비범함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들이다(Boorstin, D. J. 1992/2004). 즉, 오늘날 스타덤은 차별화가 아니라 동일시에 있다. 셀러브리티가 가진 이러한 “민주적 에토스 (democrating ethos)” (Holmes, S., & Jermyn, D., 2004)를 가장 정점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예 일상 속의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리얼리티 TV에서다.
리얼리티 TV는 이처럼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특별한 사람이 사실은 특별하지 않으며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라는 감정에 기반한 장르다. 이를 바탕으로 리얼리티 TV는 ‘무대 뒤편’, ‘맨 얼굴’ 즉 스타덤의 속살을 보여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진정성(authenticity)을 획득한다. 그러나 킹에 따르면 리얼리티 TV에는 보다 더 교묘한 자기 연출이 작동한다(King, 2008). 리얼리티 TV에서 공개되는 스타의 평범한 민낯은 실제가 아니라 평범함이라는 “전략적 페르소나를 수행”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셀러브리티의 내면에 아직 드러나지 못한 “진정한 자아(real self)”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를 드러낼 것을 요구하지만 평범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스타로서의 특권적 지위에 손상을 가한다는 것일 수 있기에 이를 전략적으로 조정하며 연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얼리티 TV 시대에 스타/셀러브리티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서로 적절히 혼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평범함을 연기하는 순간조차 셀러브리티는 스타로서 후광을 상쇄하지 않도록 ‘특별한 평범함’을 연기해야 하며, 특별한 재능을 뽐낼 순간에도 너무 과도하게 그 역할에 몰입하여 자신을 비범한 인간으로 드러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은 리얼리티 TV 장르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authenticity)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연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면 서로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효리의 두 페르소나도 이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3집 활동을 시작하며 이효리의 스타 이미지는 이중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가 보여준 모습은 한
마디로 평범함이었다. 섹시 디바 이효리는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을 그대로 노출하는가 하면, 몸빼바지와 볼 품 없는 추리닝 차림새로
방송에 나와 ‘평범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그녀는 섹시 디바로서의 후광을 놓치지 않는다.
화보와 토크쇼에서 그녀는 ‘섹시 디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도시적이고 세련된 패션과 입담을 선보인다.
이 두 모습은 일면 서로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이효리는 이 간격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스스로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리얼리티 TV 스타덤의 속성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털털한 언니를 연기하는 리얼리티 TV 속 이효리와 섹시 디바로서의 글래머를 내뿜는 이효리 사이의 간극은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특별함 속에 평범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오늘날 스타덤의 속성을 보여준다. 이효리는 평범한 ‘털털한 동네 언니’를 연기하지만 여전히 섹시 스타이며, 대한민국의 최고의 여가수이지만 그녀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이효리의 전략적 페르소나는 정확히 리얼리티 TV 시대의 스타덤과 일치한다.
이 과정에서 진정성 담론은 이효리가 그녀의 진짜 ‘평범한 모습’과
진짜 ‘특별한 모습’을 노출하지 않음에도 이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예컨대 <패밀리가 떴다>는 퉁퉁 부은 이효리의 모습을 방영하긴 해도, 그러한 연출을 통해 새벽에 라면을 먹고 잤다는 무대 뒤편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④ . 연기자들이 프로그램에서 연기하는데 동원되는 정신적 감정적 노동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시골에서의
1박 2일은 내내 유쾌하고 즐겁게만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평균을 자처하는 이들이 사실은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특별한 인물들임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 TV 예능 포맷에 작동하는 진정성 담론은 이 차이와 모순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한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잃지 않은 이효리의 페르소나 전략은 리얼리티 TV 시대에 스타덤의 속성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미디어를 통해 선전됨으로써 유명해진 시대에 스타는 결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평범하다는 사실이 스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평범한 ‘동네 언니’의 모습은 인간 이효리의 모습으로 진정성을 획득하고, 섹시 디바로서의 특별한 지위가 주는 위협을 상쇄한다. 또한
④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에서 하차한 뒤 얼마 후 출연한 한 예능에 서 유재석이 <패밀리가 떴다>에서 아침에 부은 얼굴을 연출하기 위해 억지로 라면을 먹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뉴스엔, 2010. 02. 27)
이 둘을 적절히 오가면서 특별함 속에서 평범함을,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대중성과 스타성을 거머쥐는 것이다.
이효리가 보여준 스타 정체성 전략은 이런 점에서 리얼리티 TV 시대에 스타덤의 속성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결코 진짜 평범함과 진짜 특별함을 노출되지 않는다.
리얼리티 TV의 진정성 담론은 무대 뒤편의 노동과 스타가 가지고 있는 비범한 재능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이효리 스타덤에는 섹시 디바로서 그녀의 노하우 및 재능과 카메라가 꺼진 이후에만 볼 수 있는 인간 이효리의 모습이 결코 노출되지 않는다. 스타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범함을 연기하고,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도 스타로서의 후광을 잃지 않을 정도로 특별함을 과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 TV 담론 속에서 고도로 연출된 페르소나는 진정성을 획득한다.
제 2 절 ‘외모 변신’으로 자아 구성하기
1. ‘여자의 변신은 무죄’: 이효리라는 카멜레온
이효리의 페르소나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거나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수 있다.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고걸’의 페르소나를 언급하며 연기하기도 하고, <놀러와> 같은 토크쇼에서는 리얼리티
TV에서 자신의 모습을 장난스럽게 언급하기도 한다. 그녀는 리얼리티
TV에서는 섹시 디바를 패러디하고, 섹시 디바로 방송에 출연했을
때에는 능청스럽게 리얼리티 TV에서 연기했던 평범한 모습을 소재거리로 삼기도 한다. 이효리는 ‘동네 언니’와 ‘섹시 디바’를 자유롭게 오가며 변신에 능한 카멜레온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변신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그녀의 패션이다.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평범한 일반인들이 따라하기 쉬운 이른바 ‘강북
패션’ 스타일을 선보인 바 있다. 예컨대 커다란 뿔테 안경과 군복을 닮은 재킷, 발목까지 오는 패딩, 편한 운동화 같은 ‘따라하기 쉬운 패션’은 이효리 패션으로 유행을 타며 비슷한 스타일의 상품까지 매진시켰다⑤ . 이효리 패션 열풍은 ‘무엇이 세련된 것인가?’에 대한
⑤ 단적인 예로 이효리가 SBS ‘패밀리가 떴다’에 신고 나온 한 브랜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