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1992)과 서태지 팬덤의 등장은 오늘날 아이돌을 위시한 셀러브리티 문화의 시초가 된 사건이다. 그 즈음 대형 기획사를 통한 아이돌 시스템이 태동하기 시작했는데, 한국 아이돌의 시초라 볼
수 있는 ‘H.O.T.’가 1996년 SM 엔터테인먼트 휘하에서 탄생하였다.
한국형 아이돌인 H.O.T.는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호도 조사, 대대적인 콘테스트, 연습 과정 등, 그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던 ‘기획사 중심 스타 제작’ 공정을 통해 탄생하였다. 또한 2000년 서태지가 컴백하면서 그전까지 서태지에 열광하는 10대 소녀들을 ‘빠순이’로 비하하던 용어에서 탈피하여 ‘팬덤’이라는 용어가 팬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하였다(김이승현, 박정애, 2001). 서태지 팬덤은 서태지 팬덤에 대해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았던 방송에 항의하거나 나아가 스타에 불의한 권력을 휘두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화 주체로 등장하였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서태지 현상을 분석하였다. 김창남은 서태지 현상을 “정치 경제적 구조의 논리”의 변화로 읽는다(김창남,
1992; 김호영, 윤태진, 2012에서 재인용). 그에 따르면 서태지 현상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기성세대 및 주류문화와 긴장관계에
있었던 ‘청년문화’가 1990년대 정치적 세력이 약화되면서 남긴 틈을
대중 음악 산업이 차지한 결과다(김창남, 2004). 그런가 하면 서태지 현상은 당시만 해도 비하적인 분위기 속에서 경멸 되던 팬클럽을 역동적인 사회 문화적 주체로 바라보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팬클럽이 ‘빠순이’로 비하되던 상황에서, 서태지 팬덤이 스스로를
‘팬덤’으로 정의 내리면서 팬클럽에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고, 서태지를
구심점으로 하여 다양한 사안에 목소리를 내면서, 새로운 문화 정치의 주체로 거듭난 것이다(김현정, 원용진, 2002; 이동연, 2001; 김이승현, 박정애, 2001).
연구자들은 서태지 현상을 아이돌 시스템의 원조격으로 파악하며, 서태지 이후 이어진 기획사가 제작한 댄스 아이돌을 ‘1세대 아이돌’로 명명한다(정민우, 이나영, 2009; 김이승현, 박정애, 2001; 김현정, 원용진, 2002). 서태지와 ‘1세대 아이돌’은 주로 콘서트 등을 통한 스타와 직접적인 교류의 대상이었으며, 스타를 향한 애정은
‘배타적’이었으며, 스타를 향유하는 방식은 “절대적 환호와
열광”이었다는 특징이 있다(정민우, 이나영, 2009). 1세대 팬덤은
‘젝스키스 대 H.O.T’, ‘핑클 대 S.E.S’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성 아이돌
스타의 대립 구도 속에서 상호 배타적으로 의미화”(정민우, 이나영,
2009; 이동연, 2001) 되었으며 우비, 풍선 등을 팬덤 안에서 통일하고
경쟁 스타 팬덤과 차별화하였다.
서구의 스타가 서구적 모더니티를 배경으로 탄생했다면, 한국형 아이돌은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타 제조기’ 즉 대형 기획사를 통해 제작된 상품적 측면이 강했다. 서구의 스타는 스타 시스템이 확립되기 전부터 존재했지만(모랭, 1992) ‘1세대 아이돌’은 처음부터 대형 기획사의 관리 주도 아래 탄생했다. 국내 팬덤이 기획사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불리함과 맞서싸우기도 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김현정, 원용진, 2002). ‘제작된 상품’이라는 라벨은 스타의 절대적 글래머(glamour)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1세대 아이돌’은 서구의 초기 스타의 속성을 일부 공유하지만, ‘기획사 주도의 제작’이라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배태한 상품으로 볼 수 있다.
90년대 후반 등장해 2000년대 초중반까지 활동했던 ‘H.O.T’.,
‘g.o.d’ 등 ‘1세대 아이돌’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2세대
아이돌’인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과 비교해 보았을 때 변별적 특징점이 있다(정민우, 이나영, 2009). 우선 시기적으로 2세대 아이돌이
등장하던 2000년대 중반은 1세대 아이돌이 해체 혹은 활동 중지를 선언하던 2000년대 초반의 공백기에 기획사 시스템의 변화와 미디어 유통 산업 전반의 개편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정민우, 이나영, 2009).
연구자들은 1997년 IMF 를 겪으면서 음반 중심의 유통질서가 붕괴하고, 소비자의 구매력이 저하하며, 디지털 미디어의 시장화가 실패하면서 손익 분기점이 상승하는 수익성 위기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신현준,
2002; 정민우, 이나영, 2009). 또한 스타덤의 주기가 짧은 아이돌
스타에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어려워지자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미디어 컨텐츠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 진출이 활발해진다. “다국적 음악 산업의 지구적 네트워크”(신현준, 2002)가 강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한류 붐을 타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게 되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최대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수익모델과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 확보”(정민우, 이나영, 2009)가 급선무가 되었다. 아이돌 스타는 미디어 산업의 전지구화, 음악에서 영화, 드라마 등으로 다양한 컨텐츠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전방위적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요구 받는다. 음반을 주요 소비 자원으로 삼던
데서 변화하여 이제 음원은 물론이고, 드라마, 예능까지 섭렵해야 하는 상황은 2000년대 중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케이블 방송사가 연합한
가운데 ‘아이돌 리얼리티 쇼’라는 새로운 장르가 급부상하게 된
상황에서도 드러난다(김수정, 김수아, 2013). 아이돌은 과거 신비주의 전략만으로는 수익 구조를 창출할 수 없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정체성 전략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를 브랜드화 하여 인지도를 높이면서 팬덤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2세대 아이돌은 1세대 아이돌과는 다른 특징점을 지닌다. 1세대 스타들의 속성이 부분적이기는 해도
‘신비주의’에 걸쳐져 있었고, 이들이 음반을 위주로 활동했다는 점과
다르게 2세대 아이돌은 시작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연습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며 스타가 된 이후에도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셀러브리티 유명세의 속성인 친밀함과 평범함을 작동시키는 미디어 장르’(Holmes, S., 2004)라는 점에서 2세대 아이돌은 평범함과 특별함을 조화시키는 셀러브리티 유명세를 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한국적인 특수성이 드러난다.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 전략은 단순히 ‘평범함을 선전함으로써 특별해지는 셀러브리티’
전략에서 변형을 거친다. 국내 아이돌은 뚜렷한 자기만의 개셩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연기자가 뚜렷한 캐릭터를 가지는지 여부는 연기자 개인은 물론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는 국내 독특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아이돌 전성시대에 타 아이돌과 구별 짓기하는 중요한 홍보 전략의 일환이다(김수정, 김수아, 2015). 아이돌 멤버 개인이 그룹 내에서 맡는 포지션과 캐릭터는 기획사 수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캐릭터’라는 독특한 아이돌 페르소나도 “기획사를 통한 제도적 영역과
팬덤을 통한 비공식 영역을 통한 이중구조”(김호영, 윤태진, 2012) 라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구조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팬덤 실천도 1세대와 비교해 변화하게 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팬덤은 스타에 절대적인 애정을 보냈던 1세대 팬덤과 차이를 보인다.
먼저, 이른바 2세대 팬덤은 10대 여자 청소년을 중심이 되었던 1세대 팬덤에서 벗어나 전 연령층으로 팬덤이 확대되었다(김호영, 윤태진,
2012). 이는 아이돌이 단순히 가수가 아니라 문화 컨텐츠가 되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대형 기획사가 아이돌을 대중문화 상품으로 기획하는 시스템이 대중화 된 결과로 볼 수 있다(김호영, 윤태진, 2012).
또한 2세대 팬덤은 기획사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이들과 적절한
‘파트너쉽’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관리’하는 매니저로
거듭난다(정민우, 이나영, 2009). 정민우, 이나영(2009)은 이를
“스타(아들)-팬덤(엄마)-기획사(아빠)라는 성별화 된 가족 표상
체계”로 분석한다. 이러한 변화는 1세대 팬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부당하게 대한다는 이유로 기획사와 대립각을 세우고 나아가
‘투쟁’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한편, 팬덤 실천에 있어서도 보다
유동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과거 1세대 팬덤이 타 스타에 대한
‘배타성’과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맹목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2세대 팬덤은 같은 시기 데뷔한 다른 스타를 동시에 좋아하는 등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아이돌 스타의 세대 구분이
이루어졌다면,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오디션 스타’가 등장한다. 그 시초는 단연 2009년 방송된 Mnet의 <슈퍼스타 K>이며, 이 프로그램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2000년대 전후 간간히 방영되던 여타 프로그램과 구별된다(김성식,
강승묵, 2012). 2000년대 초반 서구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개인의 특별한 능력을 강조하며 경쟁을 통해 스타를 산출해내는 초문화적 원칙”을 추진하는 포맷이다(이경숙, 조경진, 2010;
이경숙, 2011에서 재인용).
리얼리티 오디션은 재능과 끈기 등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 발전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서사를 바탕으로 한다.
평범한 사람도 노력과 끈기 그리고 성장을 거듭하는 ‘1인 기업가’로 거듭난다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디션 스타’의 스타덤은 셀러브리티 혹은 스타가 아니라 ‘기업가적 주체’의 성공 담론 위에서 작동한다. 오디션 스타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는 ‘재능’이라는 비범함을 갈고 닦아 위대해진 스타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발 초국가적 포맷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국 사회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기업가적 주체’로 주체화 할 것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김수정, 2011). 이렇게 볼 때 한국 스타/셀러브리티 문화는 신자유주의와 기획사 주도의 독특한 스타 시스템에 기반한 여러 혼종적인 스타-상품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