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유고걸’은 여성주의적 텍스트라는 외양을 걸치고서 여성주의에 반하는 속물적 여성주체를 선전한다. ‘유고걸’은 여성주의적 메시지로 보인다. ‘lesson’, ‘유고걸’, ‘Mr. Big’등으로 이어지는 수록곡은 주체적이고 당당한 큰 언니로 스스로를 재현한다. 대표주자인 ‘유고걸’은 자신감 있는 당당한 여성이 그렇지 못한 다른 여자 동생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길을 안내하는 선구자의 느낌을 준다. 허구에 기반한 대중 문화가 실질적인 여성주의적 과제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유고걸’은 대중
문화가 여성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판을 짜는 포스트 페미니즘의 특징을 체현한다(조선정, 2014).
포스트 페미니즘 여성성은 앨범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효리는 포스트 페미니즘의 산물인 ‘파워 우먼’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을 현실 여성주의의 투사로 위치시킨다. 파워 우먼은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여 더 이상 양성평등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세우기보다 그 같은 보편적 평등이 이미 이루어진 시대 속에 있다는 자기 진단의 명확한 근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산물이다(Alcoff, 1988 참고).
이효리는 3집에서 ‘큰언니’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획은 이효리가 여성으로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개인적 성공’에 힘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3집 전반에서도 이효리는 멋지고 당당한 ‘큰언니’ 혹은 ‘파워 우먼’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러한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은 3집의 포문을
여는 ‘천하무적 이효리’라는 곡이다. 이 곡에서 이효리는 자신이
여성에게 당당함과 주도성에 대한 레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라는 전제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림 7] ‘유고걸’ 앨범 티저 이미지
(Hot like me) 그건 다 착각일뿐 (Dance like me) 어딜 넘보려하니
(누구나) 할수가 있었다면
그건 내가 아닌걸 쉬워 보였겠지 잠깐은 내가 없는 무대였으니 (천하무적 이효리)
‘천하무적 이효리’는 가수로서 성공한 이효리의 공적 지위를
언급함으로써 스스로를 파워 우먼으로 자리 매김한다. 이효리는 가수로서 성공한 자신의 공적 지위에 기대고 스스로를 ‘천하무적 이효리’로 호명함으로써 은연 중에 여성의 공적 지위 상승이라는 파워 우먼 담론을 호출한다. ‘천하무적’한 여성의 탄생은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도 남성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현실에 대한 자기 근거로 기능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한 듯, 이효리는
“200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펑크록 여성주의 대중 예술가”(한지희,
2014)로 격상되었으며, 앨범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파워
우먼 22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엘르, 2009. 05, 28).
이효리가 3집에서 성공한 큰 언니였다면, 그녀가 조언하는 내용은 남자들의 대상물로 스스로를 관리 개발함으로써 권력적 우위를 점하는 속물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It’s Hyorish>의 전체 서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언니가 그렇지 못한 동생에게 하는 조언으로 볼 수 있다. 이효리는 ‘(이효리처럼) 당당하고 멋진 여성이 되라’고 조언한다.
‘유고걸’이 제시하는 방법은 주체적인 성애화다. ‘유고걸’은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이지만, 그 과정을 주체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당당하다고 일컬어지는 여성이다. 3집 <It’s Hyorish>는 이런 논리에 기반하여, 유혹의 기술을 전수하고 성적인 매력을 주체적으로 가꿀 것을 당부하는 노랫말로 가득 차 있다.
‘유고걸’의 서사는 성적인 대상화를 주체적으로 활용하라는
메시지라는 점에서 포스트 페미니즘 미디어 문화가 보여주는 여성성 패턴에 부합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포스트 페미니즘 미디어 문화의 전형적인 여성성에 부합한다. 질은 포스트 페미니즘적 여성성의 몇 가지
특징 중의 하나로 ‘성적인 주체성’을 꼽는다(Gill, 2007). 과거 여성들이
성적으로 대상화되었다면, 오늘날 여성은 스스로를 대상화된 존재로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은 오롯이 여성의 선택에 따른 것으로 주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담론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성적으로 대상화된 모습으로 재현되지만, 이 과정이 주체적이기 때문에 그녀는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는 신자유주의의 접점에 있기도 하다. 유고걸의 서사는
2000년대 후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자칭 자기개발서와 비슷하다.
90년대 초 중반 성공한 여성들의 자전적 에세이가 여성의 직업적
성취를 독려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중반 크게 유행한 칙릿형 자기개발서는 주로 20대 싱글 여성의 삶과 일상적 자기관리에 초점을 맞춘다(엄혜진, 2016). <It’s Hyorish>가 독려하는 여성상은 여성의 자아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아름답게 통제하라는 것으로 여성주의적 메시지가 아니라 속물적 기획에 가깝다. 겉으로는 몸에 대한 속박을 벗어 버리라는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설파’(한지희,
2014)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여성의 외모에 대한
통제 강화다.
이러한 외모 통제는 남성 응시의 대상물로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위치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성적 대상화를 자신의 주체화 전략으로 의미화”(엄혜진, 2016) 하는 것은 여성 속물의 전형적인 행동 방식이다.
즉 속물적 여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가부장적 젠더 규범에 도전하는 위험 천만한 일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대신에 기꺼이 ‘유혹 당해줌’으로써 성적 대상화를 통제권 아래 놓는 전략을 구가한다(엄혜진,
2016). 그녀는 속물이 됨으로써 위험을 최소화하고 신분 상승이라는
실질적인 보상을 통해 경쟁력을 얻는다.
칙릿형 자기개발서가 여성 속물이 되라는 지침을 내렸다면
‘유고걸’은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유고걸’은 남성의 응시 대상물로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개발’ 함으로써 성공을 도모하라고 격려한다.
여기서 여성들의 자기 자본은 아름다운 외모와 섹슈얼리티를 기본으로 한다. 유고걸은 남자들의 시선을 끌 것인지 알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 결과적으로 남자를 쟁취하는 여자를 이름을 바꿔 부르며 높여준다. 나아가 ‘유고걸’의 서사는 여성의 행복은 남성에게 달려있다는 가부장적 서사에 순응한다. 이 때 가터벨트한 간호사, 성적으로 희롱당하는 여교사에서 알 수 있듯이 직업을 통한 자기실현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유고걸’이 제안하는 방법도 자아 실현이 아닌 외모 꾸미기다.
‘유고걸’이 여성에게 가장 성공적인 지위 즉, 남자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미용 성형’, ‘다이어트’, ‘쇼핑’ 등을 통해 가꾼 아름다운 외모다. 그러나 이 모든 가부장제의 기획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유고걸’은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인 여성으로 선전된다. ‘유고걸’은 그녀가 남성의 성적 응시의 대상물로 스스로를 위치시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그 역할을 ‘주체적으로’
수행했다는 사실로 인해 스스로를 주체적 여성이라고 호명한다.
결과적으로 ‘유고걸’이 전달하는 것은 성적인 대상화라는 가부장제의 잔재를 적극적으로 이용 하는 한이 있더라도 성공을 위해 노력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 같은 메시지는 성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 놓였다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그 같은 지위를 활용해 결혼과 연애의 승자가 되라는 칙릿 자기개발서에 나오는 나쁜 여자 즉, 스놉(snob)의 서사와 일치한다(엄혜진, 2016 참고).
이러한 속물적 기획은 앨범이 발매 되기 불과 2개월 전까지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효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유고걸’의 기획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유고걸’이 ‘스놉이 되어라’는 대 명제를 제시했다면 <오프 더 레코드>는 그러한 기획을 좀 더 은밀하게 일상으로 확대한다. 메이크 오버(makeover)는 두 텍스트를 관통한다. ‘유고걸’이 드러내 놓고 메이크오버 서사를 통해 외모 가꾸기를 통해 성공을 쟁취하라는 스놉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오프 더 레코드>는 일상으로의 확대를
선전한다. 이 프로그램은 “탑스타 이효리의 실생활과 공개되지 않은 사생활을 보여” 주기 위해 기획되었지만, 노력과 고민이 부재한 채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오프 더 레코드>는 스타의 숨겨진 사생활을 보여주겠다는 기획
의도 아래 제작되었지만 막상 탑 여가수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된 훈련은 생략된다. 즉, <오프 더 레코드>가 송출하는 이효리의 일상에는 몸매 관리를 위한 고된 훈련과 아티스트로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부재해 있다. 대신에 그녀는 햄버거를 먹어도 살이 찌지 않거나(5화), 대중 예술가로서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녹음실에서는 카메라가 매번 꺼진다. 훈련과 고민이 생략된 탑스타의 사생활은 메이크 오버를 막 끝내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만 같은 마법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상황은 메이크 오버 직후의 마법적 순간만 보여주며, 부수적인 고통과 어려움이 수반될 “메이크 오버 이후의 삶(post- makeover)”은 보여주지 않는(Weber, B. R., 2009) 메이크오버 TV의 문법에 비견될 수 있다. 훈련과 고난을 제거하고, 반복적으로 송출되는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조는 ‘유고걸’의 서사와 비슷하다. 엄격히 조작된 탑스타의 일상은 상대적으로 강조된 그녀의 아름다운 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