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2 어휘 교육과 어휘력
1.1. 어휘력의 정의
‘어휘력(vocabulary competence, vocabulary ability)’3)이란 텍스트에 사용된 어휘 목록의 범위, 또는 개인 화자가 동원할 수 있는 어휘 목록의 범위를 말한다.
‘어휘력’이라는 개념은 대개 학습자가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느냐 하는 것으 로 일반적으로 어휘의 양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 어휘란 이해 어휘와 표현 어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두 가지 측면의 어휘력이 모 두 신장되어 언어 사용 능력이 확장되었을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이해 어휘뿐만 아니라 표현 어휘까지 신장하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를 제고하여 어휘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3) ‘vocabulary competence’이라는 번역어는 『국어 교육학 사전』(1998)에서의 정의를 참 조하고 ‘vocabulary ability’라는 번역어는 리드(Read, 2000:28)에서의 정의를 참조함.
‘어휘력’이라는 용어는 많은 선행 연구학자에 따라 ‘어휘력’으로 사용하거나 ‘어 휘능력’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여러 학자들은 어휘력의 내용을 각각 양적 혹은 질적으로 나누어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고자 하는 경향(김광해, 1993)도 있고, ‘어휘 사용 능력(마광호, 1998)’으로 구체화하거나 ‘어휘력’으로 통 일하거나(손영애, 1992; 이충우, 2001), ‘어휘 능력(신명선, 2008)’으로 통일하는 등 논의들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여 왔다. 특히 신명선(2008:15)는 ‘어휘 능력’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어휘 교육의 목표를 상정하면서 ‘어휘 사용 능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즉, ‘어휘 사용 능력’은 ‘사용’에 초점을 둠으로 써 의도와 상관없이 ‘표현’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고, 또 지극 히 도구적, 실용적 관점을 내비쳐 ‘국어 문화 능력 함양’, ‘언어 의식 고양’, ‘국어 적 사고력’의 경우는 그 개념을 수정하는 방향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어휘력’이 라는 용어가 이미 ‘지식’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역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연 구자는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어휘력’이라는 용어가 가장 보 편적으로 사용되는 데다 이 용어를 ‘지식’으로만 국한되지 않도록 재개념화하는 것 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일반화된 용어인 ‘어휘력’이라 는 용어를 사용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리차드(Richards, 1976)는 어휘력을 ‘어휘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데 관련된 일체 의 능력’이라고 하였다. 손영애(1992)는 ‘어휘(능)력’을 ‘개개의 단어들에 대한 형 태, 의미, 화용에 관계되는 지식’이라고 정의하였다. 김광해(1993: 305-317)는 어 휘력이란 ‘단어들의 집합인 어휘를 이해하거나 구사하는 일에 관한 언어 사용자의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어휘력을 양적 능력과 질적 능력으로 나누었다. 또한 이충우 (2001)에서는 ‘어휘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이라고 하였다.
1980년대 초에 미라(Meara, 1980)가 어휘 습득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래 어휘 습득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L2 어휘 능력에 관한 개념 정의는 명확하고 쉽게 다룰 수 있는 이론적 틀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 다. ‘어휘지식(vocabulary knowledge 혹은 lexical knowledge)’, ‘어휘 기능 (vocabulary ability)’, ‘어휘 능력(lexical competence)’ 등의 용어가 관련 선행 연 구에서 혼란스럽게 쓰여 왔다. 특히 지앙(Jiang, 2004)과 미라(Meara, 1996)는 이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갖는데 어휘력에 관한 통일적 연구의 틀이 없다 면 L2 어휘 습득·교육 연구는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양적 어휘력
(2)질적 어휘력
① 언어 내적 지식
선언적 지식(형태/의미/통사/화용)
절차적 지식(수행 정보/행동 목록/단어 처리)
② 언어 외적 지식
단어의 지시 대상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 단어에 관한 일화적 지식
단어의 원어에 대한 지식 단어의 어원에 대한 지식
<표 Ⅱ-1> 어휘력의 구조(이영숙, 1997)
본 연구에서 먼저 L2 어휘 습득·교육 연구에서 어휘력에 관한 선행연구 성과물 들을 ‘'단어 중심적' 어휘력의 미시적 정의(word-centered definition)’와 ‘'어휘부 중심적' 어휘력의 거시적 정의(lexicon-centered definition)’로 나누어 정리함으로 써 L2 한국 한자어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어휘력 정의와 연구의 틀을 밝히고자 한다.
(1) '단어 중심적' 어휘력 정의(word-centered definition)
'단어 중심적' 어휘력 정의와 연구의 틀에 대한 연구는 국내 학자와 외국 학자의 연구에 따라 논의하고자 한다. 먼저 국내 학자의 어휘력 정의에 대한 논의를 살펴 보자.
이영숙(1997)에서는 어휘력의 구조를 양적 어휘력과 질적 어휘력으로 나누어 아래 <표 Ⅱ-1>과 같이 제시하였다.
<표 Ⅱ-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영숙(1997)은 어휘력을 양적 어휘력과 질적 어휘력으로 구분하였다. 양적 어휘력은 어휘의 양과 관련이 있으며 질적 어휘력은 어휘의 형태(발음, 철자, 단어 구조), 어휘의 의미(여러 가지 종류의 의미, 다른 단어들과의 의미 관계), 어휘의 화용(단어의 기능과 상황에 따른 사용의 제약, 적 절하고 효과적인 언어사용, 상황에 적절한 단어 의미 파악, 빠르고 효과적인 단어 처리)과 관련이 있다. 특히 이영숙(1997)의 논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어휘력을
‘지식’으로 규정하되 ‘절차적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휘를 많이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는 주장(이영숙, 1997:192)에서 드러난 것처럼 어휘 능력의 경우 어휘에 대한 지 식-개별 단어들에 대한 정보가 매우 중요한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영애(1992:13)는 어휘 지식을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논의하였으며, 어휘력 은 각각의 단어들에 대한 형태, 의미, 화용에 관련되는 지식의 총체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형태 지식 철자 형태, 발음, 단어 구조, 단어 단위
의미 지식 사전적 의미, 의미 관계에 따른 지식, 의미 차이, 어감의 차이 화용 지식 통사적 자질에 관한 지식, 단어 사용 가능한 문맥, 의미 추론
<표 Ⅱ-2> 어휘 지식의 세 영역(손영애, 1992:13)
또한 김소영(2005)은 손영애(1992)가 <표 Ⅱ-2>에서 제시한 내용에 기초하 여 단어의 화용 지식을 어휘 사용적 지식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어휘와 관련된 가치 및 태도를 나타내는 정의적 요소도 추가하였으며 어휘 지식은 크게 어휘의 크기(breadth)와 어휘의 깊이(depth)로 나누었다. 어휘의 크기는 얼마나 많은 어 휘를 알고 있는지를 의미하며, 어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동의어 식 별하기, 단어의 정의 연결하기, 모국어로 번역하기 등이 있다. 어휘의 깊이는 어휘 지식의 질을 의미하며, 학습자가 어휘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의미한 다. 일반적인 어휘 지식의 깊이 측정 방식으로 패리바 & 웨서(Paribkht &
Wesche,1996)의 어휘 지식 척도(Vocabulary Knowledge Scale, VKS), 인터뷰 (interview) 그리고 단어 연상 실험이 있다.
이기연(2006)에서는 어휘력을 양적·질적으로 나누어 질적 측면(질적 능력)을 형태, 의미, 구사의 세부 항목으로 제시하였다(<표 Ⅱ-3>참조). 특히 <표 Ⅱ -3>을 살펴보면 어휘력의 질적 측면을 철자나 발음, 의미 등에 대한 어휘 지식 정보를 습득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해
형 태
단어의 철자를 읽을 수 있다.
단어를 듣고 어떤 단어인지 인식할 수 있다.
의 미
대상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대상 단어의 다의적 의미를 알 수 있다.
대상 단어의 다른 단어-유의어, 반의어 등의 연어 관계를 알 수 있다.
구
사 대상 단어가 잘못 사용된 예를 찾아낼 수 있다.
표 현
형 태
대상 단어의 철자를 올바르게 쓸 수 있다.
대상 단어의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의 미
대상 단어를 정확한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대상 단어와 다른 단어를 대체해서 표현을 바꿀 수 있다.
구 사
대상 단어를 자주 사용할 수 있다.
대상 단어의 사용제약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대상 단어를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다.
<표 Ⅱ-3> 어휘력의 구조(이기연, 2006)
구본관(2011ㄱ:48)에서는 어휘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 양적 및 질적 어휘에 대한 지식을 포함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휘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질적 확 대의 내용으로 음운, 형태, 통사, 의미, 화용 정보를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국외 학자의 어휘력 정의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자. 우선 네이션 (Nation, 2001)은 어휘의 질적인 측면에 입각하여 하나의 단어를 ‘안다’는 것은 단 어의 형태와 의미, 그리고 사용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고 동시에 이를 이해능력과 표현능력으로 구분하여 구어, 문어 차원에서부터 연상 관계, 문법기능, 연어 관계, 사용제약 등을 포함한 어휘지식을 알고 구사하는 능력이라고 정교하게 정리한 바 있다.
이진경(2008)에 따르면 첫 번째 구성요소인 ‘형태’는 구어, 철자, 어휘 구성 부 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어휘의 소리, 발음법, 어휘 철자의 인식 및 철자 쓰기, 어휘의 일부를 보고 어휘의 구성을 파악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구성
요소인 ‘의미’는 형태와 의미, 개념과 지시물, 다른 단어와의 결합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휘의 형태로부터 의미를 파악해 내고 표현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 째 요소인 ‘사용’은 어떠한 문맥에서 어휘가 나타나고 적합하게 사용이 가능한지, 다른 어휘와 연어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휘를 자주 접하게 되며 또한 표현해야 하는지 등의 언어 사용역(register)과 빈도(frequency)를 의미한다.
즉, 어휘 지식이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어휘의 형태, 의미, 사용 모두를 아는 총 체적인 지식이라 하겠다.
나사지(Nasaaji, 2003)에 의하면 어휘 지식 깊이는 발음, 철자, 언어 사용역, 문 체와 같은 형태적 특징으로부터 어휘의 연어적 의미와 반의어, 동의어, 하위어의 지식을 포함한 다른 어휘와의 통사적, 의미적 관계까지 다룬다. 그러나 베르메르 (Vermeer, 2001)는 어휘의 크기와 어휘 지식의 깊이는 흔히 반대의 개념으로 간 주되는데, 사실 그 둘 사이에는 개념적 차이가 없으며, 이 둘은 상호 관련되어 있 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월터(Wolter, 2001)는 어휘의 크기와 깊이의 구분이 적 당하지 않으며, 어휘의 크기와 어휘의 구성 관계 사이의 구분을 주장하였다. 그들 은 어휘 지식의 크기는 개별 어휘의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전반 적인 심리어휘부의 크기를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라우퍼(Laufer, 1997:56)는 어휘 지식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였는데, 첫째는 구 어와 문어에서의 형태를 아는 것, 즉 발음과 철자를 아는 것, 둘째는 자립 형태소 와 의존 형태소, 그리고 형태소의 파생 형태를 아는 것, 셋째는 문장이나 구에서 통사적 형식을 아는 것, 넷째는 의미 관점에서 어휘의 다양한 의미와 상징, 화용론 적 의미를 아는 것, 다섯째는 어휘 간의 의미적 상관관계(동의어, 반의어, 하위어) 를 아는 것, 마지막 여섯 번째는 연어 관계를 아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어휘 지식(vocabulary knowledge)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어를 안다는 말로 간주되곤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단어를 안다고 하는 것은 그 단어의 의미를 알 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많은 연구자들은 어휘 지식 이란 의미 그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단어를 안다는 것은 의미적 속성을 포함하여 단어의 음운적, 통사적, 형태적 속성까지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이다. 단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반드시 단어의 음운, 통사, 형태, 의미 측면 을 포함하는 어휘 지식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이용함으로써 단어를 발음하고, 새로운 형태의 단어를 생성하고,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