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김정일의 권위와 카리스마
어느 조직이나 집단, 나아가 국가의 경우에도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 장 중요한 자질의 하나가 구성원들의 충성과 지지, 단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권위와 카리스마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권위와 카리스마는 인 품과 성격, 리더십과 같은 선천적인 개인적 자질과 함께 후천적으로 확 보한 권력이나 집단 혹은 국가에 대한 기여도와 공헌과 같은 비선천적 인 요인으로부터 산생된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일성은 타고난 외모와 성격, 리더십과 같은 선천적 자질과 항일투쟁과 건국,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 등 체제 의 형성과 강화에 대한 기여와 ‘업적’으로부터 주민들 속에서 ‘민족의 영웅’, ‘건국의 아버지’, ‘인민의 어버이’와 같은 친근하고도 근엄한 국가 지도자상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권력층 내의 모든 정적의 숙 청과 유일지배체제 확립의 결과로 확보된 절대 권력과 이후 후계자인 김정일에 의해 추진된 수령 우상화와 개인숭배에 의하여 신격화 수준의 카리스마와 권위로 승화되었다.
반면에 세습적 후계자인 김정일의 권위와 카리스마는 전적으로 후천 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당시 김정일 체제의 전망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대체로 비관적이었다.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주로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이전에 이미 실질적 권력은 대부분 승계하였지만 김일성이 누렸던 수준의 국민의 존경과 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령의 권위와 카리스마는 전수받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외부세계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김정일 정권은 최소한 현 시점까지 건재하여왔으며 이러한 장수비결의 하나가
북한 내에 존재하는 김정일의 권위와 카리스마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 다. 비록 김일성에 버금가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김정일은 북 한에서 절대 권력자로서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분명히 행사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1970년대 초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될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의 일 반주민들은 물론 권력엘리트들조차 김정일을 미래의 지도자로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는 당시 그의 계모인 김성애의 우상화가 전당적으로 벌어지고 이복형제인 김평일을 후계자로 옹위하려는 움직 임까지 있었던 사실과140 일부 고위층 간부들이 김정일의 자질과 능력 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실이 말해준다.141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정된 후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권위와 카리스 마를 확보하기 위해 우선 각종 선전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출생과 성 장, 경력을 왜곡, 과장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승계를 선천적 자질과 인민 의 추대에 따른 혁명위업 계승차원으로 미화·선전하였다.142 이와 함께 당 조직 및 선전비서라는 후계자로서의 지위와 신분을 활용하여 막후 권력실세라는 이미지와 당은 곧 김정일이라는 이미지를 전 사회에 각인 시켜 나갔다. 특히 김정일에 의해 추진된 수령절대주의체제 확립을 위 한 각종 우상화작업과 사상이론 활동, 전시행정적인 경제활동과 기념비 건설, 정치행사 등은 김일성의 신격화와 함께 중요하게는 김정일의 권 위와 카리스마를 김일성과 동급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위대성’
선전과 ‘업적’ 확보에 집중되었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물현상을 막후에서 좌지우지함으
140 _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서울: 도서출판 선인, 2007), pp. 109~112.
141 _ 스즈키 마사유키,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 (서울: 중앙일보사, 1994), pp. 133~
135; 이종석, 현대북한의 이해 (서울: 역사비평사, 2000), p. 506.
142 _ 탁진 외, 김정일 지도자(제1부) (평양: 평양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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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써 공은 부각시키고 실은 감추는 방법으로 신비스러운 카리스마와 절대 권력자로서의 이미지를 조성함으로써 대중의 존경과 충성을 유도 하는 방식은 후계체제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정일이 추구해 온 카리스마와 권위확보 비법이라고 볼 수 있다. 김일성 사후 공식 권력 승계를 미루고 3년간의 유훈통치를 실시한 것이나 당 대회나 전원회의 와 같은 공식절차를 밟지 않고 언론발표를 통해 당 총비서직에 추대된 것, 공식적 국가수반인 주석직을 ‘사양’하고 변칙적인 국방위원장 중심 의 국가체제를 출범시킨 것, 당 대회나 정치국과 같은 공식기구를 외면 하고 밀실정치와 같은 비공식적 통치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특히 국방위원장 중심의 국가체제는 김정일 고유의 통치스타일과 카 리스마 구축방식을 반영한 가장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국가주 석직은 경제와 인민생활을 포함한 국정전반을 책임진 자리이다. 북한이 떠안고 있는 경제와 인민생활 문제는 노선과 정책의 변화 없이는 도저 히 해결방도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세습적 후계자인 김정일의 입장 에서 아버지의 노선과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그 어떤 변화도 곧 권위 와 카리스마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결국 김정일은 자신의 이미 지와 권위에 부담이 될 주석직의 승계를 포기하고 ‘통치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방식의 권력구조와 통치방식을 선택하였다. 다시 말하여 경 제는 권한이 강화된 내각에 위임하고 자신은 국방위원장으로서 군사와 안보문제에 집중함으로써 안보수호자라는 이미지와 카리스마를 유지 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국방위원장 중심의 국가체제는 전면에 나서 지 않으면서도 막후 권력실세로서의 권위와 카리스마는 지속적으로 유 지해 나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통치방식인 것이다.
카리스마와 권위확보를 위한 이와 같은 전략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에 대한 북한 권력층과 주민들의 존경심과 충성심은 결코 김일성 의 수준과 동격에 놓이거나 능가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김일성의 카리 스마와 권위가 너무도 컸던 것과도 관련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북한의 경제와 인민생활의 추락에서 비롯된 주민들의 과거 김일성 시대에 대한 향수와도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북한당국이 현 위기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고 해도 북한주민 대다수는 국민의 이익보다 수령 의 이익을 우선하는 김정일의 국가전략과 통치방식이 모든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현재 북한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김정일의 카리스마와 권위는 미국을 비롯한 외부 적대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안보 수호자의 이미지와 당과 군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라 는 이미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김정일도 수령이 나 당 총비서의 호칭보다 장군이나 국방위원장의 호칭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선군정치 노선 견지와 군사력 강화, 핵보유 등도 외부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이와 같은 대내적인 정치적 목 적과도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김정일이 보유하고 있는 권위와 카리스마는 그 자신이 구축해놓은 수령절대주의체제의 대주민 철권통치 기능과 세뇌기능에 의해, 그리고 외부와의 지속적인 긴장관계를 통해 후천적으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형성된 고도로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역으로 김정일이 장악하고 있는 권력이 약화되거나 외부로 부터의 위협이 완화되면 그에 기반하고 있는 권위와 카리스마도 함께 추락하거나 사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한편으로는 대주민 통제와 세뇌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외부와의 관계가 악화되든 완화되든 항상 이를 김정일의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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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과 ‘배짱’으로 연계시킴으로써 그의 공적으로 승화시키는 전략을 추 구하는 것이다.
나. 측근정치의 지속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의 권력은 혁명1세들을 비롯한 원로들이 대표하는 공식서열과 김정일의 측근들이 대표하는 비공식서열로 2원화 되어 있다. 주로 당과 군부, 공안, 외교 등 체제수호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분야에 포진되어 있는 이들 측근들은 북한의 대내외 정책의 수립 과 결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최고인민회의와 내각 등 국가 및 정권기관에 기용되어 있는 원로들과 비측근 간부들은 비록 공 식적으로는 상위서열에 있지만 상징적인 권한과 정책집행의 의무만 가 지고 있다.
북한의 권력이 이같은 2원화 구조를 띠게 된 것은 1970년대 초 김정 일의 후계자 내정과 관련된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될 당시 북한권 력은 빨치산출신을 비롯한 혁명1~2세의 원로들이 공식서열 상위를 모 두 선점하고 있었다. 이로부터 김정일은 기존 권력엘리트들을 측근에 포섭하면서 자신과 친분이 있거나 자신의 후계자 옹위에 앞장섰던 인물 들을 대거 권력핵심에 영입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후계체제 구축과 공고 화를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 김정일의 직속부서인 당 조직지도부와 선 전선동부 등 핵심부서 인물들과 각 분야의 차석에 위치한 측근들이 실 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측근정치가 부상하였다.
후계체제라는 독특한 정치상황을 반영하여 나온 북한의 이러한 2원 화 권력구조와 측근정치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단일지배체제 확립과 함께 존재이유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 자가 되었고 원로들도 대부분 권력에서 사라짐으로써 권력층을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