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기 북한의 경제 실태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현시기 북한의 경제 운용 노선을 검토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 이 1990년대 경제난 이후 2008년 현재까지 정상화의 조짐을 보여주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북한 경제는 북한 정권 담당자들에게 커다란 위 기와 도전으로 작용하여 왔다. 북한 체제는 이에 대해 국민경제를 극적 으로 포기하는 형태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위기 관리 체제를 형성하여 운용해 오고 있다.
국민경제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불어 닥친 혹독한 경제난과 식량난 으로 그 기능이 거의 중지하면서 북한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에 대응하는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정치 노선으로는 ‘선군 정치’가 우선적으로 주창되었으며, 2002년에 그것을 떠받치는 경제 노선으로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이 공식화되었다. 현재 북한의 경제를 총체적
으로 운용하는 노선은 공식적으로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이다. 이 노선 은 2002년 7·1조치와 같은해 9월에 제시되어 2008년 현재까지 북한 경 제를 전국적으로 지도하는 총노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노선 은 이미 사회에서 오랫동안 자구적이고 생존적인 목적으로 형성되어 온 자생적인 시장화 질서와 마찰하고 갈등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총노선의 선군시대 경제건설 노선의 등장 배경과 의도를 살펴봄으로써 현시기 북한의 경제가 구조적으로 어떠한 내적 동학(動 學) 속에서 운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향후 5년 북한 체제의 안정성에 이러한 경제 동학이 미치는 구조적인 영향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가.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의 등장 배경
1990년대의 대기근과 경제 위기, 그리고 핵실험 국면을 거쳐서 지금
까지 북한은 이른바 ‘이중화 전략’(Dualization Strategy: 혹은 ‘이분화 전략’)을 취하여 왔다. 이것은 북한 체제가 전환을 목표로 하는 개혁 과정을 착수하기 전까지는 공존 불가능한 것들의 공존을 추구하는 모순 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8월에 전후복구 계획이후 타협했던 ‘중공업 우선의 경공업·농업 동시발전노선’ 이후에 북한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방법이다. 이것은 특히 김정일 시대에 그 대로 계승되었다. 김정일은 2002년 9월에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을 내놓으면서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 시에 발전시키는 경제건설노선’을 규정한 바 있다.23
지난 10여년 이상의 핵개발 과정과 핵실험은 북한 지도부에게 체제 유지와 억지력을 가져다주었을지 모르나 북한 경제 자체에는 치명적인 과정을 노정시켜 왔다. 사실 북한 주민들이 대기근을 죽음으로 견디는 과정은 아래로부터 시장경제를 자발적으로 창출하는 과정이었으며, 북 한 지도부에게 이것은 대립된 전망을 가진 사회가 출현하는 과정이었 다. 이것은 생존의 몸부림이니만큼 뿌리도 강했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권력의 사후 용인 조치는 불가피했다. 2002년 7·1 조치와 2003년 종합 시장 조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였다.
역설적이겠지만, 2002년 9월에 ‘선군시대 경제건설 노선’이 등장한 배 경도 바로 이 시점에서였다. 이는 사후적으로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시 장에 대해 예측 가능한 영역 속에서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3 _ 박명혁, “사회주의기본경제법칙과 선군시대 경제건설에서 그의 구현,” 경제연구
2003년 제3호; 리기성,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새롭게 정립하신 선군시대
사회주의경제건설로선,” 경제연구 2003년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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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경제와 시장경제를 공존시키고, 언제든 계획경제로 복귀시키겠다 는 국가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노선은 2003년, 2004년, 2006년, 그
리고 2007년에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24
특히 2007년에 들어와 설령 정책 중점을 인민경제와 국민경제의 발 전에 두었더라도 북한은 선군정치, 혹은 군수공업을 강조하는 기본 노 선이 바뀌지는 않을 것임을 언급했다.25 이것은 한국전쟁의 혹독한 파 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중공업과 군수공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북한 지도부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현재까지 계획 경제와 시장 경제를 병존(사실은 대립)시키는 실험을 강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사실상 계 획과 시장, 국가와 사회, 군수 공업과 국민 경제, 자력갱생과 개혁개방 이 각각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지도부는 이를 공존과 병존 이라고 하지만, 양자간의 부조응으로 인한 거대한 갈등을 낳고 있으며, 대립이 심각하게 발전하면서 체제 그 자체를 커다란 불안정성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말에 그리고 2008년 9월 현재 전국의 시장 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금기 사항을 강제하면서 통제를 가하고자 하는 것도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이 현재 북한 체제가 직면해 있는 위기이자 도전의 큰 축을 이루고 있으며 향후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가늠하는 변 수로 생각된다.
24 _ 로동신문, 2003년 11월 12일; 조국, 2004년 12월호; 2006년 신년공동사설; 로
동신문 2006년 11월 27일; 조선신보 2007년 1월 2일.
25 _ 동아일보, 2006년 12월 6일.
나. 북한의 경제 전략: 이중화 전략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 지도부의 의지는 현실의 변화와 전망에서 다른 어떤 요소보다 결정적이다. 북한 경제가 한편으로는 위기와 다른 한편으로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 무엇보다 국가 지도부의 의지는 결 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가 결정적이려면, 환경과 조건과 국가 지도부의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현재 북한이 그러한데, 여기서는 국가가 취하는 전략과 이미 사회가 나아가 고 있는 상황이 어떠한 상태에 있으며, 이것이 향후 북한 사회의 위기와 도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007년 1월 1일 북한의 신년사는 ‘경제 사업’을 가장 우선시하겠다는,
즉 ‘경제문제를 푸는 데 국가적인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6
그리고 2007년 4월 11일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 회의에 서 2007년도의 중심 과업으로서 농업과 경공업의 토대에 기초하여 인 민생활의 향상, 전반적 경제의 생산 잠재력을 최대한 발양, 인민경제의 현대화를 계속 추진, 사회주의 경제관리 문제를 우리식을 해결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27
하지만 이는 실제로 북한 경제에 실행되는 정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북한 경제의 현주소를 이러한 공식 담론이 발하는 언표 하나에 의존해서 간단하게 파악하거나 전망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국가의
26 _ “승리의 신심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자,”(2007년 1월 신년공동
사설). 즉, “인민생활을 빨리 높이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면서 우리 경제의 현대화 를 위한 기술개건을 다그치고 그 잠재력을 최대로 발양”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다소 여유를 가진 만큼 주민생활에 좀더 관심을 쏟겠다 는 의도로 보인다.
27 _ 통일연구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 회의 평가,” 통일정세분석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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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략으로서의 ‘이중화 전략’이 어떤 구도로 구상되고 관철되려고 하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07년 1월 12일 조선신보에 따르 면 이것을 ‘김정일 구상’28이라고 명명했다.
북한의 ‘이중화 전략’은 김일성의 유산으로서 매우 역사가 깊다. 주지 하듯이 그것은 1953년 8월에 전후복구계획 논쟁에서 승리한 만주파의 노선인 ‘중공업 우선의 경공업 농업의 동시발전노선’에서 시작한다. 북 핵(개발과 실험) 이후 이것은 김정일의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이중화 전략’의 핵심에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병존이라는
구상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분권화, 시장화, 화폐화를 용인했던 2002 년 7·1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조치를 하달했으면서도, 이를 예방적으 로 제어하기 위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적, 현물동학적인 경제정책인 2002년 9월의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을 계통적으로 병존시켰다는 데 서도 알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기간공업을 포함한 중공업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통제 및 계획 부문으로 유지하면서, 경공업과 시장경제 는 역동성에 노출시키겠다는 분리정책의 일종이며, 전자를 통해서 후자 를 종국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국가의 의도이다. 이것이 북한 지도부가 제기하는 ‘공존’이 아닌 ‘대립’을 야기하는 이유이다. 결국 ‘이중화 전략’
은 양자를 이중화시켜서 한 측을 특권화하고 한 측을 배제하는 전략(그 래서 이분화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중화 전략’이자 ‘김정일 구상’은 정확하게 어떤 곳에 집중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999년 1월 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 간부들과의 담화에서 김정일은 “군사를 중시하는 국방공업에 계속 큰
28 _ 즉 ‘선군시대의 경제건설 노선의 기조는 유지되면서도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경제
부흥책은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했으며 ‘조선 경제에 일찍이 없었던 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던 것이다.
힘을 넣어야 한다. 군사와 국방공업을 떠나서는 경제강국도 건설할 수 없으며 나라의 인민의 안녕도 생각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사가 첫째이고 국방공업이 선차이다”라고 말했다. 2001년 4월 26일의 민민 전방송에서는 “내가 경제사업에만 힘을 넣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망했 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2002년 9월에, 그리고 로동신문 2003년 11 월 12일에는 자신의 경제정책 구상과 방향을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
으로 명명했으며, 이는 ‘국방공업의 우선적 발전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 건설노선’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언급은 2002년 7·1조치와 2003년 3 월의 종합시장 조치 직후에 나온 정반대의 정책이어서 정확하게 ‘이중 화 전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게다가 조국 2004년 12월호에서는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바람이 불어오든 우리 당과 인민은 결코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 라고 하면서 계획경제체제의 고수를 강조하였다. 2006년 신년공동사설에 서는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을 재차 강조하였으며, 로동신문 2006년 11월 27일에서는 “국방공업이 주도적이며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경 제구조를 확립해야 자립적이고 튼튼한 경제토대를 축성할 수 있으며”,
“총대가 약해 망한 나라는 많아도 기근이 들어 망한 나라는 없다”고 역 설한 바가 있다. 2006년 10월 조선로동당 ‘간부 및 군중 강연자료’에서는
“나는 인민생활이 어려웠지만 군수공업에 언제나 큰 힘을 넣어 왔다.
이에 대해 앞으로 우리 인민이 반드시 리해해 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급기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숨죽은 공장, 꺼져버린 수도의 불빛, 멈춰 선 렬차들을 뒤에 두시고 선군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자위적 국방 력을 강화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치었다”고 언급했다.29
29 _ 동아일보, 2006년 1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