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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예교육의 ‘영원한 이상’

어떤 언어로 이야기할 것인가?

- 4차 산업혁명시대, 자유학예교육의 공통토대 탐구

한수영(중앙대학교)

상기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문학의 과학을 연결할 수 있는 ‘시적 과학’이라는 공통토대를 설정하고, 과학 지식을 가치로 이어낼 수 있는 시적 과학의 언어를 제안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기쁨의 정원’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2.1 『Hortus Deliciarum』의 신성한 언어

  Libral Arts를 표상하는 고전 이미지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12세기 후반 제작된 교육용백과사전

『기쁨의 정원 Hortus Deliciarum』(the Garden of Delights)1)에 실린 <철학과 리버럴아츠 7과(Philosophia et septem artes liberales)>라는 도상입니다.

『기쁨의 정원』은 알자스 지방의 호헨부르그 수도원(Hohenburg Abbey)에서 초심 수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편 찬한 당대의 지식백과사전입니다. 헤라다 대수녀를 중심으로 여성이 기획하고 여성들이 공동 작업한 예술이라 는 점에서 독보적인 자료이며, 중세여성교육 자료로서도 희소한 가치를 지닙니다. 특히 리버럴아츠 이미지는 교 육사적 측면에서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근거가 되어 왔습니다.

그림은 중세 회화 특유의 안정되고 균형적인 동심원 구성을 보여줍니다. 중심원에 있는 철학의 여왕

(philosophia)을 작은 원들인 리버럴아츠 7과가 둥글게 에워싸고 이를 다시 큰 원주로 묶어내고 있습니다. 철학 의 여왕은 우아하게 권좌에 앉아 있으며, 유방에서 7개의 강물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여왕의 왼쪽으로 퍼져나 간 3줄기는 언어와 문자에 관한 세 과목(trivium)인 문법, 수사학, 변증법이 되고, 오른쪽으로 퍼져나간 4줄기 는 조화에 관련된 4과목(quadrivium)인 음악, 산술, 기하학 및 천문학으로 이어집니다. 동심원의 바깥은 추방 자들의 영역입니다. 그들은 천박한 시를 쓰는 시인이거나 마법의 주문을 쓰는 마술사들로서, 철학의 세례를 받 지 못한 채 검은 까마귀로 상징되는 불손한 영혼에 의해 이끌립니다.

1)  호헨부르그 수녀원(현재 알자즈 지역 Mont Sainte-Odile수녀원)의 수도원장이었던 헤라다(Herrada Landsbergensis, 1130-1195)가 중심이 되어 쓰고 편집한 당대 지식의 개론서. 대부분 라틴어로 기술되어 있고 1167년에서 1185년에 걸쳐 완 성되었다, 성경의 구원의 서사를 중심으로 철학, 과학, 음악,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가 들어있으며. 신학적 내용은 당대 다양한 남성 신학자들의 해석을 참조하고 있으며, 이교도의 여러 발췌문들도 참조하고 있다. 노래 텍스트는 다성음악의 기원 중의 하나로 음악사적으로 중요하다. 여성이 쓴 최초의 백과사전이며 중세의 여성교육 자료로도 독보적이다. 특히 아름다운 서체와 336장에 이르는 삽화는 유명하다. 원본은 수도원에서 보관되다가 프랑스 혁명 당시 근처의 스트라스부르그 도서관에 이관되었으나 1870년 프랑코-프러시아 전쟁 중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다행히 19세기에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을 복제했던 전 문가들의 작업이 수행되었었는데, 특히 1815년 즈음에 엥겔하드(Christian Moritz Engelhardt)가 모형을 복제하고, 40여 편 의 이미지(그중 일부는 채색)를 모사해서 인쇄를 한 작업은 추후 원본을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림] <철학과 리버럴아츠 7과(Philosophia et septem artes liberales)>2)

2) Illumination from Hortus deliciarum 참조해 정리.

http://www.plosin.com/work/HortusDetails.html

발표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이 아름다운 도상에서 자유학예교육이 계승해온 ‘영원한 이상’의 보편적이면 서 특수한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지식을 통합하여 중심 가치를 찾고자 하는 리버럴아츠의 이상을 이 그림은 아주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철학의 여왕을 비롯한 리버럴아츠 7과는 인격화되어 등장하는데, 7과의 캐릭터들은 옷의 색깔이나 머리 모양 이 섬세하게 다릅니다. 또한 양손에 특별한 아이콘을 들고 있고, 이를 설명하는 텍스트도 첨부하여 개별 지식 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킵니다. 7과를 큰 원주로 묶어서 중심원인 철학의 여왕으로 수렴하고 있어서, 리 버럴아츠의 보편적 이념이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의 여왕은 누구일까요? 여왕은 에티카, 피지카, 로지카의 얼굴이 새겨진 왕관을 쓰고 있으며, 발 밑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있습니다. 손에는 ‘모든 지혜는 신으로부터 나오며 현명한 자만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쓰인 띠를 들고 있습니다. 이교도의 철학체계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여왕은 신성한 지혜인 사피엔티 아(소피아)라고 볼 수 있으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천상의 여왕인 마리아의 현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 다.3) 결국 철학의 여왕은 통합된 모든 지식을 다시 신의 영역에 헌정하는 매개자이며, 여기서 ‘영원한 이상’은 철학을 넘어 저 높은 신성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즉 리버럴아츠 7과는 지혜의 ‘신’을 찾아가는 영혼들 을 위한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요컨대 이것은 리버럴아츠 7과를 통해 지식을 통합하는 교육적 도상이면서, 궁극적으로는 교육을 통해 잃어 버린 에덴을 회복할 수 있는 신성을 깨우치고자 합니다.5) 리버럴아츠 7과를 묶는 공통의 언어는 신성의 언어였 으며, 12세기의 맥락에서 영원한 이상은 신성의 언어로 다다를 수 있는 종교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세 여성들에게 수도원은 닫힌 공간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자아를 고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초월적 진리를 추구하는 여성들은 신성의 테두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는데, 이 종교 적 지향성 내부에는 지식을 통해 자신을 고양하고자 하는 인간 고유의 영적 충동이 자리하고 있음을 주목해 야 합니다. 헤라다의 정원은 수도공동체의 여성들이 신을 만나는 기쁨의 동산이며6) 동시에 다양한 지식의 꽃 에서 꿀을 채집하며 벌집을 만들어나가는 꿀벌들의 자기성취의 장소이기도 합니다.7)

도상의 구조는 신의 가호를 받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질서정연한 동심원을 이루었던 당대의 프톨레마 이오스의 우주관과도 그대로 겹쳐집니다.8) 신성의 언어는 ‘영원한 이상’을 찾아가는 중세의 통로임에 틀림없지 만, 종교적 초월의 영역 내부에 지식의 통합을 통한 진리 탐구라는 영원한 이상이 건재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

3)  Fiona J, Griffiths,The Garden of Delights : Reform and Renaissance for Women in the Twelfth Century,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6. p.134. 12세기 즈음에는 천상의 여왕 마리아가 철학자로서 묘사되는 경우들이 발견된다.

4) Ibid., p.152.

5)  교육내용에 관련 텍스트들은 따로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중세수도원의 여성들이 리버럴아츠 각과를 배웠다는 것을 직접 확인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시 이러한 과목구성들이 학습자들에게 익숙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Ibid., p.149.

6) Ibid., p.135.

7)  헤라다는 책 제목의 의미를 “신성한 성경과 철학적 저술의 다양한 꽃들(diverse flowers of sacred Scripture and philosophic writings)”이라고 설명하며, 자신을 다양한 꽃밭에서 꿀을 채집하며 벌집을 만드는 꿀벌이라고 비유한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초심자들도 언젠가 꿀벌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Ibid., p.163.

8)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가 관측가능한 행성들만을 대상으로 천구의 질서를 구축한 것처럼, Hortus 시인이나 마술사를 배제 함으로써 동심원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어 질서정연함의 이면에 내재해있는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불확정성과 무질서를 해석

요가 있습니다.

영원한 이상은 균질적이며 안정된 특정 영역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ortus Deliciarum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영원한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리버럴아 츠는 아득하고 높은 곳으로 오르는 데 필요한 디딤돌이었습니다.

2.2 『Consilience』의 환원의 언어

통합학문을 통해 영원한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도전은 자연과학에서도 지속되어 왔습니다. 세계는 질서 정연한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점차 작은 단계로 내려가며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한다 는 열망이 자연과학을 추동해온 힘이었습니다. 모든 물질이 물로 구성되었다는 탈레스의 발상에서 보듯이, 이 열망에는 물질적 기초로부터 자연의 통일성을 추론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이 내재하고 있었습니다.9)

 실제로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기를 관통하며, 『Hortus Deliciarum』에서 꿈꾸었던 초월적인 ‘영원한 이상’

은 중심에서 변방으로, 그리고 추상에서 구체적인 물질의 세계로 점차 옮겨왔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의 중심에서 인간을 추방했으며, 인간이 진화의 목적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라는 다윈의 통찰은 자연계에서 인 간의 지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DNA라는 유전정보를 지닌 화학적 물질이 규명되면서 생명은 특별한 신의 가호가 빚어낸 신성의 영역을 벗어나 가장 작은 물질의 단위로 환원되었습니다.

지식의 통일을 꿈꾸는 『Consilience』 는 통합학문을 향한 환원주의적 탐구의 절정에서 등장했습니다. 상대 성이론, 양자역학, 그리고 DNA의 구조와 기능을 분석하는 분자생물학의 혁신적인 전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질서정연한 우주체계와 다른 거시적이고 불확정적인, 열린 시공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런 지식의 무대에서 윌 슨은 지식의 통일만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명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면서 통섭의 개념을 주창하게 됩니다.

‘consilience’라는 용어는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 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한다”는 말에서 차용되었습니다.10) 그런데 통섭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분 야를 가로지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은 다양한 분과학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영역을 가로질러 교차지점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은 교집합을 관통할 수 있는 마스터키와 같은 도구가 필요합니다. 즉 “공통된 추상의 원리와 경험적 증거”를 공유할 수 있는 공통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 조건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영역을 인과론적으로 아 우를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찾는 데 있다고 윌슨은 생각했습니다.

윌슨은 통섭에 대한 은유로 <크레타섬의 미로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괴물 미 노타우로스를 물리치기 위해 아리아드네가 준 실타래를 들고 미로 속으로 들어갑니다. 미로의 모퉁이들은 다 양한 학문영역을 가리킵니다. 우리 내면의 비합리성을 상징하는 미노타우르스가 모퉁이마다 길을 막아서지만, 테세우스는 결국 괴물을 물리치고 실을 따라 미로를 빠져나갑니다.11)

마치 구슬을 꿰듯이, 테세우스는 미로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서로 다른 지식 체계에 부딪히고 이를 실로 이

9)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역(2013), 『통섭』, 사이언스북스, p.34.

10)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역(2013), 『통섭』, 사이언스북스,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