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후기 하이데거의 사유가 내재적인 연속성을 갖는 것으로 해석되 어야 하는 이유는 전기 하이데거에게서 존재의 개시성을 갖는 현존재와 후기 하이데거에게 사유되는 ‘죽을 수 있는 자’인 인간이 갖는 연속성 때 문이다. 존재론적 차이가 현-존재의 존재자 전체로서의 세계로의 초월로 부터 성립한다고 할 때, 세계로의 초월을 통해 비로소 자기(Self)를 회복하 는 현-존재는 서구 근대철학적 의미에서 자아(Ego)와 구별된다. 반대로 전 기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을 자아 중심주의나 유아론으로 해석하는 논 자들은 자기와 자아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아는 타자와의 분리에 기초한 것이자,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자아의 정체성 은 타자와 다른 자신의 배타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성립한다.
더 나아가 근대적 의미에서의 자아 혹은 주체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존재 자 전체를 온전하게 개념 파악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시야를 전제한다.
112) 이러한 기초존재론이라는 에움길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이데거가 후기에
있어서도 여전히 현존재의 존재 해명을 위해 이해-해석의 구도를 포기했다는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다만 하이데거에게서 일반 존재론의 가능근거, 즉 토대를 해명한다는 의미에서의 해석학은 후에 포기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헤르만이 기초존 재론적인 시각궤도를 떠났다고 해서 현존재-분석론까지 포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 명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헤르만의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F. -W. von Herrman, Heideggers Philosophie der Kunst: eine systematische Interpretation der Holzwege-Abhandlung "Der Ursprung des Kunstwerkes". Vittorio Klostermann, 1994, 14 쪽; F. -W. 폰 헤르만, <하이데거의 예술철학>, 이기상 옮김, 문예출판사, 51쪽.
SZ의 맥락에서 본다면, 서구 근대 사회 이래 자아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공공의 세계 이해의 흐름을 지배해 왔다.
반면 세인-자기로부터 세계에로 초월하는 자, 즉 본래적 의미에서 세계
-내-존재하는 현-존재는 스스로를 세계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사물들에 철저하게 조건 지어진 자로서, 즉 유한한 자로서 깨닫는 자이다.
그러한 현-존재는 존재자 전체의 개방성의 장으로서의 세계에로 나서는 자이자, 타자에 대해 배려하는 방식으로 현존하는 자이며, 존재자를 그 자 체로 전적인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자이다. 무엇보다 현-존재는 존재 자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존재자로서 자기 자신, 즉 나임(Ichheit, WG,
175) 넘어섬으로써, 즉 세계에로 초월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세계-내-존재로서 비로소 자기를 회복하는 현-존재는 공 동체 내에서 타인과의 배타적인 분리에 기초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동체 내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현-존재의 삶의 방식은 자아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
나아가 후기 하이데거에게 ‘죽을 수 있는 자’인 인간은 자신의 현존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해방되어 퓌시스-내-존재하는 자이다. 그러한
‘죽을 수 있는 자’로서의 인간은 주체의 의지와 자아의 정체성을 앞세우 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거스르는 반-시대적인 광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러한 자는 나와 타자 간의 정체성의 놀이에서 벗어나, 나와 타자는 오히 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는 관계 속에서만 상호 존립할 수 있다 는 점을 깨닫는 자이다. 그렇기에 ‘죽을 수 있는 자’는 타자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있을 수 있는 자이며, 존재자 전체의 존재와 시간의 건넴의 놀 이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자이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전·후기 하 이데거 사유는 내재적 변화로 읽힐 수 있다.
2. 이와 관련하여 전·후기 사유를 구분하는 주요한 전거 중의 하나는 SZ과 후기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해명되는 세계가 내용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전기 사유에서 세계는 초월론적 철학으로 부터 성립하는 것으로, 현존재로부터 구성되는 것이기에, 전·후기 세계에
대한 사유는 구별되어야 한다.113) 이에 따르면 전기 하이데거에서 현존재 로부터 형성되는 세계와 후기 하이데거에게서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 로 통일하는 놀이로서 있는 세계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기 사유에서 세계는 현존재의 초월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과 동시에, 세인-자기로부터 자기를 비로소 회복한 현-존재로부터 개방되는 자기세계를 가리킨다. 그런데 자기 세계는 존재자 전체의 개방성의 장으 로서의 세계 자체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존재가 그리로 초월하는 세계가 존재자 전체의 개방성의 장으로서의 세계를 가리키기에, 그로부터 존재자 자체의 개방성이 성립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14)
3. 전기 하이데거의 대표적인 저서 중 WM(1929)과 WG(1929)는 각기 형이상학의 근원으로서의 무(WM)와 현존재의 초월의 내적 근거로서의 자 유(WM)를 해명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두 저서의 논의의 흐름은 존재자 자체의 개방성의 문제로 수렴된다. WM에서 현존재의 불안에서 무로부터 개방되는 것은 단적인 타자로서 존재자 자체이다. 또한 WG에서는 현존재 의 세계로의 초월을 통해 전적인 타자로서의 존재자 자체의 개방성이라는 존재론적 차이의 테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런데 두 저서에서 공 통적으로 문제로 삼는 존재자 자체는 퓌시스로서의 존재와 함께 독해될
113) 이와 관련해서 E. 핑크(Eugen Finks)는 전·후기 하이데거의 세계 개념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 바 있다. 핑크에 의하면 전회는 전기 하이데거 사유에 대한 자기 비판에서 기 인한다. 전기 하이데거는 세계를 눈 앞의 존재자라는 의미에서의 존재자 전체로 잘못 해석했으며, 그로부터 세계 전체의 통일성(die Einheit des Weltalls)을 간과한다. 그 때문 에 전기 하이데거는 개별화의 놀이로서의 세계의 힘을 통찰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를 인간의 세계형성으로부터 해석한다. 그와 함께 전체를 위한 개방성으로서의 세계와 인 간의 연관성을 곡해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현존재 개념은 그 경우에 ‘초월철학적인 추상적’ 개념으로 남는다. E. Finks, Spiel als Weltsymbol, Stuttgart 1960, Alberto Rosales, 276쪽, 위 논문 126쪽 재인용.
114) 이에 대해서 필자는 앞서 현존재의 초월과 무의 무화로부터 개방되는 존재자 자체가
존재를 품는 “존재자가 있다”는 사실로서 해명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전·후기 하이데 거의 존재자와 세계, 그리고 사물과 세계의 논의가 가질 수 있는 연속적 측면을 논의 했다. 이에 대해서는 본 논문 2부의 1장, 4-5절의 논의를 참고하라.
때만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무로부터 개방되는 존재자와 현존 재의 세계로의 초월을 통해 개방되는 존재자 자체는 그 자체 존재를 품고 있는 것으로, 즉 존재와 존재자의 이중성을 가리키는 퓌시스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퓌시스는 후기 하이데거의 존재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해석 되며, 그러하기에 전·후기 하이데거 사유의 전회는 종종 현존재의 존재의 미로부터 퓌시스로의 전회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전기 하이데거의 사 유에서 명시적으로 말해진 것뿐만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숨겨진 전제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특히 하이데거 사유의 전개 과정이 형 이상학적 언어를 통해 적합하게 표현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언어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이데거의 전기 사유를 해석 할 때 말해진 것만을 단서로 하여 해석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결론적
으로 WM과 WG에서 함께 공통적으로 문제시되는 존재자 자체의 개방성
은 퓌시스와의 관련 속에서만 물어질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전·후기 사유 간의 내재적 변화를 추론해볼 수 있다.
3 부 후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와 무
1장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론적 구별과 그것의 전제로서 의 무
1절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와 존재자 그리고 존재와 사유
형이상학이 존재를 망각했다거나 존재를 사유하지 않았다는 하이데거 의 언급을 형이상학이 존재를 그 무엇으로도 규정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 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전체 형이상학의 사유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규정이자 해석의 역사이다.115) 하이데거는 서구 전통 형이상학에서의 존 재와 존재자의 구별을 존재자성(die Seiendheit)과 존재자의 구별, 즉 ‘존재 론적 구별(die ontologische Unterscheidung)’116)이라 명시한다. (Er, 126) 사
115) Alfredo Guzzoni, 앞의 논문, 35-48쪽 참조.
116) 본 논문은 존재론적 차이와 무를 전·후기 하이데거 사유로 각기 나누어 고찰한다.
그리고 본고 3부에서 전통 형이상학을 존재론적 차이와 무의 관점으로부터 재구성하는 것은 후기 하이데거의 사유와 관련되는 작업임을 미리 밝힌다. 전기 하이데거와 후기 하이데거가 전통 형이상학에 접근하는 방식은 각기 서구 형이상학의 해체(Destruktion) 와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적 전통의 해체와 더불어 견뎌냄(Verwindung)으로서의 존재-역 사적 사유라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기 하이데거는 전통 형이상 학을 존재망각의 역사이자 존재론적 그르침의 역사로 규정하고 그 자신의 현상학의 전 개는 그러한 존재망각과 존재론적 그르침으로서의 서구 형이상학의 해체 위에서만 성 립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기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사유는 전통형이상학이 존재를 그르 치는 방식, 즉 사물로부터 존재를 사유하는 존재론적 반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존재일 반의 이념에 다다르기 위한 지평으로서의 현존재 분석론을 취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된 다. 그런가 하면 후기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존재자와 분리된 채 독립적으로 있는 일반 자나 제일 원인으로 표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존재자로 있다. 더 나아가 존재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