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人은 실제적 시행을 통해 法意를 분명히 했다. 用法의 폐단은 宋人이 보기에 법 을 사용하는 자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었다. 의론하여 법을 정하매 법이 번잡해져서 누 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 祖宗成法과 新生事物이 서로 어긋나며, 人情과 法理를 조화시키는 데 있어서 한계가 드러나는 등 분쟁의 초점이 되었던 “法 意” 속에는 宋人의 반성과 法制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动力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바로 宋人과 宋法의 특징이었다.
(1)관료의 광범위한 立法 참여
宋代의 관원은 “法意論”의 주체였고 법률 창제와 수정의 추진력이었다. 朝臣 또는 각지 관원의 奏議는 民事에 관심을 가졌고,法意를 참작하였으며,时弊를 바로잡고자 했다. 皇帝는 먼저 臣僚의 의견을 들었고 다시 전문기구에 맡겨 신료가 건의한 바의 실행가능성을 논증하게 함으로써 입법과정을 더욱 신중히 하고 전문화 시켰다. 宋代 臣僚의 政事에 대한 參議는 적극적이어서, “法意”에 초점이 맞추어진 건의와 献策은 대다수 받아들여졌고 “황제와 사대부가 함께 천하를 통치”하는 분위기가 실현되었다.
宋人은 항상 古人의 立法 의미를 분명히 밝혔고 이를 통해 当朝의 法制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한편으로 宋人이 본 古人의 立法 의미는 “良法美制”의 역사적 자 원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함에 따라 어떤 古意는 비록 君 臣이 좋은 것이라 칭하기는 했지만 반드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人臣이 법을 의론하고 人主가 权断하는 기제 아래에서 臣僚의 제의는 단지 立法과 施 政의 일환이었을 뿐이었다. “会要”에는 臣僚가 청원하고 황제가 이를 따랐다는 기록이 다수 있지만 황제가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즉 “法意”에 대한 분석과 판단은 신 하의 몫이었지만 이를 확정하는 것은 여전히 제왕에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2) 守法과 权变의 선택
宋人이 내린 “法意之善”과 “官吏负法”에 대한 평가는 “祖宗之法”에 대한 태도와 마 찬가지로 보기에는 분명해 보이나 실제로는 명확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法意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文句를 해석하거나 法理를 분명히 밝히는 것만이 아니 었고, 정책 방향 및 정치 파벌과 결부되어 있었다. 新法을 폐지하고 熙丰 法意를 다 시 사용한 것은 神宗 이후 宋代 정치의 문제점이 되었다. 어떠한 제도에 있어서 갈팡 질팡하며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게 되면서 论辩 중에 ‘法意无定论’과 ‘法意以意定’의 의 론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당시 수립했던 “祖宗旧制”와 “祖宗立法之 意”는 일정 정도 “法意”가 法律 文本보다 훨씬 모호했기 때문에 “法意”에 대한 말들 이 여러 번에 걸쳐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守法과 变法은 “法意”가 관련된 하나의 큰 영역이라 할 수 있다. 政令의 권위는 한 시대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는 선량한 염원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반드시 先王을 본받아 祖制에 어긋나지 않고자 하는 데서 오는 것일까? 新法의 奉行은 무조건적이어 야 할까, 아니면 立法이 “祖宗之意”에 부합되는 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일 까? 한편으로 변법을 행하는 자와 그 반대자가 근거로서 붙들고 있었던 “法意”는 항 상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는 논거로 사용되기 일쑤였으며, 단지 포폄의 태도를 실증하 는 도구였을 뿐, 그 제도 기초에 대해서는 모호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变法의 배경 하에 臣僚의 광범위한 참여와 격렬한 토론 중에 法律文本과 实施 및 立 法 의도에 대한 다층적인 관심이 드러났으며, 이는 “会要”의 “免役” 門類 중에 다수의 예가 보인다. 즉 구체적인 제도의 함의와 특정한 立法의 의미와 관련되는 “法意”論과 宋代 황제와 臣僚의 守法 태도를 드러내는 사례들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3) 法理와 人情의 고려
宋人의 “法意”론은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祖宗成法과 变法改制, 立法과 得人, 立法의 의미와 用法의 효용 등 여러 예를 들 수 있다. 法意와 人情은 즉 法律文本을 수정하고 제도 실효를 추구하는 층면에서 시종 관철되었다.
文本의 의미로부터 말해본다면, “法意”는 엄격히 준수되었지만 또한 참작과 절충이 가능하였다. 法意와 人情을 두루 고려한다는 것은 실은 法律 규정과 人情 事理 간에 충돌의 가능성이 있으며 立法과 司法目标 간에도 충돌의 가능성이 있음을 은연중에 의미하는 것이었다.
입법자가 表层 “法意”와 深层 “法意” 사이에 또는 法律 문건과 법률의 시행 사이에 충돌의 가능성이 있음을 미리 설정해 두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立法者의 출발 점은 법의 시행과 장기간에 걸친 법의 준수가 가능하게 하는 데 있었으니, 人情에 응 하여 法意를 실현한다는 것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국가적 범위 내에서 각지의 발전 수준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여러 群体는 상중하 户等과 같이 차이 가 있었다. 구체적 情理에 어긋나는 政令은 조정되어 쉽사리 시행되게끔 할 필요가 있 었다. 다른 한편으로 民情과 民意는 정해져 있지 않았고 서로 다른 파벌은 사로 다른 이념에 근거하여 “法意”를 말하였으니 때로는 서로 부합되었고 때로는 서로 어긋나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변법자가 생각하기에, 人情은 편한 것만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하며, 이익을 쫓고 해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니 制度가 富国强兵과 长治 久安를 추구한다면 私利를 억제하는 것은 면할 수 없으며, 法意는 선량한 것이기 때문 에 종국에는 태평성세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질서에 대 한 추구와 같은 기본 원칙은 흔들린 적이 없었기에 人情에 대한 고려는 전제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종합해 볼 때, 宋人이 중시한 “法意”는 고정불변의 최고 기준이 아니라 넓은 범위 에 걸쳐져 있는 것이었고 일정한 포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宋代의 “法意”는 또 한 宋人의 구체적 제도의 설치 및 그 실효성에 대한 논쟁과 결부되어 있었으며 결코 속빈 강정과 같은 실체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宋会要辑稿》중에 귀납된 “法意”는 곧 위로부터 아래로 관철하여 입법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일련의 가치와 기준이었고 그 핵심은 성문법 또는 제도 및 정책의 제정의도와 관련되어 있었으며 그 경계는 유 동적이었다.
이렇게 볼 때 许章润 선생이 설명한 “法意”의 내용과 비교해 봐도 좋을 것이다.
법률은 일종의 규칙 체계이며 동시에 의미 체계이다. 어떠한 규칙도 일정한 法理를 내 포하고 있고, 일정한 도덕적 배려를 기술하고 있으며, 심각하고 절실한 신앙에 기대고 있 다. 한마디로 개괄해 본다면 法意란 규칙 체계의 의미 세계를 구성하였으며 法制의 내재적 기초를 형성하였다. 어떠한 法制의 生长과 운영은 반드시 상응하는 法意와 함께 하여야 했 다. 법률이 移植되는 상황 하에서는 심지어 상응하는 法意에 그 근원을 두기도 했으므로 法意는 法制의 안내자가 되었다.
许章润 선생은 “法制”와 “法意”를 비교하며, 法意는 “恒定恒变”의 法制와는 달리 恒定이나 不变의 요소라고 하였다. “인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성해온 유한한 역사 를 통해 볼 때 공평과 정의, 仁愛와 诚信 등의 기본 가치와 신앙은 이른바 世道人心을 구성하고 있는데, 사람의 생존과 존엄은 오히려 恒定이면서 不变임을 알 수 있다. 법 률의 道는 즉 생존의 道이며 法意는 생활의 의미이니 생활의 의미는 주로 世道人心에 있다.”
“法意”는 아직 둥글지 않은 것에서 둥근 것으로 가는 것이며, 제도는 创设로부터 장구한 준수로 가는 것이니 그 사이의 요점은 立法 기술로부터 말한다면 외면은 정확 해야 하고 내용은 합리적이어야 실행될 수 있고, 원칙적으로는 이것이 이전의 규정과 서로 어긋나지 않아야 하며 또한 현실적인 적합성이 구비되어야 한다. 만약 政令을 개 혁하여 그 기능을 발휘하고자 절실히 원하고 또한 크게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를 독촉하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宋人은 이처럼 “法意”를 둘러싸고 法制와 施政 要领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의미탐색 중에 이상적인 통치상태를 공동으로 추구하고자 하였다.
요약번역: 김형렬(동의대)
赵 东 济(东亚 大学 法学专门大学)
“法意”一词最早见于中国《汉书》记载的“廷尉直议”,是中国古代法制中一个非常重要 的概念,尤其在宋代受到高度重视。据统计,“法意”一词在《宋史》中总计出现23次,在 专门记载宋代史实的史书《续资治通鉴长编》中总计出现52次,在《拾补》中总计出现11 次,在《吏部条法》、《庆元条法事类》以及《名公书判清明集》等典籍中共计出现了39 次。这些数字表明“法意”一词在宋代的地位。
据学者考证,“法意”一词在宋代的含义有三:一是代指立法宗旨;二是关乎“法的一般原 理”;三是未在法律条文中直接明示的“微言大义”。宋代“法意”在探知立法本意、缓和司法 过程中法律与人情的冲突起到了至关重要的作用。
在中国历史上曾经发挥重要作用的“宋代法意”,应是当下中国法治建设中不可或缺的本 土资源,是中国法治建设进程中不可多得的宝贵财富。张田田教授的论文,既有对历史的 关照,又有对现实的启迪,有利于我们把握宋代法意、深化对宋代法意的理解。
从张教授的论文中,我们大致可以明白以下几点:
1. 宋代法意的时代背景
无论是法制建设,还是在法律思想方面,宋代均颇有建树。“法意”一词在宋代的频 繁使用,必有其时代背景。其时,情与法的关系尤为凸显,宋代统治者开始要求协调情与 法之间的紧张关系,以避免情重法轻或情轻法重的极端现象出现。这应该是“法意”在宋代 备受重视的时代背景。正如张教授所言,宋人议论法意之所以蔚然成风,是宋人面对频繁 变动的法律样态,留心法政、探求法理的动力使然,旨在缓和司法过程中法律与人情的冲 突,实现法律与人情的平衡。
2. 宋代法意的基本内涵
“法意”内涵的梳理与证成对于全面理解宋代“法意”的历史功绩与现代启示具有十分重要 的意义。在张教授看来,“法意”可分文本与实质两层,文本法意即文句之义、规定之理,
是法意之表层;而深层法意指立法之意义,即立法所规制的社会问题及立法所欲实现的社 会目标。相较于前人将“法意”理解为“立法宗旨”、“法的一般精神”或“微言大义”等含义,
张教授的观点在视角和内容上皆有所突破,为我们理解宋代法意提供了全新的思路。
3. 宋代法意的重要功能
作为宋代法制中的重要概念,法意不仅是宋代司法过程中情与法冲突的缓冲器,更是宋 代立法与守法的指明明灯,其作用贯穿于宋代立法、司法和守法的各个环节。从张教授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