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했다.
한편 남북경협은 그동안 ‘퍼주기’ 논란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는 한계도 존재한다.
<표 Ⅱ-2> 개성공단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승인 내역
(단위: 백만 원)
연도 안건 승인일 승인액
2004년
개성공단 기반시설 건설에 대한 남북협력 기금 지원 2004.9.8 109,500 개성공단관리기관 설립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대출 2004.9.8 22,500 시범단지 입주기업 경제협력사업자금 대출 2004년 49,170
소계 181,170
2005년
대북 연탄지원용 남북협력기금 대출 2005.6.4 897
북한주민 중국공단 견학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2005.6.4 47 북측 세무, 회계인력 연수를 위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2005.10.28 62 개성공단 기술교육센터 건설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2005.12.16 19,256
소계 20,262
2006년
개성공단 전력․통신 시설건설을 위한 남북협력기
금 대출 2006.2.27
78,700 (전력: 41,000, 통신: 37,700)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설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2006.4.27 3,400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운영대출금 변경 2006.5.30 3,600 증액 (총액: 26,100)
본단지 입주기업 경제협력사업자금 대출 2006년 30,400
소계 116,100
2007년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운영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대출 2007.1.25 10,400 개성공단 기반시설 건설 총사업비 변경 2007.2.26 41,500 증액
(총액: 151,000) 개성공단 아파트형 공장 건설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2007.4.27 23,400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총사업비 의결 2007.4.27 53,600 증액 (총액: 57,000) 개성공단 보험제도 구축을 위한 남북 보험관계자
합동해외사찰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2007.4.30 38
소계 128,938
2008년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운영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대출 2008.1.28 9,900 개성공단 기술교육센터 운영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대출 2008.1.28 3,100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출퇴근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대출 2008.5.16 2,900
소계 15,900
총계 462,370
자료: 통일부, 남북협력기금백서, p. 146.
이 가운데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대출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 기로 하자. 한국정부는 “개성공단 개발 초기의 열악한 사업 환경을 고려”하여 입주기업에 대해 남북협력기금을 대출하여 초기 시설자 금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모두 28개 기업을 대상으로 795억 7,000만 원을 대출하기로 승인했고, 대출조건은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으로 했다. 이자율은 「남북경제 교류협력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지침」의 ‘대출이자율 결정기준’
에 따라서 기준금리에 신용위험조정율을 더한 이자율로 정해졌는데 대출시기에 따라 평균 3.3~4.3% 수준으로 되었다.
시범단지 입주기업은, 전체 15개사 중 14개사에 대해 478억 원 규 모의 대출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에 걸쳐 집행했다. 또한 본 단지 1차 입주기업인 14개사에 대해 총 282억 원 규모의 대출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년에 걸쳐 집행했다.
하지만 1단계 2차 입주기업부터는 남북협력기금 대출을 중단했다 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때부터 상업적 방식의 자금 지원으로 전환했다. 즉 신용보증기관의 신용보증을 통해 시중금융 기관이 입주기업에 대해 소요자금을 대출하도록 했다.
(2)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한국정부의 직접적 참여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개성공업지구법)」 (시행
2014.7.22. 법률 제12277호, 2014.1.21., 일부개정)에 따르면 개성 공단은 북한이 남한의 사업자에게 공단의 조성, 운영, 관리에 관한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는 특성을 가진다. 경제특구로서도 매우 이례 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당초 계획대로라면 남한의 사업자가 많은 권 한을 보유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사업초기에 예상치 못했던 현대아산의 자금난 발생으로
인해 당초의 구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었다. 사실 북한 당국과 현대 아산 간에 개성공단 개발 계약이 체결된 2000년 8월 당시에도 이미 현대아산의 자금난은 심각한 상태였다. 결국 같은 해 11월에 토지공사의 참여4)와 더불어 남한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게 되고, 이를 매개로 남한 정부 참여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물론 자금난이 아니더라도 남측 정부가 개입할 필요성은 존재한 다. 개성공단 사업이 남북관계에서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 때문에 민 간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기가 어렵다. 또한, 남한 내에서 공단을 조성한 예에 비추어 볼 때 기반시설 조성 등에 정부가 지원한다는 명분도 있다. 특히, 입주 후 관리문제는 민간의 분야에서 감당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국 남한 정부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통해 개성공단사업 에 대해 실질적으로 참여했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대해 인 력과 재정 측면에서 지원을 실시한 것이다. 따라서 개성공업지구관 리위원회는 법적으로는 북한법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남한정부(의 하부조직)과 유사한 성격과 기능을 보유하게 되었다.
당초 북한당국은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관리 기관, 즉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구성을 개발업자인 현대아산에 게 위임할 예정이었다.5) 이는 남한의 개발업자에게 개성공단의 개 발, 운영에 대해 권한을 대부분 위임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이 경우, 개성공단의 공식적 상위 지도기관은 북한 당국(중앙특구개발 지도총국) 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위 관리기관(개성공업지구관리 위원회) 및 개발사업자는 남한 정부 및 기업으로만 이루어져 비대칭
4) 토지공사는 자금조달과 설계, 감리, 분양 업무를, 현대아산은 시공 업무를 분담키로 합의했는데, 현대아산으로서는 공단에 대한 사업권한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5) 실제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현대아산 출신 인사가 내정되었으나 남한 정부가 참여하면서 남한정부는 관리위원장을 남한정부 출신 인사로 선임했다.
적인 추진체계로 되어 있다는 점6)은 실질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특히 개성공단 사업 초기에는 현대아산과 북한당 국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상위 지도기관의 ‘지도’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림 Ⅱ-1> 개성공단 사업 초기의 추진체계
관계부처 (재경부, 산자부, 건교부)
통일부 (개성공단 사업지원단)
북한당국 (북한특구총국)
개발사업자 (현대아산, 토지공사)
파견․협의 당국회담을 통한 지원
협력사업 승인 각종지원
협력사업 신청
이사회 참여
협의
공단 내 법적․제도적 지원 운영
사업 승인
사업결산 보고
입주기업
*공단개발 및 분양, 입주, 가동
개성공업 지구관리위원회
(북한법인)
*개성공업지구지원협회 (남한법인)
자료: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 개성공단 길라잡이(서울: 통일부, 2011), pp. 1~85.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사정으로 인해 남한정부의 참여가 이루어 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남한 정부는 관리기관(개성공업지구관리위 원회)의 강력한 후견인으로서의 역할과 지위를 확보했다. 이는 개성
6) 개성공단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 개성공단의 추진체계를 평가할 때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받는 포인트가, 공식적 상위 지도기관은 북한 당국(중앙특 구개발지도총국)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위 관리기관(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및 개발사업자는 남한 정부 및 기업으로만 이루어져 매우 비대칭적인 추진체계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공단에서 남북한 당국이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면적이 크게 확대되 는 구조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북한당국 또한 이러한 구조로의 변화를 다소 불편하게 받아들였 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정부의 당시 생각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2000년대 초중반 당시는 남북관계가 매우 양호할 때였 고, 동시에 남북한 당국 간 회담이 지속적으로 개최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비대칭적 추진체계는 큰 문제점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남북한 당국 간 회담 도 중단되는 새로운 상황에서 이런 추진체계는 커다란 문제점을 노 정했다.
(3) 개성공단 사업 방식에 대한 평가
개성공단의 사업 방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관리운영상의 문제이 고, 이 측면에서의 최대 문제점은 <그림 Ⅱ-2>와 <그림 Ⅱ-3>으로 압축할 수 있다.
2008년 이전에는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상위지도기관 이고 사실상 남한 조직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하위기관이라 는 비대칭적 추진체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체계의 문제점 은 크게 발생․표면화되지 않았다. 이들 조직의 상부에 있는 남북 당 국 간 회담이 자주 열리면서 상설기구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 문이다.
남북한 당국 간 회담이 개성공단 운영을 위한 실질적인 최상위 의 사결정기구의 역할을 수행했으므로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은 실무 차원의 의사결정기구 혹은 당국 간 회담 의결사항의 집행자 역할에 그쳤다. 물론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도 이러한 남북한 당국 간 실무회담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
총국이 법적으로는 상위기관이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남한의 카 운터 파트라 할 수 있는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과 자주 협의하 는 구조였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그 위상이 다소 애매하기 도 했지만 상부기관이라 할 수 있는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존재하고 제 기능을 수행했던 시기에는 실무적 역할만 수행하면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즉 2000년 이전은 ‘남북한 합의를 통한 공단 운
영’이라는 원칙이 대체로 지켜지던 시기로 평가된다. 동시에 개성공
단 관리운영에서 법․제도가 일정 수준 작동하던 시기로 평가 가능 하다.
하지만 2008년 이후에 상황은 크게 변했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 의 악화로 인해 남북한 당국 간 회담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는 개 성공단 추진기구의 입장에서 보면 상부의 최상위 의사결정기관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남한 의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이후 남북협력지구지원단 등으로 개 칭)이 사실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큰 변 화가 발생했다. 그런데 남북관계 악화 및 남북당국간 회담 중단 여 파로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남한의 통일부 개성공단사업 지원단은 졸지에 갈등관계로 전환하게 되었고, 따라서 개성공단 운 영을 위한 남북 간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개성공단의 법적 상위기관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려는 듯, 일방 통행적 운영(‘막무 가내 식’ 운영)을 하게 되었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입장에서는 상부 기관이 갑자기 사라진 여건 하에서 자신의 법적 상부기관인 북 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을 상대로 자신이 직접 협상을 해야 하 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상 역부족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