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현재의 남북경협 거버넌스의 특징
북한에서 남북경협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기관은 민족경제협력 위원회(민경협)이다. 이는 내각 산하로 되어 있지만, 노동당(통일전 선부)의 감독과 관리를 받는다. 민경협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 후 대남 경협을 활성화하기 위해 2004년 7월에 내각 산하의 장관급 기구로 출범했다.
민경협 산하에는 크게 보아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중앙특구개발지 도총국,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등 3개 조직이 존재한다. 이 중에 중 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개성공단을 담당하고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이 금강산 관광을 담당하며 나머지 일반물자교역, 위탁가공교역, 내 륙지역 투자사업 등은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가 담당하고 있 다. 민경련은 1998년에 설립되었으며, 중국 단동, 북경 등지에 대표 부를 설치하고 대남 경제협력사업의 실질적인 창구 역할을 수행하 고 있다. 민경련은 또한 대남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여러 개 회사를 두고 있다. 민경련이 남한기업들의 대북 교역 및 투자 사업을 실무 적으로 전담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실제 생산은 개별 기업이 담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73)
한편 남한 내에서는 1990년에 제정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에 근거해 남북 간 상호교류 및 협력에 관한 정책을 협의․조정하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통일부에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두고 있다. 이 협의회는 위원장 1인을 포 함한 18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통일부장관이 되며
73) 북한의 남북경협 관련 조직에 대해 보다 자세한 것은 예컨대 양문수 외, 2000년대 북한경제 종합평가 (서울: 산업연구원, 2012), pp. 400~402. 참조
협의회의 업무를 총괄한다. 위원은 차관 혹은 차관급 공무원, 그리 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민간전문가 중 국무총리가 위촉 또는 임명한다. 이 협의회는 △남북교류협력 정책 의 협의․조정 및 기본원칙의 수립, △각종 허가․승인 등에 관한 중 요사항의 협의․조정, △반출․반입 승인대상품목 등의 결정, △협력 사업에 대한 총괄․조정, △남북교류․협력의 촉진을 위한 지원, △ 관계부처 간의 협조추진 등의 사항을 의결․심의한다.
이처럼 남북경협과 관련된 모든 행정 처리 사항, 즉 북한주민접 촉, 북한방문, 남북교역, 남북협력사업자 및 협력사업 등에 대한 승 인, 남북협력기금 사용 등이 통일부에 집중되어 있다. 남북경협 추 진에 따른 관련 부서와의 정책협의, 관계 기관의 필요에 따른 협의 등은 수시로 이루어지지만 최종적인 결정을 위해서는 통일부 장관 의 승인 등이 필요하다. 따라서 통일부는 남북경협과 관련된 대민 업무부터 정책입안까지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경협에서는 공식적 행위자로서 통일부, 기획재정부, 산업통 상자원부, 국토교통부와 같이 다양한 중앙정부 부처, 그리고 중소기 업진흥공단, 산업단지공단 등과 같은 공공 기관, 아울러 한국토지주 택공사, 한국관광공사 등과 같은 공기업, 그리고 한국수출입은행 등 과 같은 국책금융기관, 또한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 무역협회 등과 같은 업계단체, 나아가 현대아산 등과 같은 민간기업 등의 다양한 행위자를 통해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따라서 행위자의 수, 행위자의 다양성, 행위자 관계의 복잡성이 다소 높다.
이와는 달리 행위자 간 자원의존관계는 집중적 구조를 보이고 있 다. 즉 중앙정부에 자원집중성이 있고, 참여기업은 이에 대한 의존 도가 매우 높은 형태이다. 중앙정부는 남북경협에 대해 법적 토대를 제공하는 한편, 각종 행위나 절차에 대해 인․허가권을 행사하며, 개
별기업에 대해 대북사업 승인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남북협력기금 의 지원을 비롯한 각종 정책적인 지원 등 기업 입장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자원을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관계이다.
사실 남북경협 거버넌스에서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행위자 는 기업이다. 남북경협의 당사자가 기업이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 하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남북관계의 특수성 등으로 인 해 북한과 제반 사항을 협의하고 각종 토대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정부 및 공공부문 행위자가 오히려 핵심적 행위자로 역할을 수행하 고 있다. 따라서 남북경협 거버넌스에서 네트워크의 자율성은 높지 못한 편이다.
이와 같이 남북경협 거버넌스는 네트워크의 복잡성은 어느 정도 높지만 자율성은 낮은 모형, 즉 ‘과점적 거버넌스’ 모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남북경협 거버넌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74)
나. 현재의 남북경협 거버넌스의 문제점
현재의 남북경협 거버넌스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원래 경제협력이란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거래 질서, 기업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북한체제와 남북관계 의 특성상 기업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매우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 라서 개별기업으로서는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커진다. 이에 따 라 기업 활동이 사업 외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을 우려가 커지고, 이 는 기업 활동의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확대시킨다. 현재의 남북경협 이 남북관계의 악화 등을 배경으로 전면 중단된 상황이 이런 문제점 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74) 과점적 거버넌스에 대해 보다 자세한 것은 양현모 외, 남북 교류협력 효율화를 위한 거버넌스 모형 구축(서울: 통일연구원, 2008), pp. 70~71. 참조
둘째, 남북경협은 기업 간 관계에서 독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 다는 점이다. 즉 남북경협 거버넌스에서는 선발기업의 독점적 지위 형성으로 인해 후발기업과의 네트워크 형성이 용이하지 않다. 선발 기업이 북한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후발기업이 네트워크에 새로 진입하는 데에 장애가 형성되어 있고, 따라서 네트 워크의 확장에 한계가 있다.
물론 시장경제원리가 완전히 작동하기 어려운 남북경협사업이 경 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점적 권리의 확보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상당수 기업들은 남북경협사업이 당장은 수익성을 확 보하지 못해도 일종의 시장 선점 효과를 겨냥해 초기에 투자하기도 한다. 따라서 후발기업들이 북한과의 경협사업을 추진할 때 선발기 업들이 유형/무형의 진입장벽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셋째, 남북경협 거버넌스에서는 기존에 기업 간 네트워크가 구축 되어 있어도 상호 호혜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즉, 네트워크를 통해 행위자들 간 자원의 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함에 따라 신규 참여기업들은 남북경협의 노하우를 전수받지 못하 고, 과다한 정보수집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남북경협과 관련된 정보는 표준화된 상태로 유통되는 것이 매우 드물다. 대북 사업을 위해서는 북한 현지에 대한 제반 정보가 필수 적이지만, 필요한 정보가 공개적으로 수집․유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각 기업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독자적으로 수집․분석해야 하는데, 중소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며, 수집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활용할 능력도 결 여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남북경협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판 단조차 어렵다. 이는 결국 남북경협사업이 효율적으로 입안되고, 추 진되는 것을 막는 주요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75)
넷째, 기업과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 기구)는 민간부문의 주요 행위자들로서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 지만, 때로는 서로 충돌되기도 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NGO가 전개하는 인도적 지원사업과 기업이 수행하는 경협사업 간 에 충돌이 발생하거나, 북한 측이 일방적 혜택에만 익숙하게 만들어 상업적 거래의 경협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기 때 문이다.
다. 남북경협 거버넌스의 개선 방향
이론적으로만 보면, 향후 남북경협 거버넌스는 자원을 분산시키 는 한편 자원의 상호 교환적 관계를 구축하여 자율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이상적인 남북경협 거 버넌스는 남북경협을 통해 시장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매개로 경쟁 력을 창출함으로써 서서히 시장 경제질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 하도록 육성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식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경협 관련 행위주체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자율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네트워크 거버넌스 모형’76)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북경협의 특성과 현재의 조건을 고려한다면 당분간 무조 건적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남북경협은 현재 시장의 논리가 완전하게 통용되는 공간 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외적인 요인들이 워낙 많아 기업의 행위 를 일정 수준 제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촉진하기 위해서도 정부
75) 김규륜 외, 남북경협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서울: 통일연구원, 2007), pp. 37~38.
76) 과점적 거버넌스는 네트워크의 복잡성은 높지만 네트워크의 자율성은 낮은 체제인 반면, 네트워크 거버넌스는 네트워크의 복잡성도 높고, 네트워크의 자율성도 높은 체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