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의 기술패권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군사와 경제 모든 면에서 명실 상부한 패권국으로 등장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다른 국 가들은 산업 기반이 모두 파괴되거나, 산업화 자체를 시작하지 못해 저 발전의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상대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적게 받았기 때문에 강력한 군사력, 대규모 시장, 거대한 생산능 력, 금융시설, 강력한 통화 등을 바탕으로 패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1945년 미국은 세계 산업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생산하였고, 전후 세계 무역의 약 1/3은 미국이 차지하고 있었다.38)
특히 미국 패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기술 산업의 경우
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월등히 압도하고 있었다.39) 1950년-1960년대에 이 르는 기간 동안 미국은 당대의 선도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우주산 업, 컴퓨터 산업, 반도체 및 전자산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전문 교육을 받은 과학자들과 공학자 등 풍부한 인적자원, 대학을 중심 으로 하는 연구기반, 민간 기업들의 우수한 혁신역량, 그리고 국방부 등 군 관련 정부기관들의 R&D 지원과 수요 창출 등을 바탕으로 세계 첨단 기술 산업을 이끌고 있었다.40) 예를 들어, 1955년 세계 전체의 제조업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6%를 기록하였는데, 기술집약적 상품의 경우에는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6%에 달하 였다. 이는 일본의 약 2% 서독의 약 18% 그리고 프랑스의 약 6%에 비 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41)
미국이 누리고 있던 기술적 우위는 다른 자료들에서도 구체적으 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 절에 있는 <표 2-2>을 보면, 1962년 미국의 첨단기술 산업의 수출 대비 수입의 비중은 약 22%로, 미국은 대 부분의 첨단기술 제품들을 수출하고 있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수치가 약 89%를 기록하였음을 감안하면 미국 선도부문에서 누리고 있던 우위 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첨단기술 산업에서 미국 기업들은 세계시장 판 매량의 무려 79%를 점하고 있었다(<표 2-3>). 첨단기술 산업에서의 비 교우위 수준을 지표화한 한 자료에 의해서도 미국이 누리고 있던 기술적 우위를 확인할 수 있다. <표 2-6>를 보면 1970-1973년 기간 동안 미국 의 비교우위 수준은 219%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일 본이 기록한 80%,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기록한 99%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38) Gardner, Richard N.. 1980. Sterling-Dollar Diplomacy in Current Perspective:
The Origins and Prospects of our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p. 178.
39) 패권국의 부상에 있어 선도부문이 가지는 이론적 중요성은 다음을 참조. Gilpin, Robert. 1987, pp. 65-117.; Modelski, George and Thompson, W. R. 1996, pp. 51-62.
선도부문이 미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U.S.
Department of Commerce, International Trade Administration. 1983. An Assessment of U.S. Competitiveness in High Technology Industries. (Washington D.C.: Department of Commerce), pp. 3-5.
40) Nelson, Richard R. 1990. “U.S. technological leadership: Where did it come from and where did it go?” Research Policy 19, p. 123.
41) U.S. Department of Commerce, International Trade Administration. 1983, p. 46.
전후 미국이 추진한 안보·경제 정책들은 이러한 미국의 우월한 구조적 위치를 바탕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패권이 수립한 우호적인 정치경제 질서 안에서 일본과 같은 국가들이 성장할 수 있었 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의 냉전이 본격화되자 미국은 자유주의 세 계경제를 추진하기 위한 정치적이며 전략적인 동기를 가지게 된다. 즉 미국의 입장에서 공산권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소련의 군사 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의 군사적·경제적 협 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미국은 자유주의 진영을 구 성하는 서유럽 및 일본 등과 동맹을 맺고, 이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경제 를 재건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미국은 안보의 부담을 짊어지는 동시에 자유 진영의 국가들에게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GATT 등의 제도를 통해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 자유무역을 촉진하고자 노력하였고, 일본과 같은 동맹국들의 산업화 발전을 지원하였다. 요컨대, 미국의 패권과 냉전의 요소가 만드는 우호적인 경제 환경 안에서 일본은 경제성장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42)
마찬가지로 미국은 소련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방 위 산업에 대해서도 동맹국과의 기술 협력 및 자유로운 무역을 적극적으 로 추진하였다. 무기의 기술 표준을 공유하게 되면 동맹국들이 자체적으 로 무기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나아가 이들과의 함 께 합동 군사 작전을 펼치기가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43) 따라서 GATT 의 규정에 국가안보의 목적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가 예외적으로 허
42) 전후 냉전기 미국의 자유주의 질서의 구축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 Pollard, Robert A.. 1985. Economic Security and the Origins of the Cold War, 1945-1950.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Ruggie, John Gerard. 1982. "International Regimes, Transactions, and Change: Embedded Liberalism in the Postwar Economic Order." International Organization, 36(2), pp. 379-415; 강근형. 2003. 『미 일관계의 정치경제: 미국의 패권과 일본의 도전』. (제주: 제주대학교 출판부), pp.
83-100. 일본의 발전에 대한 미국의 역할 및 미국 패권의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 조. Beckly, Michael, Yusaku Horiuchi and Jennifer M. Miller. 2018. “America’s Role in the Making of Japan’s Economic Miracle.”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18, pp. 1-21.; Calder, Kent E.. 2004. "Securing security through prosperity: the San Francisco System in comparative perspective" The Pacific Review. 17(1), pp.
135-157; 강근형. 2003, pp. 124-157.
43) Feldman, Jan. 1984. “Collaborative Production of Defense Equipment Within NATO.”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7(3), pp. 282-300.
용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이러한 규정을 적용하는 경우 가 매우 드물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무기와 관련된 신기술을 일본 에 이전하는 등 동맹국들과 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