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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1980년대 들어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진주만 공 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 깊숙이 일본을 위협으로 간 주하는 ‘노란 적(yellow peril)’ 담론이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적이 소련으로 바뀌면서 일 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상당 부분 희석되었다. 오히려 전후 일본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일부에서는 일본의 ‘경제적 기적’을 동경하 는 인식도 나타났다. 요컨대 198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인 식은 ‘노란 적’과 ‘경제적 기적’의 이미지가 병존했다고 할 수 있다.65)

64) ‘민군겸용기술(dual-use technology)의 속성과 군사부문과 상업부문과의 연관성에 대 한 상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Alic, John et al, 1992, pp. 54-81; Vogel, Steven.

1992. "The Power behind "Spin-ons": The Military Implications of Japan's Commercial Technology" In Sandholtz, Wayne et al. (eds.). The Highest Stakes:

The Economic Foundations of the Next Security System, 55-80.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p. 60-64. 특히 미 의회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군사부문과 민간 산업 기반과의 관계를 시각화하여 직관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다음을 참조.

U.S. Congress, 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 1991b. Redesigning Defense:

Planning the Transition to the Future U.S. Defense Industrial Base..

OTA-ISC-500.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p. 40.

65) 80년대 이전까지 미국의 對 일본 인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을 참조. Miller, John H. 2014, pp. 93-119.; Morris, Narrelle. 2011, pp. 14- 29.

그러나 선도부문에서 미국의 경쟁력 상실이 본격적으로 수면에 부상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에 들어, 일군의 학자, 전·현직 관료, 기 업가, 그리고 정치인들은 일본의 부상이 야기하는 경제적·군사적 위협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야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8월 미국의 한 주간지인 Business Week에서 이들의 주장을 ‘수정주의(revisionism)’라고 명명하면서 이후 이들은 수정주의자 들로 알려지게 되었다. 수정주의자들은 전통주의라고 할 수 있는 기존의 지배적 자유주의 담론을 비판하면서 도전하였고, 이들의 주장은 미국 정 부의 대내·외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66)

특히, '4인방(Gang of Four)'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전문가 집단 의 논의가 수정주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4인방’은 정치 경제학자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레이건 행정부 무역 관료 클 라이드 프레스토비츠(Clyde Prestowitz), 저명한 기자였던 제임스 팔로우 스(James Fallows)와 칼 반 울프렌(Karel van Wolfren)을 지칭한다. ‘4 인방’의 논의는 지속적으로 미국의 전문가들 및 정책결정자들에게 영향 을 미치며, 새로운 정책 접근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미 무역대표부(USTR: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관료였던 후 쿠시마(Glen Fukushima)는 이들의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1985년에 제가 USTR에 합류했을 무렵, 무역 협상에서 일본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 일본을 상대하는 것이 다른 산업화 된 선진국들을 상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통산성(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66) 수정주의적 주장들은 미국에서 일본과의 통상문제가 격화되기 시작한 8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미국 사회 내에 상당한 지지 를 얻고 있었다. 80년대 후반 및 90년대 초반에 들어서는 수정주의적 이념이 미국 정책 에 상당 부분 반영되게 된다. 수정주의자들은 ‘현실주의자(realist)', '무역 매파(trade hawks)', ’흑선집단(Black Ship group)'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본 연구에서는 통일 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을 포괄적으로 ‘수정주의자’라고 지칭한다. ‘수정주의자’로 분류 되는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후술할 ‘4인방(Gang of Four)’을 비롯하여 민주당 하원의원 게파트(Richard Gephart), 공화당 상원의원 덴포스(John C. Danforth), 레이건 행정부의 수석보좌관 베이커(Howard H. Baker), 부시 행정부 무역대표부 관료 후쿠시마(Glen Fukushima). 클린턴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dvisors) 위원장 타 이슨(D'Andrea Tyson), 정치경제학자 초트(Pat Choate) 등이 있다. 수정주의자에 포함 되는 인물의 범위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Morris, Narrelle. 2011, p. 35

Industry)을 다룬 찰머스 존슨의 책이 사람들에게 더욱 진지 하게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그리고 프레스토비츠, 저명한 기 자였던 제임스 팔로우스와 칼 반 울프렌이 각각 Trading Places, The Enigma of Japanese Power를 집필하기 전까지, 그리고 짐 팔로우스가 The Atlantic Monthly에 자신의 논문 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일본을 상대했던 미 관료들의 경험이 체계적이고 신뢰할만한 방법으로 공고화되고 체계화되지 않 았습니다.67)

‘4인방’을 필두로 미국 내 학자, 전문가, 전직관료, 국회의원, 기 업가 등 사회 각계 층에서 수정주의적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특히 브루스 스캇(Bruce Scott)과 조지 롯지(George Lodge)와 같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arvard Business School)의 연구자들, 그리고 존 자이스 먼(John Zysman), 마이클 보러스(Michael Borrus), 스테판 코헨(Stephen S. Cohen), 로라 타이슨(Laura Tyson)과 같이 국제경제에 관한 버클리 라운드 테이플(BRIE: Berkely Roundtable on International Economy)의 연구자들이 수정주의 이념의 대표주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수정주의 이념이 하나의 통일되고 일관된 주장들로 이루어진 것 은 아니다. 수정주의자들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넓은 범위만큼이나 이들 의 주장도 매우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 본의 부상이 미국의 장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한 다. 특히 이들은 민군겸용기술의 속성을 지닌 주요 첨단기술 산업에서 일본이 우위를 점할 경우,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안보는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이 보기에 일본은 적은 아니었으나, 일본의 경제정 책과 관행은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런 위협인식을 바탕으로 수정주의자

67) 후쿠시마 인터뷰, 재인용: Kunkel, John. 2003, p.134. 필자번역. 원문은 다음과 같다.

“By the time I joined USTR in 1985, those people who are dealing with Japan on trade negotiations … knew that dealing with Japan was different from dealing with other advanced, industrialized trading partners.

But codification and crystallization of these experiences was not done in a systematic and credible way until Chalmers Johnson's MITI book was taken more seriously, Clyde Prestowitz worte Trading Places, Karel van Wolferen came out with The Enigma of Japanese Power and Jim Fallows wrote his articles in The Atlantic Monthly."

들은 미국의 경제정책들이 ‘수정’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위협을 부각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 담론에 도전하게 되었다. 다음에서 는 이러한 안보 담론의 구페적 내용을 경제적 측면과 군사적 측면으로 나누어 세부적으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