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동아시아 전략환경 변화와 한국의 대응
2016년 7월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의 대통령 후보지명 수락 연설에서 트럼프는 글로벌리즘이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역설했다.6) 2017년 1월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트럼 프는 미국 우선주의의 민중주의적 수사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집권이 단 순히 공화당으로의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워싱턴의 기득권으로부터 민 중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원인은 두 가지이다. 워싱턴의 기득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민중을 희생시켰고, 글로벌리즘을 미국 인의 이익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7)
취임 이후 트럼프는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에서 시작해서, 5월 하 순 최초의 해외순방에서는 사우디 왕정의 인권문제에는 눈감고 대테러 협력을 강조하는 한편 나토(NATO)의 집단안보 공약을 재확인하기는 거부하고 유럽동맹의 방위부담을 비판하더니, 귀국 이후인 6월 1일에는 파리기후협약에서의 탈퇴를 선언했다. 즉각적으로 미국 패권의 핵심적 인 가치와 다자주의 리더십을 포기하는 ‘(미국 패권의) 역사에 대한 모욕’
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8)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7월 폴란드를 거쳐 독일 함부르크의 G20 회의에 참석한 것이 트럼프의 두 번째 해외 순방이었다. 민주주의 후퇴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받고 있는 폴란드에서 트럼프는 미국 패권의 예의 민주주의 옹호는 하지 않으면서 테러 등의 위협에 맞서 서구를 수호 하자고 외쳤고, 정작 확장된 서구의 협의체라고 할 수 있는 G20 회의에 서는 환경문제 등으로 나머지 19개국과 불화했다.9)
6) “Donald Trump’s Dark Speech to the Republican National Convention, Annotated,” The Washington Post, July 21, 2016.
7) “Donald Trump’s Inaugural Address: Full Text as Prepared for Delivery,” The Washington Post, January 20, 2017.
8) “Donald Trump’s Insult to History,” The New York Times, May 31, 2017.
9) “G20 Summit: ‘G19’ Leave Trump Alone in Joint Statement on Climate Change
그리고 9월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는 취임사의 골간이었던 미국 민중 과 워싱턴의 대립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와 글로벌리즘의 대립을 주권의 대내외적 책임으로 발전시키고, 이에 근거하여 유엔의 관료주의를 비판 하고 주권의 대내외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정권들로 북한과 이란, 베네 수엘라를 지목하고 이들에 맹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특히, 핵과 미사일
‘도발’로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던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과 동맹에 대한 위협을 계속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평화와 다자주의의 전당인 유엔을 주권 원칙의 천명과 전쟁 위협의 선전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10)
트럼프의 대북 위협 발언에 대해서 북한 역시 태평양 상공에서의 수소 탄 실험 가능성 등의 위협으로 맞섰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막말이 한반도 의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자, 문재인 정부는 전쟁 방지를 위해 미국의 요 구와 대북압박에 보조를 맞추면서 한반도 평화의 운전석에 앉아서 한반 도의 영구한 평화체제를 건설하겠다는 집권 초기의 원대한 포부에서 크 게 후퇴했다.11)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의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평화구상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 평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당장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우리에게 시급하고도 엄중한 과제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우선 트럼프가 문제 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그 수반인 트럼프의 사고와 말을 통하지 않고는 분석할 수 없다. 그런데 그가 대외정책이든 국내 경제정책이든 잘 조율된 정책 패키지를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것이
– As It Happened,” The Guardian, July 9, 2017.
10) “Trump’s First Speech to the United Nations was a Disastrous, Nationalistic Flop,” The Washington Post, September 19, 2017.
11)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미에…문 대통령 ‘전쟁 방지’ 올인,” 경향신문, 2017.09.24.
사실이고, 그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정책결정 스타일을 고려할 때, 미 국 우선주의를 비롯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분석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미국 우선주의의 분석을 위해서는 트럼프라는 변수가 우선 설명 혹은 해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주류 엘리트들은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현상’은 중산층의 붕괴는 물 론 백인 인구의 감소 추세 및 이와 맞물린 테러와 이민, 난민 문제의 착종 등 다양한 원인에 기인했다. 이들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파 악하지 못한 미국의 주류 엘리트들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즉, 미국의 기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패권체제의 실체에 대한 ‘올바 른’ 역사적, 이론적 시각이 정립되어야, 트럼프 개인의 변수가 설명되고 그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의 주류 엘리트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고, 미국 주류의 인식을 직수입하거나 내재화하고 있는 한국의 대다수 미국 전문가들과 학계 역시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과 그 함의를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 이 러한 이론적, 역사적 시각의 문제에 더하여, 현실 국제정치와 미국 정치 의 유동성이나 불확실성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체계적 분석 의 장애가 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해명하는 데 필요한 과제는 두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 패권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분석으로, 이는 다시 트럼프로 인해 드러난 미국의 인종주의나 중산층의 몰락 등의 미국 자체 에 대한 분석과 함께, 냉전의 종언 이후 단극시대의 규정이 제대로 포착 하지 못한 미국 패권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과 제는 실천적, 정책적 차원에서 대선 운동 과정에서부터 취임 이후 트럼프 의 미국 우선주의의 수사와 담론을 면밀하게 추적하여, 그 실체를 확인하 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