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전략과 한반도 정책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동아시아 전략환경 변화와 한국의 대응
탈냉전기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은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전략으로 대표되어왔다.47)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미국의 전통적·비전통적 안보위협의 해소와 이익의 실현이 자유주의적 이념·
가치 및 경제질서의 확산·유지와 밀접하게 상호 연관된다고 인식하면서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확장과 방어를 추구하는 개입주의 전략이다.48) 냉 전 종식 이후 소련이라는 주된 위협이 사라짐에 따라 미국의 대전략 논쟁 은 다른 한편에서는 고립주의 또는 선택적 개입주의가 주장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전개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상 대적으로 적극적인 개입주의 전략인 자유주의 패권으로 수렴되어 나타 나기 시작했다.49) 그 후 민주당 또는 공화당 집권기의 대외전략은 모두 자유주의 패권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전개되어왔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까지 약 20년간 지속되어 온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뚜렷한 퇴조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면서 미국 자신의 경제·안보적 이익의 확보에 주된 관심을 두는 가운데,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구축과 관리가 곧 미국의 이익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트
47) 미국이 자유주의 패권 질서(liberal hegemonic order)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그러나 냉전 시기에 그 질서의 구축 공간은 제한적이었으며, 소련 의 영향력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봉쇄(containment)’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글에서 는 자유주의 패권이 탈냉전기 미국의 전략을 대표한다고 기술한다. G. John Ikenberry, Liberal Leviathan: The Origins, Crisis, and Transformation of the American World Order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 Barry R. Posen, Restraint: A New Foundation for U.S. Grand Strategy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14).
48) 김상기, “트럼프 시대 미국 대전략의 전환과 동아시아·한반도 정세 변화,”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CO 17-03, 2017.01.25.); 김상기, “미국의 대안적 대전략: 자제?,” KINU 통일플러스, 제1권 4호 (2015), pp. 63~77; G. John Ikenberry, Liberal Leviathan:
The Origins, Crisis, and Transformation of the American World Order; Barry R. Posen, Restraint: A New Foundation for U.S. Grand Strategy.
49) 포센(Posen)은 탈냉전기 미국의 대전략 논쟁을 대외개입의 수준과 방식에 따라 고립 주의, 선택적 개입주의, 협력안보, 우위의 네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Barry R. Posen, Restraint: A New Foundation for U.S. Grand Strategy.
럼프 행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전통적 패권전략 에 반한다.50) 자유무역질서의 확장과 관리가 아닌, 공정함으로 포장되지 만 보호무역 색채를 강하게 띤 경제적 민족주의가 미국 대외전략의 중요 한 특징으로 부상하고 있다.51) 군사·안보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다 자적 협력과 동맹체제의 강화 및 관리보다는 상대적으로 자국의 군사력 강화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52) 때로는 동맹도 경제적 거래의 대상으 로 인식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트럼프는 정권교체를 위한 대외개입 과 국가건설 지원의 중단을 선언한 바 있으며,53) 틸러슨 국무장관은 5월 3일 국무부 전 직원 대상 연설에서 자유와 인간존엄은 미국의 가치이지 만 정책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가치에 준한 대외정책 결정은 미국의 안보·경제적 이익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54)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전통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이러한 인식은 트럼프가 지난 9월 19 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주권의 원칙을 강조하고,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외정책에 있어서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 이라고 밝힌 데서도 다시 확인된다.55)
50)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우선주의의 반(反)패권적 특성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 명은 이 보고서의 Ⅱ장 참조. 또한 다음 논문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미 국이 추구해 온 자유주의 질서에 반하는지를 설명한다. G. John Ikenberry, “The Plot Against American Foreign Policy: Can the Liberal Order Survive?.”
51) 이혜정, “어떻게 불구국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 미국 우선주의, 백인 우 선주의, 그리고 트럼프 우선주의,” pp. 9~50.
52) 김상기, “트럼프 시대 미국 대전략의 전환과 동아시아·한반도 정세 변화.”
53) ABS News Youtube Channel, “Trump Thank You Tour Full Speech at Ohio Rally,”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PBqIUF-cdgY> (검색일:
2017.07.12.).
54) U.S. Department of State. “Remarks by Rex W. Tillerson to U.S. Department of state Enployees,” (May 3, 2017) <www.state.gov./secretary/remarks/2017/
5/270620.htm>.
55) The White House, “Remarks by President Trump to the 72nd Session of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September 19, 2017) <http://www.
whitehouse.gov/briefings-statements/remarks-president-trump-72nd-sess ion-united-nations-general-assembly>.
이와 같은 자유주의 패권의 퇴조와 미국 우선주의의 부상은 트럼프 행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시사한다. 중요한 관심의 초점은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의 ‘상표’이자 또한 한반도 정책을 상당부분 규정했던 ‘재균형 전략(rebalancing strategy)’의 퇴 조 가능성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의 동아시아 전략을 위해 재균 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지만,56) 중요한 것은 전략의 명칭이 아닌 내용이다.
기존의 어떤 연구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은 사실상 재균 형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주장은 주로 중국의 부상이 촉진하는 국제적 힘의 분포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 그리고 자유주의 패권 의 관성에 근거한다.57) 물론 패권의 관성과 국제 구조적 요인이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그 자체로 미국 패권의 관성과 배치되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찰되는 동아시아 전략에 국제 구조 적 요인이 지배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본 연구 는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재균형은 단지 부분적으로 그 의 미를 지속하거나 또는 퇴조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한반도 정책도 오바마 행정부 시기와 비교하여 적지 않은 차이를 지닌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본 연구는 우선 트럼프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을 군사·안보와 경제 측 면에서 각각 분석한다. 다음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즉 대 북정책과 대한정책을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
56) U.S. Department of State, “A Preview of Secretary Tillerson’s Upcoming Travel to Asia by Susan A. Thornton,” (March 13, 2017) <https://fpc.
state.gov/208444.htm>.
57) 김성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한미관계의 방향,” pp. 11~28; 최우선, “트럼프 행 정부의 아시아정책 전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주요국제문제분석 2016-54 (2017.01.11.), pp. 1~25; 정구연, “트럼프 대외정책기조와 동아시아 안보지형의 변 화 전망: 재균형 정책의 진화를 중심으로,” pp. 25~49.
과의 비교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 동아시아 전략과 한반도 정책의 변화의 내용과 특징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9개월이 지난 2017년 10월 현재까지 동아시 아태평양 차관보를 비롯해서 여러 중요 인사들이 아직 새롭게 선임되지 않은 채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백악관 핵심직위(예, 국가안보보 좌관)의 인사들이 단명한 채 교체되기도 했고, 전략의 분석을 위해 이용 가능한 정부 자료도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반도 정책을 분석하고 주요 특징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 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가 있지만, 본 연구는 최근까지 공개된 미국 정 부의 자료,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의 각종 연설과 인터 뷰 내용, 그리고 학자·전문가들의 선행 연구 등을 활용하여 트럼프 행정 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반도 정책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