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통일 거버넌스 ’ 효율화 방안
2. 북한보도와 자유주의 보도규범
가. 남북공존시대의 북한보도 규범
공존과 화해, 포용,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강조하는 북한보도 패러다임 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그러한 패러다임이 민족의 정서를 반영하고 남북 양측의 공통이익을 위해 기여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화해와 공존의 보도규범뿐 아니라 보도 의 자유, 보도의 다양성, 보도의 객관성 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보도규범 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문제는 화해와 공존을 강조하는 보도규범 과 우리가 지금까지 이상적으로 여겨왔던 자유주의 보도규범이 현실세계 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간의 언론교류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이 두 규범들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게 될 것이다. 발제자는 이런 문제를 세 가지 쟁점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북한당국의 남한언론에 대한 통제전략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정상회담 이후에 나타난 북한당국의 남한언론 통제방식은 차별적 배제와 차별적 포섭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 언론이 북한을 호의적으로 보도해 주기를 바라는 북한당국은 남한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일차적인 수단으로 북한 현지정보나 취재대상에 대한 접근권 허용여부라는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이미 북한은 언론사 사장단 혹은 언론인의 방북초청이나 입북허가과정에서 특정 신문사를 제외함으로 써, 혹은 특정언론사에게 교류관련 행사를 허가하거나 취재활동의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차별적 배제 및 차별적 포섭에 입각한 언론통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자유주의 언론관을 수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북한이 사용하고 있는 이런 유형의 언론통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자유주 의 언론규범에 충실하다면 물론 항의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당국에 항의하거나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보도는 그에 따른 대
가를 지불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당사자가 아닌 언론사(인)는 이런 문제의 언급을 회피할 수도 있다. 북한취재기자는 북한당국의 취재원에게 자유롭 고 개방적인 보도를 요구할 것인지, 아니면 취재편의를 제공받기 위해서 취재원의 통제정책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만 보도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하겠다.
둘째, 사실에 기초하고 사실을 철저히 확인하는 객관보도관행에 충실해 야 한다는 취재 및 보도규범을 따르다 보면 공존과 화해분위기를 훼손할 수 있는 북한정보를 입수하게 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 족시켜야 한다는 규범과 공존, 화해분위기를 유지할 필요성이 충돌할 경우 언론인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주 창윤71도 이런 맥락에서 ‘저널리즘의 실천윤리’를 지키는 보도와 ‘민족이념 지향성’ 보도로 구분하고 신문의 남북문제 보도는 사안에 따라 두 기준을 다른 수준으로 적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일례로 북한을 방문한 남측 기자가 북한주민들의 인권억압 실태를 관찰 할 기회를 얻었다고 했을 때 이를 기사화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 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즉, 화해분위기를 고려하여 자기검열을 실행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인지, 아니면 있는 실상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개별 언론사나 언론 인 개인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판단이 존중되어야 할 것이지만 뉴스가치가 높은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취재원과의 우호적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자기 검열을 작동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셋째, 정상회담 이후에도 남한의 신문들은 북한문제의 보도에서 시각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간의 시각 차이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방향 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세력들간의 이념적 노선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비전향장기수 처리문제와 국가보안법 개폐문제 등에 관해서 조선, 중앙, 동아가 한 축을
71주창윤, “북한관련 보도의 반성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 남북화해시대 통일 을 위한 방송의 역할, 2000년 8월, 한국언론정보학회.
이루고 한겨레 등이 정반대의 시각을 보이면서 다른 한 축을 지탱하고 있 다. 시각의 다양성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신장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자유주의 언론관 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하겠다. 다양한 시각의 북 한관 혹은 통일관이 존재하는 한 언론은 다양한 관점에서 북한문제를 다룰 것이며, 언론이 정부의 북한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원 칙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정책에 관한 국론통일이나 의견수렴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하고 북한과의 협력과 교류를 지속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당국은 보도시각 의 다양성(북한에 비판적인 보도시각)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현상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보도의 다양성 증가와 원만한 교류협력이라는 두 목표가 내적 모순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아직 반공주의 를 주장하는 보수세력이 존재하는 한 남북관계 보도에서도 시각의 다양성 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새로운 환경에 맞도록 화해, 포용정책에 입 각한 보도이념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설 수 있다고 본 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한신문의 북한보도에 대한 평가도 평가자의 이념적 위치에 따라 엇갈리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72
이미 언론보도에 드러난 반공주의는 더 이상 ‘합의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이제는 ‘논쟁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본다.73 이와 마찬가지로 일탈영역으로 분류되었던 좌파적 사상도 논쟁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경향 을 보이고 있다. 일단 뉴스의 소재가 논쟁영역으로 규정된다면 시각의 다 양성을 수반하기 마련이며 이것은 공정보도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이렇 게 볼 때, 북한보도와 관련하여 남한 언론의 이념적 시각 허용범위가 확장 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걱정할 일이 되지 않는다. 남한 사회 내에 존재
72장호순(2000)은 정상회담 이후 신문의 북한문제 보도에 대해 학자나 언론인들이 엇갈리는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들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73할린(Hallin, 1986)은 월남전의 보도경향을 연구를 통해 보도소재를 합의영역, 논 쟁영역, 일탈영역으로 분류하고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동일사건이라도 영역 간의 이동이 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다.
하는 다양한 시각을 공표함으로써 다각적으로 사고해 본 성숙한 국민들은 남북관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합리적 의견을 정립하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북한 보도 규범과 관련된 혼돈과 모순은 대립적 이데올 로기의 충돌과정에서 겪게 되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런 혼돈과 모순은 남한의 언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래 전에 개방의 길로 접어든 중국 언론이 개방초기 시장제도에 적응하지 못해 심각한 혼돈 과 모순에 빠졌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북한 언론이 겪게 될 혼돈은 더욱 충격적일 수 있다. 체제나 이념의 차이는 감정적 호소나 강요 혹은 은폐에 의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남한 내의 차이와 남북간의 차이를 알고 이에 관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매체공간이 늘어나는 것이 바람 직하다고 본다.
나. 북한당국의 남한 언론통제 정책
북한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언론모델을 수용하고 있으며, 이를 주체사 상에 적용하여 독자적인 사회주의 언론모델을 구축해 냈다. 따라서 북한언 론은 북한 노동당의 엄격한 통제아래서 사회주의체제를 유지, 완성하기 위 한 선전, 선동, 조직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남한의 자 유주의 및 자본주의 원칙과는 융화하기 어려운 나름대로의 언론철학을 지 켜왔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간의 교류가 증가하고 있지만 북한당국은 여 전히 언론의 선전, 선동기능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남한 언론을 통해 북한 사회를 효과적으로 선전하는 활동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북한당 국은 북한에 입국하는 남한의 언론인과 취재진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정립시켜 놓았다고 하겠다. 북한 당국의 남한 언론에 대한 통제 정 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한측 언론인에 대한 입국허가는 ‘누가 북한사회에 접근할 수 있 는가’를 규정하는 통제조치라고 하겠다. 남북한간의 언론교류는 대부분 남
북한간의 중대한 행사를 취재하기 위한 것인데, 북한에서 열리는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서 남한의 언론인들은 입국허가 신청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
북한은 가능하면 방북하는 취재진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방북기자단의 허가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북한에 적 대적인 보도를 하는 남한 언론매체 소속의 언론인에 대한 방북을 거부하거 나 풀기자단에서 제외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 당시 조 선일보 기자의 방북허가가 문제된 적이 있었다. 개별 언론사가 북한을 방 문하려면 우선 북한당국의 초청장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에도 북한에 적 대적인 언론사 소속 언론인들은 초청장을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74
둘째, 일단 북한에 들어간 후에도 남한의 기자들은 취재활동 제한을 감 수해야 한다. 사전에 예정된 지역과 인사 그리고 주제만을 대상으로 취재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에 사전에 정해진 계획조차도 지 켜지지 않는 수가 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북한당국과 협의한 적 이 있는 남측의 관계자는 북측이 “북한에 부정적인 내용을 취재, 송고해서 는 안되며, 허가받은 장소외에 접근할 수 없으며,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들어있는 필름을 훼손해서는 안되고, 안내원의 안내없이는 주민들과 접촉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75
셋째, 개별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남측의 언론인에 대해 북한 당국의 검 열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방북 경험이 있는 언론인들은 북 한 당국이 사진과 비디오자료는 빠지지 않고 반드시 검열한다고 밝히고 있
다. 1998년 리틀엔젤스의 평양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세계
일보의 한 기자는 “안내원이라고 불리우는 담당자들이 북한에서 찍은 사
74개별 방북 취재의 경우 북한 당국에서 금품 및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개 별 방북경험이 있는 기자에게 방북허가 조건으로 금품요구를 받은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그 기자는 “거액의 현금 및 현물 대가를 지불했다”고 응답했다(천시 영, 2002).
75천시영, 북한의 외국 언론 통제유형과 방식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