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탈냉전 전환기 유럽안보환경의 특징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독일 통일,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소연 방의 해체 등으로 상징되는 냉전 종식은 유럽의 안보환경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안보환경은 지구화 및 탈국 가화 과정의 결과로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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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적 관계의 상이한 유형과 국내의 사회‧
경제적, 그리고 정치‧
문화적 발전의 상이한 과정들로 특징화된 3개 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나누어졌다.142) 즉, 서유럽으로 대변되는 안정 된 평화지역인 핵심지역(core zone), 역사적으로 유럽의 문화적‧
지 적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유럽으로의 복귀에 강한 열망을 보 이고 있는 중유럽 중심의 중간지역(intermediate zone),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적 정체성이 혈연과 영토의 측면에서 정의되고, 종종 소수141) 이수형, “미국과 EU의 안보갈등,” 안병억 외, 미국과 유럽연합의 관계(서울: 서울 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pp. 209~210.
142) Adrian Hyde-Price, “European security in the twenty-first century: towards a stable peace order?” in New security challenges in postcommunist Europe:
Securing Europes’s East, eds. Andrew Cottey and Derek Averre (Manchester and New York: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2), pp. 190~212.
공동체에 대한 불관용과 국가건설이 정치적 의제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동유럽과 발칸지역의 외부지역(outer zone)이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안보상황은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 이면서 복잡하고 모호하며, 통합과 분열, 협력과 갈등, 그리고 동질성 과 다양성 등 상호 모순적인 양상이 나타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핵심지역인 서유럽에 있어서는 다원주의적 안보 공동체(pluralisitc security communities)가 형성되었다. 도이취(Karl Deutsch)에 의하면, 다원주의적 안보 공동체 내에서는 2개국 이상의 국가들이 많은 거래 와 거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갖고 있으나 반드시 협력을 위한 공식 적인 기구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원주의적 안보 공동 체의 특징은 단위들 간의 모든 관계가 평화롭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이며,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억지, 위협, 그리고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협, 회피, 및 재정에 의하여 해결된다는 것이다.143)
냉전 종식 이후 서유럽 국가들의 안보 행태는 안보 거버넌스(security governance)에 입각해 있었다. 안보 거버넌스는 상호 영향을 받는 대다수 국가들의 승낙에 기초한 의도적인 규칙체계로서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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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 적인 규제 메커니즘을 통해서 안보 범위와 안보와 관련된 쟁점 영역 에 걸친 행위들의 거버넌스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안보 거버넌스 구도에서는 공고한 위계주의와 억압보다는 협상과 조정, 그리고 참여 가 중요시된다.144) 따라서 서유럽 국가들은 이제 더 이상 서로를 잠143) K. J. Holsti, International Politics: A Framework for Analysis, 곽태환‧김왕헌 역, 국 제정치학: 분석의 틀(서울: 박영사, 1990), pp. 675~678; James E. Dougherty and Robert L. Pfaltzgraff, Jr., Contending Theories of International Relations: A Comprehensive Survey (New York: Harper Collins Publishers, 1990), pp. 435~437.
144) Mark Webber, “Security governance and the excluded states of postcommunist Europe,” in New security challenges in postcommunist Europe: Securing Europes’s East, eds. Andrew Cottey and Derek Averre (Manchester and New York: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2), p. 44.
재적 위협국가로 인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호에는 제로섬 게임의 안보 딜레마나 지정학적 경쟁논리에 입각한 세력균형의 두려움을 해 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안보환경에서 주된 안보위협은 전통적 안보 성격과는 다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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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회적 곤경에서 파생되는 인종분규와 영 토분쟁 등이었으며, 그것은 중간지역과 외부지역에서 연유하였다.즉, 냉전 이후 유럽의 주된 안보위협은 난민과 이민, 인권유린 등의 비전통적 성격의 안보 문제였다.145) 냉전의 안보성격과는 다른 비전 통적 안보위협은 다면적이고 전 방향에서 분출되는 것으로 예측과 평 가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통적 안보위협은 어느 한 국가의 권 력으로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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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될 수 없다. 그러므로 냉전 종식 이후 유럽안보환경 에서 가장 핵심적인 안보 문제는 유럽의 중간지역과 외부지역에서 발 생하는 불안정 등을 관리하는 방법과 더불어 이들 지역으로 안보 거 버넌스를 어떻게 확산시켜 나갈 것인가의 문제였다.나. 유럽 대륙의 통합과 신안보체제의 형성
냉전 종식 이후 핵심지역과 중간지역, 그리고 외부지역으로 구획되 었던 유럽의 안보질서는 적어도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하나의 유럽으로 통합되어 그 어떤 지역에서도 목격할 수 없는 평화롭고 안정된 새로운 안보체제를 형성하였다. 더군다나,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에도 오늘날 유럽의 신안보체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역내 국가들 간의 안 보적 행위가 매우 투명하고 예측가능하다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은 어떻게 분단국 독일의 통일 차원을 뛰어넘 어 대륙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는가? 냉전 종식 직후 서로 상이한 안
145) 이수형,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 안보, p. 171.
보위협과 안보환경을 보여주었던 유럽의 세 지역이 어떻게 안보 공동 체와 안보 거버넌스에 입각해 작동하는 새로운 신안보체제로 통합될 수 있었는가?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이 혼란과 불안정, 그리고 과도기적 안보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안보체제를 형성하여 안정적이고 평화 로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이나 원인은 힘의 전 환에 따른 미국의 나토 확대정책, 냉전시대에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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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해 온 다양한 안보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유럽에 새로운 안보체제를 구축하 는 방향으로 상호 협력적 경쟁을 벌여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무엇보다도 먼저, 힘의 전환에 따른 미국의 나토 확대정책이다. 강 대국 권력정치의 관점에서 냉전 종식은 세력균형의 붕괴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미국과 소련의 팽팽한 힘의 균형이 냉전체제의 근간이었다 면, 소련의 붕괴를 동반한 냉전체제의 해체는 미국으로의 힘의 급격 한 경도라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냉전의 양극체제에서 냉전 종식 이후 일극체제로의 변화는 미국이 자신의 압도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 로 나토의 동진정책 혹은 확대정책을 수단으로 하면서 서유럽의 안정 과 평화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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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으로 확산시켜 나간 것이 유럽의 새로운 안보체 제 구축에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던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중‧
동유럽의 혼란과 불안정을 극복하고 서유럽의 안보 거 버넌스를 유럽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한 미국의 주요 정책수단으로 등 장한 미국의 나토 확대정책은 이중 확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즉, 중‧
동유럽으로의 확대라는 지리적 확장뿐만 아니라 나토의 방위영역을 넘어서서 활동하는 동맹의 군사적 임무 확대라는 기능적 확장이었다.146)146) Ronald D. Asmus, “Double Enlargement: Redefining the Atlantic Partnership After the Cold War,” in America and Europe: A Partnership for a New Era, eds.David C. Gompert & Stephen Larrabe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참조; 이수형 역, 미국과 유럽의 21세기 국제질서(서울: 한울아카데 미, 2000), pp. 44~81.
한편, 미국의 나토 확대정책과 관련하여 지난 냉전시대 유럽 진영 의 안보구도는 역설적으로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신안보체제를 형성 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 냉전체제는 진영 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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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이데올로기 적 대립으로 상징되었고 이러한 진영구도는 냉전시대 유럽의 안보구 도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지난 냉전시대 유럽의 안보환경은 국가 조 직이념이나 정치‧
경제체제의 우월성을 두고 진행된 집단 간 경쟁이 라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소련의 붕괴를 동반한 냉전 구 도의 해체는 다른 의미에서 진영구도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하였다.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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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지역으로의 나토 확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진영구도를 강화한 것이며, 이것이 유럽의 신안보체 제 구축을 용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냉전 종식 이후 유럽에 새로운 안보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던 또 다 른 배경이나 요인으로 다양한 안보제도의 작동을 들 수 있다. 지난 20 세기의 국제관계는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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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중첩적 상호작용 의 산물로 규정될 수 있었다.147) 특히,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대전과 냉전이 유럽의 국제정치에 미친 긍정적 요인은 부정적 요인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민족주의를 희석시키고 협 력과 조화를 기반으로 하는 다자주의적 행위양식을 습관화‧
제도화하 고자 하는 노력과 정책 추진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러한 과정은 냉전 종식 이후에도 유럽의 국제정치에서 현저했으며, 결과적으로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신안보체제를 형성하고 이를 발전 시켜 나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요컨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오늘 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발전은 그것이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상관없이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지정학적 경쟁논리를 종식시키기 위147) 이수형‧윤태영,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위한 한국의 외교전략,” 강태훈 외, 동아시 아 지역질서와 국제관계 (서울: 도서출판 오름, 2002), p. 15.
한 다자주의적 행위양식을 습관화시켜 하나의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 한 노력의 결과였다.148)
지난 냉전시대 유럽은 동맹(북대서양조약기구) 대 동맹(바르샤바 조약기구)이라는 대결적 안보구도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군비통제와 군축 협상을 진행시켰으며, 진영(서유럽)과 진영(동유럽) 을 아우르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태동시켜 냉전 종식 이후에는 이를 유럽안보협력기구(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OSCE)로 발전시켜 나갔다. 또한 냉전 종식 이후에도 유 럽에서는 미국의 나토 확대정책과 직간접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새 로운 안보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크고 작은 다양한 제도들의 탄생이 목격되었다. 예를 들면, 1991년 12월에 탄생한 북대서양협력이사회 (North Atlantic Cooperation Council: NACC), 1994년에 탄생한 평 화를 위한 동반자관계(Partnership for Peace: PFP), 1997년 5월 북 대서양협력이사회를 대체한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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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파트너십이사회(Euro-Atlantic Partnership Council: EAPC)149), 그리고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 약」을 통해 탄생한 유럽연합의 공동외교안보정책(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FSP)의 발전 등이다. 이러한 다양한 안보제도 들은 상호 협력적 보완과 경쟁을 통해 안보 거버넌스에 입각해 상호 작용하는 유럽의 안보환경을 형성‧
강화해 왔고, 이것이 오늘날 유럽 의 새로운 안보체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148) 위의 책, p. 16.
149) 냉전 종식 이후 나토의 확대정책과 관련되어 새롭게 탄생한 다양한 안보제도들에 대 해서는 다음을 참조. Todd Sandler and Keith Hartley, The Political Economy of NATO: Past, Present, and into the 21st Centu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p. 5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