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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I804:24011-200000267138
목 차
ABSTRCT ··· ⅲ
Ⅰ. 서론 ··· 1
1. 연구 목적 ··· 1
2. 연구사 검토 ··· 3
3. 연구 방법 및 내용 ··· 20
Ⅱ. 김영랑과 쉬즈모 시 주제 비교 ··· 21
1. 김영랑 : 순정한 마음에 대한 추구 ··· 21
2. 쉬즈모 : 사랑과 자유에 대한 추구 ··· 29
Ⅲ. 김영랑과 쉬즈모 시 주요 이미지 비교 ··· 42
1. 물 이미지 ··· 45
1.1
김영랑 : 슬픔, 순결, 생명 ···
451.2
쉬즈모 : 여성정서, 자유와 이상
,생명력 ···
502. 천체 이미지 ··· 55
2.1
김영랑 : 이상의 동경, 슬픔과 그리움, 희망 ···
552.2
쉬즈모 : 열정과 자유, 정치적 이상, 투쟁정신 ··· 63
3. 새 이미지 ··· 72
3.1 김영랑 : 생명력과 희망, 충성 ··· 74
3.2 쉬즈모 : 자유와 희망, 사랑 ··· 81
Ⅳ. 김영랑과 쉬즈모 시 형식미 비교 ··· 87
1. 율동적인 리듬미 ··· 87
1.1 김영랑 : 한국 고전 시가의 수용
··· 89
1.2 쉬즈모 : 중·서 율격시의 수용
··· 98
2. 향토적인 방언의 사용 ··· 104
2.1 김영랑 : 한국 전라도 방언의 사용
···
1042.2 쉬즈모 : 중국 북방 방언의 사용
···
107Ⅴ. 결론 ··· 112
참고문헌 ··· 122
ABSTRCT
A Comparative Study on the Figurative Methods of Kim Young-rang and Xu Zhimo’s poetry
GAN JIAN
Adviser : Prof. Baek. Soo-in, PH. D.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Graduate School of Chosun University
Kim Young-rang(金永郞, 1903–1950) and Xu Zhimo(徐志摩, 1897–1931) are lyric poets who occupied top positions in Korean and Chinese literary circles.
Their poems continue to play important roles in our understanding of modern poems from their respective countries. Both have been acclaimed for their contributions to upholding the tradition of classical poetry and creating pure lyric poetry at the time.
Kim Young-rang and Xu Zhimo both created poetic figurative methods with their unique poetic language based on(and going beyond) new perceptions of poetic language. Images and words springing out of the inner worlds of their imagination formed their poetic landscapes.
Kim Young-rang was a leading poet of the Simunhakpa literature coterie of the 1930s. The lyric poets of Simunhakpa advocated pure poetry through their magazine, Simunhak, that was launched in 1930 with the participation of Kim Young-rang, Park Yong-cheol, and Jeong Ji-yong. Simunhakpa, which pursued pure lyric poetry as opposed to the political poems of the Korea Artists Proletariat Federation (KAPF), was characterized by the slogan ‘l’art pour l’art’
(art for art’s sake) as well as its aestheticism, wherein absolute emphasis was put on linguistic artistry and artistic expression techniques.
Kim Young-rang initiated his public activities by publishing Heart Lit on Camellia Leaves and twelve other poems in the inaugural issue of the Simunhak. His poems inherited the essence of traditional Korean poetry and pointed in the direction of Korean contemporary pure poetry. At the same time, he put great effort into expressing the beautiful traditional rhythm of Korea and the pure emotions rooted in Korean people’s hearts, paving the way for an important turning point in the modern history of Korean poetry.
Xu Zhimo was a modern Chinese romantic poet famous for his complicated love life and unique personality. He expressed joys and sorrows candidly with his genius, allowing his readers to feel his genuine passion for pure art as well as his changing mental state.
The poetic worlds of Kim Young-rang and Xu Zhimo, expressing the genuine sentiment, nature, and heart of human inner feelings, bear much resemblance.
The two poets’ lives also shared many similarities: both were born into wealthy families and grew up in loving homes; both were acclaimed as geniuses in poetry; and both died young. They even shared the experience of isolating themselves from the outer world in response to their encountered frustrations and despairs.
Both poets joined poetry circles as founding members with new forms of poetry and greatly contributed to introducing and consolidating the modern lyric poetry of their respective countries; in particular, they shared many similarities in the way they used poetic figurative methods to depict their inner worlds.
Despite these astonishingly similar personal and artistic traits, to date, there has been no published work comparing Kim Young-rang and Xu Zhimo.
Therefore, this study was conducted to fill this research gap. It aims to
analyse the poetic figurative methods used Kim Young-rang and Xu zhimo who represent the 1930s Korean and 1920s Chinese pure lyric poetry, respectively Its focus is on understanding afresh Korean and Chinese modern lyric poetry while comparing the poetic worlds of both men; specifically, it analyses and compares their figurative methods to derive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as well as the characteristics and backgrounds of Korean and Chinese pure lyric poetry, affording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poetic worlds of these two poets.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lies in this as well.
The comparison of the poetic figurative methods between Kim Young-rang and Xu Zhimo was viewed through three lenses: theme (Chapter II), diction (Chapter III), and form (Chapter IV). The in-depth comparison of the poetic imagery devices of Kim Young-rang and Xu Zhimo, based on their major works, was not limited to the analysis and comparison of these two poets’
poetic imagery; rather,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expected to point the way toward a new direction in comparative research between Korean and Chinese modern poems.
✽ Keywords: Kim Young-rang, Xu Zhimo, figurative methods, theme, pure lyric poetry, pure heart, inner world, liberty, love, water image, sadness, purity, life, feminine sentiment, ideal, celestial image, sky, star, moon, cloud, passion, longing, yearning, light, bird imagery, nightingale, cuckoo, loyalty, hope, beauty of form, beauty of rhythm, Korean classical lyric poetry, meter, metrical poetry, regional dialect, Jeolla-do dialect, northern Chinese dialect
Ⅰ. 서론
1. 연구 목적
한국 현대시사에서 시의 순정성을 추구하는 시인으로는 김영랑(金永郞)을 들 수 있 다. 한편, 중국 현대시사에서는 쉬즈모(徐志摩)가 대표적이다. 김영랑과 쉬즈모의 시는 내면적인 정서, 즉 진정(眞情), 진성(眞性), 진심(眞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 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각각 한국과 중국 현대 서정시의 경향을 대표하는 서정 시 인으로 불린다.
이 연구는 한국 1930년대 시문학파의 핵심 인물인 김영랑(1903-1950)1)과 중국 1920년대 신월시파의 대표적 인물인 쉬즈모(1897-1931)2) 시의 형상화 방식을 고찰 함으로써 김영랑과 쉬즈모의 시 세계를 구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시인 김영랑은 빛나는 성좌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의 애송 시「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한국 시문학사의 명시가 된지 오래다. 또, 시인이 데뷔하 여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한 『시문학』지 역시 한국 현대시문학사에서 반드시 검토해 야 할 문학지 중 하나이다.
1)김영랑(金永郞)의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읍 남성리에서 출생했고 다복하 고 유복한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다. 1909년 6월, 7세 되던 해에 강진공립보통학교(현 강진중앙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1915년 3월, 4년제 강진공립보통학교를 우수 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난 후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했다. 영랑은 16살이 되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고향 강진에서의 거사를 위해 구두 속에 독립선언문을 감추고 내려가 거사하려다 체포되 어 6개월여의 혹독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아오야마학원 중등부에 입학하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향리에 머물렀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 으나 낙선하고 곧바로 서울에 올라와서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1950년 9‧28수복 당시 서울 에 머물러 있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2)쉬즈모는 절강성 해녕현(海寧縣) 석진(石鎭)에서 1897년 1월 15일에 태어났다. 그는 당시 다양한 사 업을 경영하던 지방의 재벌인 집안의 독자였다. 1918년 여름 21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클 라크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중국의 해밀턴이 되고자 꿈꾸었다. 그 후에 영국의 철학자 러셀에게 배우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런던을 향해 가게 된다. 의식의 전환과 각성으로 인해 러셀이라는 학자를 찾아 떠난 영국행에서 그는 러셀이 이미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사퇴한 후 중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 쉬즈모는 런던에서 웰스와 디킨슨을 만나게 되었다. 디킨슨은 쉬즈모가 문학 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킹스 칼리지에 특별 학생으로 입학하도록 추천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바이런, 셸리, 키츠 등 낭만주의 시인의 영향을 받아 처음으로 시를 썼다. 1922년 귀국한 후에 신문 및 간행물에 대량의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1931년 11월 19일, 남경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평(북경)으로 가 던 도중, 안개를 만나 제남 부근에서 산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사망하였다.
프로시나 모더니즘 및 아방가르드 시와는 달리, 1930년대의 시문학은 순수 서정시 를 중시하는 시인들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 시의 리리시즘적 전통을 일구어 냈다.
1930년대 서정 시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한국적 · 동양적 정서를 표출 하고자 했으며, 언어 조탁이나 토속어 수용을 통해 조선어의 아름다운 숨결을 시에 담 아내려 하였다. 또한 이들은 서정적 주체의 순수한 내면의 감정 세계를 자유롭게 표출 하는 리리시즘에 충실한 현대적 서정시를 수립하려 했다.
시문학파로 지칭되는 박용철, 김영랑, 신석정, 김현구 등은 1930년대 순수 서정시 계열의 시인들 중에서 가장 첫머리에 놓이는 시인들이다. 시문학파 시인들은 대체로 자연 발생적인 정감의 음성적 표현을 중시하였다.3) “잘 다듬어진 시형, 부드러운 율 격,음성의 조화,남도 사투리와 여성적 아어형,암시적인 언어의 음영, 은밀하게 스 며들어오는 이미지”4)등은 김영랑 시의 특징을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영랑의 작품은 순수시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공적인 것과 사상, 관념을 배제한 상태 에서 쓰여 졌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객관적인 측면에 머문 것은 아니며 ‘나’의 감정 역 시 토로했다. 그의 시는 자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 은 그가 감정을 토로하는 방식이다. 그의 감정 표현에는 뚜렷한 테두리가 없으며, 소 재를 가장 소박한 상태에서 그대로 읊조린다.
영랑은 자연이라는 특별히 맑고 깨끗한 소재를 통해 내면의 마음을 표출하는 시적 표현의 탁월성을 가졌다. 이는 훗날 그의 시가 어떠한 문학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서정성을 견지하도도록 만들었다. 프로문학이 득세하던 당시의 어지러운 문단 상황 하 에서 그가 보여준 거부의 몸짓은 무서움이 아닌 아름다움이다. 싫음을 싫음으로 표현 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이다. 그의 시심은 고향 강진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서 싹이 텄다. 그를 둘러싼 개인적인 아픔은 그의 시를 슬픔으로 이끌었으 며, 기다림의 미학을 탄생시켰다.
해방 후의 자유로움은 기쁨을 자제 못하는 동심처럼 그의 시에 여과 없이 투영되었 다. 그의 길지 않은 생애와 작업 기간 그리고, 많지 않은 작품 수를 감안 할 때 오늘 날 그의 시가 발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쉬즈모도 김영랑과 마찬가지로 중국 현대 시문학에 있어서 뛰어난 시인이다. 그는 신시의 형식 탐구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시는 형상이 생동감 있고 풍격이 평이하며 자연스럽다. 그의 초기 시들은 서정을 중시하고 상징적 수법을 응용하며, 구성의 전일
3)오세영외 지음, 『한국현대시사』, 민음사, 2012, 159~160쪽.
4)김흥규, 「영랑의 시와 세계인식」, 『문학과 역사적 인간』, 창작과비평사, 1994, 63쪽.
성과 언어의 세련미를 중시하였다. 또, 수식에서는 색채와 음절의 조화를 중시하였다.
10년이라는 시인으로서의 짧은 작품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국의 청년들에 의해 애송되고 있다. 쉬즈모는 자유와 사랑, 그리고 미를 추구하는 예술적 인생관을 가지고 일생동안 자아실현을 위한 문학 활동을 하였다.
그의 시는 영국의 유미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화려한 어휘가 사용되었으 며, 다양한 리듬의 변화 등 형식미에 있어서 뛰어난 예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국 시단 전체로 볼 때 형식과 기교면에서 역사적인 공헌을 하였으며 신시 발전의 전 환기를 마련하는 현대시의 교량 역할을 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김영랑과 쉬즈모의 시 세계를 통해 각 시인의 시 속에 사용된 형상화 방식이 무언인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에서 김영랑 시에 대한 연구와 중국 에서 쉬즈모 시에 대한 연구는 이미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김영랑과 쉬즈모 시를 비교하는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김영랑과 쉬즈모의 시에 나타난 주제, 이미지, 그리고 형식미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들의 시가 갖는 문학적 가치와, 언어의 시적 기능이 이루는 관계 를 밝히고자 한다. 이 논문은 김영랑과 쉬즈모에 관하여 거창하고 심도 있게 논의하지 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교 연구 과정을 통해 김영랑과 쉬즈모 시의 형상화 방 식을 살펴봄으로써 한 · 중 현대 서정시 비교 연구 영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 다.
2. 연구사 검토
먼저 한국에서 김영랑에 관한 연구 업적을 살펴보도록 하자. 1930년대는 시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연 시대로서 문학 기교가 성숙해지고 주제가 다양화되며, 새로운 기법이 등장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김영랑이라고 하는 시인이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영랑은『시문학』을 통해서 시단에 등단하였는데, 한국 시의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분기점”5), “1930년대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현상”6)으로 평가된다.
김영랑의 시를 최초로 논의한 박용철은 그를 “유미주의자이며 순수한 감각을 추구하 는 서정시인”이라고 평하면서 특히 4행시를 “천하일품”이라며 극찬하였다.7) 임화는
5)서정주, 「朝鮮의 現代詩 - 그 回顧와 展望」, 『文藝』, 제2권 제2호, 1949, 147쪽.
6)김영철, 『韓國近代詩攷』, 螢雪出版社, 1988, 297쪽.
“詩人(시인)은 時代現實(시대현실)의 本質(본질)이나 그刻刻(각각)의 細細(세세)한 轉移 (전이)의 가장 敏捷(민첩)하고 正確(정확)한 認知者(인지자)여야 하고 그것을 詩的言語 (시적언어)로 反映表現(반영표현)해야 한다.”8)고 보고, 시문학파는 다만 언어 표현기교 와 현실에 대한 비관주의로만 그쳐 내용과 사상을 방기한다고 비판하였다.
김영랑의 시 전반을 대상으로 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한 정지용의 글 「시의 감상 - 영랑과 그의 시」9)는 그의 시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김영랑의 시작 전반에 걸친 분석, 평가와 시사에서 그의 위치를 찾는 작업은 해방 후 서정주의「영랑의 서정시」10)에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김영랑 의 시에 대한 자료 정리와 시 자체의 분석 평가는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작가 의식면에서, 윤곤강은 “사춘기에 있는 귀동녀의 책상머리에다가 갖다 놓고 싶 은 고갈된 리리크”11)라고 하면서 김영랑의 시는 역사적인 면에서 현실인식이 결여된 정태적인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김흥규는 “김영랑의 순수유미는 당시 특수한 상황의식 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었거나 혹은 식민지적 문화 해체에 심히 오염되어 있다고 비 판하였다.”12)
정태용은 김영랑의 문학을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측면에서 언급하였다. “김영랑은 만해로부터 극히 산문적으로 움튼 시의 운율을 완성된 경지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했지 만 그의 시의 지나친 기교주의는 후기시를 무감동의 국면으로 퇴화시킨 원인이 되었 다”13)고 비판하였다. 김상일은 “시대적 상황에서 김영랑의 시는 현실 도피적인 비굴성 을 간직하고 있다”14)는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박철석은 “김영랑의 시는 현실의 이해를 떠난 관조에 뿌리박은 미적 구조 즉 심미주 의이며, 이것들은 경험적 현실을 부정하고 일시적인 해탈의 방법으로 쓰여진 것”15)이 라고 하였다.
반면, 김영석은 “우리의 현실과 세계를 꿰뚫어보고 이해하려는 객관적인 인식의 결 여와 자아의 단절에 의한 실향의식을 주된 특성으로 꼽으면서도 시간의 단절이라는 형
7)박용철, 「辛未詩壇의 回顧와 批判 - 高貴한 感情과 表現의 能力」, 『중앙일보』, 1931.12.
8)림화, 「曇天下의 詩壇 一年」, 『신동아』, 5권 12호, 1935, 171쪽.
9)정지용, 「詩의 鑑賞 - 永郞과 그의 詩」, 『여성』, 제3권 8~9호, 1938.
10)서정주, 「永郞의 抒情詩」, 『文藝』, 3호, 1950.
11)윤곤강, 「丙子詩壇의 回顧와 展望」, 『비판』, 1937.2.
12)김흥규, 「영랑의 시와 세계인식」, 『세계문학』, 가을호, 1977.
13)정태용, 「現代詩人硏究 10, 金永郞論」, 『現代文學』, 제4권 제6호, 1958.6.
14)김상일, 「金永郞 또는 卑屈의 形而上學」, 『現代文學』, 88호, 1962.4.
15)박철석, 「金永郞論」, 『現代文學』, 제129호, 1979.12.
식을 수용하여 끊임없이 단절된 과거의 시간을 지향함으로써 역설의 미학을 이룩했 다”16)고 평하였다.
김신정17)은 김영랑을 20년대적 애상과 영탄을 고양된 심미적 차원으로 이끌어 올린 시인으로 평가한다. 전통적 가락에 기대어 ‘사라져가는 세계’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영 랑은 소월과 닮았다. 하지만, 흔히 ‘시어에 대한 현대적 인식’이라는 평가와 겹치기도 하는 그의 유미주의적 특성은 그를 소월과 다른 차원에서 주목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영랑이 섬세한 ‘언어의 조탁’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순간이다.
그 ‘순간’ 속에서 영랑은 ‘자기’를 보존하고자 한다. 그가 시어를 발굴하고 다듬어나가 는 과정에서 사물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내 마음’의 세계를 실감나게 표현한 것은 대 상에 의식적으로 개입하고 시어의 함축적 의미를 계산하는 근대적 예술가로서의 태도 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성호18)에 의하면 영랑의 존재로 인해 한국 현대시는 비로소 1920년대 낭만주의 시의 주관적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예술로서 한 단계 격상될 수 있었다. 영랑은 자신의 심미적 감각이 외부 현실(주로 강진의 자연)과 마주치면서 최고로 고양된 순간을 언어 로 고정시키는 일에 주력했다. 무수한 연습과 반복의 과정에서 획득된 높은 예술적 기 량, 고양된 심미적 감수성, 조화와 일치에 도달하려는 협동적 노력에 의해 이러한 일 치와 심미적 황홀이 가능해진다.
그는 이 심미적 황홀의 순간을 통해서 일상의 범속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와 세계의 완벽한 합일과 조화를 경험하곤 했다. 이 미적 감수성은 193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김영랑의 삶에서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총체적인 몰락의 운명 앞에 놓 인 것이라는 점에서 끝없는 상실감과 비애의 원천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 의 황폐함과 부박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문화적 자긍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홍용희19)에 의하면 김영랑의 초기와 중, 후기의 시 세계는 큰 차이를 보인다. 1930 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초기 시편에는 그의 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마음’
의 감각과 미의식이 주조를 이룬다. 그러나 1939년부터 1940년, 그리고 해방이후에 해당하는 중, 후기에 이를수록 시대정신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전면에 부각되고 순연한 ‘마음’의 미의식과 감각은 휘발되고 만다.
16)김영석, 「失響과 時間의 斷絶 - 金永郞의 詩世界」, 『경희어문학』, 제5집, 1982.
17)김신정, 「‘시어의 혁신’과 ‘현대시’의 의미 - 김영랑, 정지용, 백석을 중심으로」, 『상허학보』, 4, 1998, 61쪽~67쪽.
18)오성호, 「‘내 마음’의 시학 - 김영랑과 그의 시에 대하여」, 『서정시학』, 13(3), 2003, 73쪽~79쪽.
19)홍용희, 「마음의 미의식과 허무 의지 - 김영랑 론」, 『국어국문학』, 150, 2008, 505쪽.
시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김병호는 1930년대 한국 시인들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나 타나는 모티브를 “불안이나 향수의 근원인 ‘고향 상실감’”20)으로 보았다. “식민지라는 특수한 조건에서의 상실감은 조국 상실이라는 보편적·역사적 상황과 고향 상실이라는 특수한 개인 상황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공통된 정서라고 할 수 있다.”21) 영랑의 경우 에는 “1930년대 말, 내면에 대한 관심에서 사회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아파하면서 자아를 확대해가는 세계인식의 변화가 있었다.”22)
이창민은 “영랑의 연가류 작품의 주제에 대한 분석에서 사랑을 동기로 삼은 영랑의 시는 대략 ‘연애의 추억’, ‘실연의 비애’, ‘사별의 애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영랑에게 사랑은 풍경과 매일반인 미적 대상으로 여겨졌을 것으로 보았다.”23) 또한 “영랑의 시 는 비애감 내지 애잔한 절망감이란 언명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4) 이미지에 대한 측면에서 서범석25)은 G. Bachelard의 상상력 이론에 의한 김영랑 시 에 나타난 ‘물’ 이미지를 고찰하면서, 영랑의 시를 3기26)로 나눴다. 제 1기시에는 물 이미지가 비교적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상상력은 시 속에서 내향화된다. 이러한 상상 력은 우울과 희망이라는 두 가지 의미의 이미지에 작용하며 우울과 슬픔, 그리고 죽음 의식을 표출하는데, 이는 비순수의 물, 무거운 물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제 2기의 시에 나타나는 물 이미지는 ‘출렁거리는 물’, ‘철철 흘러가는 물’로 등장한다. 이러한 물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물이 아닌 난폭한 물이다. 영랑의 제 3기시에 작용하고 있는 상상력은 외향성과 내향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의 이미지들은 현실참여 의 식을 표출하는 이미지들과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거기에서 인생의 허무의식을 표 출하는 이미지의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김숙은 “김영랑의 시를 연구함에 있어 먼저 시형태의 율격 분석과 시적 표현의 이미 지를 고찰한 다음 이들을 묶어 각 시편의 구조체적 결합과 이들로써 이루어진 시 전편 의 미의식을 그 속성에 따라 ‘순정적 비감의 품성, 숙연과 지킴의 정서, 순수 서정의 미적 항심’ 등으로 구분하여 김영랑 시의 미의식을 구조화”27)하였다.
20)김병호, 「한국 근대시 연구 :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84쪽.
21)위의 논문, 84쪽.
22)위의 논문, 90쪽.
23)이창민, 「김영랑 연시의 사연과 주제」, 『한국학연구』, 55, 2015, 274~287쪽.
24)이창민, 「영랑 시의 독백성 - 미상(未詳)의 미학」, 『한국학연구』, 59, 2016, 198~199쪽.
25)서범석, 「金永郞 詩에 나타난 「물」의 이미지 : G. Bachelard의 想像力 理論에 의한 分析」, 건국대 학교, 석사학위논문, 1982, 3쪽~66쪽.
26)제1기는1930년부터 1935년까지고, 제2기는 1939부터 1940년까지고, 제3기는 1946년부터 1950년까 지이다. (서범석, 위의 논문, 7쪽.)
27)김숙, 「金永郞 詩 硏究」, 카톨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이승철28)은 영랑의 시 속에서 생명의 역동적 흐름을 상징하는 ‘빛남’, ‘강물’, ‘달’,
‘은빛’, ‘이슬’의 이미지와 ‘내 마음’의 순수서정 세계와 외부세계와의 경계에서 발산되 는 ‘새암’, ‘모란’, ‘눈물’, ‘무덤’의 이미지를 통해 영랑의 풍부한 상상력의 시 세계를 고찰하였다.
임자영29)은 영랑 시의 이미지를 크게 순수 서정 이미지(‘강물’, ‘하늘’, ‘이슬’), 내면 적 갈등 이미지(‘새암’, ‘눈물’, ‘모란’), 민족적 저항 이미지(‘기린’, ‘독’, ‘춘향’)로 구분 하여 분석하였다.
김혜영은 순수 합일과 갈등 이미지를 통해 김영랑 시에 나타난 내면의 양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영랑은 ‘강물’이나 ‘하늘’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로 자신의 순수 서정 세계 를 노래한다. 영랑에게 자연은 자신의 내면세계가 지향하는 바가 투사된 이미지이다.
한편으로는 현실을 인식하고, 순수 서정의 내면세계와 부딪히게 되면서 내면적 갈등을 의미하는 ‘새암’과 ‘눈물’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그는 ‘새암’을 통해서 외부 세계에 대 한 인식을 자신의 영혼과 대비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암울한 외부 세계에 대한 내면적 갈등을 ‘눈물’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내면적 자아에서 벗어나 외 부 세계에 대한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찾게 된다.”30)
전영지31)는 김영랑 시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3기 시 속 이미지들 중 대부분 을 차지하고 있는 자연 이미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다. 영랑 시의 자연 이미지는 영랑의 ‘내 마음’의 내면세계의 표상이며, 비애의 결정체이다. 영랑 시 속의 자연 이미 지들은 부정적 현실 의식의 산물이며 상실과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계절, 밤, 꽃, 새, 동물 · 곤충, 들판 · 대지, 산 이미지들을 통해 영랑 시에 나타난 자연 이미지 의 변모 양상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이후 한국 국내 김영랑의 시 연구에 관한 기타 학위논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에서 1980년대 이후로 김영랑 시를 전면적으로 연구한 학위논문에는
「金永郞詩 硏究」32), 「金永郞詩硏究」33), 「金永郞 文學硏究」34), 「金永郞論」35),
28)이승철, 「김영랑 시의 이미지 연구」, 전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29)임자영, 「김영랑 시의 이미지 연구」, 충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30)김혜영, 「김영랑 시에 나타난 내면 양상에 대한 고찰 - 순수 합일과 갈등의 이미지」, 『한국문화기 술』, 10, 2010, 103쪽.
31)전영지, 「김영랑 시의 자연 이미지 연구」, 충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32)홍정기, 「金永郞詩 硏究」, 인하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33)김성환, 「金永郞詩硏究」,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5.
34)정숙희, 「金永郞 文學硏究」, 인하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7.
「金永郞詩 硏究」36), 「金永郞 詩 硏究」37), 「金永郞의 詩世界 硏究」38), 「김영랑 연구」39), 「金永郞 詩 硏究」40), 「김영랑 시 연구」41), 「김영랑 시 연구」42) 등이 있다.
둘째, 김영랑 시의 언어, 형식미 및 창작 기법에 대한 학위논문은 「金永郞 詩 硏究 : 形態的 特微를 중심으로」43), 「金永郞 4行詩 硏究」44), 「김영랑 시의 구조 연 구」45), 「金永郞의 四行詩 硏究」46), 「김영랑 시어 연구」47), 「김영랑 시의 시어 연구」48), 「김영랑 시의 음악성 연구 : 리듬론을 중심으로」49), 「김영랑 시의 창작 방법 연구」50), 「김영랑 시의 음악성 연구 : 유성음 효과를 중심으로」51) 등이 있다.
셋째, 김영랑과 다른 작가를 비교, 연구 한 학위논문은「韓國現代詩에 나타난 물의 心象과 意識의 硏究 : 金永郞 · 柳致環 · 尹東柱의 詩를 中心으로」52), 「1930년대 시 의 구조연구 : 정지용, 김영랑, 백석의 시를 중심으로」53), 「解放期 傳統 抒情詩 硏 究: 金永郞 金達鎭 趙芝薰을 중심으로」54), 「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시형에 관한 연구 : 이병기 · 김영랑 · 서정주를 중심으로」55), 「1930-40년대 시의 내면지향성 연구 : 김영랑, 이상, 윤동주의 시어를 중심으로」56), 「한국 전통주의 시 연구 : 김영랑, 박
35)조근현, 「金永郞論」,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36)이남석, 「金永郞詩 硏究」,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37)한정석, 「金永郞 詩 硏究」, 국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38)강경숙, 「金永郞의 詩世界 硏究」, 상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7.
39)박석기, 「김영랑 연구」, 경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7.
40)이송영, 「金永郞 詩 硏究」,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41)김현락, 「김영랑 시 연구」, 공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42)여총영, 「김영랑 시 연구」, 경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43)이해란, 「金永郞 詩 硏究 : 形態的 特微를 중심으로」, 서울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2.
44)김명순, 「金永郞 4行詩 硏究」,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2.
45)박숙완, 「김영랑 시의 구조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46)강학구, 「金永郞의 四行詩 硏究」,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7.
47)김경희, 「김영랑 시어 연구」,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48)문윤희, 「김영랑 시의 시어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49)홍혜림, 「김영랑 시의 음악성 연구 : 리듬론을 중심으로」, 인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50)김혜영, 「김영랑 시의 창작방법 연구」,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51)이대흠, 목포대학교, 「김영랑 시의 음악성 연구 : 유성음 효과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2015.
52)최동호, 「韓國現代詩에 나타난 물의 心象과 意識의 硏究 : 金永郞 · 柳致環 · 尹東柱의 詩를 中心 으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1.
53)김명인, 「1930년대 시의 구조연구 : 정지용, 김영랑, 백석의 시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5.
54)신소영, 「解放期 傳統 抒情詩 硏究 : 金永郞 金達鎭 趙芝薰을 중심으로」, 수원대학교, 석사학위논 문, 1992.
55)강영미, 「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시형에 관한 연구 : 이병기 · 김영랑 · 서정주를 중심으로」, 고려대 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56)문정현, 「1930-40년대 시의 내면지향성 연구 : 김영랑, 이상, 윤동주의 시어를 중심으로」, 경희대학
재삼, 서정주를 중심으로」57), 「현대시에 나타난 한국어의 미적 특질 연구 : 김영랑, 박재삼 시를 중심으로」58),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 연구 : 김억
· 김소월 · 김영랑 · 백석 시를 중심으로」59) 등이 있다.
이상으로 김영랑 시에 대한 기존의 주요 연구들을 살펴보았다. 김영랑 시의 사회적 대용성에 관한 연구는 부정적 견해가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한 서정 의 세계를 노래하면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전통적 가락과 정서로 형상화했다는 점에 서 한국 현대시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쉬즈모는 중국 현대 신월시파(新月詩派)의 대표적인 시인이면서 중국 현대문학 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이다. 그의 서정시는 지금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쉬즈 모 시에 대한 연구는 1923년부터 시작하여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중 국 내에서 쉬즈모 시에 대한 연구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쉬즈모는 중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저명한 시인이자 산문가이다. 4부의 시집60)이 있으며, 시집 외의 시작은 60여 편, 번역시는 40여 편이 있다. 또한 산문집 6부61), 그 외의 산문이 30여 편이며, 소설집 『핸들(輪盤)』, 희곡『볜쿤강(卞昆岡)』, 번역 작품 10여 부가 존재한다. 쉬즈모의 창작 생애는 1922년 봄에 시작하여 1931년 겨울에 끝 났다. 비록 짧은 10여 년의 기간이지만, 쉬즈모의 시, 산문, 사상, 신앙, 정신성, 예술 풍격, 인격적 특징, 문학사적 의의 등 여러 분야에 대해 현대 문단의 많은 연구가 있 었다. 그러나 대부분 의견이 분분하고 평가가 일치하지 않다. 그의 시는 중국 현대문 단의 인기화제였다.
쉬즈모의 신시 작품들은 주로 1922년의 『새절강 · 새친구(新浙江·新朋友)』, 『노 력주보(努力周報)』 및 1923년 초의 『시사신보 · 학등(時事新報·學燈)』, 『신보 · 문 학순간(晨報·文學旬刊)』등 중국 국내 신문에 발표되었다. 쉬즈모의 신시는 형식이 정 연하고 음률이 아름답다. 때문에 독자들과 시단의 주의를 끌었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평론도 잇따랐다. 1922년부터 지금까지 90여년의 세월동안 쉬즈모에 관한 연구와 평
교, 석사학위논문, 2009.
57)김새롬, 「한국 전통주의 시 연구 : 김영랑, 박재삼, 서정주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58)장려홍, 「현대시에 나타난 한국어의 미적 특질 연구 : 김영랑, 박재삼 시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59)한세정,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예이츠의 수용 양상 연구 : 김억 · 김소월 · 김영랑 · 백석 시를 중 심으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60)『즈모의 시(志摩的詩)』, 『피렌체의 하룻밤(翡冷翠的一夜)』, 『맹호집(猛虎集)』, 『운유(雲遊)』.
61)『낙엽(落葉)』, 『파리의 편린(巴黎的鱗爪)』, 『자아 해부(自剖)』, 『가을(秋)』, 『즈모 일기(志摩日記)』,
『사랑하는 루샤오만에게 쓴 편지(愛眉小劄)』.
가에는 칭찬과 비판이 공존한다. 연구기간으로 볼 때, 그 시기는 1923년~1949년, 1950~1978년, 1979년 이후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923~1949년은 쉬즈모 연구의 첫 번째 시기이다. 당시 쉬즈모를 평론한 이는 씨 띠, 청퐝우, 후스 등이 있다. 씨띠의 「쉬즈모 「만슈필」부기(徐志摩<曼殊菲兒>附 記)」는 『소설월보(小說月報)』1923년 5월 10일 제14권 5호에 실렸다. 청퐝우의
「쉬즈모에게(致徐志摩)」는 『창조주보(創造周報)』1923년 6월 3일 제4호에 실렸다.
후스62)의 「쉬즈모 군의 「만슈필」(徐志摩君的<曼殊斐兒>)」은 최초 본격적으로 쉬즈모의 시와 산문 창작을 평론한 글이며, 당시 서명을 후원이라 하였다. 후스는 진 지한 서정과 아름다운 운율을 나타낸 쉬즈모의 「만슈필(曼殊斐兒)」을 인정하였다.
그는 쉬즈모에게 깊이 감동되어, 마치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모든 고뇌를 잊게 해 주는 것 같다며 칭찬하였다. 또, 쉬즈모의 미(美)와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추억은 실로 진정한 인생관을 지도하게 되며, 쉬즈모는 문학가의 책임 - 인생지도를 실천하고 있다63)고 평가하였다.
1925년, 쉬즈모의 첫 번째 시집인 『즈모의 시』가 출판된 후, 평론계는 쉬즈모 시 의 사상 내용과 예술 형식에 대해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였다. 그 중 영향력이 비교적 큰 것은 주샹(朱湘)과 첸싱춘(錢杏邨)의 두 문장가이다.
주샹의 「쉬군 『즈모의 시』를 평하다(評徐君<志摩的詩>)」는 『즈모의 시』의 문체와 예술 형식에 대해 집중하여 분석했다. 주샹은 『즈모의 시』를 산문시(散文詩), 서민 풍격의 시(平民風詩), 철학시(哲理詩), 애정시(情詩), 잡시(雜詩)의 다섯 종류로 나 누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쉬즈모의 철학시는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고 아쉬 워하였다. 철학은 이성적인 것인데, 주관 감정의 문학 특히 시와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샹은 주로 쉬즈모의 산문시를 칭찬하였다. 그는 쉬즈모의 산문시는 상상이 활발하 고 관찰이 예리하며, 경지가 청원하고 비유가 친절하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쉬즈모의 서민 풍격의 시에 대해 두 가지 특별한 점을 인정하였다. 첫째는 서민의 삶에서 소재 를 얻은 것이고, 또 하나는 향토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는 또, 『즈모의 시』에서 형식면에 대해 “방언음이 음률에 들어간 점, 대구((對 句)의 운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점, 운이 가끔 어울리지 않는 점, 한자 사용이 적절 치 못한 점, 시행이 가끔 어색한 점, 유럽화시켜 자연스럽지 못한 점”64) 등의 여섯 가
62)후스(胡適, 1891~1962)는 중국인들이 꼽는 현대 최고 존경받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63)胡適, 「徐志摩君的<曼殊斐兒>」, 『小說月報』, 第14卷 第8號, 1923.
지 결점을 지적하였다. 주의할 만한 것은, 쉬즈모의 시를 평론하는 과정에서 쉬즈모의 시를 중국 고전 시, 외국 시와 비교, 분석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쉬즈모 시의 연구를 위한 비교적 개방된 시야를 제공하였다는 데에서 의의를 가진다.
첸싱춘의 「쉬즈모 선생의 자화상(徐志摩先生的自畫像)」65)이라는 평론은 무산계급 혁명문학의 입장에서 출발하여 맑스 사상주의 계급 분석의 방법으로 쉬즈모의 시 및 산문의 사상 내용과 감정 경향에 대해 전면적으로 따가운 풍자와 철저한 부정적 비판 을 하였다.
1933년, 마오둔(茅盾)의 「쉬즈모 론(徐志摩論)」은 쉬즈모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연구하는 이론 기사 중 가장 영향력이 큰 평론이었다. 이 글은 사회학 비평의 관점에 서 계급의식으로 쉬즈모에 대해 비교적 전면적인 분석과 판단을 하였다.
마오둔은 “즈모는 중국의 부르주아 ‘개산’인 동시에 ‘말대’의 시인이다. 그 시작은 문 법이 단정하고, 음조가 힘이 있으며, 원숙한 외형에 너무 옅어서 거의 없는, 이 싱거워 빠진 내용은 감상적인 정서에 불과하다, - 가벼운 연기처럼 잔잔한 슬픔, 신비한 상징 의 애착 감흥이 추구되고 있다”66)고 지적하였다.
마오둔은 쉬즈모의 이런 슬프고 어두운 분위기는 그의 사상이 퇴폐적이고 허무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상의 퇴폐성은 그가 사회의 큰 변동에 풀리지 않는 의심을 가지 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됐다. “인생의 변화가 그의 예측을 벗어나고, 그의 기대하던 인 내심을 넘어섰다. 그런 이유로 전에 있었던 신앙은 동요 하였고, 그는 의심의 퇴폐에 빠지게 되었다.”67) 이는 작가와 사회의 부조화 상황에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현 상이다.
마오둔은 쉬즈모의 창작이 점차 고갈된 것은 그가 생활의 평범함과 시의 예술기교의 해석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쉬즈모의 시정의 고갈은 확실히 일상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절대 삶이 평범해서가 아니라, 그가 눈앞의 변동에 대 해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68) 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쉬즈모
64)土音入韻, 骈句韻不講究, 用韻有時不妥, 用字有時欠當, 詩行有時站不住, 歐化得太生硬. (朱湘, 「評 徐君<志摩的詩>」, 『小說月報』, 第17卷 第1號, 1926.)
65)邵華強 編, 『徐志摩研究資料』, 陝西人民出版社, 1988, 269-295頁.
66)志摩是中國布爾喬亞‘開山’的同時又是‘末代’的詩人, 圓熟的外形, 配著淡到幾乎沒有的內容, 而且這淡 極了的內容也不外乎感傷的情緒, ―輕煙似的微哀, 神秘的象征的依戀感喟追求. (茅盾, 『茅盾論中國現代 作家作品』, 北京大學出版社. 1981, 83頁.)
67)人生的轉變出乎他意料之外, 而且超過了他期待的耐心, 于是他的曾經有過的信仰發生動搖, 于是他流 入于懷疑的頹廢了. (茅盾, 위의 책, 97頁.)
68)但決不是因為生活平凡, 而是因為他對于眼前的大變動不能了解且不願意去了解. (茅盾, 위의 책, 96 頁.)
의 시창작의 소제가 너무 국한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는 정곡을 찌르는 비판이 었다.
무무텐(穆木天)의 「쉬즈모 론(徐志摩論)」은 쉬즈모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연구하 는 평론 중 큰 영향력을 가졌다. 무무텐은 시인의 각도에서 쉬즈모 시의 사상 내용과 의미를 분석하고 평가했는데, 이는 학술 연구 가치가 높은 것이었다.
무무텐은 쉬즈모의 작품에 반영된 것은 ‘5·4 운동’ 시대의 일부였던 지식인들의 ‘심 리 의식’ 이라고 주장했다. 또, 쉬즈모가 요구한 것은 ‘현대의 타락과 물질주의에 저항 하는 혁명 운동’과 ‘심령해방의 혁명’ 즉, 사회에 대한 부조리한 표현이었다고 해석했 다. 비록 시가 미학주의, 인상주의의 요소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쉬즈모는 퇴폐적이기 보다는 적극적이며, ‘마음의 이상과 신념으로 사회에 맞서는 마인드’는 니체의 초인적 정신과도 같다. 따라서 쉬즈모의 시는 ‘영혼의 모험’의 상징이며 ‘자기 실현’ 이다.
무무텐은 현대 중국의 새로운 시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쉬즈모가 ‘위대한 존재의 의 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쉬즈모의 시가 외부 생활의 묘사와 주관적인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을 섬세하고 복잡한 심리적인 감정 표현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다. 그것은 진정으로 순수한 개성의 표현이며 자유로운 영혼의 비상의 반영69)이다.
1934년 이후 쉬즈모에 대한 연구는 점차 잠잠해졌다. 그에 대해 가끔 논평하는 글 이 있지만 질적으로는 이론적 혁신과 돌파구를 찾기 어려웠다. 가장 큰 성과는 1949 년 쳔총조우(陳從周)가 편찬한 『쉬즈모 연보(徐志摩年譜)』인데, 쉬즈모 평생의 창작 자료에 관한 체계적인 전문 서적이다. 이는 쉬즈모에 관한 확실하고 상세한 역사자료 를 대량으로 제공하였고 동시에 쉬즈모 연구의 첫 시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1950~1978년은 쉬즈모 연구의 두 번째 시기이다. 당시는 중국의 좌편향70) 문예노 선과 정치 기준이 모든 학술 연구 분야를 압도, 독점한 때였다. 이 시기의 쉬즈모 연 구는 기본적으로 침체 또는 후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학술 연구 가치가 높았던 글은 1957년 쳔멍쨔가 발표한 「쉬즈모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다(談談徐志摩的詩)」이 다.
쳔멍쨔71)는 쉬즈모의 시 중 대표작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시의 적극적인 사 상 의의를 충분히 인정하였다. 또, 그는 쉬즈모의 시가 개성의 자유에 대한 열렬한 요
69)穆木天, 「徐志摩論」, 『文學』, 第3卷 第1期, 1934.
70)‘좌경’은 정치 사상이 객관적을 초월하고 사회 현실의 조건으로부터 벗어나 공상과 맹동, 모험에 빠 지는 경향을 말한다.
71)陳夢家, 「談談徐志摩的詩」, 『詩刊』, 第2期, 1957.
구로서 구사회의 어두움과 냉혹함, 완고함을 저주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이 많은 청년 의 열정과 호소로 충만하며, 인도주의적 동정이 가득한 것을 이유로, 쉬즈모는 결론적 으로는 위대한 애국자라고 평가하였다.
또, 쳔멍쨔는 쉬즈모 시의 아름다운 예술 형식의 가치를 분석하였다. 쉬즈모는 참신 하고 활발한 시를 창조하였는데, 리듬의 음조가 아름답고, 방언에서 정수를 흡수하여 순수하며 아름다운 형식을 정련하고 새로운 시의 발전을 위해 성공적인 경험을 제공하 였다고 평가하였다. 또, 쉬즈모는 19세기 영미시의 영향을 받아 시의 형식에 하디와 블레이크의 시풍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단어 사용과 문법 구조에서는 음률과 구어 두 가지에 모두 유의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쳔멍쨔도 시풍과 인격 면에서 쉬즈모에 대해 원이둬(聞一多)와 비교 분석하며 쉬즈 모를 위대한 애국 시인으로 평가했다. 이 평론이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은 중국과 외국 문화 교류의 시야에서 쉬즈모 시의 독특성을 발굴하고 인정한 점 때문이다. 이는 쉬즈 모 연구에 있어서 더 넓은 문화 공간에서의 넓은 연구 시야를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쳔멍쨔의 글은 곧바로 반박과 비판을 받았고, 이 새로운 연구는 오랫동안 관심 밖에 있었다.
만약 제1시기에 쉬즈모의 연구가 논쟁의 단계에 있었다고 한다면, 이 시기의 쉬즈모 연구는 한 단계 더 발전하여 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진정한 학술 연구 성과 를 얻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하고 난폭한 단계 분석과 정치 비판은 문학 연구의 유일한 비판 척도가 되었고, 쉬즈모는 개인에서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점점 쉬즈모의 작품도 금지 서적이 되었다. 이는 역사의 실 사구시 정신을 완전히 배도한 것으로 무거운 학술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학술 연구의 큰 후퇴를 초래하였다.
1979년 이후는 쉬즈모 연구의 세 번째 시기다. 새로운 시대 이후 여러 가지 개방된 새로운 이념, 새로운 방법, 새로운 전망 및 새로운 발견이 문학 연구 영역에 도입되었 다.
쉬즈모에 대한 연구는 장르 창작, 삶과 비전, 창작 사상, 예술 형식, 미의식, 문학사 지위 등의 영역에서 연구 성과가 크고 연구 범위가 넓어지는 등 긍정적 성과를 거두었 다. 또, 높은 학술 가치를 가지고 있는 연구 성과가 나타났으며, 이로써 쉬즈모에 대한 연구는 한 층 더 확대되었다.
이 시기의 쉬즈모 시에 대한 주요 연구 중, 卞之琳의 「徐志摩詩重讀志感」, 陸耀 東의 「評徐志摩的詩」, 張學植·蘇振鹭의 「徐志摩詩中的人道主義思想」, 張大雷의
「論徐志摩詩歌的創作道路」, 藍棣之의 「徐志摩的詩史地位與評價問題」, 趙遐秋의
『徐志摩傳』등은 쉬즈모 시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陳劍輝의 「藝術,應當是美的—徐志摩詩初探」, 孔孚·呂山查의 「試論徐志摩詩歌的 藝術表現」, 奕英良의 「論徐志摩詩歌的‘輕柔美’」, 魏紹馨의 「新月社及其新格律詩主 張」, 金衛星의 「徐志摩詩歌的藝術特色」,楊靜華의 「徐志摩詩歌的音樂美」등은 쉬 즈모 시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였다.
1979년 볜쯔린 (卞之琳)의 「쉬즈모 시 다시 읽기 소감(徐志摩詩重讀志感)」72)은 쉬즈모의 시가 명예를 회복하게 된 첫 째 글이다. 볜쯔린은 쉬즈모는 천재적인 시인이 며 사람들에 대해 열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시의 사상 감정은 세 가지의 적극적인 본선, 즉 조국을 사랑하고 반봉건적이며, 인도적이라고 하였다. 더불어, 쉬즈모는 영국 낭만주의시파의 영향을 받아 고상한 운치와 리듬감을 깊이 있게 표현하였기에 완벽한 형식의 시를 다시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신선한 맛과 신선한 패턴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현대 중국의 새로운 시 발전의 역사적 의미에서 쉬즈모 시의 문학사적 가치와 역사적 지위를 확정했다. 아울러『여신(女神)』은 중국 시 역사상 본격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었으며, 이후 발간된 『즈모의 시』는 이를 이어 받아 새로운 진지를 공고히 했다고 주장했다. 볜쯔린이 이 글에서 내놓은 견해는 대담하고 분명하며, 어지러운 세 상을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하고 쉬즈모에게 공정한 설법과 문학사의 위상을 돌려주자 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1980년 루야오똥(陸耀東)의「쉬즈모 시를 평론하다(評徐志摩的詩)」73)는 쉬즈모의 사상, 시 창작, 예술적 형식에 대해 비교적 전면적이고 섬세한 분석을 했다. 루야오똥 은 쉬즈모 사상의 핵심은 민주 개인주의이며 이는, 쉬즈모의 사고와 실천을 지배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기초로, 쉬즈모 4부 시집에 대해 하나하나 분석 하며 평가했다.
즉, 쉬즈모의 시는 직 · 간접적으로 ‘5·4’ 정신을 표출하고 있으며, 객관적으로는 반 제애국, 반봉건적으로 적극적인 격려 작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의 시는 사회생 활의 일정한 진실을 반영하고, 글귀 사이에는 고단한 서민의 삶에 대한 동정이 어려 있으며, 인도주의자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허무한 정서와 세상을 기피하는 소극적 경향도 포함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72)卞之琳, 「徐志摩詩重讀志感」, 『詩刊』, 第9期, 1979.
73)陸耀東, 「評徐志摩的詩」, 『中國現代文學研究叢刊』, 第2期, 1980.
예술 형식 면에서 쉬즈모의 시는 시적인 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교묘한 구상, 새로운 경치, 형식과 음률의 조화, 음악적 아름다움은 후대의 사람들이 배우고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루야오똥의 논문은 쉬즈모의 시를 적극적인 면과 소 극적인 면의 두 가지로 분석하였는데, 이는 전면적이고 적절한 분석으로 강한 설득력 을 가지고 있다.
1979년 이후의 쉬즈모 시의 형식미에 대한 연구와 그 견해는 비교적 일치한 편이 다. 많은 연구에서 그의 시의 독특한 예술 표현과 미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는 예술의 국한성을 지적하였다.
리예핑(李夜平)74)은 쉬즈모의 시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온 깨달음이고 자유를 찾 는 감정의 전달이라고 하였다. 또 미적 요구에 따라 감정을 처리하는 것과 형식과 운 치의 혼연일체를 실현하기 위한 형식의 절제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자유롭지만 적절 하게 전달하여 미의 승화를 얻는다고 하였다.
란띠즈(藍棣之)75)는 쉬즈모의 시는 중국 새로운 시의 역사상의 이정표이며, 특수한 지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목적은 언어 자체에 있지 않고 감정과 느낌 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쉬즈모의 시는 이러한 면에서 성공적으로 쓰여 졌고, 시 속 에 산문적 내용을 포용했다. 또, 새로운 시의 표현력을 확대하였고, 그 예술 풍격을 풍 부히 하였다.
그 외에도 1979년 이후 출판된 각종 문학사의 저작, 예를 들어 첸리췬(錢理群), 원 루민(溫儒敏), 우푸후이(吳福輝)의 『중국현대문학 30년(中國現代文學三十年)』, 황씨 우지(黃修己)의 『중국현대문학사(中國現代文學史)』, 쭈동린(朱棟霖) · 딩판(丁帆) · 쭈 씨아오찐(朱曉進)의 『중국현대문학사(中國現代文學史)』등은 실사구시적인 역사주의 원칙으로 쉬즈모의 문학 창작 및 그 문학사적 위상을 분석하였다.
당시에는 각종 버전의 쉬즈모 전집, 시집, 산문집, 감상, 평가가 계속 출간되었다. 다 시 말하면, 이 시기의 쉬즈모 연구는 연구 분야, 관념, 사료 가치 면에서 대폭적인 향 상이 있었다. 또, 온갖 예술이 함께 일어나고 낡은 것을 없애며 새 것을 창조하는 새 국면이 형성되어 학술 연구의 문화트렌드가 되었다.
한편, 한국에서의 중국 현대시에 대한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발표되었던 쉬즈모 시의 형상화 방식에 대한 연구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한국 에서 쉬즈모 시에 대해 연구한 몇 가지 학위논문과 소논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74)李夜平, 「中國現代新詩審美品格辨析」, 『中國現代文學研究叢刊』, 第4期, 1995.
75)藍棣之, 『現代詩的情感與形式』, 人民文學出版社, 2003, 40~41頁.
쉬즈모 시에 관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면, 왕해윤의 석사학위 논문76)이 최초이다. 이 논문은 한국 근대 시인이면서 대표적 서정시인인 김소월을 들어 쉬즈모와 근대시적인 특성을 비교, 연구하였다. 이는 중국 시인 쉬즈모에 대한 최초의 논문으로 상당히 뜻 깊은 연구로 자리 매김하였다.
뒤를 이어 박찬혜는 신월사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쉬즈모 시 작품을 주제, 소재, 현 실에서의 대응 자세 등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그는 작품의 특색을 성령면, 의상면, 음률면으로 분류했으며, 쉬즈모의 시 작품의 특색을 정리하는 동시에 시의 미 의식에 대해 언급했다.77) 이에 반해 김종철은 쉬즈모의 시를 형식과 내용적 측면에서 언급했다. 내용 분석에서는 낭만시, 애정시 위주로 논의되었던 쉬즈모의 시에 대한 새 로운 장을 마련하였다.78)
쉬즈모 시의 내용적인 면에 대한 연구로는 이소정의 「서지마 시의 상상세계 연 구」79)가 있다. 최용로의「徐志摩 愛情詩硏究」80)와 김지영의「徐志摩의 愛情詩 연 구」81)에서는 쉬즈모의 애정시를 통해 그의 삶 속의 사랑과 고민을 중점적으로 다루 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결혼이나 연애 생활을 기준으로 하여 그 시기 작품을 평가 함으로써 다각적인 방면의 평가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작품을 단지 작가 개인의 삶 과 결부시켜 해석하고 평가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권소정은「徐志摩 自然詩 硏究」82)에서 쉬즈모의 자연시 구현 양상에 대하여 고찰 했다. 한편 박안수는「徐志摩 詩 硏究」83)에서 쉬즈모의 시를 외재적인 특징과 내재적 인 특징, 그리고 표현 기법의 특징으로 구분하여 살폈다. 정미영은 「서지마시연구 - 건축미, 음악미, 회화미를 중심으로-」84)에서 쉬즈모 시의 미의식에 대해 전면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는 신월시파 시인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했던 이론인 삼미(三美)이론을 근거로 하여 건축미(建築美), 음악미(音樂美), 회화미(繪畵美) 가 쉬즈모 시 속에서 어 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한국 국내에는 많지 않은 쉬즈모 시 연구에 관한 학위논문 중, 그와 한국 시인 김소
76)왕해윤, 「韓國의 近代詩人 金素月과 中國의 近代詩人 徐志摩에 對한 比較 硏究」, 경희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1974.
77)박찬혜, 「徐志摩 詩硏究」,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78)김종철, 「서지마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79)이소정, 「서지마 시의 상상세계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80)최용로, 「徐志摩 愛情詩硏究」,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81)김지영, 「徐志摩의 愛情詩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82)권소정, 「徐志摩 自然詩 硏究」,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83)박안수, 「徐志摩 詩 硏究」,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84)정미영, 「서지마 시 연구 : 건축미, 음악미, 회화미를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월을 연관 지어 비교하는 논문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한국 국내에서 쉬즈모 연구의 첫 논문인 「韓國의 近代詩人 金素月과 中國의 近代詩人 徐志摩에 對한 比較 硏究」또 한 쉬즈모와 김소월 시의 비교 연구한 논문이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쉬즈모와 김소월 시의 비교 연구 학위논문은 총 6편이 존재한다.
만정정85)은 자연과 사랑을 중심으로 김소월과 쉬즈모의 시 세계를 비교 탐구하였다.
가구86)는 김소월 시의 민족정신과 쉬즈모의 사랑정신의 시 세계를 각각 고찰하면서 두 시인의 시에 나타난 낭만적인 상상력을 포함하고 있는 요소들(사랑, 눈꽃, 죽음, 자 연, 음율 등)을 비교하였다. 진함87)은 김소월과 쉬즈모의 문학세계를 기반으로 두 시 인의 서정시에 나타난 슬픔과 저항 정신을 중심으로 비교하였다.
여정88)은 1920년대 한국과 중국의 문학사적 배경과 김소월과 쉬즈모의 생애를 고 찰하면서 두 시인의 자연, 애정, 현실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외국인을 위 한 한국어 교육 자료로서의 쉬즈모와 김소월 시가 가지는 의의를 제시하였다. 장효 정89)은 1920년대의 한국과 중국의 시대 특징과 관련하여 김소월과 쉬즈모의 시 세계 를 고찰하고, 그들의 시에 나타난 이별과 한의 정서, 그리움과 애원의 정서, 자연 인식 과 세계관, 현실 인식과 시적 대응을 중심으로 비교, 연구하였다.
쉬즈모 시 비교 연구 논문은 김소월과 비교한 논문을 제외하고는 류소녕의 「백석과 서지마 시에 나타난 사랑과 연민 비교」90)가 있다. 여기서는 백석과 쉬즈모 시에 나타 난 연인에 대한 애정을 서로 비교하였다. 백석은 그리움과 고독의 운명적 애정이고, 쉬즈모는 자유와 이상 추구적인 애정이다. 이 논문에서는 또, 두 시인의 시에 나타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타인에 대한 연민도 비교하였다.
지금까지 한국 국내 소논문으로 쉬즈모 시 세계의 주제와 내용 측면, 그리고 형식미 에 대한 검토는 30여 편이 있다.
김묘경은「徐志摩 詩歌의 內容 分析 考」91)에서 쉬즈모의 시를 내용적인 측면에서 분석했다. 유경조는 「徐志摩論」92)에서 쉬즈모의 성장과 학업, 사상, 문학, 활동, 시
85)만정정, 「金素月과 徐志摩의 시 세계 비교연구 : 자연과 사랑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 문, 2009.
86)가구, 「김소월과 서지마의 비교연구 : 낭만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87)진함, 「김소월(金素月)과 서지마(徐志摩)의 서정시 비교 연구」, 대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88)여정, 「서지마와 김소월 시의 비교 연구」, 덕성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89)장효정, 「김소월과 서지마의 시 비교 연구 : 사랑과 자연, 현실인식을 중심으로」, 부경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2016.
90)류소녕, 「백석과 서지마 시에 나타난 사랑과 연민 비교」, 아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91)김묘경, 「徐志摩詩歌의 內容分析考」, 『中國學硏究』, 5, 1990.
92)유경조, 「徐志摩論」, 『중국어문학논집』, 6, 1994.
작을 전면적으로 검토하였다. 박성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