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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 한국 고전 시가의 수용

1. 율동적인 리듬미

1.1 김영랑 : 한국 고전 시가의 수용

한국 고전 시가의 율격은 주로 음보율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음보율이란 음보의 규 칙적인 배열에 의하여 형성되는 운율을 뜻한다. “문법의 가장 큰 단위는 문장 (sentence)인데, 음절이 모여서 낱말이 되고, 낱말이 모여서 어절이 된다. 또, 어절이 모여서 문절이 되고, 문절이 모여서 문장이 된다. 이것을 시의 형태면에서 설명하자면, 음절이 모여서 음보가 되고, 음보가 모여서 행이 되고, 행이 모여서 연이 되며 연이 모여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음보란 음절의 모임 또는 행을 이루는 단위 로 정의할 수 있다.”240) “한국 시가의 경우 음절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음절 수에 구애 받지 않는 음보는 작품의 실제와 부합되는 합리적인 율격개념이 되는 것이 다.”241)

3음보와 4음보는 한국 시행을 이루는 기본율격이다. 3음보는 한국의 미의식과 결부 된 고유리듬이며, 4음보는 중국 문화의 우수개념(偶數槪念)의 영향으로 성립된 리듬이 다. 또한 3음보는 서민계층의 세계관과 감성의 표현인 데 반하여 4음보는 사대부 귀족 층의 세계관과 감성의 표현이다.242)

김영랑의 총86편의 시작 중 50편243)을 살펴본 결과 3음보나 4음보가 대부분이다.

형태적인 면에서 “우리의 전통 시가는 3음보와 4음보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청산별곡이나 가시리 등의 고려가요는 대부분 3음보나 4음보이며, 조선 시대의 시조나

239)노유정, 「김영랑 시의 특징과 교육적 의의」,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6, 52쪽.

240)김준오, 앞의 책, 149~150쪽.

241)위의 책, 151쪽.

242)위의 책, 152~153쪽.

243)사행시 29편, 사행연시12편, 8행시2편, 2행시 4편, 5행시 2편, 기타 1편.

3음보 4음보 3음보와 4음보의 혼합 기타

21편 14편 11편 4편 50편

42% 28% 22% 8% 100%

3음보 4음보

서민계층의 리듬 자연적 리듬

서정적리듬 경쾌한 맛 가창에 적합

동적 변화감과 사회 변동기 대변

사대부계층의 리듬 인위적 리듬 교술적 리듬 장중한 맛 음송에 적합 안정과 질서 대변

가사 역시 4음보이다. 영랑의 四行詩도 3음보나 4음보가 무려 46편(92%)에 이르고 있다.”244)

<표-1>영랑 시에 나타난 율격 비율245)

김준오는 『시론』에서 “3음보는 서민계층의 세계관과 감성의 표현인 데 반하여 4 음보는 사대부의 귀족계층의 세계관과 감성의 표현이다.”246)라고 하였다.

<표-2>3음보와 4음보의 특징247)

따라서 김영랑의 시는 형태면에서 한국 고전 시가의 율격을 계승함으로써 3음보 혹 은 4음보, 3음보와 4음보의 혼합형이 대부분이다. 즉, 김영랑은 한시 율격의 영향을 받았고 이를 수용하여 시민계층의 3음보 리듬과 사대부계층의 4음보 리듬이 유기적으 로 결합된 자신만의 특색 있고 음률적인 시를 창조한 것이다.

김영랑의 대표작「모란이 피기까지는」는 이렇듯 음보면에서 영랑 시의 리듬미를 가 장 잘 드러낸 시이다. 이 시는 내용 구조적 측면에서 “<기다림 – 여흼 - 기다림>이라 는 순환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봄이 오가고 모란은 피었다 지며, 시적 화 자는 기다림의 ‘보람’과 사라짐의 ‘슬픔’을 겪고 있다.”248) 또, 형식적 측면에서 역시 3 음보와 4음보의 교체와 반복으로 인한 기쁨과 슬픔의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244)강학구, 앞의 논문, 21쪽.

245)위의 논문, 22쪽.

246)김준오, 앞의 책, 153쪽.

247)위의 책, 153쪽.

248)임수만, 「김영랑論 - ‘審美的인 것’의 構造와 意味」, 『한국문화』, 39, 2007, 43쪽.

모란이∨ 피기까지는 (2음보)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4음보)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4음보)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4음보)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4음보) 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 버리고는 (4음보)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4음보)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4음보)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6음보)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3음보) 모란이∨ 피기까지는 (2음보)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6음보)

-「모란이 피기까지는」249)전문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편에 흐르는 음악적 리듬감이다.

이 시는 구조상 음악적으로 완벽한 상승과 하강, 이완과 응축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 다. 뿐만 아니라, 의미론적으로는 감정의 제시와 그 변화 과정에 맞는 논리적 시상전 개 양상도 지니고 있다.

이 시가 가진 4음보 율격 구조의 안정감은 모란꽃이 피고 지는 자연 현상을 통해 기쁨과 슬픔이라는 두 가지의 이질적인 정서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이 그만큼 높은 균형 감각에 도달해 있음을 의미한다.

제1행과 제11행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행의 반복은 중요한 운율 요소이 다. 또, 이외에도 두운 ‘ㅁ’(제1, 3. 9. 11행)과 ‘ㄴ’(제2, 4, 12행), 그리고 각운인 ‘- 는’(제1, 6, 11행), ‘테요’(제2, 4행), ‘날’(제3, 5행), ‘-아’(제9, 10행) 역시 운율의 미 세한 결을 생성하고 있다. 여기에 ‘나’(6회), ‘모란’(5회), ‘날’(4회), ‘봄’(3회), ‘테요’(3 회), ‘피기까지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떨어져’(이상 2회) 등 여러 단어들 의 반복 또한 운율을 생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들 운율의 작은 결은 4음보 율격의 기 본 틀과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룸으로써 이 작품을 매우 음악성 있게 만들고 있다.250)

저녁때∨ 저녁때∨ 외로운 마음 붙잡지∨ 못하여∨ 걸어 다님을

249)박노균, 앞의 책, 111쪽.

250)위의 책, 111~113쪽.

누구라∨ 불어 주신∨ 바람이기로 눈물을∨ 눈물을∨ 빼앗아 가오

-「저녁때 외로운 마음」전문

시 속의 화자는 외롭고 쓸쓸한 심정으로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서글픈 느낌의 묘사 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1행의 ‘저녁때’와 4행의 ‘눈물을’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을 형 성하며 화자의 외로운 내면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즉, 이 시는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 는 3음보 형식을 통해 쓸쓸한 슬픔을 이겨내고자 화자의 심정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김영랑은 율동적인 음악성의 고조를 위하여 음소단위의 반복적 재현, 음절단위의 반 복적 재현, 문장구조의 반복적 재현, 시행과 연단위의 반복적 재현, 다양한 음수의 반 복적 재현 등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드러운 시어들은 그 자체의 음성 적 아름다움을 지닐 뿐 아니라 반복되는 자음이나 모음에 의한 운의 효과에 힘입어 시 의 리듬을 강화하고 낭독에 쾌감을 높이는 효과를 준다”.251)

김영랑의 대표 시「끝없는 강물」는 강물이 잔잔히 흐르듯 시 전편에 음악적 선율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이 도도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끝없는 강물」전문

이 시는 첫 두 행과 마지막 두 행이 반복되고 있는데, 처음과 끝을 통일시키는 수미 쌍관(首尾雙關)기법이 사용되었다. 이는 내용적으로는 주제를 강조하고, 형식적으로는 시의 율격을 가다듬어 시에 안정감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네/~엔 듯/내 마음/끝없는’과 같은 간결한 동일 시구의 반복에 의해서 빚어 지는 효과도 있다. 3행에서는 강물의 흐름처럼 넘실거리는 미적 파동과 함께 한국말의 미묘한 운율미를 느낄 수 있다.

251)김선기, 「김영랑의 삶과 작품에 나타난 앙가중망성 연구」, 『어문논총』, 21, 2010, 11쪽.

님 두시고 가는 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한숨 쉬면 꺼질 듯한 조매로운 꿈길이여 이 밤은 캄캄한 어느 뉘 시골인가 이슬같이 고인 눈물을 손끝으로 깨치나니

-「님 두시고 가는 길」전문

이 시는 전통적인 4행시 형태로 각 행은 4음보의 동일한 단순 구조를 보인다. ‘님과 의 이별’이라는 극히 일반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간단한 구 조 속에 압축해 넣었다.

우선 어조(tone)상에 있어서 일관된 독백체는 리듬의 구조상 통일성과 안정성을 확 보한다. 1·2행의 감탄형어미 ‘~이여’의 반복은 3행의 의문형어미 ‘~인가’로 변화를 주 고, 4행의 말미는 생략법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효과를 거둔다. 특히 1·2 행에서 살아나는 소리의 울림은 매우 유려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별의 정서를 즉각적 이고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님 두시고 가는 길」에서는 ‘한숨 쉬다’, ‘눈물이 고이다’, ‘(눈물을) 손끝으로 깨치 다’ 등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들은 아주 작은 동작들로서 이별이라 는 극적 정황을 보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쓸쓸한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마음은 가라앉은 양금줄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 이는 향 맑은 구슬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

-「쓸쓸한 뫼앞에」전문

이 시는 전체적으로 1행 ‘뫼 앞에’의 ‘에’와 ‘앉으면’의 ‘면’이 3행 ‘잔디에’의 ‘에’,

‘부비면’의 ‘면’과 같은 형태로 반복된다. 또, 1·2행과 3·4행에서는 각운 ‘면’, ‘같이’가 반복된다. 그리고 5·6행에서는 ‘가노라’의 반복이 다시 나타난다. 이런 반복을 통해 시 의 리듬감을 증가 시키면서 시행의 생동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의미의 유기성을 획득 하고 있다.

1행에서는 ‘쓸쓸한’이란 어휘로 먼저 서정적 자아의 정서를 제시한다. ‘후젓이’는 의 도적인 음모의 결합으로 가슴깊이 파고드는 적막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슬픔은 있는 그대로 고정된다. 2행의 ‘양금 줄’은 적막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선택된 시어이 다. 이는 현재 서정적 자아의 ‘마음’이 상실의 고통에 빠져 있는 상태임을 암시한다. 3 행의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과 같은 행동은 1행의 ‘뫼 앞에 앉으면’의 점진적 의미 심화의 단계로 볼 수 있다. 4행의 ‘구슬’은 ‘향 맑은 구슬’로서 ‘넋’과 ‘구슬’ 사이 에 향이라는 후각적 이미지가 제시되고 있다.

1행에서는 현재 무덤 앞에 위치한 서정적 자아의 육신에 관한 외부적인 정황을 제 시하고 있다. 반면, 2행은 서정적 자아의 마음에 관한 내면적 정황을 제시함으로써 1 행과 2행은 서로 상호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다. 3행은 현재 무덤에 얼굴을 부비는 외 부적 상황을 제시하며, 4행은 넋에 관한 내면적 정황을 제시한다. 1·2행의 경우처럼 3·4행의 관계 역시 상호보완적이다.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의 표현처럼 마음은 슬프지만 그 고 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도리어 ‘마음은 가라앉은 양금 줄 같이’, ‘넋이는 향 맑은 구 슬손 같이’처럼 잔잔한 미적 정서로 표현한다. 김영랑은 반복적인 음률을 통해 ‘무덤’

이라는 슬픈 ‘이미지’를 아름다운 정서의 이미지로 변형시키고 있다.

그 색시 서럽다 그 얼골 그 동자가 가을 하날가에 도는 바람숫긴 구름조각 핼쑥하고 서서느라와 어대로 떠갔으랴 그 색시 서럽다 옛날의 옛날의

-「그 색시 서럽다」전문

이 시에서는 가공의 인물인 ‘색시’와 가을 하늘가의 희미한 구름을 병치 시켜 자신 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표현한다. 여기 등장하는 색시는 상당히 깊은 연모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4행과 1행의 “그 색시 서럽다”의 반복은 사라져 버린 ‘색시’에 대한 그리움 을 안타까움의 어조로 드러내고 있다.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을 본다 눈썹에 아롱지는 눈물을 본다 풀 위엔 정기가 꿈같이 오르고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