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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 순정한 마음에 대한 추구

한국의 1920년대는 1919년 ‘3·1 운동’의 정신사적 배경 아래 전개됐다. ‘3·1 운동’

의 실패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 줬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새 로운 시대에 대한 구상이 정립됐다. 또, 민족주의가 무르익고 민족주의와 내셔널리즘 도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일본 유학의 기회도 많아진 까닭에 서양의 새로운 사상 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과 마르 크스주의의 유입은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을 촉진시켰다. 이런 상황은 문학계에서도 나 타났는데, 20세기 주류의 민요 시, 민족주의 시, 마르크스주의 시, 모더니즘 시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시인들이 민족주의 시와 프롤레타리아 시를 좇았고, 시는 정치의 부

속품과 같이 되었다.

1930년대는 일본이 만주121)를 강점하고 중국 중원 지역으로 침입하면서 태평양으로 전장을 확장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억압과 수탈이 더욱 가혹 해졌는데 문학작품의 창작도 극도의 제약을 받았다. 1931년 ‘9·18 사변’122)을 일으킨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 일체의 민족 운동 및 사회 운동을 금지하고, 1차적으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원을 검거하였다. 이 때 민족·사회 운동의 단일 노 선을 표방하여 결성되었던 신간회도 일본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한국 시단에서는 이 때, 새로운 방향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30년대 시단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시파는 시문학파이다. 프로시의 과도한 정치 성이나 모더니즘 및 아방가르드 시의 과격한 언어, 형태 실험과는 달리, 1930년대의 시문학에는 순수 서정시를 중시하는 일련의 시인들이 등장하여 한국 시의 리리시즘적 전통을 일구어 냈다.

시문학파로 지칭되는 박용철, 김영랑, 신석정, 김현구 등은 1930년대 순수 서정시 계열의 시인들 중 가장 첫머리에 놓이는 시인들이다. 시문학파 시인들은 대체로 자연 발생적인 정감의 음성적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무엇보다 미의 자율적 규범에 대한 확 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123)

이들은 정치적 이념의 문학적 표출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형태 파괴적이고 해체 적인 실험을 추구한 서구 현대 문예 사조와도 거리를 두었다. 그 대신 1930년대 서정 시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한국적 · 동양적 정서를 표출하고자 했으며, 언어 조탁이나 토속어 수용을 통해 조선어의 아름다운 숨결을 시에 담아내려 하였다.

또한 이들은 서정적 주체의 순수한 내면의 감정 세계를 자유롭게 표출하는 리리시즘에 충실한 현대적 서정시를 수립하고자 했다.

주제 측면에서 김영랑의 시는 순수시로서 공적인 것, 또는 사상과 관념을 배제한 상 태에서 쓰여 졌다. 그러나 단순히 사적인 측면에 머문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토로 하면서 ‘내 마음’의 순수 시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김영랑의 작품에는 유독 ‘마음’이라는 시어가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그의 시에 있어 서 ‘순수서정’의 발원지에 해당한다. 정한모는 영랑의 시 세계를 하나로 요약한다면 순

121)현재 중국 동북3성.

122)‘9·18 사변’은 일본이 중국의 동북 지역에서 일으킨 의도적인 중국 침략 전쟁이었다. 일본은 중국 을 독점하고 식민지화하기 위한 중요한 절차를 밟게 된다. 또한 ‘9·18 사변’은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의 시작을 알리며 제2차 세계대전 아시아 전장의 서막을 열었다.

123)오세영외 지음, 앞의 책, 159~160쪽.

정한 마음의 세계라고 하였다. 그의 시 전체 70편 중, ‘마음’이 51건, ‘마음’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가슴’이 5건 등 도합 56건의 ‘마음’이 등장한다. 이 밖에도 ‘마음’이나

‘나’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그러한 뜻을 나타내는 것은 더 많다.124) 이들 시에서 언어 의 모습은 ‘내 마음’의 정서를 드러내는 그 자체이다.125)

김영랑의 시에 나타나는 순정한 마음은 크게 순수 서정의 세계와 ‘그리움’의 세계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가 현재를 중심으로 한 미래 지향의 세계와 관련된다면 후자는 현재를 중심으로 한 과거 회상의 세계와 관련된다. ‘내 마음’을 근간으로 하는 미래 지 향의 세계는 그의『영랑시집』(1935)에 수록된 시 53편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이들 대부분의 경우 시의 제목 없이 일련번호만 붙어 있다.126)

영랑의 모든 시작을 통해 그의 순정한 마음의 내면 시 세계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면서 희망에 대해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영 랑 시에는 색채가 명쾌한 시가 많지 않다. 많은 부분 모두 옅은 슬픔에 휩싸여 있거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선명한 색조의 시든 회색 계열의 시든, 대부분 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랑의 순정한 마음의 시 세계가 잘 드러나고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 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전문

이 시는 내용과 형식이 간단하지만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어와 감각적 표 현이 뛰어난 작품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오월의 아름다운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는

124)정한모, 「김영랑론」, 『현대시론』, 민중서관, 1977, 182~183쪽.

125)김준오, 「비가적 세계와 순수자아 – 영랑론」, 『가면의 해석학』, 이우출판사, 1985, 102쪽.

126)윤호병, 『한국 현대 시인의 세계』, 국학자료원, 2007, 146쪽.

기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내 마음’이라는 말을 앞세워 마음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 다. “돌담에 온화하게 비치는 햇살, 풀 아래 흐르는 샘물, 처녀의 볼에 물드는 부끄러 움,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적시는 물결 등, 이 시의 소재들이 환기하는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천진한 순결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 시의 화자는 봄날 의 맑은 하늘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마음의 순결성을 나타낸 것이다.”127)

그러나 그 마음의 상태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다만, 직유를 통해 ‘하늘 을 우러르고 싶다’는 소망을 암시한다. 1연의 직유들은 의인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이 와 같은 분위기를 평이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돌담’, ‘햇발’, ‘풀’, ‘샘물’은 하 나의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본다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

이를 이어받는 2연의 직유들은 더욱 섬세하고 은은해진다. 미래를 알 수 없는 현실 에서 그의 우울한 마음은 밝고 평화로운 세상을 동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것은 햇발, 샘물, 물결 같은 어휘에 드러나 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내 마음을 아실 이」전문

127)이숭원, 『영랑을 만나다(김영랑 시 전편 해설)』, 태학사, 2009, 18쪽.

이 시는 ‘마음’이 소재가 된 것으로, 영랑의 시 세계를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성을 화자로 설정하여 그의 내적 독백으로 전개되고 있다. 비유와 상징, 가정과 자문자답의 형태를 사용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아는 누군가에게 깊은 그리움과 마음 속 슬픔이 결정체처럼 맺혔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시는 1연의 가정, ‘내 마음을 아실 이가 있다면’으로 시작한다. 특히 자신의 마음을

‘내 혼자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강조하는 데에는 그만큼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찾기 어렵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2연은 ‘어리우는 티끌’, ‘속임 없는 눈물’, ‘이슬 같은 보람’을 통해 ‘내 마음’을 상징 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시어들은 마음속에 있는 고뇌와 슬픔, 순정한 사랑의 보람 을 상징한다. 3연은 화자가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만나고 싶은 갈망을 제시하는 동시에 그를 자신의 꿈에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는 의문도 제기 한다.

4연의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불빛에 연긴 듯 의미론 마음은’에서 ‘옥돌’과

‘불’의 이미지는 시적 화자의 사랑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옥돌’은 순수하고 은근한 사 랑을 상징하며, ‘불빛에 연기’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 섬세한 서정을 표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김영랑의 시에는 슬픔과 희망을 품은 기다림 의 정서가 드러나 있다. 그의 대표작「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는 “화자가 느끼는 기 쁨과 슬픔이 서로 교차되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정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128)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128)박노균, 『김영랑 –최고의 순수 서정 시인–』, 건국대학교출판부, 2003,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