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 이미지
3.1 김영랑 : 생명력과 희망, 충성
김영랑의 시작품에서 꾀꼬리와 두견의 등장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꾀꼬리와 두견이 따로따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꾀꼬리와 두견이 한 편의
219)신은경, 「‘杜鵑’의 詩的 內包 -比較詩學的 관점에서-」, 『한국시가연구』, 6, 2000, 49~51쪽.
시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다.
뉘 눈결에 쏘이었소 온통 수줍어진 저 하늘빛 담 안에 복숭아꽃이 붉고 밖에 봄은 벌써 재앙스럽소
꾀꼬리 단 둘이 단 둘이로다 빈 골짝도 부끄러워
혼란스런 노래로 흰 구름 피어올리나 그 속에 든 꿈이 더 재앙스럽소
-「뉘 눈결에 쏘이었소」전문
이 시는 꾀꼬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봄의 정경을 몇 개의 화면으로 간결 하게 표현하였다. 강한 하늘빛, 붉은 복승아 꽃은 화자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꾀꼬리가 봄 하늘을 날며 내는 즐거운 울음소리와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이 한 데 어우러져 화자의 마음을 유혹한다. 화자는 이런 꾀꼬리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뭉게뭉게 펼 쳐보지만 그 속에 든 꿈은 더 수선스럽다. 이 시에서 ‘꾀꼬리’는 화자가 봄 경치에 녹 아들 수 있게 하는 안내자이다. 꾀꼬리의 경쾌한 울음소리가 없었다면 화자는 봄 경치 에 유혹받지 않았을 것이다.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 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5월」전문
이 시는 시작부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 붉어진 들길, 푸르른 마 을 골목, 그리고 바람, 햇빛, 보리의 율동과 같은 일반적이고 향토적인 소재들을 통해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로 눈앞에 보여준다. 모든 것이 생기발랄한 광경이다. 이때 꾀꼬리가 나타난다. 꾀꼬리 암수가 짝을 찾아 어지럽게 날아다니니 곱게 단장을 한 오 월의 산봉우리도 오늘 밤 짝을 찾아 어디로 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일어난 다.220) 이 시에서 의인화 된 ‘꾀꼬리’는 봄의 생기를 살리고 봄의 생명력을 형상화한 다.
하지만, ‘꾀꼬리’의 밝고 명랑한 이미지와는 달리 ‘두견’은 중년의 새요, 슬픔과 원한 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한국 고전시조에 내포되어 있는 ‘두견’의 恨과 悲哀의 의미221) 는 이어져 내려와, 김영랑 시에서는 식민지 시대 상황의 민족 정서를 담은 ‘두견’에 투 영되었다. 이는 암흑기 현실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김영랑은 “두견을 중심으로 한 한스러운 인간사와 우리나라의 역사에 얽힌 이야기, 우리의 삶과 관련된 비극적 곡절, 비극적 종말로 끝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비탄의 정서를 포괄하여 호곡과 같은 비탄의 어조로 여러 가지 시적 요소를 날과 씨로 엮어 교항악과 같은 비극의 드라마를 창조해 냈다.”222)
즉, “‘두견’의 속성에서 드러나는 전설적인 정한의 감정을 한국 민족이 처한 당대의 현실과 동질화하였다.”223) 김영랑 시에 나타난 ‘두견’ 이미지는 ‘忠’과 밀접하게 관련 이 되며, 김영랑의 애국심을 잘 드러낸다.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는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음을 피로 삭이려 오고 네 눈물은 수천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쪽땅 너 쫓겨숨음 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고
220)이숭원, 앞의 책, 255쪽.
221)한국 시문학에서 두견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고려조 鄭敍가 지은 「정과정」이다. 「정과정」은 동 백목 – 단심가 – 사미인곡 · 속미인곡으로 이어지는 ‘忠臣戀君之詞’의 祖宗이 되는 작품이다. 이 시 중
‘두견’은 恨과 悲哀를 내포하였다. 이 뒤의 한시, 시조, 가사 등 수많은 두견 텍스트들은 신한의 ‘忠’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두견’의 한과 비애를 수용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신은경, 앞의 논문, 49~51쪽.) 222)이숭원, 앞의 책, 215쪽.
223)문정현, 앞의 논문, 32쪽.
하늘 가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었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으니
무서운 정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 밑을 돌아 나가는 죽음의 자랑 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 지워라
-「두견」부분
이 시의 소재 ‘두견’에는 한국 민족의 보편적이고 전통적 정서인 한, 눈물, 슬픔, 그 리움 등이 서려 있다. ‘두견’은 가장 절망적 국면에 처한 시인 자신의 투영이기도 하 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한 편의 비극적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화자는 이 시의 주요 소재인 ‘두견’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라고 읊조리다가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라고도 한다.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는 도로 삼켜/평 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로 시작하는 이 시는 일제 강점기 서러운 현실 속에 서 인생의 비탄과 처절한 슬픔을 두견새의 울음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처럼 피나게 우는 두견의 울음소리를 통해서 인간의 죽음을 떠올 린다(‘죽음의 자랑찬 소리여’). 이처럼 두견은 억울하고 분통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서 러움이며 피울음이다.
아울러 그 슬픈 서정의 영역 속에서 ‘옥 속의 춘향’과 ‘단종의 죽음’을 관련시키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인 슬픔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적 포석을 시대 상황 과 관련지어서 살펴 볼 때, 이 시는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비통한 심정을 두견의 슬픈 울음을 빌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 의 ‘두견’에는 ‘나라 잃은 슬픔’이라는 새로운 이미지가 추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 다.224)
꾀꼬리와 두견이 동시에 등장하는 시에서 서로는 상극의 모습이다. 꾀꼬리는 황홀함 을 상징하는 새로, 두견은 서러움을 상징하는 새로 각각 인식된다.225)
224)김주수, 「현대시에 나타난 두견 모티브 연구 - 한시의 두견 모티브 수용을 중심으로」, 『민족문화』, 36, 2011, 316~317쪽.
225)박노균, 앞의 책, 91쪽.
비 개인 5월 아침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 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즈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중략)…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그 보금자리에 찌찌찌 소리 내는 잘새의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 이제 다 어루만져졌나 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흔드오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중략)…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익靜謐하단들 또 무얼 하오
저 꾀꼬리 무던히 소년인가 보오 새벽 두견이야 오 ― 랜 중년이고 내사 불혹을 자랑턴 사람
-「5월 아침」부분
이 작품에서 꾀꼬리와 두견새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두 개의 대립각을 형성한 다. 꾀꼬리는 햇빛 찬란한 오월의 새벽에 나타나며, 두견은 고요한 새벽녘에 나타난다.
이러한 시간상의 차이는 그것들이 서로 다른 내용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벽 녘의 꾀꼬리 울음소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며 희망으로 가득 찬 햇빛을 동반한다.
하지만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보슬비 내리는 새벽녘에 나타나며 사람들로 하여금 가 슴과 폐를 찢어지게 하고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새벽녘의 꾀꼬리는 격정으로 충만하 여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마치 젊은 시절의 화자인 듯하다. 반면, 새벽녘의 두견새 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마치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화
자와 같다.
천 리를 올라온다 또 천 리를 올라들 온다 나귀 얼렁소리 닫는 말굽소리 청운의 큰 뜻은 모여 들다 모여 들다
남산 북악 갈래갈래 뻗은 골짜기
엷은 안개 그 밑에 묵은 이끼와 푸른 송백松柏
낭랑히 울려 나는 청의동자靑衣童子의 글 외는 소리 나라가 덩그러니 이룩해지다
인경이 울어 팔문이 굳게 닫히어도 난신외구亂臣外寇 더러 성을 넘고 불을 놓다
퇴락한 금석전각金石殿閣 이젠 차라리 겨레의 향그런 재화로다 찬란한 파고다여 우리 그대 앞에 진정 고개 숙인다
철마가 터지던 날 노들 무쇠다리 신기한 먼 나라를 사뿐 옮겨다 놓았다 서울! 이 나라의 화사한 아침저자더라
겨레의 새 봄바람에 어리둥절 실행失行한 숫처년들 없었을 거냐
남산에 올라 북한 관악을 두루 바라다 보아도 정녕코 산 정기로 태어난 우리들이라.
우뚝 솟은 뫼뿌리마다 고물고물 골짜기마다 내 모습 내 마음 두견이 울고 두견이 피고
높은 재 얕은 흔들리는 실마리 길 그윽하고 너그럽고 잔잔하고 산듯하지 백마 호통 소리 나는 날이면
황금 꾀꼬리 희비교향喜悲交響을 아뢰니라
-「천 리를 올라온다」전문
이 시는 총 6연으로 독자들을 위해 몇 폭의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첫째는 천리 밖에서 온 군마의 모습이다. 둘째는 청의동자가 푸른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남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