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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物을 통한 이치의 이해

1. 漢詩의 내적 지향과 형상화 양상

1.1. 觀物을 통한 이치의 이해

‘觀物’은 사물을 본다는 뜻으로, 단순히 사물의 외면이나 현상을 본다는 뜻이

174) 이영호는 哲理詩 중에서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를 주제로 다룬 것을 說理詩로 제한하여 논 의를 전개하였다. 그는 說理詩를 우주적 법칙의 구현체인 인간과 자연을 통해 根源的 一者를 發見 하려는 혹은 合一하려는 여정을 운문으로 훌륭하게 표현해 놓은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영호, 「한국 한시의 특징과 전개 (1) ; 哲理詩의 범주와 미의식에 관한 시론–儒家哲理詩를 중심으로」, 동방한문 학 33권, 동방한문학회, 2007.

175) 장도규, 「朝鮮前期 道學派의 詩趣向과 說理詩」, 한문학논집 제13집, 근역한문학회, 1995, 115 면 참조.

주제 작품명 형식

觀物을 통한 이치의 이해 (13수)

天生城下盤石, 四時佳與與人同(五言律詩) 五言絶句 觀燈, 繅車, 三條索, 偶吟, 針松, 蟋蜶, 復馬生, 最上前丘,

蠶, 江上, 明鏡堂 七言絶句

五言四韻 七言四韻 五言長篇 七言長篇 아니라 사물의 내면에 들어 있는 이치를 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邵雍이 말 한 바와 같이, 觀物은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理로써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객관적인 사물을 관찰할 때 주관적인 자아를 개입시키지 않고, 사물에 갖 추어져 있는 이치로써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176)

高應陟은 이러한 觀物을 통해 자연 현상이나 사물을 접하고 시를 지을 때 개 인적인 흥취보다는 이들에 갖추어져 있는 이치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의 한시 작품 중에서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먼저 <晨上前丘>라는 시를 통해 高應陟이 觀物을 통해 이치를 구현하는 양 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산에는 구름이 지고 비는 말끔히 개었으니 雲落千山雨快晴 맑은 새벽이슬에 풀들은 영롱함을 다투네. 淸晨露重草爭榮 사람들아 웃지 마라, 쑥대 사이에 앉아서 傍人莫笑蓬間坐 묵묵히 乾坤에서 만물이 나는 것을 깨닫는도다. 默會乾坤萬物生

<晨上前丘> 甲辰

176) 宋元學案 卷8, 「邵康節先生雍觀物內篇」. “무릇 이른바 觀物이란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며,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다. 聖人이 만물의 情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은 능히 그것을 돌이켜 관찰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이른바 돌이켜 관찰한다는 것은 나로써 사물을 관찰하지 않는 것이다. 나로써 사물을 관찰 하지 않는 것은 사물로써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이른다. 이미 사물로써 사물을 관찰하니 어찌 그 사이에 나를 개입시키겠는가(夫所以謂之觀物者, 非以目觀之也. 非觀之以目, 而觀之以心也, 非觀之以 心, 而觀之以理也. 聖人之所以能一萬物之情者, 謂其能觀也, 所以謂之反觀者, 不以我觀物也, 不以我觀 物者, 以物觀物之謂也. 旣能以物觀. 又安能有我於其間哉).”

이 시는 高應陟이 74세 때인 1604년에 지은 것으로, 자연현상의 觀物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시로 표현하였다. 기구와 승구를 보면, 멀리 있는 산에서 가까이 있는 풀잎으로 시선을 옮겨오며 묵묵히 자연현상을 관조하고 있다. 작자는 산에 구름이 걷히면서 비가 그치자 풀잎에 매달린 물방울이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 을 보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을 가리켜 하찮은 일이라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자연현상의 관찰을 통해 작자는 자연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蟋蟀>과 <復馬生>과 같은 작품도 자연 현상을 접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이치를 읊고 있다.

밤새도록 베를 짜니 사정이 있는 듯 徹夜催機若有情 무엇 때문에 그치고 무엇 때문에 우는가? 爲何停止爲何鳴 알겠도다, 기가 쇠하여 생각마저 궁해져 從知耗氣窮思處 가을 귀뚜라미 節序에 따라 우는 것만 못함을. 不似寒蛩順序聲

<蟋蟀>

이 시는 밤새 울었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서 깨달은 바를 읊은 것이다. ‘찌륵찌륵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가리켜 ‘促織’이라고 한다.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마치 베 짜는 소리와 같으므로 가을이 되었으니 사람 들에게 ‘베 짜기를 재촉하는 듯하다’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 기구와 승구를 보 면 작자는 귀뚜라미에게 무슨 사정이 있어서 밤새도록 울었다가 그쳤다가를 반 복하는지 그 연유를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귀뚜라미 소리의 觀物을 통해서 자연 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귀뚜라미가 밤새 울거나 또 울었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는 것은 모두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작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게 된다. 나이가 든 자신은 이미 기가 쇠하고 생각도 궁 해져서 자연의 미물인 귀뚜라미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시의 창작시기 가 高應陟의 沒年인 1605년임을 고려할 때, 그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신체적으 로도, 또 정신적으로도 쇠약한 존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작자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귀뚜라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 는 觀照的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마구간에서 암말 한 마리를 길렀는데 廐中能養一雌騂 한밤중에 놀랍게도 두 마리 울음소리 들리네. 夜半驚聞二馬鳴 生生한 조화 坤이 牝馬177)로 化했음을 알겠거니 可想生生坤牝化 天機를 어찌 홀로 말 소리에 깨닫는지. 天機奚獨覺驢聲

<復馬生>

이 시는 말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은 천지만물의 이치를 읊은 작품이다. 작 자는 마구간에서 암말 한 마리를 길렀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두 마리의 울음 소리를 듣게 되어 놀랐다. 마구간에 가서 보니 키우던 암말이 새끼를 낳은 것 이다. 작자는 암말이 새끼를 낳은 것을 천지만물의 오묘한 이치로 이해하였다.

周易의 坤卦 를 보면 “坤, 元亨利, 牝馬之貞”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坤은 크고[元], 형통하고[亨], 이롭고[利] 암말의 곧음[貞]”이라는 뜻인데, 坤을 ‘암말’

에 비유하여 모든 만물을 포용하고 양육하는 속성을 가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 다. 만물은 坤에 힘입어 탄생하여 온순하게 하늘을 받들게 된다. 따라서 결국 이 시는 암말이 새끼를 낳은 것을 통해 생명 탄생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물을 통해 깨닫게 된 만물의 이치도 시를 통해 형상화하였다.

팔각바퀴가 도는 중에 하나가 가운데 꿰뚫으니 八角輪廻一貫中 쇠머리에서 실이 끝없이 나오네. 鐵頭絲緖出無窮 이로부터 만물의 변화가 生生하는 것 알겠으니 從知萬化生生者 모든 것이 乾坤이 쉬지 않는 공효 덕분이네. 都自乾坤不息功

<繅車>

이 시는 高應陟이 ‘繅車’라는 사물을 통해 깨달은 우주 만물의 이치를 읊은 작품이다. 繅車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켜는데 사용하는 물레인데, 작자는 繅車를 관찰하여 그 생김새를 묘사하면서 실이 나오는 과정을 서술하였다. 물레의 바퀴 를 돌리면 그 회전에 의해 누에고치에서 실이 뽑혀 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 이 끊임없이 반복·지속되면서 실이 나오게 된다. 高應陟은 이와 같은 현상을 관 177) 牝馬 : 암말로, 陰을 뜻하는데, 암말은 유순하고 굳건히 걸어가는 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찰하고, 물레의 바퀴가 돌면서 끊임없이 실이 나오는 것처럼 우주 만물도 생성 과 소멸을 반복하며, 음양과 조화를 통해 질서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깨달음 을 얻었다.

한편 생경한 천지 만물의 이치를 구체적인 일상사에 빗대어 구체적으로 형상 화하기도 하였다.

세 가닥이 서로 꿰어져 쓰이게 되니 三條交貫互爲用 하나라도 없다면 어찌 생겨날 수 있으랴. 除一安能有所生 변화에는 三才의 道 있으니, 알겠도다 從知變化三才道 天地가 인간을 빼면 또한 이뤄지지 못함을. 或却吾人亦不成

<三條索> 甲辰

이 시는 세 가닥 새끼를 꼬는 행위에 빗대어 三才의 道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 가닥의 새끼로 하나의 굵은 새끼를 꼴 때 한 가닥이라도 없다면 튼튼한 새끼줄을 만들 수 없듯이 天, 地, 人 三才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조화로운 삶을 이루지 못할 것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 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없다면 만물의 생장과 변화가 조화롭게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표출하였다.

이와 같이 高應陟은 觀物을 통해 이치를 드러내는 說理詩를 다수 창작하여 그의 주된 시 세계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주변의 모든 자연경물을 觀物의 대상 으로만 여긴 것은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은거하여 景物을 玩賞하며 그곳에서 느끼는 閑情을 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는 <溪上偶吟>, <用春草曲>, <甲長山>, <明鏡堂>, <杜谷偶吟>, <雙柳亭>,

<題自醒堂>, <暮春晴景> 8수가 있다.

늙어 물러나 바야흐로 두 칸 집을 경영하니 老去方營屋二間 한 칸은 명월이고, 또 한 칸은 바람일세. 一間明月一間風 九峰山의 푸른빛은 들일 곳 없으니 九峰翠色無藏處 이곳저곳 흩어두고 어디서든 보리라. 散置幽閑四顧中

<杜谷偶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