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성과 표현 기법에 반영된 형상화의 방식
2.1. 발문을 통한 개념의 부연적 설명
高應陟의 시조 창작에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개별 시조 작품에 발문을 부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총 28수의 시조를 남기고 있는데, 이 중에서 <新民 曲>, <格致曲>, <誠意曲>, <正心曲>, <仁智曲>, <磨石曲>, <然然曲>, <有無 曲>과 같은 개별 시조 작품에 발문을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개별 시조 작품의 발문에서는 그 시조를 창작한 동기나 배경, 작 품에 대한 평가 등을 기술한다. 따라서 시조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확한 가치 평가를 하기 위해서 작품 자체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 작품 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이나 작품에 대한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발문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개별 시조 작품에 부기되어 있는 발문은 그것을 누가 지었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과 성격이 달라진다. 타인이 발문을 지은 경우에는 대체로 작품을 지은 작 자와 작품에 대한 찬양 위주로 서술되는 특성이 있는 데 비해, 작자 자신이 발 문을 지은 경우에는 대개 작품을 창작한 배경 및 동기, 창작 방식, 작품의 효용 적 가치, 작품에 대한 평가 등이 서술되어 있다.303)
李滉의 <陶山十二曲跋>은 작자 자신이 발문을 지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시조를 창작한 배경 및 동기, 창작 방식에 대한 설명을 서
302) 권두환, 「목소리 낮추어 노래하기」, 한국고전시가작품론 2, 백영 정병욱 선생 10주기추모논문 집 간행위원회 편, 집문당, 1992.
303) 조규익, 「시조 작품 序·跋에 나타난 문학의식」, 민족문화연구 제21집,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1988 참조.
술하였다. 기존 李鼈의 <六歌>는 <翰林別曲>보다는 낫지만, 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溫柔敦厚의 내용이 적어서 애석하다는 李滉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304) 우리나라의 말로 노래 부르고자 하는 목적에서 李鼈의 <六歌>를 모방하여 <陶 山十二曲>을 짓게 되었다는 창작 배경을 밝혔다. 또 <六歌> 형식을 모방하여
‘言志’와 ‘言學’의 ‘陶山六曲’ 둘을 지었다305)는 창작 방식도 설명하였다. 그리고 張經世가 지은 <江湖戀君歌跋>에도 창작 배경 및 창작 방식이 서술되어 있다.
그는 李滉의 <陶山十二曲>이 가진 교육적 효용을 확인하고 <陶山十二曲>의 체를 본떠 前後 六曲을 만들어, 愛君憂國의 정성과 聖賢學文의 올바름을 발현하 고자 <江湖戀君歌>를 창작하였음을 스스로 밝혔다.306) 또한 후대의 申墀도
<永言十二章> 발문에서 “<陶山十二曲>의 뜻에 和答한 것307)”이라고 하여, ‘和 答’이라는 창작 방식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개별 시조 작품의 발문에는 그 작품이 미치는 효용이 서술되기도 한 다. 李滉의 <陶山十二曲跋>을 보면, 아이들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익혀 스스로 노래하게 한다면 비루하고 인색한 마음을 씻어내어 感發하고 맺힌 마음을 녹여 통하는 바가 있어서, 노래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두 유익할 것이라고 하여 이 시조가 인간의 性情에 미치는 교화적 효용을 설명하고 있다. 李叔樑이 지은 <汾 川講好歌>의 발문에서도 “날마다 베풀기를 위엄으로써 하는 것은 착함으로써 감 동시키는 것만 같지 못하고, 사람을 꾸짖어 따르게 함은 자기에게 먼저 함만 같 지 못하다. 이에 스스로 꾸짖는 노래를 지었으니, 첫째 孝悌忠信을 주지로 삼아 듣는 이의 착한 마음을 감발시키고 음탕한 뜻을 징계하고자 한 것이다.”308)라고 하여 이 시조를 지은 목적과 그 교화적 효용을 드러내었다.
또한 발문에는 작품에 대한 평가도 서술되어 있는데, 대체로 객관적이고 냉철
304) 退溪集 卷43, <陶山十二曲跋>. “惟近世有李鼈六歌者, 世所盛傳, 猶爲彼善於此, 亦惜哉. 其有玩 世不恭之意, 而少溫柔敦厚之實也.”
305) 退溪集 卷43, <陶山十二曲跋>. “故嘗略倣李歌, 而作爲陶山六曲者二焉. 其一言志, 其二言學.”
306) 沙村集 卷2, <江湖戀君歌跋>. “余少時, 因友人李平叔, 得見退溪先生陶山六曲歌. 意思眞實, 音調 淸絶, 使人聽之, 足以興起其善端, 蕩滌其邪穢, 眞三百篇之遺旨也. 傳寫一本, 藏諸篋笥, 時使童稚歌而 詠之, 大有所益. 不幸見失於兵火之中, 今已十年, 僅能記得數三曲. 每於靜夜月明, 沈吟之, 永言之, 以 寓景仰之懷. 頃者, 適到月波軒, 偶得印本, 乃前所謂陶山六曲也. 一番吟諷, 益覺意味深長, 自不知手舞 而足蹈也. 謹效其體, 足成前後六曲, 一以寄愛君憂國之誠, 一以發聖賢學問之正.”
307) 伴鷗翁遺事. “右十二章 蓋和陶山十二章之遺意. 而文拙詞荒必招外人之譏議, 覽者恕之.”
308) 梅巖集 卷1, <汾川講好歌跋>. “日施之以威, 不若動之以善, 責人以從, 不若先之於己. 乃作自責之 歌, 一以孝悌忠信爲主, 欲使聽之者, 庶幾感發其善心, 而徵創其逸志也.”
한 비평보다는 작품의 장점을 드러내는 측면의 비평에 한정되어 있다. 申欽의
<放翁詩餘序>를 보면 “마음에 맞는 것이 있으면 시나 문장으로 나타내고, 또 남음이 있으면 方言으로 이어 곡조를 삼고 俚諺으로써 표기하였다. 이것은 단지 상스러운 속요로서 騷壇 같은 곳에는 낄 수가 없다. 遊戱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 나 혹 볼 만한 것도 없지는 않다.”309)라고 하여 자신의 시조가 속요라 상스러울 수도 있지만, 볼 만한 가치도 가지고 있다고 自評하였다.
이와 같은 개별 시조 작품의 발문에 나타난 일반적 특성을 전제하고 高應陟 의 시조 발문에 드러난 특징을 살펴보자. 高應陟의 시조에 부기된 발문을 검토 한 결과, 몇몇 작품에서는 앞서 살핀 일반적인 발문의 양상과 유사하게, 창작 동기 또는 창작 방식이 서술되어 있었다. <仁智曲>의 발문에서는 “大學을 읽 고 스스로 터득한 것을 술회한 것(讀大學而自得之述也)”이라 하여 창작동기를 드러내고 있고, <磨石曲>의 발문에서는 “程伊川의 磨石 중에서 만물의 뜻을 뽑 아낸 것(用伊川磨石中 撤出萬物之意)”이라고 하여 그 창작방식을 직접적으로 드 러내기도 하였다. 한편 <有無曲>의 발문에서는 당대 異端과 俗儒에 대한 비판 을 하기 위한 목적310)에서 이 시조를 짓게 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그러나 高應陟이 남긴 대부분의 시조 발문에는 시조 작품을 창작하게 된 배 경이나 동기, 창작 방식, 효용 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작품의 주지나 시조 에 표현된 핵심어구의 의미에 대한 부연 설명이 주로 서술되어 있다. 이것은 高 應陟이 도학의 이념이나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발문을 보조적 설명 수단으 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大學의 三綱領 중에 하나인 ‘新民’을 주제로 한 <新民曲>의 발문을 보면서 그 양상을 확인해보자.
지븨 누어 자 사 겯 두고 火燃積薪커니 설워 아니 올러냐 진실로 야니옷 오면 제나 내나 다랴
<新民曲>
309) 珍本 靑丘永言. <放翁詩餘序>. “有所會心, 輒形詩章而有餘, 繼以方言而腔之, 而記之以諺. 此僅 下里折楊,, 無得於騷壇一班, 而其出於遊戱, 或不無可觀.”
310) 杜谷集 卷5. “異端欲觀道於物外, 俗儒欲舍道而逐物, 是二而已. 故云.”
先覺이 後覺을 깨닫게 하는 것은 하늘이 이 백성을 낸 뜻이다. 中庸의 덕을 가진 사람이 中庸의 덕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버린다는 것은 그 둘의 차이가 일촌도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311)
위 인용문은 <新民曲> 발문의 全文인데, 이 발문에는 시조를 짓게 된 창작 배경이나 동기, 창작 방식, 작품에 대한 평가 등이 서술되지 않았다. 대신에 먼 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先覺]과 中庸의 덕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 들을 깨닫게 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라고 설명하면서, 만약 中庸의 덕을 가지 지 못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버린다면 이 둘의 차이는 거의 없을 것 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결국 시조에서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新民’의 개념을 부연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발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孟子 萬章章句上 312)과 離婁章句下 313) 에 있는 구절을 가져와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新民’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新民’은 大學의 三綱領 중의 하나로,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明明德’이 자신의 올바른 덕을 밝히는 것, 즉 자신의 학문 수양을 의미한다면 ‘新民’은 학문 수양을 통해 올바른 덕을 갖 춘 사람들이 타인을 교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발문에서는 사람들을 올바 로 이끌어 새롭게 하는 君子를 ‘먼저 깨달음을 얻은 자’와 ‘中庸의 덕을 갖추고 있는 사람’으로 구체화하여 ‘新民’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正心曲>의 발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양상이 확인된다.
거두워 드려옴도 이 主人의 다시오 미러내여 도 이 主人의 다시라 진실로 出入無節면 둔 거 미드랴
<正心曲>
이 말은 앎 이르러 뜻을 성실히 한 후에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천하의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지극하게 하여 마음의
311) 杜谷集 卷5. “以先覺後, 天生此民之意, 中棄不中, 不能以寸之意也.”
312) 孟子, 「萬章章句上」. “天之生此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
313) 孟子, 「離婁章句下」. “中也養不中, 才也養不才. 故人樂有賢父兄也, 如中也棄不中, 才也棄不才, 則賢不肖之相去, 其間不能以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