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조선문학』의 독해에 있어 경제-문화의 교집합을 연구하는
‘신경제비평’(New Economic Criticism)의 방법론적 논의를 참고한다.
『조선문학』을 중심으로 전후 1960년대 후반에 이르는 ‘사회주의 문예 건설’의 논쟁 및 조직적 실천을 분석하는 데서 ‘신경제비평’의 방법론적 지침은 텍스트의 분석만이 아니라 텍스트의 생산 및 수용과 관련된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신경제비평’은 텍스트가 생산된 사회, 역사적 환경에 주목을 돌릴 뿐 아니라 텍스트 내적 분석, 텍스트가 읽히고 소비되는 독자적 수용에 대한 분석, 마지막으로 이러한 다양한 층위의 텍스트를 둘러싼 경제의 비평 자체에 대한 메타이론적 논의를 포괄한다(Woodmansee and Osteen 1999). ‘신경제비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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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문학과 경제 사이에 매우 긴밀한 관련이 존재하며 이 관련 속에서 문학 이론 및 창작을 해석할 때 새로운 통찰을 확보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 문학과 경제 사이의 밀접한 연계는 ‘신경제비평’의 논자들이 주로 수행하는 연구대상인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문학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텍스트를 둘러싼 사회, 문화, 정치적 환경에 대한 분석, 텍스트 내부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경제건설’에 대한 논리 분석, 텍스트를 유통, 소비함으로써 특정한 ‘경제건설’에 대한 논리를 해석, 상호작용하는 외부 독자층 및 사회적 맥락, 경제-문학/문화에 대한 특정한 논리체계를 둘러싼 대내외 다양한 논쟁 및 연구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유용한 대상들이다.
본 연구는 ‘신경제비평’이 문학예술이 이데올로기 부문의 주요 부분으로 호명되어 경제, 문화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적극적, 창조적 역할을 수행한 ‘현실 사회주의’ 사회들의 문예 부문을 논하는데 유효한 방법론적 통찰을 제공한다고 본다. 맑스-레닌주의적 세계관과 소련의 역사적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근거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미학 이론 및 실천은 경제적 토대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는 것으로서 사상의식에 주목했으며,
‘경제건설’과 문예 부문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상정하고 문예를 통해
‘경제건설’의 괄목할 만한 변화를 추동하는 특유의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경제-문학/문화에 대한 긴밀한 관계 설정 및 문예를 통한 혁명과 건설의 추진이라는 ‘주의주의’(voluntarism)적 성격은 소련의 경우 혁명 전 문예 인텔리겐차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원이 존재한다(Gutkin 1999).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성공을 거둔 소련의 모범을 따른 아시아의 문예 인텔리겐차들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되어, 일본의 나프(NAPF 전일본무산자예술동맹), 식민지 시기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중국의 좌련(左聯 중국좌익작가연맹)에서
1920년대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 및 1930년대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용의 과정이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1945-1967년에 이르는 북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의 형성은 혁명 후 사회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추동하는 문예(계)를 새롭게 재편하는 과정이었다. 이 문예(계)의 새로운 조직 과정은 2차 대전 후 냉전의 심화라는 국제정치적 맥락과 스탈린 사후 소련 사회 내부의 ‘해빙’에 따른 변화된 사회, 문예 담론적 맥락, 그리고 해방 후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쳐 전후복구와 사회주의 건설에 착수한 북한 내 사회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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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에서 전개되었다. 본 연구는 ‘사회주의 건설’의 경제적 변화와 맞물린 사회주의 문예(계)의 조직을 ‘신경제비평’이 제시한 방법론적 측면에 유념해 살필 것이다.22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 및 창작을 생산하는 사회, 문화, 역사적 조건
◆사회주의 리얼리즘 텍스트 내적 구조: 용어, 개념, 표현
◆사회주의 리얼리즘 텍스트를 읽고 해석, 상호작용하는 독자 및 사회적 맥락
◆사회주의 리얼리즘 자체에 대한 다양한 메타이론적 논의
이에 근거해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전후 북한 문예(계)의 형성을 검토한다.
- 문예계의 자기 규정 및 조직 과정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기존 소련학계 연구 중 특히 도브렌코(Dobrenko 1997: 2001: 2007)의 논의는 이러한 문예계의 조직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1934년 1차 소련작가회의에서 정식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이와 밀접히 결부된 문예조직 내 정치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선행연구(Robin 1992; Fast 1999)들은 1920년대 소련의 문예 인텔리 내부의 미학-정치적 논쟁을 거쳐 1930년대 초 라프(RAPP 러시아프롤레타리아작가연맹)가 해체되고 소련작가동맹이 출범해 문예 부문에 대한 위로부터의 정치적 귀속이 확립되는 과정을 보였다.
도브렌코(Dobrenko 1997: 2001)는 이러한 문예의 당적 종속 과정이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의 사회적 변화 맥락에서 부상한 인민-독자층의 역할, 인민대중의 사회적 상승과 결부된 노동자-농민 출신 작가대열의 조직 등을 통해 문예(계)의 구성 및 자기 규정이 변화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도브렌코의 시각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역사적 형성이 문예 부문의 조직체계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사고와 이에 따른 재편에 바탕했음을 보임으로써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통한 ‘당(黨) 문예’의 확립이 어떻게 실현되었는가에 대한 풍부한 통찰을 제공한다.
- 역사적 맥락의 이해 (대내외 정치적 맥락)
22 네 가지의 방법론적 측면은 오스틴ㆍ우드맨지(Osteen and Woodmansee 1999)
의 분류를 참고했다. 이들이 밝히고 있듯 네 가지의 방법론적 측면은 선택적으로 구 사하거나 절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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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리얼리즘 텍스트의 내적 분석, 즉 주요 범주, 용어, 표현들의 분석과 함께 텍스트가 수용되는 독자층 및 당적 검열의 조건들을 살펴보는 것과 더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번역과 수용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생산되는 그 사회, 정치적 맥락을 살피는 것이다. 대내외 정치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문예계의 자기 규정 및 조직재편과 관련된 행위자들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국내 정치적 맥락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문예건설의 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도입된 시점이 곧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에 따른 사회주의 공업화의 전개, 즉
1차 5개년 계획의 실행과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스탈린 시기
사회주의 공업화의 실행은 경제건설을 주도하는 새로운 계층 혹은 세대에 해당하는 공장 지배인, 기사장 등 노동계급 내 전문 경영 및 과학기술 인력의 부상을 필요로 했다(Fitzpatrick 1979: 1992). 이러한 ‘새로운 계층’(vidvizhentsy) 의 등장은 문예 인텔리 내부의 경쟁에서도 새로운 공업화 노선을 추동하는 주제 및 ‘새로운 인간형’ 창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조직으로서 소련작가동맹의 출범과 연결되었다.
사회주의 건설을 의미하는 사회주의 공업화 노선의 실행이라는 국내적 맥락의 중요성은 북한에서는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건설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천리마작업반운동에서 나타나는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데 직결된 새로운 인간형, 즉 천리마기수의 모범 창출과 사상, 의식적 동원을 강조하는 ‘외연적 방식의 성장’은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역사적으로 부상한 1930년대 소련의 국내 사회, 정치적 맥락과 유사하다. 특히 경제-문화를 포괄한 ‘사회주의 건설’은 이 새로운 건설의 주도적 계층으로
‘새로운 세대’의 부상(북한의 경우 천리마작업반운동의 핵심을 형성한 새대로 1950년대 말 1960년대 중반 기초적 중등/고등 교육을 받고 생산현장에 투입)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문예건설의 국내 사회정치적 맥락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국제 정치적 맥락은 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번역과 수용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가진다. 아시아 지역의 공산당 조직운동에 코민테른의 강령 및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대외 문화정책은
1920년대 이후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용과 관련한 1930년대 나프(NAPF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 및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논쟁 과정은 창작방법론 측면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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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더 큰 틀에서 세계 혁명운동에 대한 코민테른의 정책적 변화(반파시즘 인민전선)를 어떻게 토착적 맥락에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하정일 1991). 혁명에 대한 방법론과 혁명적 문예에 대한 방법론은 결코 완전히 겹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의 현실분석 및 조직적 차원에서 후자가 전자에 크게 영향받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이러한 상호연계는 특히 즈다노프주의와 코민포름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1946년부터 소련의 당 선전선동의 책임자로 일체의 ‘부르주아적’ 경향을 청산하는 문화정책을 입안한 즈다노프는 1947년 코민포름 창설의 이데올로그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소련 주도의 반제국주의의 전선을 역설했다(Zhdanov 1947a: 1947b).
1953년 스탈린 사망에 이르기까지 이데올로기 부문에서 지속한
즈다노프주의의 영향 하에 2차 대전 이후 소련과 연계된 ‘인민 민주주의’
국가들의 문화 정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연계된 문예 부문의 조직을 전개했다. 북한 문화 인텔리들에게 제공된 소련 기행을 통한 소련 모범의 확산이나(배개화 2012), 1953년까지 북한 문예의 창작방법론으로 제시된
‘고상한 리얼리즘’의 논리에서 그 영향은 분명히 드러난다(유임하 2011;
오태호 2013).
-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 관련 대내외 논쟁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번역과 수용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대상은
1930년대 형성된 기본 범주 및 개념들의 측면 외에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자체를 둘러싸고 일어난 다양한 논쟁들이다. 특히 동구권 및 서유럽의 맑스주의 미학이론 및 창작에서 스탈린 시기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면서 ‘해빙’기 문예 담론은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의 및 실천에서 다양성 혹은 균열, 이탈의 경향까지 초래했다. 소위
‘수정주의적’ 문예 이론 및 실천이 부상하면서 국제 사회주의 문예계는 문예의 사회적 기능, 문예/문화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논쟁들을 전개했다. 중국, 북한을 포함한 냉전기 아시아의 ‘현실 사회주의’ 사회의 문예 부문들은 새로운
‘해빙’의 담론들에 일정하게 영향을 받는 한편으로, 1950년대 후반 이후
‘수정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비판의 경로로 나아갔다. 1950년대의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아시아적 수용에 있어서는 앞서 살펴본 측면, 즉 국제정치적 맥락을 유념하면서 이 시기 사회주의 리얼리즘 자체를 둘러싼 논쟁의 궤적 및 토착화 노력을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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