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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의 1930년대 창작방법론 논쟁이 제기한 쟁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미 이 시기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번역 수용의 과정에 북한 사회주의 문예 형성,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화’ 과정에 제기되는 논점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전후 1960년대 후반에 이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화’에서 문예의 상대적 자율성 쟁점을 이해하는 데 카프의 창작방법론 논쟁은 첫째 문예에서의 당파성과 정치성 사이의 긴장, 둘째 문예 창작에 있어 정치성과 예술적 기법, 형식, 스타일 사이의 긴장에 대한 쟁점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앞서 카프의 1930년대 창작방법론 논쟁에서 살펴본대로 궁극적으로 문예의 상대적 자율성 문제는 정치성을 어느 정도로 예술적 특수성에 대하여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성의 우위를 기본적으로 수용하게 되면 이어지는 물음은 그 정치성의 권위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예술적 특수성을 인정하면서 이를 끝까지 밀고나가게 될 때 가능한 질문으로는 예술적 기법, 형식 자체가 현실의 개조 교육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고려할 수 있다.

다시 안함광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전개해보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유물변증법적 세계관과 사회주의적 당파성을 이념적 기초로 하는 창작방법이라는 점에서, 안함광이 ‘가능성으로서의 사회주의’와

‘현실성으로서의 사회주의’로 각각 조선에서의 역사적 현실과 소련의 역사적 맥락을 비교했을 때 소련과 조선의 역사성의 차이는 다만 혁명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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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에만 있지 않다. 혁명의 성공 여부와도 연결되기는 하지만 별개로 제기되는 질문은 조선에서의 혁명운동에 있어 유일한 혁명에 대한 전략전술적 지도의 권위를 상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카프 문예의 존재 목적이 문예를 통한 혁명적 실천, 사회주의 문예 운동이라면 이러한 운동으로서의 문예를 올바로 지도할 수 있는 혁명적 권위는 필수적이다. 물론 작가 예술인 개인이 가지는 사회주의적 지향에 따라 창작 비평 활동을 전개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한 조직화된 실천을 필요로 하는 혁명운동의 특성상 조직적 차원에서 권위를 지도받거나, 혹은 최소한의 실천적 방향을 공유하거나 비판의 대상으로 전제하는 정치적 집단의 존재를 상정할 수 밖에 없다.

카프 창작방법론 논쟁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우선 문예조직적 측면에서 혁명적 권위를 발휘하는 특정 정파 혹은 당의 정치적 노선 방침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현하는 문예 행위자의 정치적 지향 및 창작 실천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이다. 예를 들어 임화의 1930년대 후반 리얼리즘론이 코민테른의 1935년 결정 이후 반파시즘 통일전선 방침에 근거한 미학-정치적 실천으로 보고, 마찬가지로 안함광의 1930년대 후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수용으로의 입장 변화가 코민테른 테제에 입각한 정세 변화에서 도출된 것이라 할 때, 문예 조직의 정치적 권위에의 종속은 분명히 관찰된다. 문제는 변화된 정세에서의 코민테른의 결정과 같이, 정치적 권위의 결정이 변화하고 문예 조직적 실천이 영향을 받을 때 그 판단 기준 및 실행 여부에 대한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

다음으로, 맑스레닌주의 이론적 틀 안에서 철학 등의 다른 인식적 형태와 차이를 가지는 예술의 특수성에 대한 문제이다. 먼저 예술의 상대적 자율성에 있어서는 형상 수단으로서의 예술의 방법적 특성을 고려해, 이러한 특정 방법에 입각한 예술 창작들이 가지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의가 가능하다. 쉬운 예로 도식적 창작에 대한 비판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이 예술적 특수성을 강조했을 때 문예의 장르적 특성에 대한 고려, 다양한 스타일의 추구, 형식 및 기교의 제고 문제가 작가 예술인의 주관적 역량 문제로 제기되었다. 다른 한편 예술적 특수성의 주장은 철학과 같은 다른 수단들과

‘인식교양적 기능’을 공유하는 문예가 인민 대중의 교육 개조에 가지는

영향력을 인정함으로써, 올바른 창작방법 구현을 통한 문예가 그 형상을 통해 혁명실천에 중요한 기여가 가능하다는데로 논리가 진전될 수 있다. 여기서는 올바른 세계관만큼이나 올바른 창작방법의 추구가 혁명운동에 기여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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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 가능하다. 올바른 창작방법에 대한 강조는 리얼리즘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소재, 주제 면에서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을 다루는 문제만큼 중요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즉 소재주의적 측면에 머무르는 도식주의적, 형식주의적, 자연주의적 창작은 혁명문예의 관점에서 비판을 면할 수 없으며 리얼리즘의 제대로 된 성취는 그것이 특정한 구체적 역사 현실에 천착한다는 한에서 혁명실천에 더 이바지한다고 주장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작가의 주관적 역량, 즉 세계관의 단련과 함께 미학적 방법론, 창작 능력의 연마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구현의 중요한 표지가 된다.

작가 예술인의 주관적 역량에 대한 지적은 실제 북한 문단에서 조선에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발생 발전, 리얼리즘의 발생 발전의 논의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김재용(1994)에 따르면, 초기 프로문학의 유산에 대한 1950년대 북한 문단의 평가에서 임화 등 남로당계 문인들에 대한 숙청에서 신경향파 및 1920년대 프로문학에 대한 “허무주의적” 평가를 극복한 이후, 다시 이 시기의 프로문학의 한계를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논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엄호석(1956)은 1920년대의 초기 프로문학에 대한 평가에서 1920년대 조선의 역사적 맥락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창작을 위한 객관적 조건에 한계가 있었음에도 주관적 조건, 즉 작가 에술인들의 맑스레닌주의 이론 및 미학에의 이해 정도, 예술적 기교 및 방법상 문제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는 논지를 폈다.

엄호석의 1920년대 프로문학에서 주관적 조건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평가는 최서해, 리상화 등의 작가를 사례로 방연승, 리상태, 한중모 등 소장 평론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작가의 주관적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는 엄호석(1956)의 논지 변화를 보이고, 안함광이 이미 1956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발생 발전과 관련해 제시한 논지가 재확인됨으로써 1920년대 초기 프로문학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일단락이 지어졌다(김재용 1994).

1930년대 카프의 창작방법론 논쟁은 4장에서 살펴본 1950년대 중후반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문예 논쟁과 함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화’의 중요한 담론적 맥락을 제공한다. 1930년대 창작방법론 논쟁의 전사는 북한의 사회주의 문예의 형성을 관통하는 맑스레닌주의 미학 이론 및 방법의 구체적 역사적 현실에의 구현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특히 미학적 쟁점에 대한 논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작가의 정치성 및 당성의 혹은 외부 권위의 충돌이 상정될 때 문예의 상대적 자율성은 어디까지 인정이 가능한가, 문예가 가지는 예술적 특수성을 인정할 때 “옳은” 세계관에 입각한 교양 개조 외에 형상적 기법을 통해 행사할 수 있는 인민 대중에 대한 영향력은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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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까지 인정이 가능한가. 특히 문예의 상대적 자율성 논제는 6장에서 볼

1960년대 중후반 북한 평론계에 대한 당 조직의 권위 확립 문제와 결부해 볼

때 그 논쟁적 성격을 재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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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절 문학에서의 인민성 원칙의 확립: 독자층의 형성과 민족적 특성 논쟁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본 범주에 있어 ‘인민성’(narodnost) 개념은 크게 인민을 사회주의 정신으로 개조, 교육하는 문제와 인민적 문화 유산을 활용하고 인민들의 문화사업에의 직접 참여를 이끌고 발양하는 문제를 포괄한다. 1934년 1차 소련작가대회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작방법을 채택하면서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서 진실되게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문예의 목적은 “인민들의 정신을 사회주의 정신으로 개조, 교육”하는 데 있음을 명시했다(Schmitt and Schramm 19).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렸던 고리키는 소련작가대회 연설에서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부터의 계급 사회, 부르주아 문예에 이르기까지 결코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않은 근로 인민대중의 구전 창작, 신화, 전설, 민담의 세계를 진지하게 다뤘다. 고리키(Gorky 1934)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전,

19세기 리얼리즘에 이르는 유럽 문예/문화의 계보를 일별하는 과정에서

역사상 항상 존재했지만 그 의의가 평가절하된 인간 노동의 역사적 역할과 그와 밀접히 연계된 인민대중의 창작 전통을 함께 고찰했다.

인민 창작의 유산 위에서 고리키(1934)는 현실의 개조라는 문학예술의 실천에서 현실에 대한 혁명적 태도를 내포하는 낭만주의를 리얼리즘의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함을 지적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인민성 개념은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과 그 결과로 세워진 인민 정권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한편으로, 이러한 현실 변혁의 의지, 전투성, 혁명적 낭만성의 근원을 인민 구전의 문화 전통에서 찾았다(Gunther 2011). 또한 인민 구전 창작의 문화 유산을 인민의 사회주의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인민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근로 인민들 속에 잠재한 혁명적 가능성이 발화하도록 직접적 참여를 장려했다. 근로 인민의 접근성을 높이는 과거 문화 유산의 적극적인 활용은

‘민족적 형식’에 대한 존중 및 그 다양성의 원칙적 인정으로 나타났다. 1925년 스탈린의 연설에서 등장한 보편적 “사회주의적 내용”과 특수한 “민족적 형식”에 대한 민족문화에 대한 명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주요 구성요소의 하나가 되었다(Stalin 1925).

문예 조직적 차원에서 살펴 보면 인민성 개념은 당적 지도부문, 독자, 작가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