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이 그 원형인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과 마찬가지로 경제-문화 부문의 건설을 이해하는 특정한 담론들의 구성적 역할을 주목하면서 문예 부문에서 ‘사회주의 건설’ 기간 어떤 프레임이 형성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여기서 담론의 구성적 역할이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사회주의 현실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가치, 규범적 프레임으로서 스탈린 체제 형성, 사회주의 건설에 기여한 측면을 말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사회적 기능, 즉 현실에 대한 일정한 ‘예술적 재현’들을 생산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을 견인한 역할은 소련 문예 부문의 역사적 연구에서 이미 중요하게 조명되었다. 본 연구는 특히 도브렌코(Evegeny
Dobrenko)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연구를 중요하게 참조한다.
도브렌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1930년대 소련 문예계가 확립한 단순한 창작 방법의 문제로 보는 대신 소련의 다양한 담론 생산을 아우르는 특정한 현실 인식의 프레임으로 정의한다(Dobrenko 2007). 이 프레임은 소련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사물, 벌어지는 사회 현상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현실의 이상적 재현’들을 제공함으로써 구성원들이 그에 준거해 판단, 행동할 수 있도록 한다. 도브렌코에 따르면 이 프레임에 의해 사회 현실은 특정한 유토피아적 견지에 입각해 미학적으로 재현된 ‘현실’로 대치되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문예 부문에서 확립되었지만 사실상 경제학, 과학 등 전 부문의 담론에서 공통되는 현상이었다(Dobrenko 2007).
본 연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이러한 도브렌코의 정의를 수용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새로운 사회주의 현실을 구성함으로써 이를 현실화하고자 기획된 프레임이라는 데 주목한다. 본 연구의 대상인 북한에서 확립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역시 도브렌코가 해석한 소련의 원형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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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보는 유토피아적 비전에 따라 미학적 ‘현실’을 주조함으로써 그 반작용으로 현실을 ‘개조’하는 기제였다. 즉 북한 문예 부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원형의 성격을 전제하고 북한에 구현된 ‘당 문학예술’이 소련의 원형의 언어 체계를 자국의 맥락에서 실현한 버전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본 연구의 중요한 주장의 하나이다. 이를 위해서 원형이 가진 사회적 기능과 함께 이 원형의 언어 체계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해하는 데서 소련의 공식적 명제나 그를 번역
수입한 북한의 명제를 반복하는 것은 북한이 어떻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자국적 맥락에서 확립했는가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일단
1934년 소련작가동맹의 제1차 전연맹 소비에트 작가대회에서 확립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식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 속에서 진실하게
역사적 구체성 속에서 반영하는 창작방법”을 가리킨다(Schmitt and Schramm 1989; Gutkin 1999). 이 정식은 동시에 이러한 현실의 반영을 통해 근로대중을 교육하고 개조하는 문예의 사명까지 포함한다. 1950-1960년대 북한에서 이해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정의와 달리 본 연구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언어 체계를 그 언어 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행위자적 측면에서 작가, 독자, 당적 지도부문의 세 가지 구성 요소를 중심으로 접근한다. 그와 함께 이러한 언어 체계의 내용적 구성에서 세 가지 주제적 쟁점을 고려한다. 즉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조건들의 형성과 함께 소련의 원형 체계를 북한 맥락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면서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구체적, 역사적 내용을 정의하는 쟁점들을 고찰하는 것이다. 세 가지 쟁점은 선진 문화의 번역과 창조적 적용, 원형을 번역하는 맥락의 역사적 구체성으로서 민족적 특성의 탐색, 새로운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범주로서의 새로운 인간 전형의 창출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언어 체계에서 이를 구성하는 행위자적 조건에 대한 본 연구의 접근은 도브렌코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선행 연구에 기초한다. 도브렌코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형성과 그 전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기존 연구들에서 작가의 형성, 독자의 형성이라는 두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각각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의 형성과 수용을 고찰했다(Dobrenko 1997; Dobrenko 2001). 도브렌코의 이러한 주제군에 따른 역사적 접근은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 주로 당적 지도부문과 작가 조직을 중심으로 서술한 경향과 달리 소련 사회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자의 특성 뿐 아니라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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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의 역할을 가졌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했다(Clark 1981; 1997; 2011;
Lahusen and Dobrenko 1997; Robin 1992). 독자 대중에 대한 범주를 논의에
포함시킴으로써 도브렌코의 연구는 실제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획, 실천자들의 의도와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도 기여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사회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시키는 현실 재현의 기제일 때 그 기제는 분명히 작동하는 대상을 설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독자 청중의 범주를 도입한 도브렌코의 연구는 소련에서의 문예 부문의 정치적 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가 된다(Dobrenko 2001). 한편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의 형성이란 주제에서도 도브렌코는 작가들의 계급계층적 출신과 지향 등 전기적 사실을 풍부히 제공함으로써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작가 부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Dobrenko 1997).
사회주의 리얼리즘 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조건의 형성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원형과 역사적으로 다른 맥락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어떤 차이가 발생했는가 하는 점이다. 토착화 과정에서 원형의 체계가 어떤 새로운 맥락에서 새로운 문제의식들로 다뤄지면서 변화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체계에 부합하는 내용을 새로 만들어내기 위해 전개된 논쟁들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실제 문예 부문의 기본 조건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논쟁된 주제적 쟁점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본 연구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화’ 담론에서 고찰하는 세 가지 쟁점, 선진 문화의 창조적 수용, 민족 전통의 현재적 계승, 현대성의 요구에 맞는 전형화의 문제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원형에서 이미 논의되었던 주제들인 동시에 원형과 다른 북한의 역사적 맥락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원형과 비교되는 다른 문제의식으로 논쟁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문예 담론 분석에서 이와 같이 텍스트의 내용적 쟁점을 추출해서 검토하는 데 있어서 일정한 방법론적 성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중반 중국의 문예 부문에서 일어난 다양한 논쟁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문예 인텔리들의 사회 인식과 일련의 대안적 모색들을 드러낸 솔로몬은 기본적으로 문예 부문의 담론을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지형, 논쟁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고 강조한다(Solomon 1971). 솔로몬이 강조한 이러한 문예를 통한 사회 분석의 유용성은 최근 북한 문화연구에서도 현지조사 관찰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문화 현상 및 문학예술 텍스트에 반영된 사회를 간접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시도하는 데서 공유되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문화를 통한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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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에 있어서는 먼저 사회주의 진영의 문예 부문 담론이 가진 기본적 성격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거트킨은 문예 텍스트를 사회사적 자료로 활용할 경우에 빠질 수 있는 오류로 이 텍스트들이 근거하고 있는 기존의 관습적 맥락, 문학적 장치 및 개념의 용례를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Gutkin 1999). 예를 들어 특정 시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들에서 ‘부르주아적 취미’로 분류될 수 있는 좋은 아파트, 고상한 인테리어 등 유복한 생활 조건에 대한 묘사가 늘어나는 현상을 두고서 이러한 사례들과 이 시기 보다 ‘온건한’ 사회경제적 시책으로의 변화를 연결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 문화 현상 및 문예 텍스트를 통한 사회적 분석에서도 이와 비슷한 해석은 종종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예 텍스트의 내용적 분석에 있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지점을 유의하면서 문예 담론에서 논의된 주제들을 추출, 분석하는 데 있어 문예 부문의 논쟁의 참가자들이 유념한 맥락으로 크게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문예 부문들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관련된 논쟁과 북한의 문예 부문이 종속되는 당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당대 국제정치적 맥락을 고려한다. 1950-1960년대 사회주의 건설기이자 사회주의 문예 건설기의 북한은 처음으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소련으로부터 경제- 문화에 걸친 사회주의 체계의 원형을 도입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국과 같이 소련의 원형을 수입, 적용하는 국제 사회주의 진영 내 논쟁과 실천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본 연구의 대상인 문예 부문에서도 이러한 국제적 맥락에서의 정치- 미학적 논쟁과 실천을 민감하게 의식하면서 자국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의 형성을 시도했다. 사실상 소련을 제외한 다른 현실 사회주의, 인민 민주주의 국가들의 문예 부문은 선진 소비에트 문예 이론 및 창작의 맥락을 염두하는 한편으로 각국의 민족 문화 전통의 기반 위에서 ‘사회주의’ 문예를 창출할 데 대한 고민, 자국의 사회주의 문예가 소련 원형과 같은 ‘현대성’의 범주에 부합하는 내용을 확보할 데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Chung et al. 1996).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화’ 담론과 실천에서 다뤄진 세 가지 쟁점들은
시기적으로 선행하거나 거의 같은 시기 진행된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문예 부문의 논쟁의 맥락을 가진다는 점에서 북한만의 특수적인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것은 아니었다. 한편 ‘조선화’의 쟁점들은 그 논쟁의 전개 과정에서 국제정치적 영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특히 문예 부문의 ‘당 문학’으로서의 자기 규정이 1958-1959년 ‘반부르죠아 사상 잔재’ 투쟁 이후 확고해지면서 ‘당 사업’과 긴밀히 연관된 문예적 논쟁과 실천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1960년대 중소대립, 베트남 전쟁 등 동아시아 안보 환경의 변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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