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의 논쟁은 저마다 그 구체적 실천을 요구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회 전후로 동맹 지도 사업에 어떤 실질적 비판이 제기되고 접수되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회 전후 논쟁을 거쳐 결정된 동맹 사업의 주요 내용은 현지 파견 사업의 지속과 개선, 고전 유산과 외국의 선진적 이론 및 창작의 연구 섭취, 창작 경험의 교환과 미학상 문제의 자유로운 토론을 위한 동맹 차원의 방조, 작가 간 사회주의적 경쟁과 집체적 지혜 고무, 민족 전통 및 인민 창작 연구를 통한 다양한 장르와 새 형식 모색, 신인 육성 사업 강화와 ‘작가 학원’ 사업 개선, 출판사 기구의 개선 확충, 동맹 지도 개선과 관련해 상무위원회 내 집체적 협의 강화 및 전문 인력으로의 상무위원 구성, 분과 위원회의 창작 지도 역할 강화, 잡지 편집위원회들의 독립성 강화, 기존 분과위원회와의 2중화된 원고 검토 체계에서 편집위원회로의 일원화, 신인 육성 위원회, 고전 문학 분과 위원회와 함께 남반부 문학 연구 분과 위원회의 설치 등이다.44 여기서는 동맹 결정과 관련된 논쟁 중에서 대회 연단에서 크게 부각된 두 가지 논점을 정리하기로 한다. 하나는 창작과 평론의 관계, 다른 하나는 문학 사업 전반과 당적, 동맹적 지도 부문의 관료주의적, 행정적 지도 문제이다.
대회에서의 김북원과 한효의 공방, 그리고 한효에 대한 여러 논자들의 비판은 도식주의 비판과 향후 사업 개선을 위한 책임 규명 문제와 더불어
44 “결정서”, 31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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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평론, 나아가 창작과 동맹 및 당적 지도와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대회에서 창작과 평론, 동맹 사업과 당적 지도 문제는 당 문학을 건설하는 데 있어 원칙적 문제로 다뤄졌을 뿐 아니라 작가 대열의 관리 및 신인 육성과 긴밀히 연관된 실천적 문제로 논의되었다. 먼저 시인 김북원은 시와 평론의 관계를 논하면서 우선 시평의 현저한 부족 문제로부터 시작해 평론의 질적 문제에 있어 기존 시 평론에서 다뤄진 시들이 시적 경지에서 대표적으로 잘 된 시들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이름이 유명하거나 도식적인 구호시들에 그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평론가들에게 작품의 유형은 “추켜올리는 계렬이 있고 그와 반대로 지나가는 사람마다 건드리는 길가의 북처럼 두들겨 맞는 계렬이 있는가 하면 제 3 계렬은 대체로 대상으로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평론집 『해방후 10년간의 조선 문학』의 한효와 엄호석의 평론이 시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자의적인 론단”이라고 비판했다.45
이에 대해 평론가 한효는 평론계와 자신을 변호하는 태도로 대회에서 많은 작가들로부터 비판을 야기했다.46 그러나 한효의 변론은 다른 한편으로 두 번째 논점, 즉 평론계와 그 상위에 위치한 당적 지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김북원이 시 평단을 비판하면서 인용한 권위인 당적 지도부문이 출판 및 선전기관을 통해 행정적 오류 및 관료주의적 사업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도식적 경향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47 그는 도식주의의 시작을 반추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45 김북원, “시 문학의 보다 높은 앙양을 위하여”, 『제2차 조선 작가 대회 문헌집』, (평
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6), 124.
46 한효는 김북원이 비판한 자신을 포함한 평론계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도식주
의의 책임은 작가들이나 창작에 대한 당적, 동맹적 지도 및 출판 부문의 행정적 간섭, 관료주의적 억압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자기 비판이 결여된 태도로 그는 그의 발 언과 작품 『밀림』에 대한 재비판에 직면했다. 대회 연단에서 한효를 재비판한 대 회 연단의 논자들은 윤시철, 심봉원, 조학래, 윤세평, 엄호석 등 작가와 평론가 일반 을 포함했고 한설야는 대회 결론에서 이러한 태도를 문제시했다. 한설야, “제2차 조선 작가 대회에서 한 한 설야 위원장의 결론”, 『제2차 조선 작가 대회 문헌집』, (평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6), 308.
47 김북원은 “당은 가르치고 있다. 작가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평론을 많이 쓸
것을.” 이라며 평론계에 대해 “미학적 깊이를 가져야 하며 공정하고 동지적 애정을 가 져야 할 것”을 요구했다(김북원, “시 문학의 보다 높은 앙양을 위하여”, 125). 물론 당 에 대한 충성과 ‘당의 령도’에 기반한 문학예술의 원칙에 대해서는 한효 역시 투철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한효, “도식주의를 반대하여”, 『제2차 조선 작가 대회 문헌집』, (평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6),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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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봄 한 평론가에 대한 언어도단의 란폭한 박해가 있은 뒤에 도식주의가 우리 문학에서 꺼리낌 없는 고질로 되기 시작하였다고 말하는 데 서슴치 않겠다.
나는 지금 장편 서사시 『백두산』에 대한 안함광 동무의 평론에 대하여 취해진 일부 사람들의 참으로 놀랠만한 박해를 념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다.48
이어 그는 극 문학을 대표로 어떤 행정적 지도가 도식성을 증폭시키고 예술창작을 저해했는가를 세세히 비판했다.
림화 도당과 사상적으로 결탁되였던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 극 문학 분야에는 무서운 『좁은 문』이 조직되여 있었는데, 이 『좁은 문』은 열 여섯 개의 관문으로 형성되여 있었다. 이 관문들에서는 소위
『정치적 고려』라는 저울대로 모든 극 작품들이 측량되였는데, 그럴 때마다 그 작품에는 『정치적 고려』로 되는 한 가지 짐이 더해가군 하였다. 즉 한 관문에서 만일 토지 개혁에 대하여 고려를 돌리도록 요구되였다면 다른 한 관문에서는 로동 법령에 대하여, 그리고 또 다른 관문에서는 남녀 평등권 법령에 대해서 고려하도록 요구되였다. 이렇게 무거운 짐이 관문마다에서 더해가는 동안에 극 작품은 그 짐이 너무도 무거워 일어 설 수가 없었으며 또 그 짐이 너무도 커서 드디여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게 되여버리군 하는 것이였다.49
그는 고전문학 연구에서도 “인물들의 성분 개조”에만 골몰하는
“『정치적 고려』병”을 규탄하면서 오히려 이러한 성분 개조의 결과 작품에서 아무 계급적 모순이 없는 주인공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모순에 처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제의 “관문지기들”이 자신의 작품 『밀림』도 똑같이 재단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당장에 책을 거두어 들이라고 호령”을 당한 체험을 논하면서 이렇게 “감투를 씌우려 덤비는 자들의 시도가 폭군처럼 우리 문학에 군림”하는 현상을 질타했다.
한효의 논쟁이 흥미로운 것은 비록 그가 시도한 자신의 작품 『밀림』에 대한 변호 자체는 뒤이은 논자들인 윤시철, 심봉원, 조학래의 주장에서 재비판되고 동지적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가 대회 연단 전체적으로 지적되었지만, 그가 문제제기한 당내 선전 부문, 선전 및 출판 기관 등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지도 자체는 대회 연단의 다른 여러 논자들을 통해
48 한효, “도식주의를 반대하여”, 175.
49 한효, “도식주의를 반대하여”,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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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었다는 것이다. 50 한효를 비롯한 평론계에 대한 김북원의 비판 발언에서도 “제강적인 내용”을 강요하는 출판사 및 지도 기관 비판이 이뤄졌으며 특히 『적극적 주제』, 『기본 주제』,51 『기본 갈등론』,52『기본
주제론』53 등 정치성 일면만을 강조하며 창작에 무리하게 간섭하는 현상은
다수의 논자가 비판했다.
이러한 논쟁의 과정에서 채택된 대회 결정서는 출판 기관의 개선 확충, 편집 부문에서의 방식 전환 (분과위원회의 출판 전 원고 륜독 사업 폐지, 편집위원회의 원고 검토 일원화) 등의 결정을 통해 사업 방식의 수정을 시도했다. 창작 – 평론, 평론을 포함한 창작 일반 – 동맹 및 당적 지도 사이의 긴장은 대회 연단 뿐 아니라 1960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지만 특히 대회 연단에서는 활발한 비판과 자기 비판 속에서 그 역학관계가 잘 드러났다. 결국 “용지사정”과 같은 한정된 자원의 분배 상황에서 출판의 우선 순위 및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자기 창작에 대한 비평적 관심과 수준 등은 도식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내용적 대안들의 논쟁으로 해소되지는 않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했다. 이 현실과 직결되는 북한 문단을 구성, 지도하는 동맹의 사업 및 운영 체계는 창작의 방향, 검열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1956년 작가대회에 따른 결정과 조직 개편 이후에도 동맹조직의 사업은 1960년대 당적 지도체계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일련의 변화를 겪게 된다.
50 이러한 문제제기는 창작 지도 관계자들의 “맑스주의의 속학적 견해와 그 강요에 의
한 해독”에 대한 비판 (신고송, “극 문학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중심 문제”, 150-151), “편 집원들이 당과 정부의 정책을 소박하게 리해하고 그것을 문학적 현상에 교조적으로 적용”하며 “당과 정부의 정책의 조목들과 구호에 부합되는가 하는 점에 혈안이 되여 있는” 현상 비판 (엄호석, “문학 평론에 있어서의 미학적인 것과 비속 사회학적인 것”, 256), 미학적 평가에 있어 행정적 지위와 주제의 정치성, 당면성만 강조되는 비원칙적 편향 비판 (김순석, “시인들의 협력은 우리의 시 문학을 전진시킨다”, 263), 출판사 부 문, 혹은 극 상연과 관련된 직맹 부문의 무리한 요구가 극 작품을 도식주의, 무난주의 에 빠뜨리는 현상, 작가를 “대서업자”로 전락시키는 행정적 강요 비판 (류기홍, “창작 과 편집 사업에서 도식적 틀을 깨뜨리자”, 294-296)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대회 전 한설야의 발언에서 문화선전성 정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비판된 주동인은 대회 연단에서 자기 비판을 하면서 씨나리오 부문의 행정 과정에서의 도식주의 경향 에 있어 지도 부문이 범한 오류를 자세히 비판했다 (한설야, “계급적 교양과 사회주의 레알리즘의 제 문제一九五五년 창작 사업 개관– (조선 작가 동맹 제二一차 확대 상무 위원회에서의 一九五五년도 창작 사업 총화에 관한 보고)”, 『조선문학』 1956년 2월 호; 주동인, “씨나리오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제2차 조선 작가 대회 문헌집』, (평 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6), 284-290).
51 한설야, “보고”, 40.
52신고송, “극 문학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중심 문제”, 150.
53엄호석, “문학 평론에 있어서의 미학적인 것과 비속 사회학적인 것”,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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