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50-1960년대 사회주의 체제 형성기의 문예 부문 담론을 접근하는 데 있어 기존 연구들에 나타났던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크게 문예 부문 담론에 개입된 행위자들에 대한 고찰과 문예 부문이 사회주의 체제 형성에 있어 점한 위치 및 역할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 연구는 문예 부문 담론을 접근하는 데 있어 텍스트 내적 논리에 치중해 문예 이론 및 창작의 성격을 파악한 결과를 바탕으로 1950-1960년대 북한 문예 부문의 형성을 서술하는 경향, 북한 문예 부문의 형성에 있어 당적 지도의 압력과 그에 희생, 포섭되는 문예 인텔리들의 대립 구도를 상정하고 당적 지도부문이 아닌 문예계 내부의 차이와 능동적 역할을 간과하는 경향, 문예계와 그에 대한 당적 지도부문 간 상호작용이 아닌 광범한 사회적 지반과 문예계의 관계를 간과하는 경향, 문예 부문을 포함한 사상 부문이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체제 형성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간과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체제 형성기 북한 문예 부문의 형성에 대한 차별된 접근을 시도한다. 보다 새로운 접근에 있어서 본 연구는 기존 소련학 연구에서 이뤄진 방법론적 시도를 참고하는 한편 본 연구의 대상인 북한 문예의 형성 과정과 비슷한 문제의식과 경험을 보인 중국 문예 부문의 상황들을 비교적 시각에서 참고한다. 중국 문예 부문에 대한 논의는 본문에서 인용하고 여기서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소련학 연구들의 논의를 주로 다룬다.
우선 본 연구는 기존 소련학 연구에서 진행된 스탈린 시기 소련 사회에 대한 사회사, 문화사의 이론적, 방법론적 통찰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소련 사회사, 문화사의 주된 방법론적 논의로는 “수정주의 학파”의 사회사 연구와 “후수정주의 학파”의 이데올로기 및 문화사 연구를 들 수 있다(Fitzpatrick 2007; Halfin and Hellbeck 1996; Lenoe 2004). 수정주의 연구가 전체주의 전통에서 그 역할이 논의되지 않은 소비에트 사회에 관심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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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회계층의 정치적 참여의 과정을 기술함으로써 소비에트 사회의 작동을 설명했다면, 후수정주의 연구는 이러한 사회의 작동에 있어 이데올로기 및 문화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럼으로써 후수정주의 학파는 사실상 전체주의와 수정주의 학파 모두에서 드러나는 국가-사회의 이분법적 구도를 극복하고, 이데올로기적 프로그램이 인민의 인식과 행동의 경계를 한정하는 한편 아래의 참여가 다시 이데올로기 작동을 구성하는 상호작용을 보이려 했다.
피츠패트릭의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소련 사회사적 연구로 대표되는
“수정주의 학파”는 소련학에서 지배적이던 “전체주의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소련 사회를 위로부터의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주지되는 정적인 체제로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사회계층적 상호관계 변화, 그에 따른 정권의 정책적 정당성의 확보와 실천이 어떻게 이뤄졌는가에 대한 역동적 분석을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피츠패트릭은 1920-1930년대의 소련 사회에서 스탈린 체제의 확립을 ‘문화 혁명’의 과정으로 분석하면서 교육, 문예 등 광범한 문화 영역에서 혁명기로부터 활동한 기존 인텔리겐차를 혁명 이후 사회에 진출한
‘새로운 인텔리’(vydvizhentsy)가 대체하는 변화에 주목했다(Fitzpatrick 1979;
1992). 피츠패트릭에 의하면 ‘새로운 인텔리’는 혁명후 사회의 교육을 통해
성장해 스탈린 체제가 형성되는 1930년대 초 경제, 문화의 주요 부문에 진출한 새로운 세대라는 사회계층적 특성을 가지며 기존 문화 영역을 주도한 구 인텔리겐차와는 스탈린 체제에 대한 정치적 태도부터 미학적 취미에 이르기까지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1930년대 스탈린 체제의 형성에 있어 이러한 ‘새로운 인텔리’로 대표되는 사회계층적 지반이 기존의 인텔리겐차 지반을 대체하는 변화를 설명함으로써 피츠패트릭의 연구는 종전의 주지된 스탈린사회의 특성인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수행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데 기여했다.
이에 반해 코트킨(Kotkin)으로 대표되는 “후수정주의학파”는 수정주의 학파의 사회사 중심의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그 조명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던 이데올로기 및 문화를 다시 강조하면서, 이데올로기 통제에 주목한 이전의 전체주의적 접근의 관심을 일정하게 복원했다. 코트킨의 연구는 1930년대 스탈린 사회의 ‘사회주의적 공업화’의 상징이었던 매그니토고르스크 야금기지 건설을 사례로 스탈린 시기 ‘사회주의 건설’이 피츠패트릭이 ‘새로운 인텔리’라고 표현된 새로운 사회적 계층을 중심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되었는가를 다뤘다(Kotkin 1999). 코트킨은 푸코적 미시 권력 분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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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하면서 1930년대 스탈린 사회의 새로운 주도계층을 대표하는 매그니토고르스크의 건설자들을 당-국가 지도부, 건설에 투입된 고급 기술인력과 현장 노동자들, 야금기지와 긴밀히 연결된 지역 도시 관계자들, 선전 인력 등 다양한 구성에서 분석했다. 이들 모두가 ‘능동적’으로 수행한 매그니토고르스크의 강철 생산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건설’은 단지 이들의 사회계층적 이해관계 뿐 아니라 다양한 이념적 믿음 체계의 동원을 통해 가능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코트킨은 기존의 사회학적 접근에서 상대적으로 홀시되던 이데올로기적 요인에 대한 분석을 보완했다.
본 연구는 소비에트 사회사, 문화사의 논쟁과 성과에서 북한 연구의 방법론적 측면에 일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본 연구는 특정 시기에 일련의 정치수사의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서 앞서 살핀 피츠패트릭의 논의와 같이 신구 엘리트 교체와 같은 구체적인 사회계층적 지반에 대한 분석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행위자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가 결여된 상황에서 북한의 공간 문헌에 나타나는 다양한 부문 담론들을 접근하게 되면 그 분석의 결과에서는 담론을 주도하는 당적 지도부문의 구상만이 남게 된다.20 시기별로 당 정책의 변화에 따라 주제와 소주제가 변화할 뿐 당적 지도 하에서 구체적으로 담론을 형성하고 실천한 행위자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주의 체제 형성기 북한 문예 담론에 있어서는 당적 지도부문의 계획대로 일사분란하게 사회주의 건설에 상응하는 사회주의 문예가 건설되지 않았다.
문예 부문에 대한 당적 체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당 정책을 문예 부문에서 재현하는 작가 예술가 조직을 건설하기까지에는 다양한 논쟁과 실천의 과정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러한 논쟁에 개입한 문예 부문의 행위자들에 대해서 피츠패트릭이 지적한 새로운 사회계층의 부상에 따른 문화 부문에서의
‘새로운 인텔리’들의 리더십 확립 과정은 중요한 참고가 된다.
한편 코트킨의 연구에서 드러나듯 스탈린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것은 사회주의 건설을 추동하는 데 있어 그 건설의 목적과 의미, 그에 연관된
20 피츠패트릭에 따르면, 스탈린 주도 하에 당 조직은 이러한 문화 부문의 새로운 리더
십 확립에서 노동자층의 교육 기회를 늘리는 ‘적극적 우대’(vydvizhenie) 조치를 확대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Fitzpatrick 1970[2012]). 그러나 이러한 당 조직의 역할은
‘새로운 인텔리’ 대 기존의 문예 인텔리 간 세대 교체, 이러한 세대 교체를 가능하게 한
스탈린 시기 사회적 기반의 형성이라는 틀 속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즉 당 적 지도 하에 사회주의적 문예, 혹은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위로부터만 결정, 실 행된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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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이해관계를 구성원들이 이해, 해석, 행동하게 만드는 담론들의 존재이다.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위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그 생산과 소비에 참여하는 담론의 영향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사실상 엄밀한 경제적 타산이 성립하지 않는 ‘강철의 심장’ 매그니토고르스크 화학기지의 형성을 설명할 수가 없다. 코트킨의 연구의 의미는 1930년대 매그니토고르스크에서 ‘중화학공업’, ‘생산’, ‘노동’, ‘발전’ 등이 어떻게 구성원들에게 이해되었는가를 보일 때 스탈린 사회의 ‘사회주의 건설’을 이해할 수 있다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중화학 공업화 모델이
1950년대 이후 북한이 추구한 ‘사회주의 공업 국가’ 건설의 참조점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북한에서 이뤄진 건설을 비교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본 연구는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북한 문예 부문, 사상 사업의 역할에 주목하는 점에서 이러한 유사성에 주목한다. 코트킨에서 매그니토고르스크의 다양한 사회적 구성을 포괄하는 건설자들은 사회주의 건설을 이해하는 특정한 프레임에 근거해 그 건설을 평가하고 추동하면서 다시 그 프레임을 확산한다.
스탈린 사회에서 이 프레임은 스탈린과 주요 당정 책임자의 교시, 당 위원회 및 정부 산하 기관들의 결정 내용을 포함하는 한편 다양한 상징들에 대한 특정한 재현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상징체계는 동시기 문예 부문에서 수행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창작방법에 의거한 사회주의 건설자들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일관된 내러티브들을 통해 구성되었다. 즉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차 5개년 계획의 중화학 공업화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생산의 기제로서 ‘사회주의 건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했다. 본 연구는 ‘사회주의 건설’을 구성원들이 사고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담론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해할 때 그 건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코트킨의 해석을 가능하게 했던 연구의 방식을 북한 연구에 도입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선 코트킨이 매그니토고르스크 건설자들의 연구에 활용했던 다양한 문서고와 인터뷰, 개인적 회고 기록들을 통해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사회주의 건설’ 담론에 참여했는가를 확인했다면, 현재의 북한 연구에서 이러한 방법은 직접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북한연구의 현실에서 가능한 것이 앞 절에서 지적한 다양한 부문 담론들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다. 코트킨과 같이 매그니토고르스크라는 한정되지만 1930년대 소련 사회의 작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화학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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