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힘(사회학과)
1. 수강 동기: 우연히 만나게 된 나의 인생 교양
때는 봄이 오기 전 아직은 추운 늦겨울이었다. 겨울방학을 활용해 강릉에 계신 할아버지 댁에 다녀오 는 일정이 수강신청 날짜와 겹치게 되어, 본의 아니게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수강신 청을 하게 되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매우 불리한 여건이었지만, 긴장하지 않고 시간에 맞춰 수 강신청 사이트에 접속해 과목 신청을 눌렀다. 원하는 모든 과목을 신청하던 도중, 아뿔싸, 버스가 터 널로 들어가 버리며 한 과목을 신청하지 못 한 채 인터넷 연결이 끊겨버렸다. 터널 밖으로 나와 다시 인터넷을 연결해보니 원하는 다른 과목들은 이미 수강 정원을 채운 지 오래였다. 들을 수 있는 남은 과목은 단 하나, ‘역사로 읽는 테크노사이언스’(이하 역읽테)라는 내 인생 교양은 조금은 우연히 다가 왔다.
물론 듣기 싫은 과목을 억지로 수강한 것은 아니다. 수강신청을 준비하는 중 과목의 제목과 강의 계획 서 내용을 보고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듣고 싶은 강의 리스트에는 올려두었던 과목이다. 나는 나름대로 듣고 싶은 과목을 정하는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첫 번째로는 얻어가는 것이 분명하게 있어 야 한다. 수업 내용에서, 아니면 과제를 통해 내가 체득하고 배울 것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 문에 다른 학우들이 소위 말하는 꿀 교양(높은 학점을 받기 쉬운 과목)을 선택할 때, 나 홀로 다른 교과 목에 관심을 갖고 수강신청을 했다. 두 번째는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 기준에 연장선에 있으 면서도 사뭇 결이 다른데, 아무리 좋은 내용이 내 앞에 있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다. 사회과학도인 내가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언어에 대한 매우 훌륭한 강의를 들어도 얻어갈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과 나의 공부 방식이 다르 다면 수업에 좋은 마음으로 임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내가 몰입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들을 수 있 는 강의를 찾고, 혹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면 과감하게 다른 과목으로 수강 정정을 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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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양 : 역사로 읽는 테크노사이언스
그래서 역읽테 수업을 처음 수강할 때 설레는 동시에 걱정도 있었다. 과학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것 같은데,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부터 들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과학과 담을 쌓았던 내가 과연 이 수업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있고, 몰입해서 수업에 임할 수 있을지 우려가 생겼다. 물론 이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뒤에 설명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교과목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이야기 하고, 이 강의를 통해 어떤 점이 바뀌었는지, 그래서 왜 역 읽테가 나의 인생 교양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2. 교과목 및 교수님 소개: 여러분에게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은?
오늘날 우리는 과학의 요소로 둘러싸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주변에 있 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통신망 업체 K사의 통신망 먹 통 상황이 있을 때 삶의 많은 요소에서 제약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 한 부분에도 통신 기술이 사용되 고 있었고, 막대한 피해를 받은 조직도 있었다. 그러나 이 통신망 기술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은 아무 도 갖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기에 이용할 뿐, 어떤 기술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되는지 생각해볼 기 회가 많지 않다. 심지어 어떤 원리로 통신이 이뤄지는지 잘 알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강의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장 먼저 받은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좋은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예시는”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 쁜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예시는” 사실 삶 가운데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하는 기술에 대해 가 치판단의 관점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당시 다른 학우들도 이 질문을 받고 꽤나 오랜 시간 생 각을 정리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좋은 과학으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 특히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꼽았고, 나쁜 과학으로는 전쟁으로 활용되어 많은 이들의 목숨과 건강, 그리고 삶 자체를 앗아간 기술을 예로 들었다. 나의 대답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답이라 고 보아도 된다. 누가 보아도 좋은 기술이고 나쁜 기술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누가 보아도 정답이기에 너무나 피상적이다. 보다 깊은 분석이 필요했다.
수업은 여러 가지 과학 기술의 사례를 알아보며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기다란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넓히는 시각으로 바꾸고자 했다. 그리고 나쁜 과학의 갈래를 보다 세분화해서 어떠한 요인 때문에 나쁜 과학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를 나쁜 과학이라고 판단하도 되는지에 대한 분 석틀을 제공하고자 했다.
우선 여러 가지 나쁜 과학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흡연과 담배 회사에 대한 관계, 지구 온난화와 오존
에 대해 융·복합적인 탐구 방식을 요구했다. 다양한 학과에서 모인 학우들과 토론을 하고 발표를 들으 면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매번 흥미로웠다.
이는 과목의 담당 교수님인 박민아 교수님의 열정적인 지도 또한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넘 어 세계의 다양한 나쁜 과학의 사례를 소개해주고, 당뇨병과 제약 회사의 나쁜 과학 사례의 경우 특강 또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조별 활동과 마지막 프로젝트 발표 준비에 있어 항상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셨기에 수업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 해당 교과목이 “인생교양”인 이유: 한 명의 정책 분석가
수업에서 가장 독특했던 것은 학생들에게 하나의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산업 연계 수업의 목적 에 따라 문제 해결의 상황에 대해 보다 몰입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한 명의 정책 분석가로 상정했다.
이에 나는 정부 정책 연구소에서 “나쁜 과학”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분석하고, 이로부터 나쁜 과학을 막을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하는 연구를 의뢰 받은 한 명의 정책 분석가가 되었다. 그렇기에 나쁜 과학에 대한 사례를 분석하고 그 사례가 왜 나쁜 과학인지, 그리고 미래에 그런 유사 사례 발생 을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분석을 해야 했다. 이는 최종 과제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 되었 으며, 한 수업의 학생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공부하고 분석해야 하는 분석가로 수업에 임할 수 있 었다.
이에 따라 수업은 매 시간 분석의 연속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별로 나누어져 해당 사례에 대해 더욱 깊게 분석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DDT와 살충제에 대한 수업이었다면, 먼저 이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배우게 된다. 침묵의 봄이 쓰인 시기와 그 시대의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역사적 차원에서 배운 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화학 약품과 살충제 등의 과학 기술을 마주해야 하는 방식에 대해 조 별로 분석을 진행했다. 그렇기에 조별 활동을 할 때는 물론 수업을 들으면서도 오늘날 사회에 위와 같 은 나쁜 과학이 적용되는 사례를 나 혼자서 더욱 생각해보고, 그 기준을 정립할 수 있어야 했다. 즉 내 가 정책 분석가가 되기 위해 나만의 분석틀을 고안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를 의도치 않아도 내게 맡겨 진 역할을 통해 자연스럽게 몰입하며 찾을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수업 방식을 통해 인상 깊게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주제가 있다. 상온 핵융합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상온 핵융합 사건은 간단하게 말하면 확실하지 않은 실험의 성공을 정확하지 않은 방법 으로 발표한 점에서 비롯된 나쁜 과학의 사례다. 핵융합 반응은 고온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태 양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이다. 고온에서 중소수와 삼중소수의 반응을 통해 헬륨과 에너지를 만드 홀, 냉전 시대의 우주 개발 상황, 맨하탄 프로젝트와 거대과학,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DDT를 비롯한 화학 약품에 대해, DNA와 공정 과학의 문제, 자본과 당뇨병 치료제, 상온 핵융합 발표 사건, 시민이 참여하는 과학과 시민과 과학의 관계, 황우석 박사와 연구 진
실성 제도 등 다양한 과학의 사례를 살펴보고 배울 수 있었다. 위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누가 보아도 사람에게 직접 피해가 가는 정말 나쁜 과학이 있는 반면, 어 떤 사례는 나쁜 과학인가 좋은 과학인가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례는 왜
이 사례가 나쁜 과학에 속하는지 생각을 깊게 해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이런 모호함을 명확한 관점으로 분석하기 위해 나쁜 과학을 하나의 키워드로 두고 나쁜 과학이 이루어지는 원인의 차원을 나누어 분류 기준을 세웠다. 사회 구조적 차원, 과학 기술의 본질, 정치적인 차원, 그리고 과학자 개인의 차원 등으로 나누게 되었다. 즉 이 기준을 통해 위의 사례를 간 단히 분류해보면, 담배 회사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 구조적인 차원과 연관되어 있고, 맨하탄 프로젝트 와 거대과학의 경우 해당 과학의 기술적인 본질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개발에 대한 과학은 냉전 시대의 정치적 차원과 연관되어 있고, 핵융합 사건과 황우석 박사 논란 등에 경의 과학자 개인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나쁜 과학의 사례이다. 이처럼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다 명확 히 구체화 하고 오늘날 사회에 있는 기술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을 깊게 만드는 훈련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수업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한 사례 분석을 일방적으로 배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과목은 산업 연계 프로젝트 진행 과목으로 학생들이 실질적인 산업의 문제에 대해 분석하 고 연구하는 시간을 제공하며, 온라인 강의와 실시간 수업 연계를 활용하는 플립 러닝을 통해 수업내 용을 보다 심도 있게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산업 연계 형태의 수업 형식을 통해 많은 활동을 할 수 있 었다. 나쁜 과학에 대한 정의와 분류 기준을 정립한 이후에는 각 사례에 맞게 팀을 구성해서 분석하 고, 해결책이나 바라보아야 할 관점을 발표로 제시하였다. 매번 무작위로 조가 만들어지고 해당 조만 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하는 것도 나쁜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 을 강하게 키울 수 있었지만, 다른 조의 발표를 듣는 것에서도 새로운 시각을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첫 우려와 달리 다행히 이 과목을 수강하면서 해당 과학에 대해 지나치게 깊은 과학적 원리와 과 학 지식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학 사례에 대해 단순한 지식 습득 이상의 현실 세계, 산업계 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기 위해 인문, 사회 과학적 관점을 더욱 활용했다. 물론 사례의 기본적 인 과학적 원리를 알고는 있어야 했지만, 이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해당 나쁜 과학의 사례가 이루어 진 당시의 시대 상황과 사회적 인식, 그리고 인문 철학적인 연구 윤리와 사회 과학적인 상호 이해관계
인생교양 : 역사로 읽는 테크노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