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 로망을 대신할 무언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대학 생활은 참 낭만적이다. 대학에서는 동기들과 청춘을 이야기하고 자신만 을 위한 꿈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현실은 이와는 많이 달랐다. 여전히 이론적인 강의를 수강 하고 배운 내용이 머릿속에 잘 입력되었는지를 시험했다. 이론을 공부하고 그 이론을 잘 이해했는지 증명해 내는 것을 최고 미덕으로 여기는 수학과라서 더욱 그랬다. 꿈이나 청춘,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드라마나 영화였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현실적인 대학 생활은 학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그 내용을 토대로 동기들과 함께 철학적인 탐구를 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교수님은 교단에서 강의하고 학생들은 교수님을 바라보고 입을 꾹 다문 채 그 흐름을 쫓았다. 이러한 형식의 수업은 나의 로망을 철저히 부수었다. 강의를 누가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를 판단하는 일 방향의 시험으로 한 학기의 일방적인 배움은 끝이 났다. 이것이 현실 대학 생활이었다.
대학에 가면 원하던 모든 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기대가 머물렀던 공간 에는 공허함만이 남았다. 공허함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대학 생활 로망을 채워줄 것이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준 인생 교양이라는 수강 후기는 매우 매혹적이었다. 수강하기 전과 후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익명의 수강 후기 글은 내가 사회학개론 수업을 수강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이 후기 글을 작성해 준 익명의 학우에게, 아무 고민 없이 이 수업을 수 강한 과거의 나에게 매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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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수학과)
2. 나에게 없는 무언가
사회학개론의 수업 목표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학 및 사회과학의 기본 개념을 이 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인과 현 사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학은 개인 간 관계와 사회 구조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사회 문제의 심층 원인을 이해하고 이 문제 에 직면한 현대인들의 생활 전략을 공공성 확장의 관점에서 제안한다. 세부 내용으로는 가족, 세대, 산업, 노동, 종교, 불평등, 세계화 등의 주제가 있다. 각 세부 관점에서 현대 한국인의 경험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핵심 현상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을 진행한 다. 결국 개인의 일상 경험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회의 구조와 변동을 이해하는 것이 수업의 최종 목표이다.
수업은 약 3시간으로 가장 처음 2시간은 사회 이론에 대한 설명과 이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을 배운 다. 이론이 처음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론의 진화 과정을 사례와 함께 살펴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어 떠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배운다. 마지막 1시간은 당일 수업에 나온 주제에 관련된 사회적 인 화두에 대해 교수님과 수강생 모두가 자유롭게 토의를 나눈다. 교수님이 제시한 주제 혹은 수강생 이 제시한 주제에 대해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 토론의 장이었다. 누구도 강 제하는 이가 없었고 말하기 편안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토의의 장, 바로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대학 수업의 모습이었다. 수업에서 배운 학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학 우들과 토의하며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는 완벽한 이상향 그 자체였다.
그토록 바라던 이상적인 수업 첫 토의 시간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로 보냈다. 평소에 잘 생각해 보 지 않았던 주제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다음 수업을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 수업에서도, 그다음 수업 에서도 나는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사회적 이슈인지 모르고 있었는지는 상관없이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라는 의문만 품은 상태로 수업 시간은 끝이 나 버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 답은 [사회학 개론] 수업에서 찾을 수 있었다.
3. 수업이 알려준 나에게 없는 것 : 주관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 형태의 핵심적인 개념 두 가지는 바로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이다. 테일 러리즘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분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등장한다. 분업은 인간이 훨씬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도록 만드는 아주 좋은 노동의 형태이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작업장에 적용한 것 이 테일러리즘이다. 이론적으로 한 명의 노동자는 하루에 머리핀을 20개까지 만들 수 있다. 이 작업 을 분업으로 역할을 나누게 되면 한 명의 노동자가 4,8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포드는 이 개
념을 이용하여 공장을 세워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저렴하게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모두 공통된 물품을 소비하게 되며 대중소비라는 개념이 등 장한다. 이렇게 대량으로 생산한 동일한 물품을 대중들이 공통적으로 소비하는 문화를 포디즘이라고 한다.
분업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노동 형태에서 노동자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발휘하면 불량품이 생기기 때문에 기계처럼 똑같이 일해야 한다. 그람시는 이러한 포디즘을 비판한다. 포디즘에서 노동 자는 단순 반복 노동을 해야 한다. 단순 반복 노동을 계속하면 비창조적이고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태 도에 익숙해진다. 이렇게 수동적이고 자동적으로 물건이 생산되는 사회에서 대중은 자연스럽게 기계 적이고 수동적인 문화에 익숙해진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수동적이고 비창조적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 다.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의 대량 생산 방식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개념은 개발도상국에서 훨 씬 더 많이 이용하게 된다. 개발도상국들은 대량생산 시스템 방식에 자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서 수출 경쟁력을 성장시킨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이 빠르게 성장한 이면에는 1970년대 공순이, 공돌이로 불렸던 한국의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 그 중심에 있다.
그람시에 의하면 70년대 포디즘의 대량 생산 방식을 활용한 공장에서 일하던 공돌이 공순이는 수동 적인 태도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수동적인 사람은 수동적인 사회를 만든다. 또, 수동적인 사회는 수동 적인 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회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점차 서로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 들어갔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수동적인 교육정책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수동적인 사고방식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렇게 수동적인 사회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재수생활 1년 꽤 긴 기간 동안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를 했다. 학문을 통해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얻는 것보다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중요했다. 모두가 좋은 성적을 바랐 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비법은 자신의 생각을 배제하는 것이다. 특히 국어와 같은 과목에서는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는 것이 필요했다. 글을 읽고 자신이 느낀 점이 아닌 문제가 요구하는 방향대로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찾아내어야 했다. 이러 한 공부 방법은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었기에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오해였다. 나는 수동적인 사회에서 수동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서 수동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수업에서 가르쳐주는 내용만을 기억하고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내용만 추려서 공부
인생교양 : 사회학개론
대학생과 아르바이트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때문에 아르바이트에서 지급받는 금 액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 저 임금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최저 임금을 올리면 이 사회에는 어떠한 영향 을 끼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아르바이트생의 입 장에서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지급받는 금액이 증가하니까 좋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을 토대로 최저임금의 상승은 과거부 터 지속되어 온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처우 개선의 의미가 담겨 있음
을 알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임금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 었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만 같은 최저임금에도 문제점이 존재했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사람들 은 대부분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최저 임금의 상승은 고정 인건비 지출의 상승 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최저 임금 상승 발표 이후 직원 수, 근무 시간을 줄이고 무임금 가족 경영을 하거나 대부분을 사장이 해결하는 ‘나 홀로 자영업자’들이 많이 나 타났었다.
최저임금은 과거부터 지속되어 왔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인 동시에 영세 자영업자들에 게 부담인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 최저임금을 상승시키는 것은 옳은 선택이었 을까, 아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최저 임금 상승은 좋은 정책이었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처우개 선을 통해 사회 불평등을 줄여준다는 장점은 다른 문제점에 비해 크게 느껴졌다. 최저 임금을 상승시 키는 대신에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보완할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자영업 자들에게 시행 초기 일정 기간 동안 증가한 인건비를 지원해 주는 방안을 고안해 보는 등 나름의 해결 책을 만들어보며 토의를 마쳤다.
스터디는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수업내용과 수업 중 나누었던 토 의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은 단순히 수업 내용을 복습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수업 중에는 전반 적인 수업 내용에 대해 넓은 주제를 다루었다면 스터디 토의 시간에는 그중 하나의 주제를 심층적으 로 탐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4명으로 구성된 스터디였기에 매 토의에서 모두가 한 번 이상의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스터디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은 단일한 개념 위에 겹겹이 쌓였고 이는 수 업내용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다양한 각도에서 살 펴볼 수 있었다.
하던 습관은 내가 살고 있는 수동적인 사회의 영향을 그대로 물려받아 형성된 것이었다. 나는 수동적 인 사회와 너무나도 가까운 사람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내가 수동적인 사람인지도 모른 채로 매 순간 받아들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토의 수업 시간에 의견을 내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바로 이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 수동적이었기 에 나만의 뚜렷한 관점, 주관이 없었다. 그래서 주어진 주제가 주어져도 나만의 생각과 의견이 없었다.
나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 이후에는 이러한 수동적인 태도를 개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4. 함께여서 더욱 수월했던 나만의 주관 만들기
나에게 없는 것, 주관을 가지고자 토의 시간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토의 시간에 한 번이라도 말을 한다면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절실하게 수업에 임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 다. 문제를 인식한 것과 해결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수업 시간 이외에 추가적인 공부와 노 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수업 내용 을 더욱 깊게 공부하고자 추가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스터디그룹에 참여했다.
스터디에서는 가장 먼저 수업과 토의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후, 수업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의 대량 생산 방식이 한국에 도입되었다는 수업 내용을 복습하고 관련된 내용으로 토의를 진행했다.
한국은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수출 경쟁력을 가지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한국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의 도입도 있었지만 과도한 노동착취도 있었다. 1970년대 공 장에 투입된 어린 소녀와 소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정된 시간에 더욱 많은 물품을 생산해 내기 위해 공원들은 온전한 수면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또한 공장 지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충 분한 식사 배급도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현대 사회에서 근로에 관한 처우는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충분한 영양 공급이 보장되어야 하고 일정 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적정한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 으로 노동자 법이 제정되어 많은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저소득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자 에게 의무적으로 주도록 명시한 최저임금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수업을 수강했던 2019년 당 시 최저시급이 8,350원으로 상승했다. 2018년 7,530원에 비해 증가폭이 컸다. 최저 임금의 상승은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통해 지급받는 금액이 증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인생교양 : 사회학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