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를 향해
2. 수강 동기
2020년은 내가 대학생이 된 해이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해이다1). 공식 용어로는 신종 코로 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이 괴질은 워낙 강한 전파력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 바 이러스는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왕관의 돌기 모양과 비슷하여 왕관을 뜻하는 스페인어 ‘코로나 (Corona)’가 명칭으로 붙었으며, 2019년 말에 생겨 ‘19’가 붙어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 코로나19이다.
인류는 작년 초, 본격적으로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데 힘쓰고, 여 러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섰다. 자택격리, 이동제한, 봉쇄, 국경폐쇄, 외국인 입국금지, 일시 업 무중지, 휴교령, 재택근무 등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교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
이지만 인류 생존을 위해 본성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타인 과 어울리기’를 잠시 중단한 것이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 인류의 삶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침에 집 을 나가면서 마스크를 반드시 챙기는 소소한 일상생활부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대신 집 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는다. 그 중 나는 온라인으로 개학하고, 2년째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생이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전 세 계에 퍼질 때 입학하여, 학교에 한 번도 못 온 학생들을 우스갯소리로 ‘코로나 학번’이라고도 부르는 데, 그 중 한 명인 것이다2). 유은혜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2020년 4월 10일 온라인 개학 상황실에 서 “온라인 개학이 미래교육을 앞당기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고 갑작스레 찾아 온 ‘미래’는 학생, 교수 모두에게 혼란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 로망을 꿈 꾸던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불확실로 가득한 2020년은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대 학교에 가보지도 못하고,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다른 사람과 의 접촉을 피하다 보니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를 얻 기 위해 뉴스를 매일 보게 되었는데, 이러한 신종 바이러스 출현 이후의 국내외적인 이슈들은 나로 하 여금 인간과 사회, 현대 문명과 지구 생태계와의 관계를 새삼 고민하게 하였다. ‘과학 기술과 경제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왜 빈곤과 불평등은 늘어만 갈까?’,‘우리가 사는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는데, 왜 갈등이 더 깊어지는 것일까?’등 머릿속에서 생겨난 간단한 질문에 대해 다른 학생들과 토 론하고, 토의할 수 있는 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전공이 어문계열이라 현장 활동이나 다른 이들과 토론, 토의를 할 기회가 적었기에 이러한 바람은 더욱 간절하였다. 이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문제의 과제가 대두되고 있는 이 시대에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을 토론하고, 공동 프로젝 트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 <세계와 시민>을 수강하게 되었다.
1) 한국경제신문 코로나 특별 취재팀, 『코로나 빅뱅, 뒤바뀐 미래』, 한국경제신문, 2020 2) 한국경제신문 코로나 특별 취재팀, 『코로나 빅뱅, 뒤바뀐 미래』, 한국경제신문, 2020
인생교양 : 세계와 시민
고의 방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저 지식을 수용하는 배움의 수동자가 아니라 이 수업을 통해 지 식을 배우고, 그 지식을 응용하고자 하는 배움의 주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글쓰기는 자신 의 지난 흔적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자신을 성찰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책을 읽고, 교육을 비롯하여 직업, 자유, 정의, 세금, 국가, 미래 등 세계시민으로서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 볼 문제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 이 수 업의 첫 번째 단계였다.
다음 단계는 수업시간에 자신이 쓴 에세이를 바탕으로 토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수 정하는 것이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이전에 나는 이러한 수업 커리큘럼 순서 대해 의문이 들었다. 수 업시간에 먼저 이 개념에 대해 배우고, 다른 학생들과 초기에 생기는 생각을 공유하며, 자신의 의견 을 확립하여 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내 의문은 깨 달음의 느낌표로 바뀌었다. 스스로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함으로써 내 생 각에 대한 방향성을 잡고, 논의되는 내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졌을 때,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것 이야 말로 생생한 토론이 진행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일주일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 안 교육, 정의, 자유 등에 대해 깊이 사유하여 글을 쓴 우리는 어느 정도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 을 확립한‘아마추어 전문가’였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우리는 수업시간 토의, 토론 활동을 통해 말이 통 하는 상대와 소통할 때의 즐거움을 느꼈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자신과 상대방이 이미 많은 것을 함께 알고 있어 기초적인 사안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핵심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 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열정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 있던 것은 교수님의 이러한 커리큘럼의 순서 덕분이었다. 첫 번째 수업을 예시로 들어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은 형식이다. 교수님은 수업을 시작하면 학생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셨다. “여 러분 대부분은 초중고 시절을 비롯하여 12년 이상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기 에는 한국 교육 시스템은 어떤 문제점이 있나요?”이 질문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나와 같이 ‘경쟁 교육’
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그리고 교수님은 이 의견에 확장된 질문을 던지셨 다. “한국 경쟁 교육 시스템이 불공정하다는 이야기가 많군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절대 평가로 이루 어지고, 무경쟁 교육 시스템에서 아이들에게 과연 발전이 있을까요?”이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은 다양 하게 나뉘었다. 나는 자료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나만의 생각을 펼쳤다. “독일은 경 쟁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5).경쟁을 당연시하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경쟁을 부정적인 원리로 봅니다. 경쟁 이데올로기가 극단화되면 또다시 나치즘 같은 야만을 낳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독일을 비롯해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는 대학 입시가 없습
5) 김누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해냄출판사, 2020 이렇게 ‘사유’의 중요성이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유를 통해 비판적 사고
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초중고 시절, 배움의 수동자로 살 아왔던 학생들이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다면, 사유의 틀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 다. 본 수업은 이러한 학생들이 많이 생각하고 깊이 사유하는 사람의 정신을 가 져 풍성한 잎과 새로운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다. 나 또한 항상 적당히 생 각하고 사유의 틀이 작은 사람 중 하나였지만, 이 수업을 통해 사유의 틀을 점점 확장시켜가고 있다.
그렇다면 상종열 교수님의 <세계와 시민> 교양 수업은 어떻게 사유 능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대학은 진리 탐구의 공간으로 대학생은 진리 탐구를 위한 사유 능력을 키워야 하고, 그것을 도우는 것 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교수님은 누누이 말씀하셨다. 수업을 수강하는 첫날, 교수님은 “저희는 앞으로 8주간 8편의 3장으로 이루어진 에세이를 매주 쓸 것입니다. 읽은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쓰고, 수업시간에 이를 다시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며 비판적 사유 능력을 키울 것입니다. 초반에는 자신의 생각으로만 이루어진 글을 작문하는 건 매우 어 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매주 하다 보면 점점 작문하는 속도도 붙고, 자신의 사고 또한 확장되 는 경험 또한 하게 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수업 방식은 먼저 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주제로 에세이를 쓴 다음, 수업시간에 그 개념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우고, 다른 학생들과 각자 에세이를 쓴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모든 활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활동을 통해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조별 활동도 진행하였는데, 이는 곧 프로네시스(Phronesis),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실천적인 지’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 리스 철학에서 프로로네시스를 가졌다는 말은 곧 덕을 가졌다는 의미로, 프로네시스를 가진 행위자는 도덕적으로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행동하면서, 지행합일(知行合一)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본 수업의 최종적 목적이었다.
첫 번째 에세이의 주제는 ‘교육’이었다. 어떤 형식도 주어지지 않고, 교육에 대해 온전한 내 생각을 담 기란 쉽지 않았기에, 내 경험에 빗대어 교육에 대해 충분히 사고 한 다음에서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초 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모두 한국에서 재학한 나는 학창시절을 회고하여 한국 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그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며, 교육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내 생각을 적었다. 글 을 쓰면서 ‘나는 교육을 어떤 자세로 받았던가?’,‘한국 교육의 수업 방식과 평가 방식은 어떤 사고를 유 발할까?’,‘경쟁 교육이 과연 정당한 시스템일까?’등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아 생각의 복합체를 형성 하였다. 이런 생각의 다발을 논리정연하게 글로 표현함으로써 원인과 결과를, 자극과 반응을, 옳고 그 름을 따져 근본에 다가서려는 일련의 과정, 즉 사유를 유발하였다. 내 의견을 확립하기 위해 교육에 관련된 논문이나 서적을 찾아 읽고, 이상적인 교육에 대해 고민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비판적 사
인생교양 : 세계와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