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난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적 삶의 양식을 뿌리째 흔드는 일
대 사건이었다.이후 십여년간 북한 주민들은 이전 시기와는 다른 다양한 생존전략을 통 해 경제난이 야기한 기아와 궁핍, 기본적 안전의 위협이라는 ‘비일상적’충격을 자신들의 일상 속으로 흡수하면서 생존을 이어갔다.경제난으로 인한 국가의 공백을 시장이 대신 했고,
자발적으로 형성된 시장을 중심으로 생계유지를 위한 생산활동이 진행되었다.이 뿐만 아니라 먹고 입고 거주하고 쉬는 방식,
국가, 가족, 이웃과의 관계, 생각하고 판단하 고 소통하는 틀과 방식도 변화하였다. 주민들이 일상생활세계를 통해 경험한 변화들은 이에 대한 주민들의 다양한 해석과 확대‧변형 과정을 통해 북한의 거시적 체계 및 제도 의 변화와 연계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변화하고 있는 북한 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정치담론이나 제도 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실제의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생생한 일상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
정치적 권력과 지배관계의 작동을 그것들이 현실로서 구체화되는 삶의 맥락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고정적인 이데올로기 담론과 정치 권력에 갇혀있는 듯 보이는 북한 사회의 역동성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이 발표문은 2008년에 발표자 등이 수행한 통일연구원의 연구과제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 의 일부를 정리‧보완한 것이다.
이에 이 연구는 2000년대 북한 주민의 일상, 그 중에서도 지식인들의 일상생활에 주목 한다.1) 북한에서 지식인계층은 교육, 과학기술
,
문화, 보도출판 부문에 걸쳐 주민들의 이 데올로기 재생산과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생산,
전달을 담당해왔으며, 그에 합당한 사회적 지위를 누려왔다.북한에서는 지식인을 의미하는 ‘인테리’를 “일정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사회계층”으로 정의한다.2) 즉 직업적으로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망라한 개념으로서,국가주권이나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에 따라 구별되는 집단이 아닌 사무직이나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교사,
의 사, 작가, 과학기술자 등이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의 범주를 구성한다. 이들이 담당하는 노동은 교육, 의료 등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사회적 서비스와, 문학작품 창작, 보도와 같은 문화‧이데올로기적 영역,
기타 과학기술 분야 등 연구개발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정신노동을 하는데, 지식과 기술 은 일단 사람에게 체득되면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봉사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지식인이 이중성과 동요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본다.3)일반적으로 지식인은 한 사회체계의 질서를 옹호하거나 그것에 저항하는 이중적 역할 을 수행한다.비판자로서의 지식인은 기존의 가치체계에 저항하고 대안적 질서를 모색한 다.반면 기능인으로서의 지식인은 특정한 권위구조를 합리화하는 정당화의 논리를 창출 해내고 자신들의 능력을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데 사용한다.북한 사회 에서 지식인계층은 지식인이 갖는 이중적 속성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 어 왔지만
,
지식인 고유의 비판적,
창조적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당 정책의 집행과 사회 체제의 유지에 기여하는 기능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경제난 이전 시기에 이들은 철저하게 국가 배급망에 의존해 생활해 왔고 배급과 사회 복지 면에서 노동자나 농민등의 기층 민중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지식인계층의 삶은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경도 수반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의 경제난으로 이들 “국가적 혜택을 받고 살던 사람들”은 생존의 위기에 봉착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생존의 방법을 모색해나갔다. 이하에서는 2000년대 북한 지식인1)일반적으로 ‘일상’이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그 사회의 일반적인 개인 또는 집합적 존재가 영위하는 생활이며,특정한 사건이 아닌 장기간 반복되는 생활이며, 목적의식적이지 않으며 때로는 무의식적으 로 진행되는 행위의 연속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개념과 접근법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일상의 개념에 관해서는 홍민(2008), “북한 일상 생활 연구의 방향과 방법론,”동국대학교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제2회 북한 일상생활연구 토론회 발표 자료 참조.
2) 사회과학출판사 편(1973), 정치사전 ,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3)이교덕(2002), “북한의 지식인관과 북한변화에서의 지식인의 역할”, 북한조사연구 , 2002년 7월, p.317.
의 일상생활을 생존방법, 생활시간의 변화
,
사회경제적 지위의 변화 등에 초점을 두어 살펴본다.이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심층면접을 위주로 하는 질적 연구방법을 주로 사용 하였다
.
계량적 연구가 조사의 대상과 모형을 설계하고 연구자가 사전에 설정한 계량적 지표에 따라 데이터를 수집하여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질적 연구방법은 연구대상의 경험을 연구 대상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고 재구성 하는 데 초점을 둔다.이 연구에서는2000년 이후 탈북한 지식인 계층의 북한이탈주민
13명에 대하여 반구조화된 면접 형태로 심층면접을 실시하였다.
성별, 연령대, 직업, 지역, 탈북연월 등 심층면접 대상자의 기본 인적 사항은 다음 <표 1>과 같다.면접대상자 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구체적인 직업은 적시하지 않았으며, 이후 보고서의 본문에 서 면접내용을 인용할 때는 코드명만을 명시하였다.면접 대상자 선정에 있어 계층과 거 주지역
,
성별 등이 골고루 분포되도록 하려고 했으나,
아는 사람의 소개를 통해 면접 대 상자를 확보하는 스노볼링 기법을 활용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연령 및 거주지역별로 인원이 균형있게 안배되지는 못한 점은 이 연구의 한계이다.
<표 1>
심층면접 대상자 기본 인적 사항코드 성별 연령대 북한에서의 직업 출신 지역 탈북
연월 면접일 사례1 남 40대 대학 교수 함북 청진시 2004 2008.1.29 사례2 남 40대 대학 교수 함남 함흥시 2003.11 2008.4.11 사례3 여 40대 교원 함남 함흥시 2005 2008.4.23 사례4 여 40대 중등교원, 사무원(2001-) 평북 삭주군 2006 2008.5.7 사례5 여 40대 유치원 원장, 병원 사무직(2005-) 함북 회령시 2006.1 2008.5.7 사례6 여 30대 의사 함북 청진시 2000.3 2008.5.19 사례7 남 40대 중학교 교원, 전문학교 교원 함북 청진시 2006.4 2008.5.20 사례8 남 40대 작가 양강도 혜산시 2006.8 2008.5.23 사례9 남 60대 의사 함북 부령군 2007.6 2008.6.12 사례10 남 30대 대학 교원, 연합기업소
기술자(2005-) 함북 청진시 2007.5 2008.6.28/7.
13/11.22 사례11 여 50대 인민학교 교원, 사무원, 가내편의 함남 함흥시,
평양시 2006.12 2008.6.28 사례12 남 30대 기자 양강도 혜산시 2004.1 2008.7.22 사례13 여 40대 의사 함북 회령시 2007.5 2008.7.31
심층면접 이외에도 하루 일과와 수입과 지출 내역들에 관하여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 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헌 자료를 활용하였다.
2. 2000 년대 북한 지식인의 생존 방법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재생산의 핵심축이 되는 지식인들에 대한 식량 배급은 경제난 시기에도 가장 늦게까지 지속된 편이었으나
,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완전히 중단
되었다.대부분의 지역에서 배급이 전면 중단되었던 고난의 행군기에 지식인들은 배급이 아닌 다른 생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고난의 행군기를 지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자 지역에 따라 의사, 교원 등 일부 지식인 집단에게는 배급을 최우선적으로 시행하였다.4) 그러나 고난의 행군기에 정착된 삶의 방식들은 2000년대 이후에도 유지되었을 뿐만 아 니라 시장의 확대와 맞물리면서 더욱 다양하게 분화되어 갔다.현재 북한 지식인들이 공 식적인 노동생활 이외에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부업, 관계망에 의존, 지식 판매, 비법과 뇌물, 기관 차원의 대책 등에 대해 살펴본다.1)
부업경제난으로 배급이 중지되자 노동자와 농민뿐만 아니라 지식인들도 자체적으로 생계 유지를 위한 방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경제난 시기 공장과 기업소는 가 동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직장을 떠나 장사 등의 생계 방법을 찾을 수 있었지만
,
교사나 의사 등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사회적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은 노동의 속성상 일터에 긴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기에 고지식하게 일터를 지킬 것만을 고집하다가 병을 얻거나 목숨을 잃는 지식인들을 목도하면서 자신의 일터를 지키는 것은 더 이상 “감수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경제난 초기에는 언젠가는 배급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아침에4)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청진 지역에서는 2002년경부터 대학 교원들에 대해 본인은 100%, 가족은 50% 배급이 제공되었다고 한다(사례 10).회령 지역에서는 2006년부터 교원들에게 배급이 100% 제공되었으며, 이와 함께 근무시간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고 한다(사례 13). 좋은 벗들에 의하면 2007년에 대부분의 직장들이 배급을 주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일부 지역의 교사와 의사들에게 는 한달에 옥수수 15kg 정도의 배급이 제공되었다고 한다(오늘의 북한소식 59호, 2007.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