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기구의 정비북한은 국방위주의 국가기구체계가 확립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체제화된 사회주 의 정치방식이 전면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면서 국방위원장체제의 등장을 설명하고 있 다.34) 북한은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를 통해 과거 김일성시대의 상
징이었던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를 폐지하고 명목상 국가대표기구인 최고인민회의 상 임위원회를 신설하면서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헌법개정을 단행 하였다.
1998년 헌법의 개정을 통해 바뀌게 된 국가기구의 개편에 대해 “우리식의 정치체제가
튼튼히 다져지게 되었다”고 평가하면서“혁명적 국가기구체제가 정비되었다”고 평가하
였다.
35)1992년부터 1998년 헌법개정까지 국방위원회가 국정전반에 나와 실질적인 통치활동
을 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듯이 1998년 헌법개정이후에도 뚜렷한 통치기능을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공식적 지위에서 통치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방 위원회는 중앙인민위원회의 하부 위원회에 지나지 않았으며 중앙군사위원회의 활동에 비해 그 영역이 불분명하였다.하지만, 김영남이 최고인민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국방위원회 위원장...
최고 직책이 며...성스러운 중책입니다”36)라고 밝히면서 그 역할이 주목되기 시작하였다. 국방위원회 중심의 국가체제가 출현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배경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대외적 환경의 악화와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하여 이미 확보한 당권에 더해 군권을 보다 확실히 장악할 필요가 컸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1972년 헌법에서 국가주석제를 도 입하면서 유일적 지도체계를 법제화하고 1992년 수정 헌법에서는 주석의 관할이었던 군 사관련 권한에서 국방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분리시키면서 김정일에게로 군권의 이양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였다.
1998년 헌법에서 국방위원회에 관한 사항이 기존의 네 번째 순위에서 두 번째 순위로
승격되어 명시되어있다.김영남의 추대연설에서 나타나 있지만 북한에서 국방의 문제는34)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우리당의 선군정치 ,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2006). p. 89.
35) 「로동신문」1999년 1월 1일 공동사설 36) 「로동신문」1998년 9월 5일
단순히 군사적인 문제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
,
경제, 문화, 외교 등 전반적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 국사37)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국방사업 전반을 지위하는 국방위원 장의 지위는 실질적 통솔력과 영향력에서는 주석과 다름없는 최고 직위인 것이다.북한 은 김정일이 처음부터 자신의 정치를 선군정치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전술적으로 그 공개의 시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하면서 먼저 선군정치방식의 국가적 기 틀인 국방위원장체제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1999년 2월 선군정치를 자신의 기본 정치방 식이라고 공개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38)2.
해외 선군사상보급활동북한은 1970년대부터 주체사상을 해외에 보급하고 있으며 그 연구모임이 조직되어 있 는 것으로 선전해 왔다
.
특히, 2008년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를 소개 하면서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은 김정일의 영도밑에 선군정치로 반미대결전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39) 북한은 이 러한 주체사상의 해외보급은 1976년 9월 마다가스카르의 수도에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주체사상의 연구보급과 그 구현을 위해 국제적인 학술연구기관을 지지하면서 시작되었 으며 1978년 4월 9일 일본 도쿄에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창립대회가 진행되면서 본격화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현재 세계 100여개 나라에는 주체사상국제연구소와 1,100여개 의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이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40) 북한은 이렇듯 북한체 제에서 태동한 사상이 전 세계적으로 연구보급 되어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선전함으로 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으려하고 있다.‘주체’와 ‘선군’은 그러한 해외보급 및 활동 측면에서는 기존의 주체연구회에서 선군을
동시에 연구하거나 새롭게 선군연구활동모임이 조직되었다는 식으로 선전되고 있다.
북 한은 2003년에는 세계 70여개 나라들에서, 2006년에는 세계 120여개 나라와 지역들에 서 선군사상,
선군정치를 주제로 한 연구토론회와 강연회, 좌담회 등이 각각 수백여회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다.또한, 2007년에도 라오스, 인디아,
프랑스, 불가리아 를 비롯한130여개 나라와 지역들에서 선군사상,
선군정치에 관한 다채로운 행사들이37) 「조선중앙통신」1999년 11월 15일.
38)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앞의 책, pp. 92-93.
39) 「조선중앙통신」2008년 3월 29일.
40) 「조선중앙통신」2008년 4월 9일 <위대한 주체사상의 견인력과 생활력>
연 600여회나 있었다고 보도되었다.41) 북한은 선군사상과 선군정치가 세계 100여개 나 라에서 출판보도를 통해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사실, 북한의 공간문헌에서
‘선군 ’이 해외에서 보급되고 있다는 내용이 소개된 것은 2000년 2월 17일 유고슬라비아 좌익 정당들의 연합토론회에서 김정일의 선군혁명영도
업적이 토론되었다는 것이 최초로 등장하였다.42)2000년 이전에는 해외에서 보급되거나
연구되고 있는 것으로는 주체사상만 언급되었을 뿐이고 ‘선군’은 소개되지 않았다.그리 고 기존의 각국 공산당 조직이나 주체사상연구회를 통해서 ‘선군’의 보급 및 연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2002년 10월 2일 ‘주체선군정치연구 페루조선친선협회
’가 결성되었다고 전해졌다.
43)2002년까지는 선군에 관한 독자적 연구회가 결성
되었다는 보도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3년에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최초로 선군정치연구협회가 설립되었다
. ‘영국선군정치연구협회’가 2003년 8월 16일에
영국 런던에서 결성되었으며 ‘영국주체사상-김정일동지노작연구소조’
책임자인 허드슨 이 협회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선군정치연구소조’가 미국에서 결성되었다.
44) 영국과 미국을 시작으로2004년에는 ‘우크라이나선군정치연구협회 ’, ‘콜롬비아주체선군
연구협회’가45)2005년에는 ‘인도선군정치연구소조’, ‘우간다 꼴로로고등중학교 선군정치
연구소조
’, ‘자주와 주권을 위한 선군사상연구 이탈리아위원회’가
46)가 설립되었다. 2006년에는 선군사상
,
선군정치에 대한 연구보급사업이 러시아, 시리아, 인도, 벨라루시, 프랑스, 우간다를 비롯한 120여개 나라와 지역에서 광범히 진행된 것으로 소개되었다.47)‘선군’
관련 단체의 신설은 2005년까지 추진되었고 그 이후에는 각 단체에서 진행된 행사가 소 개되었다. 전체적인 범위에서
‘주체사상’관련단체의 활동이 활발하고 ‘선군’관련단체는
그 수가 적지만 양자간에는 특별한 구분없이 2.16 김정일 생일과 4.15 김일성 생일행사 에 참석하고 있다.이러한 단체들은 국제적 인지도를 갖고 활동하는 단체라기보다는 몇몇 개인이 북한으 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소규모 단체이기 때문에 그 활동이 갖는 의미는 크지 않다.48) 다만, 국제적 수준에서 ‘주체’와 ‘선군’이 지지를 받고 있다고 선전함으로써 내부
41) 「조선중앙통신」2008년 6월 2일 <위대한 선군정치-세계적 선군사상연구소조 연구토론회>
42) 「조선중앙년감」(평양: 조선중앙통신사, 2001). p. 331.
43) 「조선중앙년감」(평양: 조선중앙통신사, 2003). p. 393.
44) 「조선중앙년감」(평양: 조선중앙통신사, 2004). p. 354.
45) 「조선중앙년감」(평양: 조선중앙통신사, 2005). pp. 343-344.
46) 「조선중앙년감」(평양: 조선중앙통신사, 2006). pp. 383-384.
47) 「조선중앙통신」2006년 12월 20일.
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체’연구단체들이
주로 제
3세계 등 저개발국가에 집중되어 있는데 반해 ‘선군 ’의 경우 제국주의의 본산으
로 선전되고 있는 영국과 미국에 개설된 선군정치연구소조의 활동을 통해 소개되고 있 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북한은 ‘선군정치’가 반미 대결의 장에서 탄생했다고 정의 하고 있는데, 역으로 그 적진인 미국에서 선군정치에 대한 연구와 호응이 활발하고 선전 함으로써 심리적 차원에서의 안정감을 인민들에게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선군’시대의 대중운동
북한에서 총대가정이란 집안의 형제나 남매, 또는 부자가 모두 군에 입대해 복무하고 있는 군인가정을 말한다.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최근 북한에서는 이러한 ‘총대가정’이 늘 어나고 있으며, 북한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선군정치의 결실’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49)2001년에는 해주시에서 군민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북한 군인들과 황해남도내 농업근로자들, 각계층 인민들
7만여명이 참가하였다고 보도되었다.
50)5월 18일에도
해주시에서 군민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군민관계가 강조되면서 북한에서 건설된 주 요 건축물들에 ‘군민’이란 칭호가 붙기 시작했다. ‘군민거리’, ‘군민다리’, ‘군민발전소’,
‘군민양어장’,‘군민체육관’
등이 그것인데, 2002년에 완공된 개천-태성호에도 ‘군민굴’
의 명칭이 부여되었다.51) 군민이란 명칭의 시설물들은 주로 군인 공병대와 민간의 돌격 대가 합동으로 건설한 시설물에 붙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군민일치의 전통을 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에서부터 시작되 었다고 주장한다. 이날은 북한군의 창건일이기도 하지만 북한은 당시 정규적 무장력이 없는 조건에서 총을 든 민간인이었던 이들 인민유격대야 말로 진정한 인민의 군대라는 것이다
.
52) 제도적으로 북한에서 군민일치운동이 공식화 된 시기는1992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으로“군민일치 모범군 칭호”가 제정되고 그 해 4월
헌법개정을 통해 군민일치가 언급되기 시작하였다.53)48) 「국정원 홈페이지」(검색일: 2008년 7월 30일) http://www.nis.go.kr/app/north/information/foreig npoli/view?midArr=M03200500&fieldArr=&keyWord=&page=2&dataNo=19034&hcode=13507 775519919049434147&viewNo=2&gubun=&localCode=
49) 「로동신문」1998년 1월 5일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 1998년 2월 12일 <총대가정의 경사>
50) 「로동신문」2001년 3월 26일
51) 「로동신문」2003년 6월 7일 <군민의 이름을 지닌 창조물들>
52)리철, 위의 책, p.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