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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지위의 변화

2000년대 지식인계층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경제난 이전 시기에 비해 일반적으로 하향

이동하였다. 임금과 복지 등의 측면에서 일반 노동계층에 비해 나은 “국가적 혜택을 받 고” 높은 직업지위와 사회적 존경을 누렸던 지식인들은 “국가적 혜택”이 사라지고 시장

화가 진행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빨리 적응하지 못해 경제적 하류계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일례를 들자면 북한에서 교원은 사회주의 사회를 발전시켜나갈 후속세대 를 양성하는 “직업적 혁명가”로 규정되어왔는데14)

,

이제는 교원이 아니라 “교원의 아내 가 혁명가

”라는 자조어린 말이 등장하고 있다(사례 1).

교원들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지면서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지 못해 곤궁한 교원의 가정을 꾸려가는 그 들의 아내가 혁명가라는 의미이다

.

이렇듯 일반적으로 지식인의 경제적 지위가 하락하기 는 하였지만 다양한 생존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지위 를 확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식인계층 내에서도 경제적인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 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업 이외의 시장과 연계된 부수적인 경제활동 정도, 경제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관계 망 구축 정도, 사적으로 판매 가능한 지식과 정보의 소유 여부, 소속 기관의 경제적 능력 등에 따라 지식인계층 내의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다. 경제력 확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장적응능력이다

. “과학적인 열의가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지식인보다는 본 인이나 가족이 “수단이 좋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교수자리 앉아서도 그걸 가지고 폼을 잡는다.”(사례

8)

판매 가능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사적으로 제공하는 지식서비스에 대한

“자기관리”를 잘 하는가도 경제적인 성공의 요소가 된다(사례 3).

또한 지식인들이 활용가능한 관계망에 따라 경제적 차이가 발생한다. 경제력이 있는 고객을 상대하는 지식인들은 그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 인 생활을 할 수 있다

.

의사들 중에는 급이 높은 병원이나 당간부들이 이용하는 병원의 의사

,

교원들 중에는 당간부를 교육하는 당학교 교원 등이 그에 해당한다.초중등교원의 경우 경제력 있는 학부모와의 관계망 구축 여부에 수입이 좌우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학교교원은 소속 대학이나 담당 교과에 따라 수입에 차이가 난다.중학교의 경우 수학, 과학

,

영어와 같은 주요과목이나 예체능 교과 담당 교원들은 개인교습을 통해 부수입을 올릴 수 있지만

,

역사나 정치사상 과목 교원들은 개인교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운 편이다.대학의 경우에 김일성종합대학과 같은 유명 대학의 교수들은 국가적 지 원도 클 뿐 아니라 간부 대상의 성적 관리 목적으로 중앙당 간부과 등에서 제공하는 뇌

14) “직업적 혁명가”란 혁명을 자신의 본연의 임무로 보고 혁명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교육 자체가 의식의 변화를 도모하는 혁명의 일부로 여겨지므로 이를 담당하는 교사는 하나의 직업인을 넘어서서 혁명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혁명가로 규정되었던 것이다.직업적 혁명 가로서의 교원의 역할은 다음과 같은 글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교원은 단순히 지식이나 전달하는 사람, 밥벌이를 위하여 교단에서 지식과 기술을 ‘상품’으로 파는 사람”이 아니라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자기의 힘과 지혜, 한생을 바쳐 나가는 사람이다.”(한선희‧김영준 편, 교육심리 (평양: 교원신문사, 2001), p.370.)

물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15) 소속 기관에 따라서도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 다.소속기관의 책임자가 기관 운영을 잘 하여 구성원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경우 에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지식인계층의 경제적 지위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직업을 통해 형성된 관계망에 생존 을 의존하는 경향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위신과 존경도도 하락하였다

.

이 는 기본적으로 시장관계의 활성화로 인해 경제력과 생활수준이 향상된 주민들이 많이 생겨난 데 비해 지식인들의 경제적 수준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전 시기에 지식인층이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이들이 학식과 지적인 권위

,

도덕성 등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가치들은 시장관계의 확대와 더불어 점차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고 개인과 가족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요소인 돈의 중요성만이 강조되면서 경제력이 취약한 지식인들의 사회적 지위도 하락하게 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원이나 의사 등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던, “깨끗하고 긍지가 있 는” 삶을 살던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업으로 장사를 하거나 학부모와 고객들에 게 돈과 물품을 요구하고 성적거래를 하는 등 “위신이 떨어지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지식인들에 대한 주민들의 존경심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16)

지식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했다는 점은 결혼상대자에 대한 선호도에서도 드러난 다.대학 교수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일부에서 아직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상대 자 선택과 같은 실질적인 일에 부딪혔을 때 지식인들은 기피대상이 된다

.

여성들은 “남 자가 대학 교원이다, 선 볼 자리 나섰다고 하면 머리를 기웃기웃”한다고 한다. “보기는 좋은 데 자기가 시집가가지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사례

1).

경제난 이후 남편을 “풍경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학교수인 남편은 “조금 보기 좋은 풍경화

일 뿐 실질적인 생활 측면에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전 시기 지식인들의 사회적 권위는 “빈 껍데기

”가 되었지만,

한편에서는 이 와는 다른 종류의 권위와 위신이 생겨나고 있다.주민들이 지식과 기술을 가진 지식인들 이 제공하는 사적인 서비스의 직접적 소비자가 되면서 주민들의 실질적인 필요성에 기 초한 권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

예를 들어 국가가 제공하는 무상의료체계가 형해화되 면서 실력있는 의사에게 사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가 건강한 삶을 사는 데 있어

15) 좋은벗들, 오늘의 북한소식, 61호, 2007.2.28.

16)지식인들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관해 한 북한이탈주민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지위라, 떨어지지요.

교원들의 생활수준이 괜찮게 되면 학생들한테 손을 안 내밀잖아요.학생들 방조를 많이 받으며 살잖 아요.그러니까 아무래도 위축되잖아요.그게 흠이지요.그게 교원이 권위가 있고 품위가 서려면 학 생들과 일정한 간격이 보장되어야 하잖아요.” (사례 4)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의사를 모르고는 못산다는 관념” 때문에 “당일꾼이나 행정일꾼들에게 인사는 안 해도 의사한테 꼭 인사를 하고

”(사례 13), “집에 대사가 있으

면 초청도 하는”(사례

9)

풍토를 볼 수 있다. 교원의 경우에도 자녀들의 개인교습을 부 탁하기 때문에 실력있는 교원들에 대해 “학부형들의 열정과 열도가 많이 강하다”고 한 다.(사례

3)

지식인의 위신의 하락은 이들이 종사하는 일이 주로 사회의 정신적 가치와 이데올로 기를 생산하고 대중에게 이를 전달하고 후속세대에게 전수하는 역할이라는 점과도 관련 된다

.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에서 지식인은 “당 건설과 활동에서 영원한 동행자, 충 실한 방조자

,

훌륭한 조언자”로 간주되어왔다.그러나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고 통치자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재생산의 담당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17)

지식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위신의 추락이 단지 경제적 측면에 기인한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서 담당하는 일의 가치에 대한 주민들의 부정적인 인식과도 관련된다는 점에서 지식인들의 사회적 지위의 하락은 동시에 이들의 지위를 뒷받침했던 국가적 권 위와

“권력의 추락(사례 12)”이기도 하다.

기능적 지식인으로서 북한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는 반면, 지 식인들 내부에서는 변화하는 사회상에 대한 자각과 북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싹트고 있다.경제난과 시장 확대 과정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지역간 왕래의 증가, 외부 사회로부터의 정보 유입과 국내 정보 소통의 활성화 등의 영향으로 최근 북한 주민 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십여년간에 걸친 자생적 시장화의 경험과 중국과의 접촉을 통해 일부 주민들은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로서 개혁‧개방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

이러한 인식은 특히 지식인들을 중심 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기자 출신의 북한이탈주민(사례 12)의 증언에 의하면 2000년 대 중반에 양강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20년 후를 대비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돌 았다고 하는데, 그 말의 의미는 김정일 사후에 북한 사회도 자본주의 체제로 수렴해갈 수 밖에 없으며 그 때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과 경쟁을 하려면 실력을 높여야 한다는

17)지식인으로서의 긍지가 감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관해 교원 출신의 북한이탈주민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북한의 긍지감이라는 건 그렇게 표현 안 해요.첫째로 군대나 보위부나 안전부나 교원이 나 이런 기관은 철저하게 위대한 장군님을 충성과 효성으로 받들어 모셔서 학생들을 위대한 장군님 의 충성과 효성의 귀감으로 키우기 위해서 교육한다, 여기서 긍지감을 가진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장군님을 뭐나 먹으라고 뒤에 앉아 그 비방을 하는데 어떻게 긍지감이라는 게 있을 수 있습 니까? 척 봐도 알잖아요. (사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