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마을인 칠전리를 중심으로 볼 때 묘소는 크게 주거 시설이 밀집된 마을 중 심에서 가까운 곳과 먼 곳으로 나뉜다. 마을 중심에 가까운 묘역에는 대부분 칠전 박씨의 묘소가 들어섰고, 타성의 묘소는 상대적으로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들어섰 다. 칠전리의 시거성씨로 칠전박씨에 앞서 정착한 장흥임씨 묘역은 “뱀굴(巳谷)”
과 웃굴의 “샘골(泉洞)”에 있다27). 일제강점기 이후, 위 묘역을 장손이 계속 관리
하여 묻히면서, 다른 장흥임씨 후손들은 “장테”에 가까운 “강구재골(姜具峙)”에 묘역을 잡는다. 이처럼 장흥임씨의 선조가 묻힌 묘역은 모두 마을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칠전리 주변에 자리 잡은 다른 가문의 묘소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경주김씨의 선산 역시 칠전리 서편의 “연동재(連洞峙)”를 넘어 나오는
“외얏굴(外野洞)” 뒤에 있다. 이처럼 칠전박씨의 묘소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많다면, 다른 성씨의 묘는 상대적으로 마을에서 멀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섰 다.
그러나 칠전박씨 묘라 하여도 내부에는 분화가 나타난다. 우선 칠전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묘역은 “큰깍금(大山所)”과 “숲에(漆田西麓)”이다. 큰깍금은 칠전박씨 의 공동 조상인 박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문중 소유지로, 마을 주변에서 칠전박 씨의 가장 윗대 조상이 묻힌 곳이다. “숲에”는 두 묘역으로 토지 소유가 구분되는 데, 하나는 박종량의 장손에게 소유권이 있고, 다른 한 묘역은 진도 밀양박씨 청 재공파 12대인 종자 형제 후손의 공동 소유로 되어 있다. 이들 묘역은 모두 칠전 박씨 중 높은 어른이 묻힌 곳으로, 마을 가까이에 위치한다.
주요 성씨 중분류 하위분류 소유 선산 수 소유 선산 면적
밀양박씨
칠전박씨
대문중 1 65,058㎡
박종노 후손 4 9,584㎡
박종구 후손 7 93,900㎡
박종의 후손 2 30,248㎡
박종림 후손 3 1,088㎡
박종량 후손 25 286,991㎡
박종빈 후손 2 25,586㎡
중파문중 대문중 1 20,844㎡
사문중 A 4 23,898㎡
장흥임씨 1 16,860㎡
경주김씨 1 5,327㎡
[표Ⅱ-1] 칠전리 주변 묘지 구성 (2015년 1월, 현 소유주 기준)
위의 [표Ⅱ-1]28)은 칠전리 주변 묘소를 지번별 소유자 중심으로 구분한 것이 27) 사실 이 내용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칠전박씨에 비해 장흥임씨가 먼저 살았다면, 장흥 임씨의 묘가 더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의 건립 시기와 묘소의 성립시기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것이 두드러진 것은 칠전박씨의 경우이다. 이는 차후에 설명한다.
28) 본래 연구자는 문중 재산과 개인 재산을 구분하고자 했으나 이 구분이 어려워 모두 파 악할 수 없었다. 문중 재산의 경우 보통 문중명으로 등기를 하거나, 문중원들이 연명으
다. 이를 보면, 마을 주변에서 박종량 후손 소유의 선산이 그 수가 많고 면적도 넓다. 이어서 박종구 후손의 선산이 그다음으로 넓다. 박종노 후손들의 묘역은 원 래 규모가 큰 편이었으나, 현재는 많이 축소되었다. 이들은 마을 동쪽의 “천방(天 防)”을 중심으로 선산과 위토답이 있었다. 지금은 많은 부분을 판매하였지만, 이전 선산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이밖에 박종의, 박종림, 박종빈, 박종지, 박종 도 후손의 묘역은 칠전리 주변에서도 상대적으로 제한된 부분만 남은 상태이다.
또한, 칠전리 주변에는 밀양박씨 중파문중의 선산도 남아있다. 계파(季波)에 속 하는 칠전박씨들과 구분되는 이들의 묘역은 “웃굴방죽(七田堤)”으로 올라가는 길 목에 있는 “천방사(天防祠)”와 그 뒤에 산지를 말한다. 이곳은 계파문중의 중시조 인 박정(朴挺)과 윗대 선조들이 묻힌 곳으로 이들의 직계 후손은 현재 칠전리에 거주하고 있지 않다. 이들의 다른 묘역은 “바깥연동(外連洞)”에 있는데, 이 지역은 밀양박씨 중파 문중의 자손으로 칠전리에서 한동안 거주했던 이들이 선산으로 삼 았던 곳이다. 이들은 상당한 재산을 모아 칠전에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이들은 칠전리에서 상당히 먼 곳에 묘를 쓰고 있으며, 마을에서도 주변적인 위치를 차지 한다. 현재 이들은 칠전리에 거주하지는 않으나, 선산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를 단순히 거리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묘소가 만들어진 시기의 문 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묘소는 밀양박씨 중파문중의 선산 중 천방사가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진도 입도조 박용 의 차남인 박정과 그의 아들인 박충손(朴忠孫), 손자인 박식(朴軾)과 박곤(朴輥) 등의 묘가 있다. 그다음에 만들어진 묘소는 큰깍금에 있다. 이곳에는 위에서 기술 한 것처럼 계파문중인 칠전박씨의 묘소가 있다. 셋째로 만들어진 곳은 천방폭포 위에 모셔진 박성(朴星)의 묘가 있는 곳이다. 뱀골에 있는 장흥임씨의 묘소도 비 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초창기 묘소인 천방사 지역의 박정 묘소는 그 입지가 칠전리와 연관된 것 으로 보기 어렵다29). 오히려 마을과 관련성을 찾기 적절한 것은 두 번째 묘소인 큰깍금이다. 이 묘소는 시기적으로 칠전리에 장흥임씨가 정착하기 전부터 있던 곳
로 등기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개인의 이름으로 등기된 경우라도 이것이 해당 문중 의 재산일 수 있다. 선산은 본래 장자에게 상속되었기 때문에 비록 문중 선산이라 할지 라도 개인 명의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자는 인명을 통해 확인 하여 칠전리 주변의 선산을 소유자 중심으로 이를 정리하였다. 누구의 후손인지 파악할 수 없는 땅은 이 통계에서 제외하였다.
29) 차후에 살펴볼 전설 상 이 묘역이 만들어진 시기는 칠전리 설촌 이전에 만들어진 묘지 로 추측할 수 있다. 관련 전설은 [사례 Ⅱ-7]에 수록하였으며, 이후 2장 2절의 명당에 대한 부분에서 다룬다.
으로 보이며, 칠전박씨들은 이곳에 마을보다는 묘소를 먼저 쓴 것으로 추측된 다30). 이런 배경에서 칠전리에 앞서 거주했던 장흥임씨가 선산을 마을 주변에 쓰 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뱀굴 쪽에 묘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칠전리에 밀양박씨들이 정착한 이후에는 마을 주변 지역의 묘를 주로 칠전박씨들이 썼던 것으로 보이며, 타성의 묘는 마을에서 상대적으로 더 먼 곳에 있었다. 이를 잘 보 여주는 것이 “숲에”의 묘소이다. 이곳에는 칠전리로 이주한 박윤순의 아들 중 차 남인 박종의와 넷째인 박종량의 묘가 있는데 이곳은 마을에 가깝게 붙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주 초기부터 밀양박씨의 위세가 강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칠전리를 중심으로 묘소를 살펴보면 마을 내의 중심성씨와 주변성씨 사 이의 분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심성씨, 그중 유력한 조상의 묘일수록 마을에 더욱 가깝게 자리하며, 주변적인 성씨의 묘는 상대적으로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것이다. 또한, 칠전박씨 내에서도 칠전리에서 차지하는 인구비중에 따라 묘소의 규모가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박성용(2002)의 자료에서처럼, 인구 비중 과 이들이 차지하는 묘역의 수는 상당한 일치점을 보인다. 다만, 그는 신촌에 거 주하는 밀양박씨의 묘소에서 나타나는 질서에서 적장자를 다른 형제보다 우선시 하는 양상이 묘역 내에서도 나타난다고 보고(ibid.: 48)하였으나, 칠전리에서는 이 러한 양상이 묘소의 위치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처럼 칠전리 주변 조상의 묘소는 일정한 특징을 내포한다. 즉, 마을의 중심성 씨인가 아니면 주변성씨인가에 따라 묘소의 위치가 달라진다. 또한, 칠전박씨 내 에서도 상대적으로 마을 주변에 많은 묘지 공간을 차지하는 집안이 있는 것과 달 리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을 차지하는 집안이 나타나는 등 내부 분화도 나타난다.
이러한 공간 분화는 망자의 공간을 분류하는 일정한 규칙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 성을 제기한다. 다음의 두 소절에서는 이 장에서 제시한 단순한 거리의 문제를 넘 어, 칠전리 주변 망자의 공간을 분할하는 두 핵심 축을 소개하고 그 특징을 살핀 다.
30) 큰깍금의 묘소에는 임진왜란 시 순절한 공신의 묘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연구자가 판단한 칠전박씨의 시거 시기인 1600년대 중반보다 훨씬 이르다. 마을의 전설상에 이 선산이 이장된 곳이라는 이야기나 흔적은 나오지 않으며, 묘소에 대한 전설도 구체적이 기 때문에 본 연구자는 이곳의 초기 묘소가 이장으로 형성됐을 가능성을 제외하고 논지 를 전개했다. 차후 기술될 큰깍금 내 묘소에서 나타나는 혼란상 역시 이장의 가능성을 낮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