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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시작해서 음력 8월 초에 끝난다. 오래 걸리는 이유는 벌초성묘가 진도 입도조 를 시작으로 그 아래 조상의 묘소를 한 곳씩 둘러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벌 초성묘는 조상의 위계를 따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순서 관리문중 박종구 사문중 박종량 B 사문중

1 진도 밀양박씨

대문중 진도읍 정거름재(박용)

2 밀양박씨 계파 대문중

진도읍 수역리 매향동(박동)

3 의신면 만길리(박섬)

4

개별 사문중

지산면 앵무리 지산면 앵무리

5 진도읍 북치리 의신면 사천리

6 칠전리 숲에

[표Ⅱ-3] 대표적인 두 사문중을 통해 본 벌초성묘의 순서

벌초성묘 시 성묘 순서는 조상의 계보를 따르고, 성묘를 주관하는 문중 조직은 계보적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 [표Ⅱ-3]에 표기된 것처럼, 칠전박씨의 경우 벌초 성묘를 우선 진도읍의 정거름재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진도 입도조 박용의 선산이 있는 곳이다. 이곳 성묘는 진도 밀양박씨 대문중에서 주관하고 가장 넓은 범위의 후손들이 모이게 된다. 다음으로 들르는 곳은 진도읍 수역리 매향동이다. 박동과 아들인 박이량이 묻힌 선산을 거쳐, 박섬의 묘소가 있는 의신면 만길리의 선산으 로 가게 된다.

본래 계보 순으로 볼 때, 박동의 선산이 있는 매향동 다음에는 그의 손자인 박 배간 이하 여러 조상의 묘가 있는 칠전리 큰깍금을 만길 선산보다 먼저 들러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벌초성묘 시 칠전리 주변의 묘소는 들르지 않는다. 이는 벌 초성묘의 성격을 확연히 보여준다. 칠전리 주변의 선산과 문중답은 자신들의 생활 공간 안에 있어서 이곳은 언제든지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칠전리 밖의 묘소와 문중답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굳이 이 시기에 칠전리 내의 선산과 문중답 을 둘러보지는 않으며, 칠전리 밖으로 나간 묘소와 문중답만을 이 시기에 살피게 된다. 이런 이유로 칠전리 주민들의 벌초성묘는 칠전리를 벗어나 조성한 선산과 문중답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수역리와 만길리의 성묘가 밀양박씨 계파 대문중의 주관으로 진행된다면, 이후 성묘는 좀 더 세분된 사문중별로 이루어진다. 박윤순의 장남인 박종구 후손들의

사문중은 이후 앵무리의 닭섬을 거쳐 진도읍의 북치리로 성묘를 간다. 박종량 후 손 중 B 사문중은 앵무리의 자라섬을 성묘한 후 사천리 첨찰산 동쪽에 있는 선산 으로 성묘를 간다. 이들 사문중의 독특한 점은 마지막 벌초성묘를 그들 사문중의 핵심 인물인 박종량의 묘가 있는 칠전리 “숲에”를 들러 성묘를 마친다는 점이다.

조상의 장소에서 나타나는 공간적 질서가 마을 밖으로 확장될 때 혈연적 질서 는 그 위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한 묘역 안에서의 집단성이 묘지 간의 위치를 잡아주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면, 여러 묘지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벌초성묘는 떨어진 장소 사이를 순차적으로 방문하는 실천을 통해 조상의 장소 간 위계질서를 보여준다. 결국, 벌초성묘는 마을 밖으로 흩어진 조상의 장소를 묶어주며 이를 통해 혈연적 집단성을 드러낸다.

과거에는 선산 위치가 칠전리에서 멀었고, 각각의 장소를 직접 걸어서 방문했기 때문에 하루에 한 곳씩 다니며 성묘를 다녔다. 따라서 벌초성묘에만 집안마다 한 주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또한, 이 시기가 되면 흰 도포를 입은 어르신들이 길을 따라 줄줄이 걸어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많이 변했다. 먼저 칠전리 주민 수가 줄면서 벌초성묘에 대 한 관심도 줄었고, 이전에 살던 노인들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참여자의 수도 많이 줄었다. 또한,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차를 소유한 사람이 많아지자, 최근에는 벌 초성묘를 차를 타고 빠르게 둘러보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산지기가 사 라지면서, 벌초성묘 시의 대접도 간소화되었으며, 성묘를 빠르게 마친 후에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방식으로 벌초성묘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 결국, 한 주가량 걸리던 벌초성묘는 3일 정도면 끝나는 간소한 형태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벌초성묘의 존재는 진도의 성묘 문화를 독특하게 만드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다. 진도는 보통 추석에는 성묘하지 않으며 설(구정)에 성묘한다. “추석 전 에 벌초성묘를 이미 했기 때문에 추석에 다시 성묘할 필요가 없다”는 것44)이다.

44) 최근에 이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칠전리에 거주하지 않는 이들은 벌초성묘에 잘 참 여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벌초달에 성묘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고향을 찾게 되는 시기에 성묘를 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가 살아있는 경우, 구정과 추석에 고 향을 찾아오기 때문에, 지금은 칠전리에서도 추석 때 성묘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 류 벌초성묘 구정성묘 성묘 시기 음력 7월 말~음력 8월 초 음력 1월 1일 성묘 성격 묘지 및 문중답 관리 상황 확인 새해 인사

성묘 대상 마을 외부의 묘소 마을 내부의 묘소 대상 조상 4대조 위의 조상 4대조 이내의 조상 참여자 구성 해당 조상의 모든 후손으로 주

로 문중 어른들이 참여

가까운 친척이 모여서 함께 성묘

[표Ⅱ-4] 벌초성묘와 구정성묘의 차이

또한, 벌초성묘와 설의 성묘는 위의 [표Ⅱ-4]에 정리한 것처럼 여러 면에서 대 조적인 특징을 보인다. 벌초성묘가 칠전리 밖에 있는 묘소와 문중답의 관리 양상 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이 있다면, 설의 성묘는 집안의 어른들께 올리는 세배의 연 장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들러야 하는 묘소의 차이로 나 타난다. 즉, 설의 성묘는 집안 4대조 내의 조상 묘소에만 들르며, 집안에 따라서는 성묘를 먼저 하고 세배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4대조 내에서도 칠전리 주변에 있 는 묘소만 들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생긴다. 벌초성묘는 이와 달리 4대조를 넘어가 는 조상들만을 대상으로 하며, 그중에서도 칠전리 밖으로 묘소가 나가 있는 조상 의 묘소만을 찾아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차이는 벌초성묘와 설의 성묘 때에 모 이는 성묘 구성원의 차이로 이어진다. 즉, 벌초성묘가 더 넓은 집안의 어른들이 모인다면, 구정성묘는 혈연상 가까운 집안 식구들이 모인다.

특히 벌초성묘가 설 성묘와 구분되는 점은 벌초성묘에서 의례적 행위를 통한 계보적 질서의 확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은 설 성 묘에 대해서는 상당한 유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같은 장소라면 웃어른의 묘에 먼 저 성묘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거리가 멀 경우 동선을 고려하여 성묘하기 때문 에 계보적 질서가 어겨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벌초성묘의 경우는 결 코 그러는 경우가 없었다. 벌초성묘는 동선과 무관하게 윗대 조상을 먼저 찾으며, 따라서 이것은 산지기에 대한 평가라는 현실적인 의미와 혈연의 중심을 이루는 계보적 질서의 재확인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Ⅲ. ‘망자의 공간’에서의 변화

본 장에서는 전통적인 망자의 공간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볼 것이다. 공간구 조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나타난다. 한 가지 차원은 개별 영역의 변화 이다. 특히 소외된 망자의 장소를 구성했던 아장터와 공동지의 구분이 점차 사라 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다른 한 가지 차원은 망자의 공간에서 나타나던 공간구조 의 역전이다. 이는 조상의 장소가 칠전리 주변으로 모이고 소외된 망자의 장소가 칠전리 밖으로 사라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공간적 변화를 파악하는 것에 서 우선 살펴야 할 것은 칠전리에서 나타난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이는 칠전리 주 민들이 현재 놓인 맥락을 보여준다. 이를 시작으로 이 절에서 연구자는 소외된 망 자의 장소와 조상의 장소 각각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주민들의 설명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칠전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망자의 공간이 마을을 넘어 보다 넓은 규모에서 재편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