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다. 깨끗하고 현대적으로 관리되는 시설임에도 이곳은 연로한 칠전리 주민들 에게 공동묘지로 여겨진다. 이유는 이곳이 갖는 핵심적인 이미지가 과거 칠전리 주변의 공동지와 겹치기 때문이다. 즉, 주변에 묻힌 사람들이 어떤 죽음을 맞은 것인지 알 수 없고, 내력을 알 수 없는 사람이 함께 묻힌다는 점에서, “보배 숲 추모공원”은 공동지가 되며 부정적인 곳으로 인식된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화자 의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칠전리의 청년층에게 이곳의 인상은 훨씬 좋 으며, 오히려 앞으로 일어나야 할 변화를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 나 여전히 칠전리의 6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 이곳은 공동지이며, 돌아가신 선조를 화장하여 보배 숲 추모공원으로 모시는 일은 공동지에 모시는 것으로서, 부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는 칠전리 주변에서는 공동지가 사라지고 있으나, 이를 대 체하는 장소는 마을 밖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현대적인 곳이라 하더 라도 그 장소 주변에 누가 묻혔는지 알 수 없으며, 내력을 알 수 없는 망자가 뒤 얽혀 있다고 인식되는 곳이면, 그곳은 칠전리 주변의 “공동지”와 동일한 장소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칠전리 망자의 공간이 마을을 중심으로 한 조상의 공간과 마을 밖의 소외된 망자의 공간이라는 양 축으로 재편됨을 보여준다.
여기서 소외된 망자의 공간은 단순히 도시 주변 망자의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 는다. 칠전리의 사례에서 최근에 죽은 젊은 자식은 대부분 화장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화장 이후에는 이를 산골 하거나 납골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연구 자가 접한 사례에서 납골한 곳은 보통 대도시 주변이나 혹은 진도읍 근처의 납골 당이었으며, 산골 하는 지역으로 언급된 곳은 진도군 군내면의 녹진리 주변이었 다. [사례Ⅲ-3]의 내용처럼 진도대교나 주변의 언덕에서 바닷가로 뼛가루를 뿌리 고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현재 망자의 공간이 모든 곳에서 터부시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기존 연구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지점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도시 주변에 생긴 공동묘지나 납 골당에 대해서는 많은 반대가 있으며, “월하의 공동묘지”로 대표되는 공포의 공간 이 된 현실에서, 근대화 이후 묘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 되었다는 지적(한경 구·박경립 1998)은 일면에선 타당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칠전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현실의 복잡함을 보여준다. 칠전리 내의 조상의 장소는 여전히 편안한 곳이며, 누군가 조상을 모시기 위해 땅을 산다고 할 때, 그곳에 묘가 들어 선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경우는 없었다. 설령 칠전리 태생이 아니더라도, 마 을에 밭을 사 그곳에 묘를 만드는 경우에도 이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이는 망자의 공간에 대한 태도가 현재 한국 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존재함을 잘 보여준다. 에
르츠의 양손에 대한 비유가 보여주는 것처럼, 망자의 공간에서도 양극적 측면은 공존하며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재의 변화는 죽음의 양 측면이 이전과 는 전혀 다른 공간적 규모에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차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보충되어야 할 지점들을 보여준다.
Ⅳ 망자의 공간 변화의 역학
앞의 두 장을 통해 전통적인 망자의 공간에서 양 축이 재편되고 있음을 살펴보 았다. 이 장에서는 망자의 공간 중 칠전리 주변으로 모이는 조상의 장소에 초점을 둔다. 앞 장에서 조상의 장소에 대한 내용이 퍼져있는 묘를 모아야만 하는 현실적 인 맥락을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 장에서는 묘를 모으는 과정에서 강 조되는 영속성이 실현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조상의 묘를 모으는 과정이 묘소의 개별성을 넘어 혈연적 집단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이며, 묘를 모 으는 것이 칠전리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인식되는가를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