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IA)
4. 북한 외교정보체계 사례 -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
가. 정보 수집 문제
북한의 외교정책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출처들을 살펴보았으나 출 처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과연 전문가들이나 언론인들이 적시에 만족할 만한 정보들을 획득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지난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정보유통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8월 26일 정부 당국자에 의해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사실이 ‘갑자기’ 알려졌을 때 우선 방중사실 자체 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되었다
.
224)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한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27일 현재 김정일 위원장이 지린시와 창춘시에 이 어 다음 행선지로 어디를 선택할지, 북한과 중국 간 정상회담이 열릴지,
열린다면 언제인지, 중국 측의 정상회담 참석자가 후진타오 주석인지 아니면 원자바오 총리인지 등 방중일정은 물론이고 정상외교와 관련된 기본적인 사항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225) 이 과정에서 소위 ‘소식 통’들의 부정확한 정보도 혼란을 부추겼다.226)무엇보다 이번 방중이 북한의 노동당대표자회가 44년 만에 개최되고 이를 통해 후계구축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주목되는 가운데 이루어졌기에 당시 후계자로 내정되었으며 9월 28일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됨으로써 후계자로 공표된 김정은이 동행했는지 여부가 주목되었으나 방중이 끝나고서도 상당기간 확인되지 않았다
.
227) 김정은의224) 이현정, “김정일 방중에 제기되는 의문점들,” 뉴시스, 2010년 8월 26일.
225) 홍제성, “<김정일訪中> 극비 방중 속 난무하는 ‘설’,” 연합뉴스, 2010년 8월 27일.
226) 박종국, 홍제성, “김정일, 연변行 … 투먼・훈춘 방문한 듯,” 연합뉴스, 2010년 8월 29일. 당일 18시 53분 에 송고된 이 기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전용 특별열차편으로 28일 밤 창춘(長春)역을 출발해 29 일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가서 두만강 부근의 옌지(延吉)-투먼(圖們)-훈춘(琿春) 등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 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자가 19시 56분에 송고한 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같은 시기 헤 이룽장성 하얼빈을 방문하였다(박종국, “김정일, 창춘 떠나 하얼빈 도착설,” 연합뉴스, 2010년 8월 29일).
실제 김정일 위원장은 헤이룽장성 하얼빈을 방문하였으며 훈춘을 방문하지 않았다(“김정일 총비서 중국을 비공식방문,” 조선중앙통신, 2010년 8월 30일).
227) 이와 관련 북한의 고위급 소식통일 인용하면서 김정은이 방중하지 않았다는 북한소식지의 보도가 있었다 (조광정, “2차 김정일 방중, 김정은 기획했으나 동행하지 않아,” 열린북한통신, 2010년 8월 27일). 그러나 김정은이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장용훈, “北김정은, 김정일 두 차례 방중 모두 동행,”
연합뉴스, 2010년 10월 4일); 이영종, 후계자 김정은 (서울: 늘품플러스, 2010), pp. 218~219).
정 보체 계 실 태조 사
동행 여부에 대해서도 북한 당국은 함구하고 있고 중국조차도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이 끝난 시점에 ‘초청 명단에 없다’는 것228) 이상을 언급하지 않았다
.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이 끝나고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서 후계자의 지위를 공식화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나 중국은 공식적으로 8월 김정일 위원장 방중 시 김정은 동행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이는 후계문제의 민감성과 중국의 북한내정 불간섭, 대중 국 사대주의 시각에 대한 북한의 우려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북한 대외활동 정보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극단적 통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청와대 관계자가 김정일 위원장 방중 첫날 김정은이 동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함으로 써229) 결과적으로 방중의 목적이 후계승인일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230) 결국 지난 8월의 김정일 위원장 방중을 둘러싼 혼란은 북한의 비밀스 런 행태와 북한의 입장을 감안한 중국의 정보통제 그리고 중요한 정보출 처일 수 있는 한국 정부의 부분적인 정보공개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외교정책 활동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부족한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나. 정보 분석 문제
정보 분석 결과물들의 품질이 과연 만족스러운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
이는 지난 8월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8월 26일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졌을 때 전문가
들은 방중의 목적으로 후계 추진 통보 또는 후계내정자 승인 등 후계문제논의
(후계자에 대한 중국의 동의 획득 포함 )와 수해지원 등 대북경제지
원 요청을 거론하였다
.
231) 또한 후계문제와 북핵문제를 ‘빅딜’하러 김정일228) 인교준, “中 ‘김정은, 초청명단에 없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30일.
229) 남궁민, “3대세습 中 최종지지 얻으려 김정은 동행,” Daily NK, 2010년 8월 26일.
230) 신석호・김연식, “[김정일 방중] 당 대표자회 앞두고 ‘현대판 세자책봉’ 하나,” 동아일보, 2010년 8월 27 일.
231) 백나리, “<김정일訪中> 전문가들 ‘후계’, ‘안보’ 해석 엇갈려”, 연합뉴스, 2010년 8월 26일.
장 -
북 한
외 교 정 보 체 계
실 태 조 사
위원장이 방중하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232)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이 마무리된 뒤에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6자회담 재개를 중국에 약속하고 경제협 력과 후계구도에 대한 지지를 얻는 ‘바터’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기 본적으로 북한은 중국에 대해 핵문제를 양보하고 중국은 그 대가로 체제 안정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분석구도이다.233)
양국 지도자가 “자기 나라의 형편을 각기 통보하시고 조중 두 당, 두 나라 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킬 데 대하여서와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중대 한 국제 및 지역문제들에 대하여 허심탄회한 의견을 교환
”하였다는 보도
를 보면234) 양국 간의 주요 현안들이 모두 논의되었고 당대표자회 개최 등 내정에 관한 사항도 ‘전략적 소통 강화’ 차원에서 통보되었을 수 있다.
포괄적으로 현안이 논의되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본다면 관련 정보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상기 분석구도가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그러나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8월 방중에서 중국의 경제‘지원’을 얻기 위해 6자회담과 비핵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양보를 했는지 불확실 하다. 이는 같은 논리로 보면 중국의 대북경제협력이 꼭 단기간에 6자회 담과 비핵화에서의 양보를 전제로 추진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도 이어진다. 중국은 고위급 접촉 지속, 무역경제협력 발전 그리고 전략적 소통 강화를 강조하는 가운데 경제협력 원칙으로 정부가 인도하고 기업 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시장을 활용하고
(market operation)
상호 윈-
윈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35)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단기적 카드로 경제협력을 활용하기보다 북한의 중장기 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중국측의 실리도 도모하는 기제로서 경제협력 을 바라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대북정책기조가 북핵문제가 근본 적으로 북한문제라는 인식 하에236)북한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북핵문232)“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PBC Radio, 2010년 8월 27일 <http://web.pbc.co.kr>
233) 김성진, “<김정일訪中> 6자회담 vs 포괄적 지원 ‘주고받기’, 연합뉴스, 2010년 8월 31일.
234)“김정일 총비서 중국을 비공식방문”, 조선중앙통신, 2010년 8월 30일.
235)“President Hu holds talks with DPRK top leader Kim Jong Il”, Xinhua, Aug. 30, 2010.
236) 王緝思, “朝核问题与当前中韩关系”, 2010 한중평화포럼: 한중 양국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 학술회의 발표문, 2010년 9월), 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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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인 북한 체제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237)는 점과 배치된다.238)
실제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획기적으로 진전된 제안을 내놓았 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
특히 김정일 위원장 방중 전인 8월16~18
일 간 방북한 뒤 8월 26일부터 9월 초까지 한국, 미국, 일본을 순방한 우다웨이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여전히 미・북 접촉과 예비회담 을 거쳐 본회담으로 이어지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3단계 방안에 대해 한미일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239) 결과적으로 후계문제와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북한과 중국 간에 소위 ‘빅딜’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 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해지원도 주요한 현안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북이전에 이미 중국의 대북수해지원이 결정되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240)그렇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
북한과 중국이 대화록을 공개하지 않는 한 방중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목적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고려 할 수 있는 사항 중 하나는 방중 동선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지는지린
-창춘-하얼빈-무단장으로 이어지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적지와 중
국의 동북진흥계획에 따른 경제성장 핵심축인 ‘창춘
-지린-투먼 개발개방
선도구
’가 겹쳐졌다.
그리고 실제 중국과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이 공식적으로 보도되었을 때 북한은 북
・
중 간의 전통적인 친선과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적지 방문을 강조하였고 중국은 경제협력을 강조하였다.
241)237) 김강일, “북중관계 현황과 변화전망”,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와 재외동포사회의 통일의식 (평화문제연구소 주최 학술회의 발표문, 2010년 10월 14일), pp. 42~44.
238) 중국의 이러한 대북정책기조는 2009년 7월 후진타오 주석이 조장인 당중앙외사영도소조회의 등을 통해 결정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용인, 김태형, “북, 중국에 안보・경제 더 의존 … 중, 6자 재개 적극 나설 것,” 한겨레신문, 2010년 5월 11일).
239) 성기홍, “보즈워스, 北 `태도변화 조건 협의할 듯,” 연합뉴스, 2010년 9월 8일. 중국의 경우 이후에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3단계 구상이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의 반대에 직면한데다 한국이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미국과 일본도 이에 동조하는 상황을 감안, 남북 간 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승우, “중・러도 ‘先남북대화- 後6자회담’ 동의,” 연합뉴스, 2010년 10월 29일).
240)“중국정부 조선에 긴급구호물자를 제공하기로 결정,” 조선중앙통신, 2010년 8월 25일.
241)“김정일 총비서 중국을 비공식방문,” 조선중앙통신, 2010년 8월 30일; “President Hu holds talks with
DPRK top leader Kim Jong Il,” Xinhua, Aug. 30, 201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