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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전업투자 꿈꾸기

Dalam dokumen PDF Disclaimer - Seoul National University (Halaman 64-69)

III. 생계가 빚은 꿈과 희망

2) 개인 전업투자 꿈꾸기

‘개인 전업투자자’라는 직업에 대한 꿈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의 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기술의 등장이 맞물리며 탄생했다. 1997년 12월 340포인 트까지 코스피 지수가 폭락하고, 한보철강·삼미·진로·대농·기아 등 국내 대기업 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 신청을 내며 한국의 자산시장에 위기가 불어 닥쳤다. 이에 12월 3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으로부터 긴급 유동성자금 210억 달러를 지원받음으로써 IMF관리체제에 들어가게 되었다(윤재수 2015: 227). 그러나 1998년 8월 이후부터 주식시장의 하 락세가 둔화되고 안정되어감에 따라 경제도 회복되었고, 자산시장이 다시 활성 화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주식을 전업으로 투자한다는 개념은 국내에서 생 소하였으나, 이 시기 직장에서 구조조정 당한 사람들이 주식투자에 참여하기 시 작하며 ‘전업투자’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개인 전업투자자’라는 직업이 등장한 것이다.

[사례3-2-4: 개인 전업투자자의 탄생]

1989년에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 그 시절에 증권이 굉장히 호황이었어요. 우 리(나라)가 85년도에 10월인가 처음으로 무역수지가 월별 흑자를 보면서 88년 올림 픽도 있고 해서 한국 증권시장 자본시장이 굉장히 활황을 띠었다고. 예전엔 증권회 사가 굉장히 안 좋은 직장 개념이었는데, 그 때 즈음 증권시장이 활황이 되니까, 급 여수준도 높고 이러니까 그 때 많이들 선망하는 직장이 됐었죠.48)···IMF는 (19)97년.

제가 회사 들어간 지 한 10년차 쯤 될 때, IMF 구제 금융을 받고, 증권시장 자본시 장 전체가 폭락하는 시기가 왔죠. 그 때 이제 많이들 회사 그만두고 나오면서 주식 투자를 전업으로 하게 된 사람들이 많죠. 응, 97년 말 98년. 98년을 지나면서 증시 가 IMF 구제금융 벗어나는 그 시점 해가지고 굉장히 또 호황을 이루면서 증권 전업 투자자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그 때 이제 구조조정 때문에, 직장에서 딸려 나온 사람 48) 당시 증권회사는 구직시장에서 최고의 선망을 받았다. 증권회사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은 100단위를 육박했다. 이처럼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우리사주’ 때문이었 다. “증권회사 직원 중 책임자급은 우리사주 주식 평가 금액이 대략 1억 원 이상 되었고, 입사한 지 2~3년 만에 20년 봉급생활자의 퇴직금보다 더 많은 우리사주 주식을 받기도 했다” (윤재수 2015: 159).

들, 이런 사람들이 주식투자를 전업으로 왜냐면 그 때 워낙 주식경기가 좋으니까.

(차명근, 개인 전업투자자, 50대)

명문 ‘S대’ 출신으로 문과계열 전공으로 졸업한 차명근 씨는 1989년 1 월, 국내 메이저 증권사에 입사하여 15년간 근무한 뒤 ‘명예퇴직’하였다. 이후 개인 전업투자자로서 새 출발하였지만, 중간에 세 번의 실패를 겪으며 일용노동 과 개인파산의 경험이 있는 그는 전업투자자로서 세 가지 능력을 반드시 갖추 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경제상황이나 기업 상황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analyst)’로서의 능력, 둘째 매매에 최적의 타이밍을 잡는 ‘트레이더(trader)’로 서의 능력, 셋째 자기 자금을 관리하는 ‘펀드매니저(fund manager)’로서의 능력 이다.

하지만 차명근 씨는 개인이 세 능력을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한다. 대부분 투자자도 이를 알지만 능력이 부족함에도, 자신의 경제적인 조 건에 맞는 차선책으로 그나마 과거 우리사주제도를 통해 수익을 낸 긍정적 기 억이 있는 개인 전업투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IMF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에 휩쓸려 떠내려간 한국의 아버지들이 재취업이 어려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실질적으로 제한되면서 ‘개인 전업투자자’라는 꿈이 급부상한 것이다.

[사례3-2-5: 타의로 선택하게 된 전업투자]

(전업을 하는 이유는) 일단 선택지가 없어서야. 처음 전업투자자란 말이 등장 한 게 IMF직후 회사가 구조조정해서 나오고, 그 때 마침 증시가 활황이고. 그래서 여 기서 좀 해보자.···하여튼 경기가 나쁘고 할 때마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지. 직 장이던 자기가 하던 자영업에서 퇴출되면서 대안으로서 찾을 게 없으니까 그래서 뛰 어든 사람들이 태반일거야. 아 나 이거 주식 하는 게 잘 할 수 있어서 그런 분들보다 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온 사람들이 훨씬 많아. (차명근, 개인 전업투자자, 50대)

개인 전업투자를 가능하게 했던 또 다른 필수요건은 ‘홈 트레이딩 시스 템(HTS)’의 개발 및 보급이다. HTS란 개인이 더 이상 객장에 나가 증권사 직 원을 통하지 않고, 집 혹은 사무실에서 개인PC를 이용해 직접 비(非)대면으로 금융상품을 매매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증권사마다 그 기능과 수수료 정책 및 혜택이 다양하다.49) IMF외환위기 이후 국내증시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1998년부터 각 증권들은 경쟁적으로 HTS를 개발하여 보급하기 시작했다.

HTS의 보급의 여파로 한국의 개인투자자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49) 증권사 직원과의 전화로 매매하거나 객장에서 직접 주문서를 작성하여 매매하는 것보다 수수료가 일반적으로 저렴하다.

있다. 특히 2010년도 478만 명대에 머물던 주식투자인구는 그 해 스마트폰을 이 용한 거래 프로그램인 MTS(Mobile Trading System)가 도입되자, 이듬 해 약 50만 명이 늘어 주식투자인구가 528만 명으로 집계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표 3-4 참조). 공학박사 출신 연구원이자 34년차의 직장인 개인투자자 설민석 씨는 HTS의 등장이 개인투자를 계속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회상한다.

[사례3-2-6: 투자를 계속할 원동력이 된 HTS]

84년도에 연구소 입사하고 주식을 시작했는데 그 때 뭐 차트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지. 친구랑 신문 보면서 매일 주가 확인하고, 차트를 내가 직접 모눈종이에 그리 면서 만들었다니까.(웃음) 50만원이 그 당시 월급이었는데, 몇 년 새 1000만 원을 까 먹었어. 친구랑 서로 보증 서줬지.(웃음) 근데 IMF 때 더 꼬라박고. 하 주식 그만해야 하나 좌절했는데 그 때 HTS가 딱 나왔어. 그거 나오고부터 제대로 다시 공부해보자고 마음먹었지. 이건 뭐 기관들처럼 차트도 볼 수 있고, 나 혼자서도 완전하게 할 수 있 는 ‘툴(tool)’이 생긴 거니까. HTS가 나와서 그 때 내가 친구들 중에 맨 먼저 컴퓨터 샀지. (설민석, 직장인 개인투자자, 50대)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주식투자인구(천 명) 3,763 3,537 3,613 4,441 4,627 4,665 4,787 5,284 5,015 5,076

경제활동인구대비

주식투자인구(%) 16.1 15 15.2 18.5 19 19.1 19.51 21.24 19.95 19.72 총인구대비

주식투자인구(%) 7.82 7.32 7.4 9.2 9.5 9.6 9.79 10.61 10.03 10.12

출처: 한국거래소(2013) [표3-4 : 국내 주식투자인구의 증가]

HTS의 등장 이전에는 증권사의 객장에 나가서 주문서를 작성하거나, 증권사 직원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금융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매 매를 위해서는 증권사의 직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보니, 장 중 투자자 자신이 원하는 때에 거래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HTS가 보급됨에 따라, 적기(適期) 에 사고 팔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개인도 객장의 전광판이나 신문의 시세표가 아닌 차트를 보게 되었다. 직접 종목을 고르고 분석하는 등 적극적인 행위자로 서 투자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50) 뿐만 아니라 2000년 국내 소형 증권사

50) 때문에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이 작전을 하는 방식 또한 변화하였다. 차트를 볼

였던 ‘키움증권’이 처음으로 수수료 무료 비대면 계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51) 그 결과 증권사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하기도 했다.

[사례3-2-7: 증권사 직원과의 전화투자]

HTS 나오기 전에는 직원하고 사귀어서 통화를 해서 ‘무슨 종목이 좋으냐?’ 물 어보고, ‘나는 이 종목이 좋은데, 이 종목을 사주십시오.’ 그래서 사졌다고 하면 쭉 보 유를 하고 있다가 수익이 났다고 하면, ‘아 어느 정도 올랐으니 이젠 팔겠습니다.’ 전 화로 해서 또 팔고. 98년도 HTS가 나왔을 땐 PC로, 그 이후엔 스마트폰으로 했죠.

전화로 했을 땐 직원이랑 비대면 이지만, 통화를 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훨씬 지금보 다 비싸게 줬어요.···지금처럼 맨날 매매 못하고 장기투자 위주였지. 퇴근하고 신문보 고 딱 골라서 종목 쭉 갖고 있었고. (구자철, 로알매매방 입실자, 50대)

(단위 : 1만 명, %)

수 있게 된 개인투자자를 속일 수 있도록 더 정교하고, 교묘하게 진행해야하기 때문이다.

51) 매일경제, 2016.02.24., “증권사 주식수수료 인하 2차전쟁”

<https://mk.co.kr/news/stock/view/2016/02/147832/> (2019.05.14 접속)

연도52) 실질주주

53) 개인주주 수

전체 대비 개인주주

비율(%)

전체 대비 개인 주주 보유주식 수 비율(%)

2002 338 336 99.5 50.6

2003 317 315 99.5 54.6

2004 292 290 99.4 49.1

2005 289 287 99.3 51

2006 305 303 99.3 53.2

2007 364 362 99.4 55.3

2008 400 397 99.4 56.7

2009 416 399 99.5 61

2010 454 450 99.2 55.5

2011 482 476 98.9 52

2012 472 466 98.9 49.9

2013 481 475 98.9 47

2014 442 436 98.9 48.4

2015 475 469 98.9 48.8

2016 494 488 98.9 50.1

2017 506 500 99 49.6

2018 561 561 99 47

출처: 한국예탁결제원(2003-2019) [표3-5: 국내 개인투자인구의 증가]

국내 개인투자인구의 성장과 관련하여 한국거래소에서 집계한 국내 주 식투자인구 수(표3-4)와 한국예탁결제원의 자료(표3-5)54)는 다소 차이가 있다.

독립된 두 기관에서 각자 상이한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하 52) 매년 12월 결산을 기준으로 한다.

53) 실질주주는 개인주주와 기관, 외국인 주주를 합산한 총 주주 수를 뜻한다.

54) 한국예탁결제원 홈페이지>보도자료 (http://www.ksd.or.kr/bbs/bbsList.home) 게 시판에서 2003년- 2019년 동안 발표된 ‘12월 결산 상장법인 주식투자자 현황분 석’ 문서들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2019.04.01 접속)

지만 주식투자인구의 변화 추이를 종합해보면, 국내 주식투자인구는 2000년대 초반 300만 명대에서 2010년도 이후 500만 명대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은 공통 적이다.

Dalam dokumen PDF Disclaimer - Seoul National University (Halaman 64-69)